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 THROUGH NATURE

송효량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 대표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Weekend Laundry List를 함께 꾸리는 송효량, 한영훈 부부는 일상에서도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만들어 간다. 요란하지 않고 잠잠하게, 정성을 담아 옷을 만드는 손길은 꼭 두 사람을 닮았다. 보드랍고 조곤조곤한 말씨, 마음이 편안해지는 화법,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 내내 고요히 흐르는 대화에 귀여운 파동을 일으킨 건 다섯 살 난 아이 지민이였다. 손님의 출현이 낯선지 엄마, 아빠를 찾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몇 번의 놀이 끝에 해사하게 웃으며 함께 산책하자고 양손을 뻗어 보인다. 아끼는 인형 ‘토순이’를 챙기고 한참 신발을 고른 지민이가 힘차게 외친 한마디 “렛츠 고!” 그 귀여운 부름에 오늘도 어김없는 산책이다. 

찬찬히 해나가는 마음

“엄마가 되니까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비난받는 자리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자주 칭찬해 줘요. ‘나는 잘하고 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KTX를 타서인지 꼭 여행 오는 기분이었어요.

안녕하세요, 부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여기는 다섯 살 여자아이 지민이가 자라고 있는 집이에요. 저희 부부는 의류 브랜드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를 운영하고 있고요. 오늘 남편과 함께하려고 했는데, 아기가 아직 좀 낯선지 아빠랑 자꾸 같이 있으려고 하네요.

 

팬데믹 상황이 점차 길어지면서 일상이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요새는 그래도 친구들도 만나려 하고, 산책도 많이 하고, 공연이나 전시도 찾아서 보고 지내요. 다같이 어린이 뮤지컬도 종종 보러 가고…. 최근에는 빈 필하모닉&리카르도 무티 내한 공연을 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시간이 되면 문화생활을 많이 하려는 편이죠. 지민이가 공룡을 좋아해서 자연사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자주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지민이 침구가 온통 공룡이로군요.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를 론칭할 때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취향을 공유하는 일”이라고 하셨죠. 브랜드에 어떤 취향을 담고자 했나요?

저희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유럽 쪽 감성이나 스타일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동시에 일본 스타일을 좋아해서 유럽과 일본 느낌이 골고루 섞인 취향이 담기지 않았나 생각해요.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는 이전에 남편이 운영하던 한영후운hanyounghuun의 사업자 이름이에요. 그 당시에도 한영후운과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를 두고 고민했는데, 2020년 제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이 이름을 쓰면 좋겠다 싶었어요. 위켄드 런드리 리스트는 일상에서 자주 입을 수 있는 옷을 생각하며 만든 브랜드예요. 편하게 입는 옷을 만들고 싶었죠. 서울에 있을 땐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참여하면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저랑 남편이 디자인하고 원단을 고르면 서울에 있는 팀이 생산을 맡아주고 있어요. 아이디어는 주로 제가 내고, 디자인은 남편이 좀더 많이 맡고 있죠. 원단을 함께 고르며 한 벌 한 벌 만들어 나가는 브랜드예요.

2016년에 블로그에 이런 이야길 적어 두셨더라고요. “워킹맘 할 수 있을까? 아니 못 해.”(웃음).

그걸 어떻게 찾으셨어요(웃음)? 당시엔 그런 생각이 컸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도 완벽하게 양립은 못 한다고 생각해요. 일에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아이도 완벽하게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죠. 헤르미온느의 모래시계(시간을 되돌리는 도구)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과 양육을 해나가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감동해요.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아이에게 최대한 잘해주려 노력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아요.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저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해요. 엄마가 되니까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비난받는 자리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자주 이야기하죠. “나는 잘하고 있다.”

 

칭찬하는 거 정말 좋네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태도 같아요. 서울에서 지내다가 부산으로 이사한 지 4년 차가 됐는데, 부산 생활은 어떠세요?

우선 서울살이보다 자연을 더 많이 접해서 좋아요. ‘부산’ 하면 바다를 가장 많이 떠올리실 텐데 둘러보면 산도 참 많거든요. 부산에 오고 나니 시야가 뻥 뚫려서 그런지 마음도 덜 답답하고 편안하단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이 집의 시야도 참 시원해요. 바깥으로 물이 보이네요. 강인가요?

