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A STORY ABOUT GROWING UP

그림책 작가 김지영

《내 마음 ㅅㅅㅎ》 김지영 작가는 두 딸이 ‘유춘기’를 지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기발하고 천진한 이야기를 그려냈다. 아이의 마음이 시시했다가 소심했다가 궁금했다가, 다시 씩씩해지는 과정을 안다는 건 보이지 않는 감정을 그만큼 세심히 살필 줄 안다는 뜻이다. 어렴풋이 짐작하던 어린이의 세계를 엄마가 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다는 그녀는 지금도 그 과정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에는 자라고 싶다는 말

“끊임없이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돼요. 이런 포맷을 반복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 명의 작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거든요.”

《내 마음 ㅅㅅㅎ》이 어린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30권 중 하나로 뽑혔어요. 축하드려요!

감사해요. 이전 책들은 제 속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들이 많았어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있다면 듣겠지.’라는 생각이었죠. 소수의 친구들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면 고맙다고 여겨 왔는데, 《내 마음 ㅅㅅㅎ》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중 하나로 뽑혔다고 하니까 더 많은 어린이들과 마음이 닿은 것 같아서 정말 기뻐요. 

 

단어 몇 개로 아이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는 이 책은 작가님의 두 딸을 보고 만들어진 거라고요.

연년생 두 딸을 키우고 있는데, 아이들이 세 살, 네 살이던 시기에 육아가 특히 힘들었어요. 아기 때는 가만히 누워 있었고, 좀더 컸을 땐 어디 가자고 하면 마냥 좋아라 하고 방글방글 웃었는데, 어느 날부터 자아가 커지면서 의견도 많아지고 짜증이 늘고 화도 내기 시작했어요. 우리 애들만 이런가 싶었는데 육아서를 찾아보니까 그 시기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스스로 적응하는, 이른바 ‘유춘기’라는 시기라고 하더라고요. 자연스러운 성장의 단계라는 걸 알게 된거죠. 그때 저희 첫째가 많이 하던 말이 ‘시시해’와 ‘심심해’였어요. 뭘 해도 시시하다고, 심심하다고 말하는 모습에 지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귀엽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 놨었어요. 3~4년이 지나 그 이야기를 확장해 책으로 만들게 되었네요.

 

‘ㅅㅅㅎ’ 세 개의 초성이 들어가는 단어로 아이의 여러 감정을 표현한 게 인상적인데요. 초성을 책의 핵심 요소로 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시작이 ‘시시해’와 ‘심심해’였으니까 그 여섯 글자를 두고 먼저 구성을 시작해 봤어요. 두 단어만으로 더미를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좀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했어요. 두 단어의 초성이 공통적으로 ‘ㅅㅅㅎ’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고, 이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초성이 놓이는 위치를 고정하고 글자 테두리를 따라 종이에 구멍도 뚫어봤어요. 초성은 그대로 두고 중성과 종성이 다른 단어들로 바꾸는 아이디어도 그때 생각했고요.

 

텍스트를 충분히 채우지 않는다는 건 때로 독자들에게 불친절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잖아요. 그 선택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간결하고 직관적이고 리드미컬하다는 매력이 있잖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좋은 책들도 많지만 저는 이번 책에서 그 매력을 살리고 싶었어요. 음절도 동일하게 세 글자고 어감도 비슷하니까 노랫말처럼 리듬감 있게 끊어가면 좋을 것 같았어요. 통일감과 반복 안에서 조금씩 바뀌는 요소를 발견하는 데 재미 포인트를 둔 거죠. 그러다 보니 텍스트가 길어지면 흐름을 깰 수가 있겠더라고요. 텍스트는 최대한 동시처럼 축약하고 나머지는 그림으로 설명되도록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어요.

 

‘ㅅㅅㅎ’이 들어가는 단어를 마구잡이로 넣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넣는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적재적소에 들어간 단어들은 어떻게 선택했나요?

처음 원고를 쓸 때 “갑자기 다 너무 시시해졌어.”라는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아이가 모든 게 시시해진 이유는 마음이 자랐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다음 감정이 어떻게 변할지를 상상하고 따라갔죠. ‘ㅅㅅㅎ’을 핵심 초성으로 잡고 사전을 한번 찾아봤어요. 700여 개의 단어가 나왔는데, 그중에서 아이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면서도 재미있는 단어들을 추려서 흐름에 맞춰 원고를 완성해 나갔어요.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많은 시도 끝에 가장 설득력 있는 걸로 결정하게 됐죠.

