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다음 기차는 언제 도착하죠?
What time does
the next train arrive?
다음 기차는 언제 도착하죠?
기차가 지나간 자리들을 찾아갔다. 언젠가 기차가 지나갔지만, 이제는 오지 않는 곳들. 기다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곳에 앉아 오후의 한 때를 보냈다.
시간이 맞물리지 않았던 간이역
화랑대역
버스를 타고 등교할 때, ‘땡땡’ 소리가 들려오면 “젠장!”을 외쳐야 했다. 화랑대역 건널목 앞에서 그 소리가 들리면 버스가 멈춰야 하고 그렇게 되면 지각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 기차는 어찌나 느리게 지나던지 버스 안의 학생들은 시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기차만 안 지나갔어도 지각은 면하는 건데’ 강의실에 앉아 숨을 헉헉거리며 여러 번 생각했다. 기찻길을 원망하면서도 마냥 밉지만은 않았던 게, 강의가 빈 시간에는 그곳이 나의 놀이터였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무성한 풀숲 사이로 용기 있게 몸을 들이밀면 ‘화랑대역’이란 간판이 나왔다. 도로 옆에 붙어있지만 높은 풀 사이로 고개를 넣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밀장소.
당시 화랑대역은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역무원이 없어지고 버려진 것처럼 방치되는 작은 역.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아 간이역이 되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곳에 혼자 있어도 아무지 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그곳은 아주 ‘폐역’이 되어버렸다. 스치듯 지나가던 기차도 발길을 끊게 된 것이다. 역의 사정이 어떻든 간에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버려진 소파나 벤치에서 낮잠을 자던 시간. 잠에서 막 깨어나면 꿈과 현실 사이를 서서히 걸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서 자는 낮잠에선 얻을 수 없는 느낌이다.
가끔은 누워서 나무흉내를 내기도 했다. 흉내랄 것까진 없고 온갖 벌레들이 기어 올라오면 나무처럼 가만히 눈을 감았다. 딱히 곤충들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화에서처럼 곤충 수억 마리가 날 어디론가 데려가도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그곳이 생각나 찾아가 보려던 중에 ‘화랑대역은 공사 중’이란 기사를 읽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가니 정말 공사가 한창이었다. 역에서 좀 떨어진 기차 건널목, 그러니까 버스가 매번 멈춰서 날 괴롭게 하던 그곳엔 기찻길은 사라지고 차만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으로 화랑대역으로 향했다. 주인 있는 집에 몰래 들어가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데, 굴착기 창문으로 아저씨가 고개를 내밀더니 “아가씬 뭔 일이여?”라고 묻는다. “예전에 이곳에 종종 왔던 기억이 있어 와봤어요”라고 말하니 “그런 사람들 종종 오곤 하지” 하며 웃으셨다. 나밖에 모르는 곳이라고 여겼던 건 아무래도 착각이었나 보다. 서로가 머무는 시간이 맞물리지 않아 마주치진 못했지만, 이곳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시작된 공사를 막을 길은 없겠지만 어디선가 같이 아쉬워할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니까. 하여간 시작된 공사니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너무 세련되지 않은 변신이길 바라는 건 아무래도 욕심이겠지?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에 생긴 숲
경의선 숲길
공덕역 근처에서 집을 보고 나오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말했다. “지금 지나는 이 공원은 원래 버려진 기찻길이었어요. 방치되어 있던 걸 공원으로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기발하지 않아요? 이 길 따라서 쭉 내려가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홍대도 나오고. 아무튼, 주민들 칭찬이 자자해요.” 근처에 집을 얻었고, 이삿짐이 다 정리될 무렵 그 얘기가 생각나 산책을 나섰다. ‘경의선 숲길’이란 푯말 아래 그려진 지도는 길쭉했다. 아저씨 말처럼 기찻길을 따라 공원을 만든 모양이었다.
이 공원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빠르고 편하게 살길 원했기 때문에 이 기찻길은 버려졌을까?’ 하는 생각에 빠질 수 있는데, 이곳에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끈적한 감상일 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마포는 물류 수송의 중심지역이었는데, 근처에 살던 주민들은 꽤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주택가 바로 옆에서 기차가 지날 때마다 소음에 시달려야 했고, 기차 너머의 이웃들은 가까워도 가깝지 않은 것처럼 살아야 했다고. 물론 그 길을 따라 시장을 나서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뛰어놀기도 한 잊지 못할 삶의 터전인 것도 맞다. 아마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이들에겐 ‘애증의 경의선’이 아녔을까. 그런 이곳에 소란스럽고 분주하던 기차는 사라지고 기찻길만이 남았다. 기찻길을 밀어내고 건물을 채워 넣거나 빌딩을 세울 수도 있었지만, 서울시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주민들의 애환과 일상을 함께 겪어온 소중한 공간이므로 그들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 공원을 만들기로 한 것은 서울시였지만, 그 과정엔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색다른 구석이 많다. 공덕역 부근에선 ‘늘장’이라는 시민들의 야시장이 열린다. 빌딩들이 우거진 도시 틈에 넓은 마당처럼 펼쳐진 시장. 아이들이 직접 피자를 만들어 먹는 식당도 있고, 누구든 찾아와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도서관도 있다. 공덕역을 지나 좀 더 걷다 보면, 제거하지 않은 철길이 보이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사구역도 나온다. 어떻게든 이어진 길을 찾아 걷다가 홍대 즈음에 닿으면, ‘땡땡마켓’이란 시장도 볼 수 있다. 기차가 지나갈 때, “땡땡” 하고 나던 소리를 고스란히 옮긴 이름. 주말이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작은 마켓을 연다. 누군가는 잔디밭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직접 만든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파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직 미처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벌써 주민들이 나와 어울리고 있다. 이곳에서 만나본 몇 사람은 마치 자신이 공원의 주인인 것처럼 이 공원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아직도 공사는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고 있고, 서툰 솜씨지만 이곳을 위해 발로 뛰어다니고 있다. 군데군데 끊겨있는 이 긴 공원이 다 연결되어 긴 산책을 즐기는 날을 상상해본다.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는 한강과는 다른 공기가 흐를 듯하다. 아무래도, 이곳은 기차가 흐르던 자리니까.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린 그 자리
구둔역
서울 외곽의 폐역을 가보고 싶어 찾아보던 중, ‘구둔역’을 발견했다. 차가 없이 구둔역으로 바로 가는 방법은 없었고, 근처 ‘일신역’으로 가서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나마 일신역에 서는 기차도 아침에 세 대, 저녁에 한 대로 총 네 대뿐. 시골로 들어간다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침 기차를 탔다. 그 후미진 마을에서 내 하루가 어떻게 꼬일지도 모르는 채.
