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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바르셀로나
생각의 바르셀로나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바르셀로나를 생각하다 보면 상반된 두 가지가 떠오른다. 유명한 가우디의 건축물이나 피카소와 달리가 거닐던 길처럼 누구나 알만한 것들, 그리고 스페인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 이 두 가지는 신기하게도 함께 어우러진다. 그리고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엮일 수 있게 만든 이곳 사람들과 도시를 여행하는 낯선 사람들 역시 서로 겹쳐진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들은 바르셀로나가 주제도 아니고 내가 주제도 아니다. 유명한 건축물도, 여행자도 물론 아니다.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그리고 너무도 특별한 하루에 관한 이야기다.
스페인 사람들은 언제나 즐거워 보였다. 소설은 안 읽을 것 같지만.
온다 리쿠의 『구석진 곳의 풍경』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지금 나는 이 두 문장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열 명만 모여도 백 명의 소리가 나는 사람들과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실의 중간쯤. 여행자도, 현지인도 아닌 나는 이 구절이 전하려는 부분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는 직접 뛰어들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언제나 삶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언제나 즐거워 보인다는 건 어쩌면 내가 그들과 융합되지 못 하는 ‘관찰자’ 정도로 지내기 때문에 가지는 생각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애매한 지점에서 관찰하는 동안에도 스페인 사람들은 여전히 즐거워 보인다. 문득 소설을 읽어도, 읽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쨌든 앞으로도 소설은 잘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연평균 기온은 17도에서 25도 정도, 연말 겨울 날씨는 10도쯤에서 맴돈다. 추위와 더위 걱정을 딱히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나는 종종 ‘날씨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들 그리고 문학가들은 왠지 유럽의 추운 지방에 더 많았던 것 같고, 적당히 추운 지방에서는 집안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 독서든 악기 연주든 자연스레 실내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이 나오기도 했다.
항상 따뜻한 기온의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바깥의 생활을 즐기는 것과는 반대로. 이곳의 집 대부분은 여름기온에 알맞게 지어져 있다. 그 때문인지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꼭 닫히지 않는 느낌이다. 사람들은 소파 대신 바닷가에서 앉아있거나 카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가끔은 소설도 음악도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이는 내가 은행과 우체국에서 (이들의 즐거운 커피 시간 때문에) 자주 줄을 서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도 덕분에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고 있으니 크게 불만은 없다.
여행을 다녀오면 사람들은 자신이 본 걸 이야기하느라 무척 바쁘다. 생에 처음으로 봤던 광경이었다며 흥분한 모습을 보면 원시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소설을 읽는다, 영화를 본다, 그런 개념보다는 자기 삶을 기록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개념, 게다가 함께 모여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되감아 보는 듯하다. 물론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산다고 해도 새로운 사건만 있을 리는 없다. 잘 기억해 보면 대부분의 여행도, 우리의 삶도 그저 순간의 마주침으로 담담하게, 일어날 듯 말 듯한 이야기들로 얽혀있는 것이다. 관찰하며 하루를 보내다가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 이야기를 담아낼 곳이 있는 사람, 때로는 여행자 때로는 현지인으로 지내고 있는 지금 나는 꽤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언어와 의식주를 이해하면 정말 많은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언어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든다는 걸 알게 됐다. 하나의 단어를 인식하고, 기억한 후에 사용하게 되는 순간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의식주에 관해서는 남다르게 기억하는 것 같다. 이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 직접 경험하거나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한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역(스페인 북동부의 자치지방, 바르셀로나, 헤로나, 레리다, 타라고나 4개 주州를 포함한다)에 속해 있어서 스페인어 외에도 카탈루냐어를 사용한다. 또한 같은 언어라고 해도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전라도와 경상도처럼 억양이나 김치 맛이 다른 것에 해당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연말에 먹는 음식도 물론 조금씩 다르다.
