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이룸이에게 소포가 왔다. 보낸 이는 나무 할아버지. 나무에 새겨진 편지 내용을 읽어줬다. “남이섬에 사는 숲속 친구들이 무더운 여름 몹시 지쳐 있어. 쉴 곳 없는 동물 친구들에게 쉼터를 만들어줄 수 있겠니?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숲속으로 와줘.” 아이의 입꼬리가 실룩샐룩 움직이더니 눈이 점점 커진다. 편지 옆에 동봉된 지도와 안내된 초대 내용까지 훑어보더니 달뜬 목소리로 말한다. “그으럼요~ 동물 친구들아! 내가 갈게. 근데 엄마, 며칠 밤 자야 나무 할아버지 만날 수 있어?”
남이섬은 비가 오면 반쯤 잠기는 불모지였다. 그곳에 수만 그루의 나무를 정성스레 심고 가꾸어 지금의 싱그러운 공원이 되었다. 2006년 국가 개념인 ‘나미나라공화국’을 설립했고, 2010년 유니세프 어린이 친화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고, 아름다운 동화와 노래를 선물하는 곳이다.
나무 할아버지 얼굴 만들어줄게요
사상 최고 온도를 경신하던 8월 첫날, 우리는 초대장을 들고 남이섬에 다다랐다. 나무 할아버지가 안내해준 ‘와글와글 숲’의 간판이 보였다. 무성한 잎의 나무들과 드넓은 잔디 속에서 캠프를 이끌어줄 진행자 ‘나미’와 ‘나라’, 동물 모형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푸르른 나무로 둘러싸인 숲에서 초록 티를 나눠 입고 모여 앉았다. 그 모습이 초록 왕국의 주민들 같아 귀엽기만 했다. 이제 우리를 초대한 나무 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얘들아, 나무 할아버지 얼굴이 없잖아. 우리가 할아버지 얼굴을 만들어주면 어때?” 나미의 제안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이룸이는 자기 몸보다 조금 더 두꺼운 몸통에 강인한 뿌리를 가진 나무 앞에 섰다. 나무에 찰흙을 붙이고 나뭇가지 두 개를 꽂아 콧수염을 만들었다. 나뭇잎은 눈과 머리가 되었다. 근엄하지만 부드러운 할아버지를 상상한 걸까. 스쳐 지날 때마다 우리는 나무의 표정을 상상했다.
뚝딱뚝딱! 놀이터를 만들어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무 놀이터로 모였다. 나무 할아버지의 부탁인 숲속 놀이터에 나무 울타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뚝딱이 선생님의 도구 사용법 설명을 들은 뒤 톱과 망치, 고글, 장갑을 받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룩 흘렀지만 누구도 날씨 탓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두 눈은 손에 들려 있는 톱과 망치 외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나무토막이 쌓여 있는 곳에서 기다랗고 납작한 나무 두 개와 사이사이에 메워질 작은 가지들을 골랐다. 아빠가 먼저 3분의 2 정도 톱질을 해서 홈을 깊게 파놓으면 이룸이는 도움을 받으며 쓱싹쓱싹 나무를 베었다. 틀이 갖춰지자 사다리처럼 작은 가지를 촘촘히 놓아 못으로 연결했다. 집중하느라 웃고 떠들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줄었다. 입을 쭉 내밀거나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이건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누군가 “공작새가 왔어”라고 외쳤다. 공작새는 도도한 모습으로 놀이터 위에서 작업 현장을 내려다봤다. 청설모도 주변을 뛰어다녔다. 동물들의 응원에 숲속은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아이들은 자신의 완성물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다. 간판을 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의 울타리가 나무 놀이터에 세워졌다.
암벽 등반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새 침대
나무 놀이터를 만드는 사이에 여러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부모들은 그림책 전시 투어나 아우 인형 만들기, 램프 워킹, 도자기 페인팅을 했고 어린이들은 나미와 나라, 대원들과 뛰고 노는 쉼을 가졌다.
늦은 오후 놀이기구를 만들기 위해 다시 모였다. 이번엔 팀을 꾸려 함께 만드는 모양이다. 이룸이는 캠프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는데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로 구성된 ‘다람쥐 사촌’ 팀에 속했다. 세 명의 어린이들이 각자 흰 도화지에 동물 친구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놀이기구를 그렸다. 그린 그림을 가지고 회의를 해서 최종 만들 기구를 정하고 발표를 했다. 다람쥐 사촌 팀은 암벽 등반, 엘리베이터, 새 침대라는 비범한 아이디어를 냈다. 어린이들은 전체를 아우를 필요 없이 자기만의 길로 꿈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꿈은 어른인 나에게도 와닿았다. ‘다람쥐들은 나무 벽 사이를 왔다 갔다 등반하며, 토끼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갈까? 서로 타겠다고 다투거나 차례차례 줄도 서려나?’ 꼬마들이 구상한 것을 떠올리니 그림책을 펼친 듯 여러 이야기가 그려졌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때부터 이룸이 눈이 감길락 말락 했다. 못질 몇 번 하더니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 다른 친구들이 실물을 만들어갈 동안 대청마루에 누워 꿈적도 하지 않고 입을 벌리고 잤다.
새들아 여기서 쉬어
잠들기 전 화장실에 가는 길이 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랜턴을 켜고 가는데 길의 양쪽에는 나무들이 서있었다. 숲속의 밤이 무서울 만도 한데 아이는 고요를 깨트리며 나무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화장실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낮에 놀이했던 이야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난 이야기도 했다. 할아버지가(사실은 엄마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화장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칸막이의 가장 높은 곳에 큰 새가 앉아있었다. 새라면 끔찍한 나는 바로 나와버렸는데 이룸이는 새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작게 속삭였다. “알겠어. 알겠어. 내일은 꼭 만들어줄게.” 돌아가는 길에 이룸이는 말했다. 자신이 오늘 새 침대를 만들다 잠들어버려서 새가 화장실로 몰래 찾아온 거라고. 내일은 새들을 쉴 수 있게 해줘야한다고.
숲속 보금자리로 돌아와 파란색 텐트에 누웠다. 늦은 밤까지 이룸이는 새에게 하는 건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다짐을 반복하다가 잠이 들었다.
결국 이룸이는 약속을 지켰다. 사람들이 새 둥지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귓속말을 했다. “새들은 왜 계속 앉아 있는 거야? 불편하게. 나처럼 누워서 자면 좋을 텐데….” 그래서 간판명도 ‘새들아 여기서 쉬어’다.
캠프를 마치며 어린이들은 숲 탐원대원 임명장을 하나씩 받았다. 임명장의 내용이 저마다 달랐는데, 나무 놀이터를 만들면서, 밥을 먹거나 놀이를 하며 아이가 내뱉은 말과 행동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무 할아버지는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자기가 만든 놀이터를 몇 번씩 돌아보고, 캠프를 진행해준 요원들과도 힘겹게 인사를 하고 육지로 나가는 배에 올랐다. 편지를 쓰겠다는 말과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되뇌면서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