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한다’ 는 독일 속담처럼, 4월의 베를린은 예상할 수 없고 흥미진진했다. 그 흥미진진함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벼룩시장’이다. 이른 아침에 찾은 마우어파크Mauer park 벼룩시장은 ‘Eat, Play, Love’ 그 자체였다. 오감이 리듬을 탈 수 있는 그곳, 베를린으로.
베를린의 그곳, 마우어파크 플리마켓
여러 도시의 벼룩시장을 가봤지만 베를린만큼 자유롭고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른 아침 서둘러 도착한 벼룩시장은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이곳은 크게 ‘사는 것’, ‘먹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사는 것
베를린에서도 큰 규모로 손꼽히는 만큼, 많은 판매자와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각각의 부스에는 손님들이 물건을 보기 편하게 진열되어 있고 설명도 친절하게 해준다. 그중 사과 상자 만한 박스에 물건들을 담아 원하는 것을 개당 1유로에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무엇보다 수북하게 쌓인 물건 더미 속에서 하나씩 꺼내 새로운 세트를 구성하는 재미는 마치 어릴 적 보물찾기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상자를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먹는 것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식도락이다. 벼룩시장은 한 자리에서 그 도시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훈제 생선구이! 꽁치와 비슷한 큰 생선을 훈제로 구워 레몬과 비법소스가 함께 나오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맛있다. 담백함 그 자체.
즐기는 것
잠시 쉴 만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공원 안 다른 구역에서 밴드, 서커스, 버블쇼 등 다양한 공연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다정한 연인, 아이와 함께온 가족들, 강아지들과 뛰어 노는 사람들 그리고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열혈 팬들이 한데 모여 춤추고 노래 부르며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고 어깨가 들썩였다. 자유와 감성이 가득한 베를린. 이게 베를린의 매력이구나!
좋아하게 된 곳들
보난자 커피Bonanza Coffee
“Don’t die before trying”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전 세계 카페 25’에 선정된 보난자커피Bonanza Coffee. 미테Mitte지구의 세련된 거리를 지나 마우어파크 근처에 위치한, 젊은 베를리너들이 사랑하는 곳이다. 이곳은 오래됨과 단순함이 공존하는 매장 내부와 카페 한가운데의 브루잉 공간이 눈에 띈다. 커피를 판매하는 점원들도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커피를 같이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원두 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약배전 로스팅으로 깊은 산도를 느낄 수 있었다. 신맛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라떼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차가운 커피를 좋아해서 아이스플랫 화이트가 가장 좋았다. 베를린에 간다면 무심한 간판에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마셔보기.
A. Oderberger Str. 35, 10435, Berlin O. 08:30~18:30(월~금) / 10:00~18:30(토~일)
소호 하우스 베를린Soho House Berlin
패션, 인테리어, 음악, 음식 그리고 숙박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공간이다. 1층 로비에 있는 ‘더 스토어The store’는 하이패션과 유행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데 작은 소품부터 큰 식물과 조명, 그리고 각 브랜드의 조화가 매력적이었다. 한쪽에는 디제잉 공간이 있어서 시시각각 다른 음악을 들려주고 원하는 LP도 들어볼 수 있다.
두 명의 영국 셰프가 일하는 ‘더 스토어 키친The store kitchen’은 매일 다른 메뉴를 맛볼 수 있는데 유기농 식품 보다 조미료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게 무슨 맛일까?’ 웃음 지을 수도 있겠다.
A. Torstr.1, 10119, Berlin O. 10:00~19:00(월~토)
버거마이스터Burgermeister
버거를 좋아하는 그가 베를린 가기 전에 찾아놓은 맛집 1순위 버거마이스터. 베를린 U-bahn(지상 지하철) 1호선, 슐레지셰스 토어Schlesisches tor역 철도 아래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는 공중 화장실로 사용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버거의 장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맛있고, 두툼한 패티와 채소가 진한 버터와 예술적인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치즈버거, 칠리치즈버거, 마이스터버거를 시켰는데 내 취향에는 칠리치즈버거가 가장 입맛에 맞았다.
방문한 날엔 사정상 감자튀김을 판매하지 않았지만, 추천 메뉴 중 하나이니 꼭 먹어보길. 식사시간에 맞춰 가면 줄을 길게 서야만 하는데, 기다림이 지루하다면 조금 일찍 가기를 추천한다.
A. Oberbaum Str. 8, 10997, Berlin O. 11:00~03:00(월~토) / 12:00~03:00(일)
케이 스튜디오 베를린K Studio Berlin
베를린을 이번 여행지로 꼽은 첫 번째 이유, 바로 우리의 친구 케빈. 그는 유럽에서 활동 중인 스타일리스트로 최근 베를린에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로 구성된 편집숍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옷과 신발 그리고 액세서리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SJYP, 아더에러ADER ERROR, 넘버링NUMBERING, 마소영MAH SOYOUNG, 수향SOOHYANG등이 입점해있다.
베를린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벌써 입소문이 자자하다.
A. Linienstrasse. 40, 10119, Berlin O. 11:00~20:00(월~토)
일주일 동안 머무는 ‘집’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소다. 호텔은 여행객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매우 편안하다. 하지만 ‘요리’와 ‘사람’을 좋아하는 나에겐 늘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3년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에어비앤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베를린 여행은 처음이라 현지에 있는 지인에게 머물기 편한 위치를 추천받아 숙소를 예약했다. 이번 여행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성용 오빠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나의 절친이 되어버린 동갑내기 친구 정아가 함께하기로 해서 숙소 예약에 더욱 신경을 썼다. 이번 호스트는 가족들과 오스트리아로 긴 여행을 떠났다고 했는데, 맙소사! 우리 네 명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집 문 앞에 나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호스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에어비앤비에 문의를 하고 답장이 올 동안 일일이 집을 확인해보기로 했다(예약한 숙소가 5층이라 총 네 채의 집만 확인하면 됐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자꾸만 이유 모를 웃음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스트의 세컨드 네임으로 집이 등록되어 있었더랬다. 호스트가 집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은 집을 무척 아껴서 게스트와 직접 만나서 열쇠를 주고, 집을 같이 둘러보며 하나씩 설명을 해주는 편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갑작스러워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서야 일주일 동안 우리가 머물 집에 도착했다. 채광이 좋아 집 천체에 햇살이 가득했고 작은 테라스에 는 내가 좋아하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집 안 구석구석과 작은 소품에서 이 공간에 살아가는 이들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두 개의 방중 하나는 아이들의 방이었는데 침대도 두 개, 인형도 두 개, 모빌도 두 개. 모든 소품이 두 개씩 있었다. ‘쌍둥이가 있는 집인가?’ 생각하던 중 진열된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다. 호스트와 아내, 첫째 그리고 쌍둥이. 다섯 식구가 머물고 있는 곳이었다. 아내가 집을 꾸미는 취향이 나와 비슷해서인지 괜히 내 집에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소통이 가장 큰 이유다. 작년 신혼여행에서 인연이 된 지인이 베를린에 거주 중인데 그에게 현지 재료로 따뜻한 밥 한 끼 차려주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벼룩시장에서 공수한 불고기와 생선구이, 마트에서 산 과일과 채소 그리고 칼칼한 라면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저녁을 함께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해외에서 먹는 한식은 꿀맛이다. 우리는 밤새 우리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새로운 추억으로 마지막 밤을 채워갔다. 베를린에서 보낸 결혼 1주년. 동갑내기 친구와 잊지 못할 추억. 늘 고마운 사람들과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나는 말할 수 있다. 나의 베를린 여행은 참으로 따뜻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