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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가 말한 것
MOVIE
<올 이즈 로스트>, <바베트의 만찬>
WHAT BARBBETE SAID
바베트가 말한 것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을 혼자서 일한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면 사람이 그립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다시 혼자이고 싶어진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화 <올 이즈 로스트>와 <바베트의 만찬>을 보면서 나는 혼자인 것, 그리고 함께인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이 글 쓰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무슨 말씀! 회사 다니는 것보다는 쉬워요.” 물론 이 일에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대문호도 아니고 대하소설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렵다고 징징대기도 멋쩍은 노릇이다. 내 기준에서는 실은 회사에 다니는 일이 글 쓰는 일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은 사람의 진을 있는 대로, 전방위로 빼놓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어느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회사라는 곳 자체를 증오하게 되어 있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 매일 만원버스와 지옥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다는 것,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내 리듬대로 하루를 꾸려갈 수 있다는 것, 집에서 내 입맛에 맞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좋다는 것, 누군가로부터 마감이나 실적 압박을 받지 않는다는 것(일을 하고 있는 이상 아예 안 받는 건 아니지만),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것 등등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좋은 점은 정말로 많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점은 나쁜 점과 등을 맞대고 있기 마련이다.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애로사항은 바로 동료가 없다는 점이다. 동료가 없으니 커피를 마시며 함께 회사나 다른 누군가의 험담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내가 뭘 잘하거나 또는 못하고 있는지 칭찬해주거나 지적해줄 사람도 없다.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주정을 늘어놓을 사람도 없다. 슬프다.
기질적으로 나는 혼자 일하고 혼자 노는 것이 잘 맞는 타입이다. 사실 혼자일 때가 가장 편하고 가끔은 가족조차 귀찮다. 그렇다고 내게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혼자 있어도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 그들의 온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홀로 카페에서 일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인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온기는 필요하기에.
J.C. 챈더의 영화 <올 이즈 로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사람, 로버트 레드포드만이 등장하는 영화다. 영화는 말 그대로 ‘노인과 바다’다. 한 노인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조난당한다. 그의 배는 이미 가라앉고 있다. 노인은 절절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실패했고, 이제 모든 걸 잃었다. All is lost. 그리고 이야기는 8일 전으로 돌아간다.
홀로 항해 중이던 노인의 작은 요트는 표류하던 컨테이너 박스에 부딪혀 구멍이 뚫린다. 배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노인은 물에 젖은 물건들을 갑판 위로 끄집어내고 선실에 찬 물을 퍼내고 구멍 난 부분을 막는다. 그리고 저 멀리서 불어오는 태풍 속으로 배를 몰아간다. 불평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은 채 그는 젖은 물건들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골라내고 작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면도를 하고 파도에 휩쓸리다 다친 상처를 치료한다. 그렇게 그는 최선을 다한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자연의 힘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싸워도 그는 이길 수가 없다. 요트는 비바람과 파도를 견뎌내지 못하고, 태풍과 사투를 벌이던 그는 별 수 없이 요트를 버리고 작은 구명정에 몸을 싣는다.
배를 버리면서 그의 처지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그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의 운명은 다른 누군가의 손에, 또는 신의 손에 있다. 이제부터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의 절망을 비웃듯 바다는 아름답다. 이 바다가 삶의 터전인 물고기들은 떼를 이루어 그의 주변을 유유히 몰려다닌다. 오직 그만이 혼자다. 그만이 외톨이인 채로 이 질서의 바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노인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가 왜 홀로 요트를 타고 항해 중인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에게는 어떤 관계들이 있는지 영화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오직 속수무책으로 밀려드는 바닷물 같은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노인은 어떤 수사도 없이 자신의 육체로만 싸워나간다.
나는 이렇게 육체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언제나 육체의 고통은 정신의 고통이며, 정신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혼자라는 사실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는 고통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몸을 일으켜 해야만 하는 일을 빠짐없이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배경이 우주이건, 바다이건, 대도시이건 상관없다. 이 이야기들은 사람이 어떻게 혼자가 되고 모든 것을 잃어가고 절망하는지, 또 어떻게 다시 삶 속으로 돌아가는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표류하던 노인이 끝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구명정에 불을 지른 후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때, 자신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을 때, 저기 저 멀리 수면 위로 불빛이 보인다. 그를 찾으러 온 사람들의 불빛이다. 그 불빛에 힘을 얻어 노인은 다시 헤엄쳐 올라간다. 곧 구원처럼 손 하나가 나타나고, 노인은 그 손을 힘껏 움켜쥔다.