어떤 부분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거예요?

아이들 마음이 정말 쉽게 돌아와요. 엄마랑 갈등이 있다가도 잠깐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책에 보면 아이가 상상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오잖아요. 어린이들은 상상 속에서 감정을 해소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서 적용해 봤어요.

 

사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자기감정을 모르거나 대충 뭉뚱그려버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마음에 뭔가 계속 쌓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책 속의 아이가 순간의 감정을 세분화하고 들여다보는 게 자기 기분을 잘 보살피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랐나요?

이야기를 만들 때 주제를 먼저 정하지는 않아요. 명확한 의도를 갖고 책을 만들었을 때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만들다 보면, 또 만들고 나면 그 안에서 뭔가가 보여요. 이 책도 처음에는 의도가 있지는 않았지만 다 만들고 났더니 이걸 가지고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그런 피드백도 받았고요. 전에 《공감사전》이라는 책 집필에 참여하면서 감정 카드를 만든 적이 있었는데요. 감정에 관한 단어 하나로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는 걸 느꼈어요. 이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들끼리도, 어린이와 어른도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만들면서 잘 안 풀리던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렵기도 했지만 전화위복이 된 부분이 바로 ‘궁금해’ 장면이에요. 계속 초성이 ‘ㅅㅅㅎ’인 단어만 찾다 보니 뻔한 결말로 흘러가더라고요. “아, 이건 안 될 원고인가 보다.” 생각하고 접으려고 하다가 문득 시각적으로 자음 방향을 돌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ㅅ’을 ‘사람 인’ 자처럼 쓰기도 하지만 삿갓 모양으로 쓰기도 하잖아요. 방향을 돌리면 ‘ㄱ’도 되고 ‘ㄴ’도 됐어요. 같은 장면에서 공중에 떠 있는 아이 방도 돌아가게 그리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책에 “뭔지 모를 땐 한번 돌려 볼까?”라고 썼는데, 그게 저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한 거죠. 그 순간이 정말 고마운 순간이에요.

 

순간의 아이디어가 내용을 완전히 확장했네요. 그림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처음엔 주인공의 표정과 동작 위주로 보았는데, 몇 번 다시 보다 보니 가족들과 장난감, 배경의 디테일들이 보이더라고요. 아이가 상상 속 우주로 갔을 때 가족들과 비슷한 모습의 외계인이 있다거나 첫 페이지에 나온 장난감들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그림책 안에 숨어 있는 요소를 찾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어린이들도 생각보다 눈썰미가 좋아서 작가들이 그런 디테일들을 숨겨 놔도 다 찾아내고 거기서 또 이야기를 만들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글에는 없는 다양한 요소들이 더 들어간 것 같아요. 아이는 아기 때 좋아하던 물건들이 어느 순간 시시해졌을 거예요. 이런 물건들은 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특별해져요. 아이는 슈퍼맨이 되고 기차 장난감은 롤러코스터가 되는 거죠. 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은 외계인으로 등장해요. 상상 속에서 장난도 치고 놀기도 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녹아내리죠. 잘 찾아보면 공책 외계인도 있고 연필 외계인도 있어요. 주인공이 공부를 안 좋아할 수도 있으니까 그려 넣었는데, 그걸 찾아낸 독자는 아직 못 만나봤네요(웃음).

지금의 그림 스타일에는 판화 질감이 많이 나는데, 초창기 그림책인 《사막의 아이 닌네》의 그림체는 전혀 달라요. 줄거리도,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그림도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출간된 책 같았어요.

맞아요. 제가 대학교 때 1년 동안 터키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곳의 문화와 풍광이 무척 인상 깊어서 꼭 그런 분위기의 책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집시와 낙타와 사막 세 가지 키워드를 잡고 만든 책이에요. 이슬람 문화권의 느낌을 내고 싶어서 동양화 물감을 사용했어요. 제가 쓴 책들을 모아 두면 다 다른 작가의 작품 같기도 한데, 이야기에 맞게 그림을 그려서 그런 것 같아요.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닌네 이야기는 구전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옛 이야기를 좋아해요?

옛 이야기도 그렇지만, 저는 이야기라는 속성 자체를 좋아해요. 이야기가 가진 힘이 분명히 있다고 믿고요. 저희 아이들만 봐도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책도 좋아하지만 서사가 있는 책을 보면서 재미있어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거든요. 저 역시 그런 이야기를 접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겪을 수 없는 시공간에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그런 세계를 창조해 보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어요.

