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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글쓰기 수업: 행방불명의 시간이 필요해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읽던 날,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들을 재운 방에서 살금살금 걸어 나와 인터폰을 끄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소파 구석에 쪼그려 앉아 시집을 꺼내 들었다.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너무 없어. 초조하고 조급해서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책을 열자 활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마중을 나왔다. 그리고 읽게 된 시의 문장. 아이들이 깰까 봐 소리 없이 여러 번 따라 읊었다. “저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이 됩니다. 지금은 여기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괜찮다고 등을 밀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엄마도 주부도 아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야. 나는 그제야 소파 등받이에 느슨하게 기대어 마음 놓고 책을 읽었다. 행방불명의 시간이었다. 엄마가 된 후, 나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되었다. 책 속으로, 글 속으로.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나만의 세계로 숨어들었다.
“시간이 너무 없어.” 엄마가 되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정확히는 나의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밤새워 해도 되고, 할 수도 있었다. 작가가 직업인 나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그랬다. 더욱이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써도 행복했다. 내가 해낸 작업들이 하나씩 쌓여 원고가 되고 책이 되고 이력이 되고 경력이 되는 삶. 나의 일을 이뤄가는 성취감이 나라는 사람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되자 하루가 더 바빠졌다. 아이들을 돌보고 삼시 세끼 밥을 짓고 살림을 하는 엄마이자 주부의 일. 그런데 이상했다. 밖에 나가 일하던 때보다 곱절은 바쁘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나는 투명해졌다. 째깍째깍, 시계의 시침 같은 일상을 살면서 아이들과 복작거리며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는데도 내가 해낸 일들은 쌓이지 않고 녹아서 투명하게 사라졌다. 나의 일, 나의 성취, 나의 꿈, 나의 시간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깨달았다.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을 해내는 나는, 사회적 성취와 인정이 없는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는걸. 그리고 내가 엄마의 삶을 선택한 이상,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침마다 텅 빈 식탁을 돌아보며 나는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자 울화가 치밀고 우울해졌다. 내 힘든 마음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졌고,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다시 나를 향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나는 어떤 때 가장 나답고 충만하다 느낄까. 나는 절실하게 읽고 쓰고 싶었다. 나만의 일을 해내려면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책임과 관계에서 외따로 떨어져,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시간을 만들자. 시간이 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려고 애썼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시간을 내서 글을 썼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낮잠 시간 30분. 아이들이 원에 가면서는 등원 후 30분. 오로지 나를 위한 30분. 겨우 30분이 아니라 무려 30분. 나는 그 30분을 ‘행방불명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인터폰을 끄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세상의 스위치를 끄고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지 않고,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는, 집에서의 행방불명의 시간. 아무도 방해하거나 강요하거나 참견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이 나를 구했다. 더디더라도 꾸준히 읽고 쓰는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처럼, 인간에게는 자기 존재를 감쪽같이 지우는 행방불명의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에게도 행방불명의 시간은 필요하다. 3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멍하니 혼자, 외따로 떨어져, 선잠을 자든 커피를 마시든 책을 읽든 그림을 그리든 텔레비전을 보든. 어떤 책임으로 불리는 자기 존재를 감쪽같이 지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행방불명의 시간을 보내는 데 자책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 24시간 중에 30분 정도는 오로지 나로 살아도 괜찮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나의 인생이다. 잠시간 나를 나로 채우고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세상의 스위치를 끄고 활자 속으로 숨는다. 행방불명의 시간.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한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은혜 씨는 매일 여덟 시간씩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되자 그림 그릴 시간이 사라졌다. 돌봄과 가사 노동으로 쉴 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도, 잠을 줄여서라도 그림 그릴 시간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이 게으르고 부족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엄마의 일과 자아의 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자신을 탓하고 몰아붙이는 엄마. 그건 지난 내 모습이기도 했고, 어쩌면 모든 엄마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은혜 씨는 ‘하루 30분만 뭐라도 그리자’ 결심하고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무릎에 와 앉아도, 하루에 얼굴 하나 그리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회의감에 빠지면서도’ 그렇게 1년을 그렸다. 1년 후, 은혜 씨에겐 100장의 그림이 남았다. 그림 모퉁이에는 언젠가 책을 읽고 적어둔 메모가 있었다.
