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Like What We Like Best

좋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_호야&오상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말이 더 힘이 센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랑이 깊고 간절한 거라면, 좋아하는 건 가볍고 넓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말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두 번쯤 반복해도 지나쳐 보이지 않는 말. 가끔은 사랑한다고 한 번을 속삭이기보다 좋아한다고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오늘, 양재동에서 그 기분을 진하게 느꼈다.

왜 이렇게 많은 걸 하냐고요? 저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일을 벌이는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죠.

성공이냐 실패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 중요한 건 일단 ‘한다’는 거거든요.

포터블로프트
A. 서울 서초구 마방로4길 15-48
H. instagram.com/portableloft_official
O. 월-토요일 12:00-22:00, 일요일 휴무

우리 둘이 만나면

늘 뽀뽀만 했어

볕이 좋은 한낮, 양재동에 도착해 이국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하얀 가게 앞에 선다. 들어가려는데 출입문은 잠겼고 창문만 활짝 열려 있다. 가만 보니 창문을 두고 안팎으로 둘러앉는 독특한 구조다. 하릴없이 바깥 의자에 걸터앉아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데 스쿠터 소리가 점점 가까워 온다. 빨간 스쿠터에서 남녀 한 쌍이 헬맷을 벗으며 음료를 드시러 왔냐고 묻는다.

안녕하세요(웃음). 인터뷰로 찾아왔어요.

오상: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장 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오상, 이쪽은 호야라고 해요.반가워요. 

 

별명을 이름처럼 사용하나 봐요.

오상: 별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둘 다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이 제 이름 오상준의 앞 자 두개를 따서 ‘오상’이라고 불렀거든요.

호야: 제 이름은 곽선호인데, 부모님이 경상도 분이시라 이름에서 뒷글자를 따서 사투리로 호야, 호야, 하다 보니 ‘호야’가 되었어요. 지금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오상, 호야로 불리고 있어서 이젠 별명이 본명 같아요. 저, 그런데 오상옷 좀 갈아 입혀도 될까요? 반팔을 입고 나와서 부랴부랴 옷가지를 좀 챙겨왔거든요.

 

얼마든지요.

호야: 검은 맨투맨 입을래, 체크무늬 남방 입을래?

오상: 남방. 모자도 쓸래.

 

신발과 양말까지 완벽하네요. 워낙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어떤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호야: 정리도 할 겸 저희 공간부터 둘러보실래요? 전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요. 포터블로프트, 포터블롤리팝, 포터블게라지, 포터블워크룸, 집 순서로 둘러보고 다시 포터블로프트로 돌아올까요?

 

(3시간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대화한 것 같은데 인제 시작이네요(웃음). 두 분의 첫 만남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호야: 벌써 옛날 일이네요. 둘이 밴드를 했거든요. 처음부터 같이 한 건 아니었고, 원래는 둘이 각각 다른 밴드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회사에 다니면서 취미처럼 한 거였는데 저희밴드 멤버들이 오상과 친구여서 합주실을 같이 쓰면서 알게됐어요.

오상: 그땐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어요. 밴드가 흩어지면서 몇 년 동안은 연락할 일도 없었죠. 그러다 2000년도 초반에 다시 만나게 됐는데요. 제가 홍대 놀이터 플리마켓에 셀러로 참여해서 앨범을 판매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관계자가 음악을 듣곤 지금 바로 공연할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요. 부랴부랴 함께 연주할 사람을 찾는데 문득 호야가 떠올랐어요. 일종의 영입이었죠(웃음). 그날 공연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과 함께 밴드를 하다가 나중엔 둘이서 쭉 듀오로 활동했어요.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음악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음악이나 악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앨범을 내긴 했지만 노래방 앰프를 주워다가 컴퓨터에 연결해서 어찌어찌 녹음하고 발매한 거였죠. 공연을 하면서도 관객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무대에 오르곤 했어요. 재밌는 시절이었죠.

음악이 궁금했는데 음원 사이트에 없더라고요.

오상: 당연하죠(웃음). 둘이 같이 일렉기타를 연주하고 호야가 노래를 부르는 밴드였는데, 이름은 포터블롤리팝이었어요. 제가 만든 노래 제목에서 따온 거였죠. 휴대용 녹음기, 휴대용 턴테이블, 휴대용 카세트 같은 휴대용 기계들을 좋아해서 포터블Portable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포터블롤리팝’이란 노래를 만들었거든요. 1집도 휴대용 녹음기로 녹음했는데, 제 발소리나 빗소리 같은 걸 소스로 활용해서 만든 앨범이었어요.