일신역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얼마 전 고장 난 카메라를 맡은 수리점에서 전화가 왔다. “수리비는 15만원입니다.” 텅 빈 지갑을 들여다보며 절망했다. 생각보다 큰 비용의 수리비에 대해 고민하며 30분쯤 걷다 보니, 구둔역이 보였다. ‘사진이나 얼른 찍고 쉬자’ 하는 마음으로 가방에서 빌려온 카메라를 꺼냈다. 필름을 끼워 넣었는데 셔터가 눌리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건전지 칸을 확인했더니 역시 건전지가 없었다. 편의점을 찾아 나섰지만, 가게가 없는 마을이란 걸 알게 된 건 1시간쯤 헤맨 후였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할머니들로부터 “여긴 슈퍼가 없지”라는 답을 듣고 버스정류소에 앉아 생각했다. ‘오늘, 아주 망했구나.’ 큰 마을로 나갈 버스마저 오지 않아 건전지 사길 포기하고 구둔역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여행하는 기분으로 따라와 준 친구의 등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난 바보같이 입을 벌리고 멍하게 서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어떻게든 해볼게!” 볼품없는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급하게 역 곳곳을 찍어댔다. 찍을 만한 풍경을 허겁지겁 담아내고, 서울로 당장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일신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서울로 실어다가 줄 기차를 기다리려면 네 시간을 더 그곳에 있어야 했다.
‘될 대로 되라’ 하는 마음으로 일신역 평상에 누워버렸다. 바쁘게 걸어 다니며 ‘이놈의 시골은 참 덥구나’ 생각했는데, 가만히 있으니 바람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잠이 쏟아지려던 찰나, 차가 들어왔고 낯익은 아저씨 두 명이 내렸다. “평상 좀 나눠 씁시다”라는 말을 하고 옆에 앉더니 대화를 시작하셨다. 할 일도 없고 잠도 이미 달아났기에 아저씨들의 얘기를 엿들었다. 이곳에서 함께 자란 친구 같았다. 서울로 가야 하는 한 아저씨를 배웅 나온 듯했지만, 기차 시간을 잘 모르고 왔는지 “네 시 기차가 있었을 텐데? 없어졌나? 버스는 몇 시지?” 하는 소리만 계속 했다. 그러다 우리가 여섯 시에 기차가 있음을 알려주자 “아이고, 아직 멀었네. 시간도 많은데 그냥 세 시간 기다리지 뭐. 자네는 들어가 봐.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나 한 병 갖고 올 걸 그랬네”라고 말하던 아저씨.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수다스러운 아저씨들의 얼굴을 확인했고, 그제야 오늘 보았던 것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구둔역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한 대에는 방금 만난 아저씨들이 좌석을 젖혀놓고 누워 얘기 중이었다. 주차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캠핑카가 멈춰 있었고 안에선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조심스레 역 안으로 들어서자 책 같은 걸 보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반대편 벽에는 흑백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이 역의 마지막 역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사진. 가만히 구둔역을 떠올리니, 많은 것이 그곳에 있었다. 서울의 분주함에 익숙해진 내 눈은 어느새 이렇게 스며들어 있는 것들을 무심히 지나쳤던 것 같다. 기억을 촘촘히 좁혀보니, 이 작은 역 안에 꽤 많은 이들의 시간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문득, 아무래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 건전지를 사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마음의 열기는 조용히 식어갔다. 이곳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조용히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이 먹고 너희도 다 키워놓으니 나에겐 남은 게 별로 없는 기분이야. 이제 영영 쓸모가 없어진 거지.
아무도 찾지 않는 섬처럼.” 아직 엄마의 나이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 비슷한 기분의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감히 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하진 못 하겠지만 역 안에 머물던 사람들, 어딘지 모르게 엄마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이란 말은 모르는 사람들의 얘기인지 모른다. 기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은 드나들지 않지만, 분명 그 역에는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다.
그게 하루에 한 명이든, 일주일에 한 명이든, 분명 끊이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추석 연휴에 내려오니?”라는 질문에 “나 바빠서 못 갈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진 마요”라고 답한 것이 체기처럼 마음에 얹혀있던 참이었다.
멍하니 누워서 시작했던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 수많은 생각을 이어 시간을 늘렸는데도, 기차가 올 시간은 다가오지 않았다. 영영 오지 않을 기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음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랑대역
서울시 노원구 공릉2동 29
경의선 숲길
Gyeonguiline.org
구둔역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일신리 1336-9
에디터·포토그래퍼 선아
자료제공 잉취·경의선숲길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