네. 요 앞으로 나 있는 건 수영강이에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바다랑 만나는 강줄기죠. 강을 따라 산책로도 잘 돼 있고, 매일 물을 보면서 지내니까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도 서울 살 때보다는 덜 드는 것 같아요.

 

아파트 꼭대기 층인데 집이 참 특이해요. 지붕이 뾰족해서 별장 같기도 하고요.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됐는데요. 이사 전에 공사를 하고 들어왔어요. 살릴 수 있는 집의 뼈대는 살리고 고쳐야 될 것만 손봤죠. 이전에 살던 집은 새 아파트였는데 지내다 보니까 저희는 조금 낡더라도 저희 스타일대로 고쳐 사는 걸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 집을 구할 땐 연식을 크게 따지지 않았고, 너무 낡지만 않으면 어떤 집이든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집은 어쨌든 저희가 ‘사는’ 곳이니까 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자고 생각했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길 바라면서 이것저것 고민하며 고쳤어요.

 

아이가 있는 집이라 좀더 신경 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집을 구할 때부터 고민할 게 많았는데 아무래도 낡은 집 위주로 구하다 보니 결로나 곰팡이 같은 문제를 유심히 보게 되었어요. 인테리어 할 때는 수납을 많이 궁리했고요. 계단 아래로 칸을 나누어 물건을 정리할 수 있도록 꾸민 것도 그런 이유예요. 공간은 한정적인데 아이 물건은 계속 늘어나서 고민이 있었거든요. 이 집은 아파트 꼭대기라서 층고가 높고, 복층 구조라 2층과 다락 공간이 있는데요. 위쪽은 전부 지민이 공간으로 꾸밀 수 있어서 좋았어요. 원래는 다락으로 가는 계단 쪽에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을 떼고 계단과 틀에 노란색을 칠해 아이가 이용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죠. 복층은 지민이 책으로, 다락은 장난감으로 채웠어요.

주변 도시도 자주 다녀오는 것 같아요. “김해는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하고 도시가 한적하다.”라고 이야기한 게 인상 깊었어요.

이전 집이 김해와 가까워서 자주 오갔는데 지금은 동부 쪽으로 이동해서 오히려 경주나 울산을 더 많이 가요. 김해는 어딜 가나 친절하고 한적한 느낌이 있어요. 굉장히 깨끗하고요. 특히 김해엔 도서관이 참 많아요. 평지여서 걷기에 좋고, 천을 따라서 걷는 재미도 있죠. 제 고향이 전주인데 전주랑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더 좋아하나 봐요. 어느 도시든 저마다 특징이 있거든요. 그걸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전주, 서울, 부산… 다양한 곳에서 지내셨는데 이탈리아 유학 생활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대학 시절, 남편분과 함께 유학을 다녀오셨죠.

유학은 조금 단순하게 정했어요. 저희가 패션 전공이니까 미국이나 이탈리아가 후보지로 올랐는데요. 이탈리아어가 상대적으로 배우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그 당시엔 남자친구던 남편이 미국은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로 가게 됐어요. 보통은 이탈리아에서도 밀라노로 많이 가지만 저희는 피렌체를 택했죠. 조금 작은 도시인 것도 좋았고 가죽 학교가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저는 가죽학교에, 남편은 패션 학교에 다니면서 1년 남짓 공부했어요. 공부를 마치고 6개월 동안은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왔죠.