 

좋아하는 걸 함께하면 좋아하는 감정도 생기나 봐요. 마음을 확인한 순간은 언제였어요?

호야: 저희는 음악도 좋아했고 공연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공연을 마치고 술 마시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어요. 술 마시려고 음악을 한 것도 같고요(웃음). 언젠가 공연을 거하게 망치고 친구네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더라고요. 그때 오상이랑 옥상에 올라갔는데….

오상: 어쩌다 뽀뽀를 했어요.

호야: 왜 그랬을까요(웃음)? 그날 에피소드로 ‘뽀뽀만 했어’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런 노래죠. “우리 둘이 만나면 늘 뽀뽀만 했어 하늘에 구름이 떴어 바람도 불었어 하늘에 별이 빛났어”

 

 

노래가 더욱 궁금해져요(웃음). 언제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어요?

오상: 사실 그 이전엔 둘 다 밴드 멤버 이상의 감정은 없었어요. 그래서 옥상에서의 일이 좀 묘했죠. 멤버끼린 연애하지말잔 얘기를 했어서 한동안은 멤버들 눈을 피해 몰래 만났어요. 근데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아마 다들 알았을 거예요.

호야: 둘 다 특별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해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게 신기해요. 저는 밴드를 하면서 VMD로 일했는데 야근이 일상이었어요. 밤늦게 끝나고 한잔하고 싶을 때면 오상네로 퇴근하곤 했는데요. 엄마한테는 철야네, 출장이네, 하면서 안 들어가니까 “그럴 거면 그냥 결혼해라.” 하시더라고요. 엄마 눈을 어떻게 속이겠어요(웃음). 2년의 연애를 끝으로 결혼식 날짜를 잡고 식을 올리기 두 달 전에 포터블롤리팝을 열었어요. 오상이 ‘결혼하면 우리 걸 만들자.’고 했거든요. 그렇게 지낸 지 벌써 13년이 되었네요.

 

오래 함께해서 그런지 두 분의 분위기나 라이프스타일이 무척 닮아 보여요.

호야: 라이프스타일은 제가 오상을 자연스럽게 따라간 편이에요. 자유로운 걸 좋아하긴 했지만 제 삶이 자유로운 건 아니었거든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면 전공을 살려 회사에 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죠. 그렇게 입사해서 바쁘게 일하고, 퇴근하면 보통의 회사원처럼 번화가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면서 평범하게 지냈어요. 근데 오상이랑 밴드를 하면서부터는 대중교통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술집 바깥에서 자유롭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어요. 합주가 끝나면 돗자리랑 포터블 턴테이블을 들고 공원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죠. 요 앞 양재시민의 숲에서 오상이 선곡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맥주를 참 많이도 마셨어요. 처음 같이 공원에 갔던 날 오상이 틀어준 음악이 아직도 생각나요. 산울림 LP(웃음).

 

달라진 생활 방식이 낯설진 않았어요?

호야: 아뇨. 오히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싶었어요. 마음 흐르는 대로 사는 건 대학생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캠퍼스 라이프가 끝나고도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니! 오상을 따라다니는 게 너무 즐겁더라고요.

켜켜이 모인

살림과 재주

두 분의 공간을 둘러보는 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어요. 샅샅이 살피려면 하루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호야: 뭐가 좀 많죠? 저희 부부는 양재동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어요. 첫 가게는 밴드 이름과 같은 포터블롤리팝이에요. 저희 부부와 히스토리를 함께해 온 소품숍이죠. 처음엔 개포동에서 시작했는데 얼마 안 있다가 살고 있는 양재동으로 옮기게 됐고, 지금까지 쭉 같은 자리에서 해오고 있어요. 사입한 옷이나 저희가 만든 패션 소품, 인형, 엽서, 노트, 나무 소품, 함께 고른 책 등 잡다한 물건으로 가득한 곳이죠.

 

다양한 물건으로 빼곡하지만 분위기가 비슷하단 게 인상 깊어요.

호야: 전체적으로 빈티지스럽죠? 저는 빈티지스러운 패턴이나 색감을 좋아하거든요. 점잖고 고풍스러운 빈티지보다는 화려하고 눈에 띄는 스타일이죠. 전부터 그런 걸 좋아하긴 했지만 스타일이 정리된 건 포터블롤리팝을 하면서부터인것 같아요. 오상을 만났을 때만 해도…. 