 

《이상한 꾀임에 빠진 앨리스》는 옛 이야기와는 다르게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사람이 아니라 여자 화장실 표지판인 ‘앨리스’가 토끼 모양 화살표를 따라가잖아요.

언젠가 아이들이랑 체험 공간에 갔는데, 벽면의 화살표 모양이 ‘→’에서 오른쪽 아래 사선이 지워져 있었고, ‘토끼를 따라가시오’라고 쓰여 있었어요. 토끼를 따라가는 건 앨리스가 대표적이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작업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그 작품에서는 앨리스가 몇 단계의 게임을 하면서 모순된 규칙을 어떻게 타개하는지 보여주잖아요. 이 책 역시 처음부터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저도 같이 따라가면서 주제가 생겼어요. 결론적으로는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이때부터 그림체도 본격적으로 판화 질감으로 바뀌어요. 그동안 어떤 변화를 겪었나요?

다른 건 아니고 컴퓨터에 익숙해진 거죠(웃음). 처음 그림책 시작할 땐 실크 스크린을 하나하나 다 찍어서 더미를 만들었는데 시간도 품도 정말 많이 팔렸어요. 《사막의 아이 닌네》는 다른 기법이었지만 못지않게 오래 작업했고요. 언젠가 한번 아기용 보드북 작업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때 컴퓨터가 손에 많이 익었어요. 그 뒤로 수작업과 디지털 작업을 적절히 섞어서 하는 합의점을 찾았어요. 그 사이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사실 두 아이가 태어난 거예요. 

 

육아를 하면서 공백이 생긴 거예요?

그런 것도 있지만, 그때 그림책이 너무 고되고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워낙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방향을 찾고 싶어서 동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공부도 하고 실제로 쓰기도 하면서 1~2년을 보냈어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편 동화를 쓰고 싶었는데 역시 쉽지 않더라고요. 제 영역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그림책이 눈에 밟힌 걸까요?

음…. 그런 것 같아요. 구상부터 작업, 출간까지 순조롭게만 이어지면 좋겠지만 이 일은 원하는 결과물이 빨리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출간 때마다 기대한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실망도 좌절도 많이 했어요.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그냥, 큰 사랑을 못 받더라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그때마다 제가 이 일을 너무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 거죠. 그러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요즘도 좋은 일이 종종 생기고 있어요?

《내 마음 ㅅㅅㅎ》으로 상 받은 것도 그렇고, 얼마 전 출간한《작은 못 달님》도 좋은 일 중에 하나예요. 마음이 많이 침체되어 있던 시기에 그 책으로 나미콩쿠르에서 상을 받았거든요. 학창 시절에 배운 고려가요 중에서 ‘얄리 얄리 얄라셩’이라는 구절을 언젠가는 꼭 써보고 싶었어요. 어감이 너무 예쁜 거예요. 피리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8년 전쯤부터 묵혀둔 아이디어를 책으로 완성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죠. 고려가요 하니까 고려청자가 연상됐고 그러면 아예 고려 콘셉트로 가보자 해서 하나하나 구성을 잡아갔어요. 그 시대의 풍경을 살리려고 노력했고 색도 옥빛을 메인으로 사용했죠. 작업하는 동안 참 즐겁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통해서 계속 창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돼요. 생각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이 일을 계속하느냐 안 하느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판단잖아요. 질문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답을 찾게 돼요. 저는 ‘계속한다’라는 답을 찾은 것 같아요.

 

그 답 덕에 좋은 책들을 계속 볼 수 있게 되었네요. 작가님은 그림책에 자기 모습을 투영하기도 하나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요. 제 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주인공들이 어디엔가 다녀왔다가 성장하는 내용이에요. 왜인지 모르게 끊임없이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돼요. 이런 포맷을 반복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 명의 작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거든요. 어릴 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식물이 해를 바라보며 자라듯이 내면과 외면 모두 쑥쑥 양지 쪽으로 자라고 싶었죠. 계속 자라고 싶다는 마음이 저에게는 정말 큰 삶의 동기예요. 반대로 말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이야기겠지만요(웃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네요. 주인공들 모두 어디를 다녀와요. 작가님에게 성장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어린이들에게 성장은 무엇이기를 바라요?