 

해외에서도 산책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하루에 두세 시간씩 걸었는데, 사실 산책은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거였어요. 피렌체에선 밤에 할 게 없거든요. 서울은 24시간 열린 상점이 많아서 밤이 밝지만 이탈리아는 일곱 시면 웬만한 곳은 다 문을 닫아요. 집에 티브이도 인터넷도 없다 보니까 책 읽는 거 아니면 할 게 없었어요. 그래서 아르노강을 따라서 매일 밤 몇 시간씩 걸었죠. 동네 구경도 하고 시간도 때우는 일이었는데, 어느새 루틴이 되었네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 건강 상태가 제일 좋았던 시기인 것 같기도 하고…(웃음).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가족 여행으로 여러 나라를 다녀오셨죠. 돌을 갓 지난 어린아이랑 여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첫 여행이 좋았기 때문에 계속 떠날 수 있었어요. 처음 함께한 게 3박 4일 도쿄였는데, 그때 너무 재미있어서 일정을 연장했거든요. 그래서 유럽 여행도 생각해 보게 됐죠. 근데 막상 결정하고 나니까 계획을 짜면서 걱정이 좀 되더라고요. 도쿄는 한국이랑 가깝기도 하고 시차도 없어서 걱정이 덜했는데, 유럽은 시차도 있고 비행시간도 기니까 쉽게 상상이 안 됐어요. 그래서 좀더 철저하게 준비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20일 정도 밀라노, 피렌체, 파리를 돌아다녔는데 무척 행복했거든요.

힘든 점은 없었어요?

안 좋은 기억이나 큰 문제는 없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건 아기 시차 적응하는 것 정도였죠. 시차는 어른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서 아마 지민이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 밀라노에 있을 때 돌발상황이 생기기도 했어요. 갑자기 지민이가 아팠거든요. 돌발진이라고, 엄마한테 받은 면역력이 없어지는 시기에 몇몇 문제가 생긴다는데 지민이는 그때 열이 40도까지 오르더라고요. 그래도 상비약을 잘 챙겨 간 덕에 금세 가라앉아서 무사히 여행할 수 있었어요.

 

철저하게 준비한 덕이군요. 아이와 여행하는 건 많은 가족의 꿈일 텐데 어떤 점을 신경 쓰면 좋을까요?

음… 짐이 많더라도 가능한 한 모든 걸 챙겨 가는 거요. 저는 ‘이런 게 필요할까.’ 싶은 것까지 다 챙겨 갔어요. 벌써 다녀온 지 몇 년이 지나서 세세한 품목까진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마실 물부터 먹을 거, 옷, 상비약… 양도 넉넉하게 챙겼어요.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게 다 필요하더라고요. 사실 아이가 없을 땐 여행 간다고 하면 각자 신발을 세 켤레씩 챙겨 가곤 했는데(웃음) 아기랑 가니까 저희 짐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아기 걸로 채우게 됐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아요.

파리에서 황당하고 우스운 일이 있었어요. 지민이가 아직 어릴 때라 유모차에 태우고 다녔는데 할머니랑 개가 그 옆을 지나갔거든요. 근데 그 개가 유모차에 오줌을 눈 거예요.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가시려는데, 옆을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당신 개가 유모차에 오줌을 눴다.’고 알려 주셨어요. 근데 할머니가 놀라지도 않고 의연하게 휴지를 건네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쿨하게 가시더라고요. 프랑스에는 반려견과 함께 지내는 가정이 많아서인지 별일 아닌 것처럼 대하는 게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그 휴지로 파리 한복판에서 유모차를 닦고(웃음)….

자연과 곁 하는 매일

“지민이가 걱정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지금처럼 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지민이는 활달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수줍음이 참 많아요. 지민이는 어떤 친구예요?

음… 저는 지민이를 단정 짓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들에게는 여러 가지 성향이 공존한다고 생각해서요. 우리 아이는 내향적이야, 외향적이야, 하고 한 가지로 규정해 버리면 다른 성격을 죽이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그래도 지민이에게 두드러지는 특성이 있다면 순수하다는 거? 아직 티브이를 보여주지 않았고 유튜브도 저희가 선택한 콘텐츠만 접해서인지 언어 선택이 순수하고 맑은 편이에요. (속삭이며) ‘바보’나 ‘멍청이’ 같은 단어도 아직 잘 모르더라고요. 또 뛰어노는 것도 좋아해요. 활동하는 걸 좋아해서 숲 유치원에 보냈는데 자연에서 많이 활동하다 보니 체력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아! 숲에서 생일 파티 한 사진을 봤어요.