오상: 너무 이상했어요(웃음). 짧은 머리에 베이비펌을 해서 머리가 완전히 동그랬거든요. 거기에 아디다스 추리닝 차림이었죠. 그땐 약간 경계하기도 했어요. 사실 지금도 우리 스타일은 되게 촌스러워요. 그래도 이렇게 꾸밈없이 다니는 걸 귀여워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포터블롤리팝도 좋아해 주는 것 같아요.

 

요즘 유행하는 뉴트로 감성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오상: 완전히 다르죠. 저희는 옷을 진짜 찢어질 때까지 입거든요. 구멍이 날 때까지 버리지도 않아요. 옷이든 물건이든 둘 다 버리는 걸 잘 못 하는 성격이라 물건에 파묻혀 살고 있죠. 심지어 저는 아직도 폴더폰을 쓰는데요. 얼마 전까지만해도 번호가 017이었는데 더는 쓸 수 없다고 해서 이제야 010으로 바꾸었어요.

호야: 오상은 좀 무심한 편이에요. 특히 옷이 그런데, 연애할 때는 오상의 모든 차림이 멋있어 보였어요. 다 늘어난 티셔츠에 고무신을 신고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좋았으니 우리가 연애를 하긴 했구나 싶네요(웃음). 반대로 저는 옷에 엄청 신경 쓰는 타입이에요. 원래도 좋아했지만 옷을 판매하는 일을 하니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옷을 사입할 땐 과한 패턴과 화려한 색감을 좋아하는 제 취향과 손님들이 좋아할 법한 스타일을 두루 고려하는데요. 이젠 어느 정도 절충되면서 포터블롤리팝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한 단어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저뿐만 아니라 친구나 손님들도 어떤 옷을 보고 “이건 완전 포터블롤리팝이네!”라고 할 정도의 분위기가 생겼죠.

 

가게 이름에도 빈티지한 분위기가 있어요. ‘포터블’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도 그렇고요.

오상: 저희가 하고 있는 가게들은 다 ‘포터블’로 시작해요. 포터블롤리팝을 시작으로 양재동에서 여러 공간을 열고 닫으면서 지내고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공간을 빌렸고, 반대로 빌릴 만한 공간이 보이면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기도 했어요. 옷과 소품을 파는 포터블롤리팝과 포터블게라지, 술집 포터블로프트, 작업실 포터블워크룸, 전시를 기획하거나 대여했던 포터블스페이스, 포터블게스트하우스…. 따로 직원을 두지 않고 전부 저희 둘이 만들고 운영한 곳이에요.

왜 이렇게….

오상: 많은 걸 하냐고요(웃음)? 살면서 그런 질문은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저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일을 벌이는 건 아니에요. 관심 있는 것들에서 멀어지지 않고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죠. 분야에 제한도 두지 않고요.

 

이 많은 일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대개 손작업이란 점 같아요. 

호야: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어서 그렇다고 하긴 민망하지만 이것저것 많이 만들고는 있어요. 제 전공은 의상디자인인데 사실 옷은 잘 못 만들어요(웃음). 대신 앞치마나 토시, 가방, 파우치 같은 소품 만드는 걸 좋아해요. 정확히는 디자인보다도 원단을 좋아하죠. 마음에 드는 원단으로 제 물건들을 직접 만들다 보니 포터블롤리팝에서 판매도 하게 됐어요.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거라 같은 제품이어도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저는 그런 게 좋더라고요. 손재주는 저보다도 오상이 좋아요. 감각적이기도 하고 뭐든 꾸준하거든요. 쌓여 있는 그림일기만 해도…. (어깨를 으쓱한다.)

오상: 호야는 디자인을 배우기라도 했지만 저는 전문적으로 배운 게 하나도 없어요. 하고 있는 모든 일이 그래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잡지도 만들고, 목공도 하지만 제대로 배워서 하는 건 아니거든요. 특히 목공은 작업실도 있고, 가구나 소품도 만들고, 가게 공사도 직접 하고, 인테리어까지 하는데도 전문적이라고 할 순 없어요. 시작도 아주 우연했죠. 산책 중에 공원 앞을 지나다가 층층이 쌓인 채 버려진 나무 팔레트를 보게 됐는데요. 어디에 쓰는 건지는 몰라도 뭔가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작은 나무 팔레트를 몇 개 줍고 무작정 철물점에 가서 망치랑 못을 사서는 요령도 없이 일단 다 부쉈어요. 뭘 만들까 하다가 의자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도했는데 생각보다 금세 만들어지더라고요. ‘어, 되네?’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만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잠깐만…. 목공을 배운 적도 없이 가게 공사를 직접 하셨다고요?