음… 이건 사실 스포일러라서 어린이들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웃음). 제가 《내 마음 ㅅㅅㅎ》으로 어린이 독자를 만나게 될 때 책에는 없지만 꼭 보여주는 게 있어요. 외계인엄마가 주인공한테 ‘ㄴ ㅁㄷ ㅁㅇㅇ ㅅㅈㅎ’이라는 말을 해주는 장면이에요. 초성만 보고 어떤 의미인지 어린이들에게 맞혀 보라고 하죠.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웃음).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 안에서 긍정적인 감정도 많지만 부정적인 감정도 있잖아요. 저는 그걸 부정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맛있는 요리를 만들 때 다양한 재료를 넣듯이 튼튼한 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다양한 맛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슬프고 화나고 소소하고 소심하고 심심한 모든 마음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좋은 재료가 되는 거라고요. 성장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딛고 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그 메시지를 꼭 전해주고 싶어요.

 

어린이들에게 또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가끔 기회가 되면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하는데, 어린이들한테는 특별히 뭘 가르쳐주지 않아도 너무 거침없이 자기 걸 만들어요. 짧은 수업이지만 결과도 나쁘지 않더라고요. 그림책은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걸 많이 느껴요. 저도 독자에서 작가로 성장했고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듯이 어린이들도 열린 마음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열과 성을 다해 만드는 모든 작가들의 그림책을 즐겁게 보고, 또 그림책을 통해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길 바라요. 어린이 친구들, 친구들은 독자이자 작가입니다!

스텝 바이 스텝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엄마 일을 하는 사람이고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해나갈 수 있도록요. 자기 마음의 주체가 되는 일에 제 모습이 도움이 됐으면 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1, 2학년이에요. 엄마가 그림책 작가라는 거 알고 있어요?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알고는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무슨 일하시냐고 물어보면 화가나 책 만드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한 번은 첫째 민하가 학교에서 써온 학습지에 엄마의 속마음을 적어보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렇게 써 있더라고요. “빨리 책 만들어야 하는데.” (웃음) 아이들이 엄마 바쁜 거 알아주고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

 

집에 작업 방이 있는데 보통 작업은 언제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특히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을 텐데요.

아이들이 밖에 오래 나가 있어요. 학교 갔다가 돌봄 교실에 가고,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 갔다 오거나 친구들이랑 놀다 오면 여섯 시쯤 들어와요. 그래서 아이들이 없는 낮 시간을 작업 시간으로 확보해 두죠. 가끔씩 마감이 겹치거나 바쁜 시기에는 남편에게 맡기고 밤이나 주말에도 일하고요. 다행히 아이들이 저보다 아빠를 더 좋아해요. 작업실이 집에 있으니까 수시로 들어가서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재택근무를 생활화하고 계시네요. 출근 루틴이 있어요?

저도 몰랐는데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제가 습관을 잘 들이는 편인가 봐요(웃음). 아침에는 여섯 시 정도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고 운동을 꼭 해요. 공원을 한 바퀴 돌거나 집에서 ‘홈트’를 하죠. 아이들이 여덟 시 이십 분쯤 학교에 가니까 그전에 아이들 깨워서 밥 먹이고, 학교에 보내요. 그때부터 아이들 올 때까지는 내내 일을 하고요. 요즘엔 밤에 아이들 재우고 남편이랑 같이 산책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제가 남편보다 체력이 좋아서 남편이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너그럽게 봐주고 그래요.

 

집에서 작업하다 보면 쉼과 일을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쉬는 시간은 어떻게 마련하고, 보내세요?

2년 전쯤 강원도에서 차박을 딱 한 번 해봤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바다 한가운데서 일출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근처에서 놀다가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 먹고 노는 경험이 너무 좋더라고요. 완전 반해버렸죠. 그때부터 저한테 캠핑이 쉼이 됐어요. 너무 춥거나 덥지 않으면 2주에 한 번씩은 캠핑을 떠났어요. 숙소 잡고 놀러 다니면 계속 관광을 하게 되는데, 캠핑은 그 자리에 2박 3일 동안 가만히 있어도 너무 좋아요. 아이들도 책 챙겨 가서 읽거나 자연 속에서 게임하면서 놀아요. 남편은 힘들다고 하지만 제가 끌고 다녀요(웃음).