크리스마스에 카탈루냐에서만 특별히 먹는 수프 ‘에스크데 아 데 나달Escudella de Nadal’은 고기와 채소를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달팽이 또는 조개 모양의 파스타를 넣은 수프다. 14세기 때부터 먹었던 요리로, 평소에도 이 수프를 먹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히 3배나 더 큰 모양으로 먹는다. “364일을 보통 모양으로 먹을 수 있으니까 하루 정도는 큰 모양의 파스타를 먹어야 해요.”그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어느 날 나와 몇몇 사람들은 연말 술자리에 앉아서 각자 모국의 명절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음력인 구정에 떡국을 먹고 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그리고 12월 31일이면 큰 종을 울린다.” 내가 말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행운의 열두 포도Las doce uvas de la suerte라는 게 있다는 얘길 들었다.
12월 31일 12시에 12개의 포도알을 먹는 전통이라고. 대충 1900년대부터 시작된 전통이라고 들었는데 왠지 의심스러워서 나중에 검색해보니, 1909년에 포도의 수확량이 너무 많아져 만든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어 멕시코나 라틴 아메리카에도 이 풍습이 전달되었다고 한다.바로 그날, 아이슬란드 국민 60% 이상이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는 설문조사 내용을 읽었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에 건설하려는 외곽 고속도로의 공사를 중단하라는 환경단체 소송 이유 중 하나가 ‘요정들이 사는 곳을 훼손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이렇게 모국의 음식과 풍습에 관한 이야기를 섞어서 듣다 보니 나는 문득 ‘김치를 정말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어깨너머로 본 게 있으니 얼추 비슷하게 김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맛을 내거나 누군가에게 방법을 가르쳐 줄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누린 좋은 것들을 다음 세대에게 잘 전해줄 수 있을까. 김치는 그렇다 치고 간장과 된장은 어쩌지, 하는 걱정이 더 들었다. 물론 스페인 젊은이들이라고 모두 소시지와 치즈를 만들거나 파스타를 뽑아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에 얽혀있는 사연들을 술자리에서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에 나는 덜컥 겁이 난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을 찾아가 온갖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장 담그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걱정을 슬쩍 이야기했는데 “밥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그냥 일단 먹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내가 사는 곳과 친구의 집 사이에는 우리가 자주 들리는 작은 바가 있다. 갖가지 엠파나다(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나 채소를 넣고 구운 아르헨티나의 전통요리)를 팔고 술값이 비싸지 않으며, 둥근 테이블이 4개 정도 있는 그야말로 작은 술집이다. 그날도 역시 친구와 나는 ‘그곳’에 안착했다.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에 자리한 바에 있으면 물론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많긴 하지만, 전 세계의 여행자가 찾는 도시인만큼 정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와인을 두 잔 주문하고 앉아있다가 미국 보스턴 지역의 경찰이었던 한 아저씨와 이곳에서 영어 강사를 하는 그의 아들을 만나 ‘합석’을 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은근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게으른 편이다.
어쩌면 여행 서적을 잘 읽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인데, 당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라도 더 귀를 기울이자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그런 내가 끝내 알게 되는 새로운 사람들과 직접 사서 읽게 되는 몇몇 여행 서적에는 따로 경배를 한다.
함께 있던 오스트리아Austria 친구는 나와 반대로 웬만해선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길가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간단히 대답하고 몇 분 뒤엔 함께 커피나 술을 마시고야 마는 친구다. 혼자서 히치하이크와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여행하고자 하는 곳에 사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 숙박 및 가이드를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으로 남미를 3개월 여행했으며, 열일곱이 되던 해에는 혼자 캐나다 유콘Yukon지역에서 1년을 보낸 묘령의 아가씨다. 어딜 가든 유콘의 ‘화이트 호스White Horse’라는 말을 꺼내면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도대체 화이트 호스 지역은 어떤 곳인 걸까.