오상: 의자를 만들고 나무로 뭔가를 좀더 해보고 싶어서 동네 목공소에서 기본기를 배운 적은 있어요. 톱질하는 법, 드릴 다루는 법, 길이 재는 법 같은 기초 내용을 익혔죠. 근데 저는 전문적으로 배우고 적용하고 만들어나가는 성격은 못되나 봐요. 기본기를 익히고 다음으로 넘어갈 즈음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딱 세 달 배웠는데, 더 배우게 되면 나무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질 것 같았어요. 그때부터 필요한 건 거의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어요. 작은 명함꽂이부터 선반, 테이블, 의자, 창틀, 소파, 침대까지 크고 작은 것들을 수없이 만들어왔죠. 저는 어떤 분야든 더 잘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우기보다는 정해진 과정이나 방법 없이, 하고싶은 대로 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전문가들에겐 좀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제가 평균을 깎아 먹는 것 같아서요(웃음).

마치 모든 분야에서 예술을 하는 것 같아요.

오상: 과찬이에요. 어떻게 보면 대책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걸요. 지금 포터블로프트에선 핸드드립도 하고 있는데, 이것도 그래요. 사실 저흰 연애하면서 한 번도 카페에 가본 적이 없거든요. 커피엔 흥미가 전혀 없었죠. 그러다 바리스타 친구를 사귀면서 핸드드립에 대해 알게 됐고 직접 내려 마시다 보니까 장사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일이어서 처음엔 손님들에게 커피를 제대로 내려 드리지도 못했어요. 커피잔을 내미는데 좀 머쓱하더라고요. 저희 성격이 이래요. 나름대로 준비는 하지만 그게 전문적인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일단은 시작하고 망신당하면서 성장하는 타입이죠. 

호야: 저는 뭔가를 전문적으로 준비했어도 1-2년 만에 그만두는 사람들을 참 많이 봤어요. 그래서인지 깊게 배우고 흐지부지 사라지느니 어설프더라도 오래하는 게 훨씬 좋아 보이더라고요.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결국 경험이 쌓여 실력이 나아진다는 걸 몸소 경험해서인지, 전문적으로 하는 것보단 오래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인테리어도 그래요. 저희가 인테리어를 한다고 홍보한 게 아니라 포터블롤리팝을 공사할 때 철거부터 시공, 인테리어 과정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걸 보고 사람들이 의뢰해 온 거거든요. 오상이 나무를 주워 의자를 만든 게 시작이었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의 공간까지 저희가 만들고 있는 거예요. 전문적인 배움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되면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끔은 좋아하는 걸 하는 데 자부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여기 장사가 정말 잘되네요. 대화 중에도 테이블이 계속 차고 있어요. 

오상: 저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에요. 포터블로프트는 사실 처음부터 술집을 생각하고 만든 공간은 아니었어요. 여기 자리를 잡은 것도 연달아 생긴 우연 덕분이었죠. 동네를 산책하다가 비어 있는 자리를 보았는데 외관이 세 개의 면으로 이루어진 게 인상 깊더라고요. 근데 같은 날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똑같은 형태의 일본 가게 사진을 보게 됐어요. 공간의 형태가 머릿속에 남았는지, 그날 밤엔 이 공간이 나오는 꿈까지 꿨어요. 깨자마자 호야한테 “우리 거기 계약하자.”그랬죠. 바로 실행에 옮겨 철거부터 시공, 인테리어까지 모든 공사를 우리 힘으로 완성했어요.

호야: 공사할 때만 해도 사무 작업도 하고 지인들이랑 맛있는 것도 해 먹고, 어쩌다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정도의 공간을 상상했기 때문에 이렇게 장사가 잘되는 게 좀 신기해요. 애초에 집의 확장판처럼 생각하고 만든 공간이어서인지 손님들이 저희 집에 놀러 온 친구 같다는 느낌도 있어요. 손님이 대부분 양재동 주민이란 점에서도 심적으로 가까운 느낌이고요.

 

사람이 많아도 편안한 이유가 그래서였나 봐요. 내어주신 맥주도 정말 맛있고요(웃음).