 

산책부터 캠핑까지 남편 분이 계속 끌려 다니시네요(웃음).《내 마음 ㅅㅅㅎ》을 구상할 때 아이들이 서너 살이었으니까 많이 컸어요. 민하와 주하는 어떤 아이들이에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땐 첫째 민하가 내향적이고 예민한 편이었는데 많이 바뀌었어요. 친구들 좋아하고 성격도 많이 무던해졌죠. 둘째 주하는 좀더 감정적이고 감성적이고, 생각이나 말하는 게 톡톡 튀어요. 지켜보는 부모한테는 아이들의 변화가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서로 대화가 통하게 됐다는 게 크게 달라진 점일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육아를 잘하지도 못하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주는 편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 어릴 땐 같이 화도 내고 속상해하는 일이 많았는데, 다 지나가더라고요.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자기 생각도 있고 대화도 통해서 키우기도 훨씬 수월해요. 가족들끼리도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때가 있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요즘 우리 애가 이런 애였구나, 하는 걸 많이 느껴요. 그러는 와중에 어린이다운 상상력은 그대로예요.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들에서 아이디어가 노다지처럼 터져 나와서 노트에 그때그때 받아 적고 있어요(웃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아이 낳기 전에는 ‘어린이는 이런 거겠지’ 짐작하고 어른으로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아이 눈높이에서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됐어요. 《내 마음 ㅅㅅㅎ》처럼 단순한 말장난 같은 책도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죠.

 

아이들 기분이 《내 마음 ㅅㅅㅎ》처럼 푹 가라앉아 있을 때는 어떻게 해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하나씩 슬쩍 물어보죠. 아이들은 이제 비밀도 생기고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고도 하고 그냥 괜찮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럴 때는 제 걱정을 드러내는 게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기다려줘요. 부정적인 감정 말고도 다른 감정에 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려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주하가 가져온 학습지에 발표하고 난 기분이 어땠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답을 “떨려요.”라고 써두었더라고요. 떨리는 게 뭔 줄 아냐고 물어보니 ‘부끄러운 마음’ 정도로 알고 있어서 이야기를 덧붙여 줬어요. ‘부끄럽기도 하고 잘하고 싶은데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드는 마음이 떨림이라고요. 

 

아이들이 그림책은 좋아하나요?

어릴 땐 제가 옆에서 같이 읽어줬는데 요즘은 도서관 가면 아이들이 다 만화책 보고 있네요(웃음). 그림 자체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 방 베란다에도 그림책이 잔뜩 꽂혀 있는데 옛날 전집도 많아요. 민하가 요즘 그걸 잘 읽더라고요. 요새는 도서관 가서 온 가족이 다 빌리면 30권 정도는 빌릴 수 있어서 마음껏 고르게 두는 편이에요. 그중에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도 별로 안 좋아하는 책도 있지만 일부러 아이들을 제가 보내고 싶은 물가로 유인하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책 내용이나 그림에 차별을 두지 않더라고요.

 

차별을 두지 않는 건 어린이 고유의 특성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엄마 일을 하는 사람이고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해나갈 수 있도록요. 자기 마음의 주체가 되는 일에 제 모습이 도움이 됐으면 해요. 저는 앞으로도 아마 그림책을 쭉 만들 거예요. 아이들도 마음과 몸이 건강하면 좋겠어요. 전에는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바라는 게 아주 컸던 때도 있었지만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너무 잘 알아요. 그냥 스텝 바이 스텝으로 꾸준히 해나가는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러다 뭘 만날지 모르는 일이고, 그 길을 스스로 찾아가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묻고 작가님이 답한 이야기

김시온 6세

Q.작가님은 핑크색을 좋아하세요?

네. 핑크색을 좋아하는데 다른 색보다 더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다양한 색깔을 좋아해요. 예전엔 핑크색이 쓰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잘 못 썼는데 요즘엔 너무 예뻐서 즐겨쓰고 있어요.

Q.토끼인형이름을 ㅅㅅㅎ으로 지어주세요!?

숑숑히 어때요? 저의 예전 강아지 이름이에요. 보송보송한 토끼의 털이랑 어울릴 것 같은데 마음에 들면 써주세요.

Q.작가님마음은 어떤 ㅅㅅㅎ이에요?

‘순수해’예요. 시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니 저도 순수해지는 것 같아요.

Q.작가님이 좋아하는 한글은 뭐애요?

‘ㅇ’을 좋아해요. 동그라미가 예쁘고 예쁜 소리가 나요. 얼굴 만들기도 좋은 자음이에요.

Q.작가님으 눈썹도 ㅅ닮았나요?

네. 조금 닮았어요. 가만히 놔두면 ㅅ으로 자랄 것 같아요.

[인쇄물(본문)은 김시온어린이가 직접 적은 글자와 답변은 칠곡할매글꼴을 사용하여 디자인 되었습니다]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