어쨌든 이 미국 부자父子는 대화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미국 경찰이었 던 아저씨는 한국의 시골에서 만날 법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몇 마디 나눈 후에 그가 우리에게 처음으로 했던 질문은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것이었고 바로 다음 질문은 ‘아버지는 뭐 하시노’ 였다. 그 이후에는 ‘남자친구는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여자애들이 이렇게 밖에 나와서 있는데 아버지는 걱정 안 하시냐’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그런 질문에서 파생된 또 다른 질문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좋든 싫든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려면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질문을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부자의 테이블 바로 옆에는 한두 살 즈음으로 보이는, 입 주변이 까만 갈색 사냥개 한 마리가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에겐 조금 겁을 줄 만한 생김새지만 눈을 보면 아직 어리고 순한 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림을 받았던 개여서, 겁이 굉장히 많아요. 심지어 고양이도 무서워하죠. 그런데 사실은 굉장히 용감해요. 이름도 ‘시수Sisu’라고 지은걸요.” 시수는 핀란드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운 표현이라고 한다. 의지, 결단력, 끈기 그리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용기를 의미한다고. 시수의 주인은 그해 여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종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 뒤에 몬주익Montjuic 산에 가서 공놀이를 하는데 그날은 시수가 산에서 4센티미터나 되는 유리조각을 밟아 발바닥이 찢어진 상태였다. 주인은 옷으로 시수의 발을 묶어 피를 멈추게 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시수를 업고 내려오다가 잠시 두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그러다 에스파냐 광장의 행사로 배치되었던 경찰들과 마주친 것이다.
그 순간 경찰은 피로 옷이 얼룩진 시수의 주인에게 엎드리라며 소리를 질렀고. 시수의 주인은 바닥에 엎드려 당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그때 시수가 산 쪽에서 어렵게 몸을 끌고 내려왔다. 주인 옆에 누웠고 그의 손을 핥았다. 경찰들은 서로 개를 차에 태우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께 얘기를 듣던 전직 경찰 아저씨는 그 상황이라면 자신도 쉽게 차에 태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매번 이런 상황에 놓여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자주 멈추게 된다. 다행히도 시수는 그날 동물병원으로 옮겨졌고, 용감하게 치료받았다. 그리고 나는 시수를 못 만날 뻔했다가 이렇게 작은 바에서 만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에서 같이 지내는 식구가 내게 물었다. “1월 1일에는 몬주익 뒷산에 세 가족 정도 같이 오를 계획인데 함께 갈래요? 새해 아침에 아이들이 나무에 오르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나무 위에 아이들이 붉은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낮잠인지 축제인지 모른 채 어른들은 바닥에 누워있고 아이들은 그렇게 자연에 파묻히는 상상.
도시 중심을 기준으로 30분 정도면 산에 갈 수 있고 반대쪽인 바다에도 갈 수 있다. 어디로 향하든 중간중간 정원들이 숨어 있다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은 계획에 없던 잔치를 자주 벌이는 것 같다. 둘이든 셋이든 밖에 모여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물론 계획을 하고 풍선도 달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 어울리는 모습도 자주 목격한다. 그 사이를 거닐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아이들이 나무를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나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거나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워있다. 부모들은 아이의 발을 받쳐주며 나무에 매달리거나 앉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누가 나무타기를 가르쳐주고 누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사과를 먹는 즐거움을 일러줬을까. 이건 전통도 풍습도 특별한 가르침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곳에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티브이가 없는 집이 많다는 것이 더 기괴한 일이다. 축구에 관해 무지한 나는 바르샤(바르셀로나 축구팀을 줄인 말)가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지만, 중요 경기가 있는 날이면 FC바르셀로나의 홈경기장인 캄누Camp Nou로 향하는 전철과 거의 모든 술집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찬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축구를 함께 즐기는 공기가 느껴진다. ‘소설을 읽지 않으니 집에서 텔레비전이라도 많이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 예상은 빗나갔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늘 바에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지.’라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다. 이곳에서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소설을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것처럼 말이다. 그저 돈이 들지 않는 귀여운 행동들에 엄지를 들게 된다. 나는 명철한 것보다 멍청한 쪽으로 귀를 기울여서 이곳에 더 오래 머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서적에서 스페인을 소개할 때면 시에스타Siesta(낮잠) 그리고 피에스타Fiesta(잔치)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된다. 책에도 자주 나오니 이들에게도 이 단어들은 특별한 것이겠지, 싶지만 사실 대화를 살펴보면 특별한 낮잠이 아니라 일상에 잠깐 짬을 내 자는 새우잠, ‘주말에 뭐 하고 놀지.’ 정도의 사소한 개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에스타도 피에스타도 여전히 내게 특별하게 들린다. 그 단어 안에서 하루가 특별해진다. 사소하고 익숙한 단어 때문에 온 도시의 바닥이 함께 숨을 쉬고 깨어나 춤춘다.
에디터·포토그래퍼 권혜민
일러스트레이터 곽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