오상: 그거 맛있죠? 헤이 허니라는 우리나라 수제 맥주예요. 남양주에 있는 핸드앤몰트Hand&Malt 양조장에서 천안 쌀과 이천 꿀을 사용해 만든 맥주죠. 비교적 호불호가 덜한 페일 에일인 데다가 달콤해서 부담 없이 마시기에 좋아요. 정작 손님들은 많이 찾지 않아서 아쉽지만요. 수제 맥주를 팔게 된 것도 온전히 저희 욕구 때문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술집에 수제 맥주가 많지 않을 때라 자주 마실 수가 없었거든요. 이걸 매일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봤는데 답은 간단했어요. 저희가 팔면 되겠더라고요.

두 분 이야기는 들을수록 대단해요.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13년씩이나 하는 건 더욱 쉽지 않아 보여요.

호야: 하다 보니 벌써 이렇게나 됐는데, 비결이랄 건 없지만저희는 일단 가게 나오는 걸 좋아해요. 일어나서 물 마시러부엌에 가는 것처럼 모든 가게를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드나들거든요.

오상: 양재동 여기저기에 집이 쪼개져 있는 느낌이에요. 포터블롤리팝, 포터블게라지, 포터블로프트, 포터블워크룸….전부 우리 집이고 제 방 같아요.

 

그래서 아까 포터블로프트에 들어올 때 “주방 왔다.”고 하신거군요.

호야: 제가 그랬나요(웃음)? 직접 만든 공간이라 마음이 절로 갈 수밖에 없어요. 장소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철거하고, 공사하고, 창문, 가구, 간판, 타일 한 장까지 직접 고르고 만든 공간이다 보니까 그저 가게로만 생각하긴 힘들더라고요.

오상: 우리 집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손님들이랑도 금세 가까워져요. 극진하고 친절하게 대하지만, 아까 말했듯 집에 놀러 온 친구 같아서 어렵게 느껴지진 않거든요. 그래서 손님들의 평가에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친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전전긍긍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일하는 것도 비슷해요.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물의 양이나 원두 무게까지 그램 단위로 체크해서 커피를 내려 주진않잖아요. 최고급 재료로 요리해서 비싼 식기에만 담아 주지도 않고요. 일부러는 아니지만 가끔 망치기도 하고(웃음). 저는 그런 마음으로 가게를 하고 싶어요. 그런 공간을 좋아해주는 손님과는 친구가 되기도 하는데, 마음이 잘 맞는 손님이 오면 종종 인터뷰를 하기도 해요. 노트를 펼쳐 손님과 나눈 이야기를 쓰고 그림도 그리고.

호야: 저… 근데 배고프지 않아요? 저녁도 늦었는데 뭘 좀 먹으면서 이야기할까요?

 

(호야가 만든 파스타가 차려진다.) 이거 정말 맛있어요. 맥주랑 찰떡궁합이네요.

: 파스타는 파스타인데 레스토랑 파스타랑은 거리가 좀 멀죠? 포터블로프트에서는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차려줄 법한 홈메이드 파스타를 만들고 있어요. 이건 골뱅이 파스타인데, 여기선 나름 인기 메뉴예요. (맥주를 내밀며) 이건 아크ARK비어에서 나온 아크 페일 에일이에요. 헤이 허니랑 비교하면서 드셔 보세요.

호야: 아까 오상이 손님에서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파스타 레시피를 알려준 ‘마야 과장님’도 그렇게 친구가 된 손님이에요. 지금은 벌써 8년째 함께 일하는 동료이기도하고요. 포터블롤리팝이 양재동에 자리 잡았을 때부터 단골이었는데 어느 날 저희한테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함께해 오면서 지금은 저희의 정신적 지주가 됐어요(웃음). 저희는 양재동에서 주민들과 함께 플리마켓을 종종 열곤 하는데요. 이 파스타는 플리마켓에서 과장님이 휴대용 가스 버너로 만들던 인기 메뉴예요. 아! 한번은 다 같이 유명 셰프가 하는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는데, 요리 대회를 하고 있길래 재미 삼아 과장님이 이 파스타를 출품했다가 1등의 영예를 안기도 했어요. 그 레시피를 전수받아 이렇게 판매까지 하고 있네요(웃음).