결국 이 영화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손을 잡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이리라.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그들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번거롭고 불편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만은 아니기에 종종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이 되기도 한다.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일 수 있고, 혼자이면서도 함께일 수 있는 여유와 현명함을 갖고 싶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만 같다.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는 척박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신실한 노자매가 등장한다. 거친 바다 곁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초원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마른 빵에 맥주를 넣어 끓인 죽과 말린 생선을 넣어 끓인 수프만 먹으며 살아간다. 필리파와 마르티나 자매는 존경받는 마을 목사의 딸로, 목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결혼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 사람들은 이 생기 없고 힘겨운 삶을 버텨내기 위해 종교에 깊이 의지한다.
어느 날 자매에게 한 프랑스 여자가 나타난다. 오래전 이 마을에 머문 적 있는 프랑스 가수의 편지를 들고 온 그녀의 이름은 바베트로, 내전 때 남편과 아들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처지라고 했다. 그때부터 바베트는 자매의 집에서 요리와 집안일을 도맡게 된다. 성실한 바베트는 들판에서 자라는 야생 허브를 뜯어 수프에 넣고, 생선을 싸게 사서 남긴 돈으로 약간의 베이컨을 사서 늘 먹던 요리에 맛을 더해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을 바꾸려 하지도 않고 자신을 완전히 지우지도 않은 채, 14년 동안 묵묵히 일한다.
어느 날 바베트는 프랑스에서 사두었던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편지를 받는다. 이제 그녀는 부자가 되었다. 바베트는 지금껏 자신을 거둬준 자매와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돌아가신 목사의 탄생 기념 만찬일에 프랑스식 만찬을 대접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곧 마을에는 살아있는 거북이와 닭부터 소의 머리, 과일, 샴페인과 와인, 얼음까지 프랑스에서 공수해온 각종 진기하고 값비싼 음식 재료들이 도착한다. 사람들은 슬슬 불안해진다. 바베트가 가져온 것들이 우리가 애써 지켜온 삶의 틀을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절제와 금욕의 소중함을 잊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들은 바베트 몰래 다짐하는 것이다. 이 두려운 향락에 물들지 않기 위해 다들 힘을 모으자고. 바베트가 차린 식사를 먹기는 하되 그에 대해서 어떤 감상도 이야기하지 말자고.
바베트는 프로페셔널하게 만찬을 차려낸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잘 다림질한 새하얀 테이블보와 은촛대, 아름다운 식기들. 최고급 샴페인과 거북이 수프와 끝없이 이어지는 진미들. 이 요리들은 거칠고 소박한 식사에 만족하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이 꿈에서조차 본 적 없는 것들이다. 그들은 감탄사를 내뱉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식사를 마친다. 그러는 사이에 신의 힘으로도 막을 길 없던 그들 사이의 오랜 불화는 즐거움으로 누그러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전에 없던 만족감과 행복이 가득하다. 골목으로 나온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삶을 찬양한다.
자매는 바베트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베트는 그녀들에게 고백한다. 돌아갈 수 없다고. 이 만찬을 준비하느라 당첨금을 남김없이 다 써버렸다고. 자매는 충격을 받는다. “바베트, 이제 다시 가난하게 살아야 하잖아!” 그러자 바베트는 이렇게 답한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그녀의 이 한마디는, 만찬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영광스러운 피로를 월계관처럼 걸치고 부뚜막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그녀의 모습과 겹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부와 가난이란 무엇인지를. 사람은 어떤 것을 통해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를. 우리는 어떤 것을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지를. 바베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최선을 다하면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요. ‘예술가의 마음속 외침이 온 세상을 울린다.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끔 나에게 휴가를 다오.’”
바베트야말로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일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혼자이면서도 함께일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것이 파리의 유명한 요리사였던 그녀가 타국의 척박한 마을에서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살아가면서도 변함없이 당당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예술이 있었기에. 그녀의 삶 자체가 바로 예술이었기에. 누가 인정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에게 내적인 삶이 없다면 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외적인 삶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러니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삶의 예술가가 된다는 것, 혼자이면서 함께일 수 있고 함께이면서도 혼자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내적인 삶이 얼마나 견고한지에 달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 이즈 로스트 ALL IS LOST
J.C.챈더ㅣ액션, 모험ㅣ미국ㅣ106분
인도양에서 요트를 타고 여유롭게 항해를 하던 주인공은 선적 컨테이너와 충돌을 하고 생존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게 된다. 거대한 폭풍우와 상어의 출몰, 식량 부족과 끝없는 외로움. 혼자 남은 그는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홀로 살아가는 고군분투기를 보여준다.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
가브리엘 악셀ㅣ드라마ㅣ덴마크ㅣ102분
덴마크의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에는 신앙과 봉사를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매가 있었다. 지난날의 사랑과 추억이 깃든 과거를 회상하며 지내던 어느 날, 바베트라는 여인이 찾아온다. 엄청난 행운과 함께 복권에 당첨된 그녀는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려 한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박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