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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살아 있는 기록

2014년 11월 8일 오후 9시 6분, 나는 @septuor1의 모든 말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트윗들은 당신의 평소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텍스트이다. 평소에 즐겨하던 농담들, ‘비상식적인 많은 것들’에 대한 한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인사, 그리고 어느 곳에서 건져올렸는지 가늠할 수 없는 은유와 이야기들이 아버지의 트위터에 모두 담겨 있다. 그 문장들은 적확하고 섬세하다. 아버지는 트윗을 올리실 때도 ‘찰칵’ 소리가 날 때까지 문장을 공들여 다듬곤 하셨다.

 

아버지는 늘 당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셨고, 모든 사람에게 배울 준비가 되어 계셨다.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트친’으로 수평적 관계를 맺는 트위터 공간이 아버지에게는 더없이 자연스러웠다. 아버지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반론을 주의 깊게 듣고, 타당하다고 여겨지면 기존 생각을 수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으셨다. 아버지의 트윗들에서 그 유연함이 엿보여서 기쁘다.

– <서문을 대신하여> 중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 난다

타임라인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을

트위터를 시작한 지 올해로 12년. 나는 듣고 있던 노랫말을 적거나 읽던 시의 한 구절을 읊으면서 타임라인을 메워왔다. 아니, 실은 ‘졸려’나 ‘배고파’ 같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 시간이 더 길 테다. 그 긴 시간 중 유독 인상 깊은 순간을 꼽자면 역시 2014년 11월이 아닐까. 프로필 사진을 등록하지 않아 ‘알’ 모양이던 어느 계정이 “트윗을 시작합니다.”라는 트윗을 남긴 그날. ‘황현산 선생님이 트위터를 하신다고?’ 놀라움과 기쁨에 팔로우 버튼을 누르며 설레던 시간을 기억한다. 선생은 가셨지만 @septuor1의 말들은 영영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선생의 말을 읽는다. 어떤 트윗은 ‘마음에 들어요’ 버튼으로 마음에 꼭꼭 새기며.

2014년 11월 8일 오후 9시 6분부터 2018년 6월 25일 오후 6시 53분까지.
故황현산 선생의 트위터 조각 글을 일부 모아 봅니다.

@septuor1 2014년 11월 8일 오후 9:06
트윗을 시작합니다.

@septuor1 2014년 11월 8일 오후 9:07
이제 뭘 해야 할지?

@septuor1 2014년 11월 9일 오전 12:04
드디어 달걀에서 벗어났군.

@septuor1 2014년 11월 13일 오후 12:52
옛날에는 자식 자랑, 마누라 자랑 같은 것을 팔불출로 쳤다. 요즘은 마누라 자리에 고양이를 넣어야 마땅할 것이다.

@septuor1 2015년 7월 22일 오후 7:13
나는 수업중에 강독을 하다 졸았던 적이 있다. 한 5초쯤 되려나. 입에서 헛소리가 나가는 순간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교실을 둘러보니 학생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septuor1 2015년 7월 25일 오전 7:24
인간적 매력은 자기를 드러낼 때도 나오지만 감출 때도 나온다. 드러내도 거짓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감추어도 정직하게 감추는 사람이 있다. 정직하게 감추는 게 가장 매혹적인데 쉬운 일이 아니다. 정직하게 드러내면 된다. 매력은 정직한 데서 온다.

@septuor1 2015년 7월 26일 오전 7:56
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다시 보면 어법에 안 맞는 글이 자못 많다. 원인은 두 가지. 트윗 글은 다른 글과 달리 흥분해서 쓰게 되는 것이 첫째고, 다른 이유는 140자의 한계에 있다. 보통 200자쯤 되는 글을 줄이다보면 자주 뒤틀어진 글이 된다.

@septuor1 2015년 8월 11일 오전 8:51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고급 미용실에서 미용사들이 머리 손질을 하고 나면 고참이 나와서 두세 번 가위질을 한다. 그러면 머리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글도 그렇다. 조사 몇 개, 단어 위치 몇 개 바꾸면.

@septuor1 2015년 8월 17일 오후 7:32
참 불경한 말이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무궁화를 ‘눈에피꽃’이라고도 한다. ‘눈에피’는 아폴로눈병 같은 전염성 눈병. 무궁화꽃이 필 무렵 이 눈병이 나돌기 때문이다. 보통은 무강나무꽃이라고 부른다.

@septuor1 2015년 8월 17일 오후 8:27
어느 트윗에 ‘평소 황현산님에게 멘션하는 머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머글은 아마도 해리포터에서 온 말이겠지. 내 호를 지어준다고 난리치기도 하는데 머글 황현산도 괜찮겠다.

@septuor1 2015년 10월 10일 오전 4:51
내 얼굴에 맞아 즐겨 쓰는 모자가 있는데, 그 모자의 이름이 뉴스보이 캡이라는 것을 어제 알았다. 신문 배달하던 소년들이 쓰던 모자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제 모자를 찾으러 다닐 때 모자 형태를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어제의 소득.

@septuor1 2016년 1월 25일 오전 11:37
모든 범죄에는 권력관계가 있다. 국가 권력 젠더 권력 같은 상시 권력도 있지만, 무기와 빈손, 노리는 자와 방심한 자 간의 일시 권력도 있다. 가족 내 권력, 젠더 권력 범죄는 은폐 용인되기 쉽지만, 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계기의 고찰이 은폐를 돕는 건 아니다.

@septuor1 2016년 1월 31일 오전 7:32
나도 글씨를 잘 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어떤 손글씨는 보고 있기가 괴롭다. 어떤 문체가 마치 음치의 노래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때처럼.

@septuor1 2016년 2월 14일 오전 12:09
옛날에 올린 트윗이 리트윗되고 있으면, 항상 민망하다. 매미가 제 허물을 볼 때도 이런 기분일 것이다. 매미한테도 기분 같은 것이 있다면.

@septuor1 2016년 5월 23일 오후 2:48
왜 나는 중요한 순간에 꼭 오타를 낼까.

@septuor1 2016년 7월 15일 오후 11:24
남의 불행과 고통에 반드시 공감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공감하지 않는 것과 다른 사람의 공감을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septuor1 2016년 8월 22일 오후 4:50
사전에 ‘다둑거리다’는 없고 ‘다독거리다’만 있구나. 이건 정말 이론에 언어를 굴복시키기다.

@septuor1 2016년 12월 31일 오전 6:44
늙어서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하나. 젊었을 때 가진 물건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잃어버렸거나 도둑맞은 것이다. 늙어서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에 곱게 놓아둔 것이다.

@septuor1 2017년 6월 5일 오후 11:28
나는 한창 글을 쓸 때, 써야 할 글이 안 써지면 찌질한 영화를 몇 편 연속해서 보곤 했다. 이걸 영화라고 만들어 어쩌고 하다보면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래서 아무 소리나 쓰게 된다.

@septuor1 2017년 9월 20일 오전 7:08
못 써도 고결하고 아름다운 글씨가 있고 잘 쓴 것 같은데도 무언가 마뜩지 않은 글씨가 있다. 나는 내 글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글씨가 달라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컴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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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자료 제공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