오상: 골뱅이가 생각보다 오일 파스타랑 잘 어울리더라고요.냉장고에 있는 채소들과 마늘, 소금, 올리브유, 그리고 골뱅이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서 간편해요. 올리브유에 먹기 좋게 자른 골뱅이와 마늘, 그 외 먹고 싶은 채소들을 달달 볶다가 삶은 면을 넣고 소금과 향신료로 간만 하면 돼요. 그러고나서 통조림 골뱅이 국물을 딱 한 스푼만 추가하면 완성이죠.골뱅이는 꼭 ‘유동 골뱅이’를 사용해야 해요. 다른 브랜드로는 이 맛이 잘 안 나거든요.

 

두 분은 다양한 일을 한번에 해나가고 있는데 지속성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호야: 없어요(웃음).

 

어떻게 없을 수 있어요?

호야: 걱정이 없는 게 우리 장점인 것 같아요.

오상: 유일한 걱정이 있다면 혹시라도 월세를 못 내면 어쩌지 싶은 거? 월세만 낼 수 있으면 뭐든 다 하고 싶어요. 지금도 이 정도에서 멈춰 있는 건 몸이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여건만 된다면 하고 싶은 건 여전히 많아요.

호야: 다행히 월세를 못 낼 정도로 힘든 적은 없었어요. 일단 아이가 없어서인 것 같아요. 욕심이 없는 것도 한몫할 테고요. 저희는 비싼 차, 넓은 집을 사느니 차라리 가게를 하나 더 갖고 싶어요. 아, 이거 욕심인가(웃음)?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오랜 시간 양재동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 동네의 어떤 점을 좋아해요?

오상: 저는 20대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양재에 살았어요. 매일 아침 동네를 산책하는데, 신기하게도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산책 코스를 조금만 바꿔도 전에는 모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요. 동네 주민들의 차림도 변하고, 풍경이나 건물, 길거리 모습, 길고양이나 식물도 매일매일 달라지죠. 양재동은 화려한 동네는 아니에요. 번화한 동네로 옮긴다면 더 많은 손님이 오고 장사가 더 잘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양재동이 좋아요. 애정을 넘어 애착을 느끼는 동네죠.

호야: 우리 동네엔 매일 두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니는 노부부가 있어요. 오상이 그분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양재동은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좋은 동네예요. 그래서 아직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물론 평생 여기에 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희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영원한 건 절대 없어.”거든요.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은 좋은 거, 아름다운 걸 많이 느끼고 싶어요.아…, 근데 말하다 보니 오상의 양재동 사랑이 대단해서 어쩌면 평생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많은 살림이 여기 있어서 쉽게 벗어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오상: 양재동 여기저기에 공간을 둔 건 쌓여 있는 물건을 보관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보셔서 알겠지만 모든 공간에 물건이 가득 차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고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도 같고요. 근데 앞으로도 관심이 생긴다면 무엇이든 해볼 수 있고 공간을 더 늘려나갈 수도 있을 거예요.

호야: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해와서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고싶은 게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일단은 다 해봤고 앞으로도 그러려고 하거든요.오상: 옛날엔 지금처럼 하고 싶은 걸 다 벌이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뭘 하든 내 편에 서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둘이 만나면서 더 그렇게 된 것도 같고요. 엉망진창이더라도 혼자 망치는 것보단 같이 망치는 게 좋잖아요.

 

양재동에서 재미있는 모임도 많이 벌이는 것 같아요. 아까 이야기한 플리마켓도 그렇고요.

호야: 오상이 일을 좀 만드는 편이에요(웃음). 둘 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친구들이랑 동네 사람들 모으는 걸 좋아하거든요.

오상: 저희가 기획하는 모임들이 대단한 건 아니에요. 지속가능성도 그리 좋진 않고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게 생기면해보는 건데, 마을 주민들도 함께해서 좀 특별하고 즐거워요.‘주酒책모임’이라는 걸 열어 책과 술을 연결하기도 하고, 연말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도 해요. 음악감상회에선 듣고 싶은 앨범을 가지고 와서 함께 듣기도 하고요. 플리마켓도 주기적으로 열고 있어요.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해 포스터도 만들고 게임도 준비하는데 동네 아이들도 참여해서 분위기가 색달라요. 모임을 통해 친해지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도 좋고요.

 

동네 주민이랑 친구가 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오상: 음, 이런 식이에요. 오래전에 단골손님이 와인을 들고 포터블롤리팝에 온 적이 있어요. 생일인데 만날 사람이 없어서 집에 가서 혼자 마실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마시기 시작한 게 점점 판이 커져서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덧 작은 파티가 되었어요.