다니엘 페나크의 책 《소설처럼》에서 읽은 문장이었다. 그래도 1년 동안 100장을 그렸구나. 하루 30분이라는 시간을 훔쳐서. 은혜 씨는 불쑥 눈물이 났다고 했다. 내가 ‘행방불명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은혜 씨는 ‘훔친 시간’이라고 불렀다. 애써 만든 하루 30분. 우리에겐 겨우 30분이 아닌 무려 30분. 그동안 우리는 더디게 쓰고 그려서 천천히 작품을 만들었다. 전처럼 여덟 시간씩 그림을 그렸다면, 1년 후 은혜 씨에겐 1,600장의 그림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엄마인 나에게는 은혜 씨가 간절함으로 그린 100장의 그림이 훨씬 값지게 느껴진다. 우리가 작은 시간을 내어 작은 성취를 이루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건강하고 즐겁게 자랐을 것이다. 자기만의 시간을 애써 만들고 열심히 보낸 우리는, 다시 돌아와 최선을 다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을 테니까.
은혜 씨는 그림들을 모아 <훔친 시간에>라는 첫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훔친 시간으로 그린 그림들을 전시한다면 엄마들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품고 또다시 시간을 훔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예술과 연대로 확장되는 어느 엄마의 시도가 너무도 뭉클해서, 나는 은혜 씨의 앞날을 힘껏 밀어주고 싶다.
행방불명의 시간이든 훔친 시간이든, 엄마들에게 30분이라도 자기만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 나를 재료 삼아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적인 시간이라면 더욱 좋겠다. 작은 시간과 작은 성취와 작은 꾸준함이 모여 나의 삶을 만든다. 다니엘 페나크는 또 말했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한다.”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에 잠긴 시간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시간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시간처럼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사라지고 허비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확장된다. 어느 순간부터 녹지 않고 쌓이는 아주 작은 눈송이들처럼, 모르는 새에 스며들다가 소복이 쌓여서 반짝인다. 돌아보았을 때, 불쑥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게.
글을 써봅시다. 그냥 한번 자유롭게 써봅시다. 주제도 형식도 분량도 자유입니다. 다만, 10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백지 앞에서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 지난 시간에 그린 ‘마음의 지도’를 펼쳐보세요. 다시 펼쳐본 ‘마음의 지도’는 어쩐지 새롭게 느껴지지요? 이번 시간에는 내가 그린 ‘마음의 지도’ 속으로 딱 10분간 행방불명의 시간을 떠나볼 겁니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단어나 사건이 있을 거예요. 저는 그걸 ‘마음의 단어’라고 부르는데요. ‘마음의 단어’ 하나를 골라 그것에 대해 무작정, 무조건, 무턱대고 써보는 겁니다.
10분 행방불명 글쓰기 가이드
준비물: 펜과 종이, 단 10분간 혼자만의 시간의 공간
·10분 타이머를 맞춰둡니다. 시계를 보지 말고, 소리로 들리는 알람 타이머를 설정해 주세요. 심호흡 한 번 하고서 시작!
·컴퓨터나 휴대폰 말고, 반드시 필기구를 사용해 종이 위에 써주세요.
·단 한 순간도 펜을 쉬어서는 안 됩니다. 종이만 보세요. 손끝에서 그려지는 글자들만 보세요. 잘 쓰든, 못 쓰든, 틀리든, 이상하든 그냥 펜이 움직이는 대로 씁니다. 여러분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 초인종도 전화벨도 전자레인지도 세탁기도 방해하지 못해요. 10분 동안 글쓰기에만 몰입합니다. 행방불명의 시간을 보냅니다.
·10분 후, 타이머가 울리면 펜을 멈추고 내가 쓴 글을 살펴보세요. 자기 검열이나 자기 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단어와 문장 중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 좋았던 것들, 간직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표시해 두세요.
·글쓰기를 경험한 10분은 어떠셨나요? 글쓰기의 감각, 필기의 아름다움, 몰입의 즐거움, 나와의 시간 같은 것들을 느끼셨나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본 것처럼, 글 쓰는 시간의 감각을 느껴본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지금 이 이상한 기분을 간직하세요.
·이 경험이 즐거웠다면, 시간이나 빈도를 조금씩 늘려가며 글을 써보세요. 세상의 모든 작가도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답니다.
에디터 이다은
글 고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