보통 유치원은 케이크를 두고 잔칫상처럼 꾸며서 파티를 하는데, 여긴 숲 유치원이다 보니까 생일 파티를 숲에서 하더라고요. 화관을 만들어서 씌워주고 자연물을 쌓아 케이크처럼 꾸미고요. 친구들이 숲에 있는 것들을 모아 선물이라며 건네주기도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생일 축하받는 걸 보니까 참 좋았어요.

 

너무 예쁜 장면이에요. 탄생과 더불어 가장 먼저 갖게 되는 게 이름이잖아요. 지민이 이름 뜻은 어떻게 돼요?

어른들이 좋은 이름을 받아서 몇 가지를 보여 주셨어요.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고른 건데 정확한 한자가 잘 생각나질 않네요(웃음). 제 이름인 ‘효량’이 특이한 편이어서 어디서 뭘 해도 두드러지는 삶을 살았거든요. 그래서 아이 이름은 좀더 쉬운 이름으로 정하고 싶었어요.

 

이름은 살아가면서 더 많은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지민이란 이름에 어떤 의미가 깃들기를 바라나요?

‘행복’이요. 어른들이 받아오신 이름들에 지혜, 평등 같은 가치가 하나씩 있었는데, 지민이란 이름이 행복의 의미를 품고 있었어요. 저는 지민이가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자연’이에요. 지민이네는 산책이 일상인듯한데 최근에는 어디서 산책하고 있나요?

이사 전에는 주로 공원에 나갔는데 지금은 좀더 도심으로 들어오게 되어서 주변에 공원이 많이 없어요. 대신 강을 따라 산책로가 나 있기 때문에 요새는 유치원 끝나면 함께 나가서 씽씽이를 타곤 해요. 하루에 30~40분 정도는 셋이 함께 집 앞을 걷고 있어요. 지난 주말엔 강 건너 백화점까지 지민이랑 같이 가봤는데 걸어서도 갈 만하더라고요.

함께 걷는 세 사람 표정이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지민이와 닮았다고 느낄 때 있으세요?

그럼요. 외모는 남편과 저를 반반 닮은 것 같고, 성격에서도 그런 게 보여요. 식성도 그렇고요. 어릴 때부터 직접 음식을 해줘서인지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지민이도 곧잘 먹더라고요. 저희 부부 따라 한식, 일식, 양식 골고루 즐기는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식사 시간이 즐거워요. 또 지민이는 집에서 책 읽고 활동지 하는 걸 좋아하면서도 산책하거나 공 가지고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이건 저랑 좀 닮은 것 같아요. 요새 MBTI 검사가 유행이잖아요. 저는 외향과 내향이 거의 반반으로 나오는데 지민이도 아마 그럴 것 같아요(웃음).

 

산책할 때 자연을 거닐면서 카페나 문화 시설도 자주 다니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상황이 시작되고 1년 정도는 카페나 음식점 이용을 최대한 자제했는데 너무 길어지다 보니까 생활이 제한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삶이 심심해지고 따분해지고… 자극이 전혀 없는 삶을 사는 게 힘들어서 어느 순간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부터는 최대한 조심하면서 카페나 음식점에 다녀보고 있죠.

 

요새는 노키즈존이 적지 않아서 외부 시설을 이용할 때 제한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 엄마여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노키존으로 운영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요. 가끔 조건부로 ‘소란스럽지 않으면 아기 동반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곳도 있어서 노키즈존이어도 배려 받을 때가 있고요. 저도 아이가 없을 땐 노키즈존을 선호했던지라 가게 영업 방침은 존중해요. 하지만 아이 있는 가족에게 관용을 베풀고 마음을 여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싶은 게 솔직한 바람이에요.

 

아이랑 함께하면 제약이 생기기도 하지만 시각이 더 넓어지기도 할 것 같아요. 산책하면서 의외의 장면을 맞닥뜨릴 것도 같고요.