호야: 근데 그날, 분위기를 내보겠다고 켜둔 촛불에서 단골손님 머리로 불이 옮겨 붙었어요. 난리도 아니었죠. 다들 소리지르며 달려들어서 머리를 내려치고 불고… 그러면서 간신히 껐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여서 겉만 그슬리고 끝날 수 있었어요. 그날 이후로 그분과는 진짜 친구가 되었죠. 결혼식 때 저희가 축가도 불러주고 요즘은 아이가 커가는 모습도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요. 이 동네엔 친구 같은 주민도 많고 정을 느끼는 일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저희에게 악보를 하나 주고 가셨는데, 가사가 “그곳에 가면 1분 대화로 활짝 밝게 핀 마음이네 쌓였던 스트레스 확 풀어주네”예요. 저희 가게에서 좋은 느낌을 받아 노래를 만드신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았죠.

오상: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어요. 나중에 크면 포터블 상점을 하겠다는 동네 꼬마도 있고, 제 목공방에서 아르바이트했던 학생도 있어요. 이런 작은 일들 덕분에 양재동에서 일하는 게 더 즐거워요. 여기가 외지인이 많은 번화가였다면 아마 경험하지 못할 일이었을 테니까요. 가족처럼 친하지만 서로의 사적인 부분에 개입하진 않는 관계여서 서로 부담이 없다는 것도 좋고요. 저흰 이렇게 쭉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가고 싶어요. 아이, 학생,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 나이 먹은 개까지도요.

 

나중엔 아주 오래된 가게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

오상: 혹시라도 양재동을 떠나거나 가게를 접어야 한다면 누군가 이 공간을 이어받아서 계속해 주면 좋겠어요. 그렇게라도 여기 오래 남아 있고 싶거든요.

양재동에 호야와 오상을 남기기보다는 ‘포터블’들을 남기고 싶은 거군요.

오상: 그렇죠.

 

부모님이 어릴 때 슈퍼랑 과일가게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한동네에서 여러 가게를 하는 건 어린 시절의 영향도 꽤 클 것 같아요.

오상: 어떻게 아셨어요? 저희 아버지가 과일가게, 어머니가 구멍가게를 하셨어요. 저희가 양재동에 여러 가게를 만든 것처럼 부모님도 바로 근처에 과일가게랑 구멍가게를 두고 각자 가게를 꾸려나갔죠.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으면 저도 당연하게 장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사하는 걸 좋아했다기보단… 아니, 좋아한 거 같아요. 근데 좋다, 싫다를 따지기 전에 장사는 어릴 때부터 생활이었거든요. 이를 닦고, 잠을 자는 것 같은 생활이요. 부모님을 보면서 좋아하는 걸 팔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엄마의 슈퍼가 장사는 더 잘됐던 거 같은데 아빠는 언제나 과일을 잘 진열하는 데 신경 쓰셨어요. “물건은 진열이 생명이란다.”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죠. 그래서인지 저도 물건을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돋보일지 고민하는 사람이 됐어요.

 

수많은 포터블을 운영하면서 성공에 대해서도 생각했을 것 같아요.

오상: 어느 날 친구가 유명 유튜버가 한 말이라며 이런 말을 해줬어요. “성공하려면 좋아하는 건 하면 안 된다.”고요. 근데 저흰 좋아하는 것만 하잖아요. 그래서 성공을 못 하는 것 같아요(웃음).

호야: 근데 성공 같은 건 안 해도 돼요.

오상: 저도 그래요. 꼭 성공해야 하나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죠.

호야: 솔직히 저는 성공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 기준도 그렇고요. 관심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금처럼 살아가는 게 저희에겐 성공 같기도 해요.

오상: 요즘 들어 사람이나 매체가 더 성공을 부추기는 것 같아요. ‘대박’ 같은 단어를 써 가면서 그 분야의 최고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만들잖아요. 저희는 성공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오히려 실패한 경험만 있죠. 결혼 초창기에 호야가 네일아트 숍을 연 적이 있는데 완전히 망했거든요(웃음).

