You Are My Life

내 삶의 반
Salva López

함께하지 않은 날보다 함께한 날이 더 긴긴 사람들도 있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곁

만나서 만가워요. 살바의 사진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됐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살바로페스Salva López예요. 한국 독자들에게 제 이야기를 전한다고 하니 설레네요. 사진을 시작한 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어요. 제 전공은 그래픽 디자인이었는데 2007년에 좋은 기회로 DSLR을 갖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사진에 푹 빠져서는 지금까지 완전히 사로잡혀 있어요.

 

살바의 사진엔 빛과 그늘, 움직임과 정지된 느낌이 고루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척 단정하죠.

저는 항상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요. 미니멀리즘은 최소한의 요소로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거든요. 그래서 디자인이든 사진이든 모든 걸 최솟값으로 구성하고 그 요소들로 질서를 만들면서 작업하고 있죠. 작업 중간중간 흐트러진 지점은 없는지 확인해 가면서요. 더 정돈된 모습을 만들기 위해 포토샵으로 사진을 크롭해서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하기도 해요.

 

피사체의 구도를 중요하게 여기나 봐요.

맞아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사진에서 풍기는 분위기죠. 저는 제 작업에 우울한 무드가 있길 바라요. 어둡고 축 처진 우울함보다는 멜랑콜리에 가까운 느낌으로요.

 

마냥 밝고 활기찬 사진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 이유가 이거였군요. 오늘은 많은 작업 중에서도 ‘Roig 26’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Roig 26’는 제 첫 개인 작업이어서 누군가 관심을 가질 때마다 기뻐요. 이 프로젝트는 6×6 중형 롤라이플렉스Rolleiflex로 5년간 제 할머니·할아버지를 촬영한 시리즈 작업이에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동안 조부모님 댁에서 지냈거든요. 두 분이 사는 곳은 엘 라벨El Rava이란 동네였는데 할머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해서 더 애틋하게 느껴졌어요. ‘Roig 26’은 처음부터 프로젝트로 구상한 작업은 아니었어요. 그저 카메라와 새 렌즈를 테스트하기 위해 두 분을 피사체로 촬영해본거였죠. 그렇게 하나둘 쌓이는 사진을 보니 프로젝트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두 분의 일상을 담기 시작했는데, 할머니·할아버지의 생활은 신기할정도로 365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더군요.

 

사진이 모두 집 안에서만 촬영된 점도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 같아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던 아파트는 두 분의 추억으로 가득해요. 이런 추억들이 없었다면 그저 낡아빠진 아파트였을 거고 제 프로젝트도 힘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 이 아파트 구석구석에 두 분의 생활이 녹아 있기 때문에 장소 역시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어요. 벽지 좀 보세요. 정말 멋있지 않나요?

 

벽지 같은 작은 요소들이 생활감을 보여주네요. 그래서인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고요.

저 역시 이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지도 몰라요. 두 분을 촬영하기 위해 조부모님 댁에 찾아간 거라면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이 있었을 거예요. 아마 두 분도 저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조부모님은 여느 평범한 노인들과 다르지 않아서 사진 찍히는 데 익숙한 분들은 아니니까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걸 담아내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순간을 잘 포착한 것 같아요.

저는 이 작업을 해나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어떤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어요. 놀랍게도 모든 사진이 두 분의 연출이거든요.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거울을 보는 것도, 배경이 된 공간도, 옷차림까지도요(웃음).

 

일관된 무표정도요?

네. 모두요. 저는 두 분에게 그 어떤 것도 부탁하지 않았어요.

놀랍네요. 어쩐지 강인한 분들일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맞아요. 특히 할머니가 예나 지금이나 힘도 세고 듬직하세요. 올해 92세가 됐는데도 여전히 정정하시죠. 저는 그런 할머니를 어려서부터 존경했어요. 훌륭한 여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함께 사는 동안이 그 어떤 시절보다 행복했어요. 반면 할아버지는 성격이 좀 특이하고 전체적으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셨는데요. ‘Roig 26’을 작업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갔어요. 이 프로젝트가 끝날 즈음엔 아주 많은 걸 잊어버리셨죠.

 

두 분에게도 특별한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사진들을 책으로 만들어서 선물했는데 별다른 피드백은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아마…슬픈 사진이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요?

이 사진들은 죽음에 닿아 있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손에 잡힐 듯이 담겨 있거든요. 이 시절 할아버지는 곧 부서질 듯한 삶을 살고 있었어요. 질병과 죽음 사이에서 겨우겨우 숨쉬고 있었죠. 저는 할아버지가 극심한 고통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그 집에서 나왔어요. 할아버지의 죽음과 그 죽음을 기다리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아름다운 사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왠지 숙연해지네요.

아름답게 느껴줘서 고마워요. ‘Roig 26’은 저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작업이에요. 할머니·할아버지를 촬영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품위 있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싹텄다는 거예요. 그 생각은 점차 커져서 지금은 인생 최대 미션이 되기도 했죠.

 

조부모님과 닮고 싶다는 의미인가요?

두 분이 헤어질 때를 생각하면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늙는 게 좀 무서워요. 두 분은 오랫동안 함께했지만 충격적인 모습으로 헤어져야 했어요. 할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은 정말이지 불행하고 끔찍했거든요. 아마 말년엔 두 분 다 엄청 힘드셨을 거예요. 지치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기운을 잃지 않고 할아버지 곁을 지켰어요. 저는 할아버지가 운이 엄청 좋았다고 생각해요. 할머니 같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 주었으니까요.

 

살바는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럼요. 요즘 들어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저에겐 8년 된 파트너가 있는데요. 그녀를 볼 때마다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비로소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생각하곤 하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에요.

 

누군가와 함께 나이 먹는 건 멋진 일 같아요. 노년을 상상하면 어때요?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해요. 저는 에너지가 많은 노인이 되고 싶어요. 일흔이 넘어서도 사진 찍을 힘이 남아 있는 노인! 매일 제 인생에 놀라고, 기록하고 싶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런 제 곁에 지금 여자친구가 함께이길 바라고요.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군요. 참, 살바의 SNS에서 한국의 모습을 보았어요. 한국에 와본 적이 있나요?

네. 정말 즐거운 여정이었어요. 일주일 동안 서울을 여행했는데 매일매일 이 도시는 감동적인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곳이기도 했고요.

 

서울에서도 노인의 사진을 찍었더군요.

예리하네요(웃음). 왜 노인을 보면 셔터를 누르게 되는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늙음’이라는 게 저를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그건 사람뿐만 아니라 장소도 마찬가지예요. 퇴폐적인 공간, 낡은 공간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살바의 내일이 기대돼요. 앞으로도 단정한 사진들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것 같아요.

오래도록 그러고 싶어요. 한국에도 꼭 다시 방문해서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싶고요. 최근에 한국이 코로나19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스페인은 지금… 거의 재앙수준이에요. 이 재앙에서 벗어나면 다시 한국에 갈게요. 연락할 테니 우리 꼭 만나요.

H. salvalopez.com

살바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내 노래를 흥얼거렸다. “두근두근 대는 설렘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면 너흰 누굴 선택하겠니 나는 다른 상상이 안 돼” 누군가와 함께 인생의 끝자락까지 동행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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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Photographer Salva Lóp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