그런 경험 정말 많아요. 지민이가 길에 떨어진 빨간 열매, 솔방울 같은 걸 좋아해요. 유치원에 다녀오면 꼭 양쪽 주머니에 낙엽, 도토리, 열매 같은 게 잔뜩 들어 있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아이가 소중하게 간직하는 걸 보니까 자연물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 눈엔 떨어진 열매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구나 싶어요. 사실 처음에는 몰래 버리기도 했거든요(웃음). 근데 보물이라면서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놓는 걸 보니 이젠 웬만하면 그대로 두려고 해요.

SNS에도 산책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요. “오늘도 산책”, “바람 불어도 산책” 같은 글귀만 보아도 그렇고요.

산책은 우선 저한테 무척 중요한 활동이에요. 생각이 많은 편이라 산책 시간이 꼭 필요하거든요. 요즘은 누구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일에 몰두하고 인간관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자연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걷다 보면 지금 하는 고민들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가 많거든요. 물론 막중한 고민도 있겠지만 대부분 고민은 걷다 보면 가볍게 날아가 버려요. 유학 생활부터 지금까지 쭉 산책을 생활처럼 하고 있는데, 무작정 걷다가 서점이나 카페에 가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에요.

 

여행지에서의 산책은 어때요?

여행지에서 산책하면 집이나 생활을 눈여겨보게 돼요. 그래서 주로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구했는데,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아침으로 뭘 먹고 어떤 카페에 가는지 보는 걸 즐겼죠. 여행지에서의 산책은 제가 겪어보지 못한 생활상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잖아요. 반면 지금은 똑같은 풍경이어도 매일 다른 점을 찾는 게 재미있어요. 어제는 오리가 한 마리였는데 오늘은 두 마리 있네, 오늘은 물 색이 좀더 보라색이네, 하는 식으로요.

 

자연은 우리에게 참 중요한 요소인데 자주 잊고 지내는 것 같아요.

맞아요. 항상 곁에 있는데 너무 당연해서 평소에는 생각을 잘 안 하게 되죠. 그러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제야 인간은 자연 앞에서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최근에 발생한 산불만 봐도 그렇고요. 이럴 때 자연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을 가까이 두고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요즘 캠핑이나 등산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어쩌면 본능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진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어울리는 건 아닐까 싶고요. 저는 특히 아이들이 자연을 많이 접하면서 지내면 좋겠어요. 어린 시절 자연과 어울려 지내는 게 긍정적인 정서 형성에 큰 도움이 된대요. 그래서 지민이가 숲 유치원에 다니는 거기도 하고요. 요새는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마음껏 뛰어노는 것도 어려워졌잖아요. 숲에서 조금이라도 뛰어놀 수 있으면 훨씬 좋을 거예요.

 

저도 숲 유치원에 다니고 싶어졌어요(웃음).

지민이는 원래도 밝은 아이였는데 숲 유치원을 다니면서 더 밝아졌어요. 유치원에 가서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고 풀고 오는 것 같아요. 뛰어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자연물을 보면서 원만한 성격이 만들어지고, 비염이나 신체 건강도 훨씬 좋아졌어요.

 

유치원에서도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엄마, 아빠랑 산책도 많이 하는 만큼, 지민이는 자연의 소중함을 아는 어린이로 성장할 것 같아요.

몸의 건강도 중요한데 정신 건강이 앞으로는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될 거라고 봐요. 저는 모든 걱정을 건강하게, 긍정적으로 이겨낼 힘이 마음가짐과 정신 상태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힘듦을 얼마나 지지하고 버텨주느냐의 문제 같은데, 그래서 아이가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앞으로도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이쯤에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겠어요. 지민이가 조금 더 자라 이 책을 펼쳤을 때 읽어 볼 한마디를 남겨 주실래요?

지민이랑 자주 읽었던 책 제목인데요,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지민이네 산책 이야기

동백섬

걷기에 참 좋은 곳이에요. 바다가 펼쳐진 시야,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는 느낌이 참 좋지요.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새소리도 아름다워요.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710-1

F1963

예스24 중고서점, 테라로사 카페, 국제갤러리, 그리고 현대모터스튜디오와 금난새 뮤직센터까지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에요. 서점도 가고,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고, 전시도 보고, 정원도 거닐고! 반나절이 금방 가요.

부산시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