호야: 그 당시엔 포터블롤리팝이 너무 잘되니까 사업을 확장하고 싶단 욕심이 있었어요. 네일아트 받는 걸 좋아해서 네일아트 숍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작업자를 따로 둔 숍이었는데, 투자만 하려니까 운영에 효율성이 떨어졌고 그저 예쁘게만 꾸민 가게에 불과했어요. 잘 모르는 분야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포터블롤리팝으로는 하고 싶은 걸하고 네일아트 숍으로는 돈을 벌어볼 목적이었는데 1년도 안돼서 접게 됐죠. 그때 직접 할 수 없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걸 깨달았어요. 투자라는 개념은 저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남들이 잘하는 걸 밀어주기보단 저희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하는 사람들인 거죠. 하고 싶은 걸 직접 해야 만족스럽더라고요.

실패하고 나서 두려움이 생기진 않았어요?

오상: 두려움이요? 우리에게 그런 게 있나? 음…. 있어요, 있을 거예요. 근데 그냥 받아들여요. 성공이냐 실패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진짜 중요한 건 일단 ‘한다’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저희가 이것저것 다 잘해서 도전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벌여놓은 일들 중에서도 어느 하나 잘하는 건 없잖아요. 다만,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다 보니 좀더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과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힘이 생겨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삶은 재밌어 보여요.

오상: 저 역시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맞아요(웃음). 저흰 매일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좀 다른 얘기지만, 누군가 퀴즈를 낸다면 저는 꼭 정답을 맞히고 싶어요. 근데 삶은 그런 게 아닌 거 같아요. 애초에 정답과 오답으로 나눌 수 없는 복잡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혹시 이 삶이 오답이라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으니 상관없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어때요? 

오상: 만족해요. 오늘 아침에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원두가 똑 떨어졌더라고요. 이런 사소한 결핍 말고는 만족스러워요. 

호야: 불쑥불쑥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을 때가 많은데 이거 만족하는 거 맞죠? 저희 노래 중에 ‘비교할 때부터 불행의 씨앗’이라는 곡이 있어요. 이 제목처럼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행복하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남한테 피해 주지 말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고요. 

 

대화를 끝내기 전에 이번 호 주제인 ‘아름다운 균형’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오상: 자연스러운 거요.

 

자연스럽다는 게 뭘까요?

오상: 잘하려고 애쓰거나 꾸미지 않는 거요. 무엇이든 억지로 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내가 ‘이 정도’ 수준이면, ‘이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이건 사진이건 그림이건…. 내 처지와 깜냥에 맞게 하면 자연스러울 수 있죠. 저희가 만약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사람이었다면 더 잘하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요. 저는 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마음을 유지하면서 지내고 싶어요. 

호야: 저는 오상보다는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이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려고 노력 중이에요. ‘의연한 사람이 되자’가 제 목표인데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요. 오늘 같은 날도 어떤 옷을 입으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오상과 제 옷을 맞춰 놓았거든요. 이런 행동은 자기만족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남을 신경 쓰기 때문에 하게 되는 행동 같아요. 저랑 반대로 오상은 다른 사람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오상이랑 같이 살아서 제가 남을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런 둘이어서 균형이 맞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제 바람은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멋진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늙어간다면 미간에 주름이 없는,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어 있겠죠?

 

네. 무척 유쾌한 노부부요(웃음).

오상: 저희는 노트에 곧잘 낙서처럼 엉뚱한 그림들을 그리곤하는데 그 그림들이 진짜 실현되는 걸 종종 경험하곤 했어요. 대부분 약간은 허무맹랑한 계획이나 상상들이죠. 그럴 때마다 재밌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꿈이 이루어졌다며 즐거워하기도 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상상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작은 상상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일이 바빠졌다는 이유로 소소한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요.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간 ‘오상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죠?

호야: 연애할 때부터 오상과 ‘즐겁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 함께 가게 문을 여는 일상을 상상한 거죠. 지금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좋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넓고 큰 공간을 구해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을 한 공간에서 해보는 거예요. 하나의 공간에서 요리도 하고, 술도 팔고, 소품도 팔고, 그림도 그리고, 목공도 하고….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재미있을 거예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수 개의 포터블을 순회할 때, 스치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건네는 진풍경을 보았다. 동네를 자연스럽게 누비는 오상과 호야 곁으로 수많은 인사와 대화, 그리고 웃음이 따라붙는다. 두 사람의 공간은 빼곡하고 촘촘했다. 물건도 그렇지만 그보다 담뿍 고여 있는 건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쌓여 둥글게 굴러간다. 책장 틈에도, 침대 위에도, 턴테이블 안에도, 앞치마 주머니에도 너무 근사한 마음이 숨어 있어 눈길 닿는 전부가 좋았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