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ttle Precious Happiness In Socks

삭스타즈 대표 성태민

자신을 잘 가꾸는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그들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 잘 보이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는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 다리를 꼴 때 바짓단 아래로 보이는 아주 근사한 양말처럼. 온전히 자신을 위해 치장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낼 줄도 안다. 삭스타즈의 성태민 대표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INTERVIEW

성태민 | 삭스타즈 대표

국내 최초 온라인 양말 편집숍 ‘삭스타즈’를 론칭하신 지 올해로 딱 10년 차가 되었다고요. 사업을 시작한 첫날을 기억하나요?

그때 스물여섯 살이었어요. 저는 부산이 고향인데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를 했죠. 2011년 1월 1일에 ‘오늘부터 여기는 나의 회사이자 집이다.’라면서 사무실도 없이 거기서 시작했어요.

 

양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어요. 가볍잖아요. 옷이나 구두에 비해 깊은 지식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요. 그 당시 흐름상 GDP도 점점 오르고 패션 수준도 올라가는 와중이니까 액세서리나 피혁 쪽으로 관심이 몰리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자본도 많이 필요 없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하면 할수록 쉽지 않았죠. 후회한 적도 많아요.

 

처음엔 온라인 숍으로 오픈하신 거죠?

맞아요. 지금이야 비슷한 형태의 숍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고, 텐바이텐이나 29CM 등에서 양말을 많이 다루지만, 그때만 해도 온라인몰 양말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양말이 많이 없었어요. 시장 양말이 대부분이고 패션 양말이라는 단어 자체도 거의 안 썼죠. 패션 양말은 해외 브랜드가 많았는데 당시에는 제가 수입 업무를 잘 몰라서 무역 에이전시 분들하고 일을 많이 했어요. 

 

삭스타즈는 이제 ‘양말’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숍 중 하나예요. 무슨 무슨 덕후가 워낙 많은 요즘이지만, 오직 한 가지아이템으로 이렇게 마니아층을 형성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처음엔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다, 잘되겠다’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잘되지는 않았어요.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게 너무 적었어요. 주변에서도 다 잘 안될 거라고 하고 에이전시 분들도 양말만 파는 걸로는 힘들 거라고 하셨죠. 원래 편집숍 비즈니스라는 게 자본을 많이 갖고 시작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저희는 워낙 소자본이다 보니 두세 달만 매출이 떨어져도 회사가 폐업 직전까지 갔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제가 뭔가 많은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그 힘든 시기를 버텨낸 덕분인 것 같아요. 1000원짜리, 900원짜리 양말들을 팔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거, 하던 걸 계속했던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찌됐건 저희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계셨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저희 고객분들은 삭스타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다른 숍으로 갈아타시는 분들이 적은 것 같아요.

 

마니아층이 유지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한국에 생각보다 양말 브랜드가 별로 없어요. 그걸 모아놓은 곳은 더 없고요. 국내 브랜드는 몇 군데를 제외하면 시장 양말이 훨씬 많고 해외를 뒤져봐도 양말로 브랜딩을 잘하는 데가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 덕후가 열심히 좋은 걸 골라 한곳에 모아놓았다는 게 강점 같아요. 사이트 접속자 국가를 보면 실제로 해외 손님들도 많이 들어오세요. 아직 글로벌 판매를 하지 않는데도 서핑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편집의 힘 같아요.

 

양말을 구매하는 분들에게 때에 따라 다른 향종이를 배송하는 향기배송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잖아요. 그런 세심함도 고객들에게 크게 다가올 것 같아요.

예전에 했던 자수 서비스도 그렇고 향기배송 서비스도 그렇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건 아니에요. 기존에 있던 방식이지만 양말에 적용하면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고객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업자가 아니라 양말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뭐 저렇게까지 해?” 하고 생각할 정도로요.

 

대표님이 믿는 양말의 힘은 무엇인가요?

양말에 신경쓰는 건 사실 되게 사치스러운 일이잖아요. 옷 챙겨 입기도 바쁜 세상에….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처음 저희 가게 오시는 분들은 가격 보고 ‘힉!’ 하고 질겁하고 나가세요(웃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에요. 티셔츠 하나에 4~5만 원 하잖아요. 좋은 신발은 100만 원, 코트도 200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죠. 양말은 제일좋은 걸 사도 2~3만 원이면 충분해요. 3만 원에 세계 최고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거죠. 또 옷이나 구두, 가방은 사실 보여주는 역할이 큰데, 비교적 덜 보이는 양말을 산다는 건 자존감이나 자기애와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단골손님들이 오시면 대화를 나누는데요. 몇 마디 나누어보면 다들 자존감이 높은 분들이 많아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보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분들이죠.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올리브유 하나를 사도 좋은 걸 사고, 옷은 다 합리적으로 구입하는데 양말은 고급 양말을 신는 분들. 남 눈을 크게 의식 안 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양말을 챙겨 신어요. 제 생각에 양말은 자기애의 척도 같아요.

삭스어필, 본 메종, 한셀프롬바젤 등 국내외 브랜드 셀렉과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감각적인 양말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 브랜드를 셀렉하고 협업을 진행하나요?

브랜드, 작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자기 브랜드를 전개하는 사람들 모두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같이 일하기가 힘들어요. 그 이야기라는 게 너무 대의적이면 그것도 좀 힘들어요(웃음). 개인적이고 소소한데 명확한 이야기가 있는 분들이 좋더라고요. 브랜드를 선택할 때는 양말이 얼마나 편한지를 주안점으로 봐요. 양말은 생필품이기도 하고 패션 소품이기도 하지만, 기본은 편안한 착용감이니까요. 예쁜 디자인에 집착한 나머지 신으면 되게 불편한 양말이 있어요. 그런 건 안 팔죠. 

또 하나는 양말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해요. 도매로 받아보면 어떤 브랜드는 양말을 박스에 쑤셔 넣어서 덜렁 보내고, 어떤 데는 차곡차곡 정성스럽게 보내주세요. 내 자식을 내보낸다는 느낌으로요. 그런 양말들은 저도 함부로 못 하게 돼요. 전자 같은 경우는 그다음 시즌부터는 바잉을 하지 않아요. 아무리 괜찮아도 양말을 그냥 돈벌이로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같이 일하기가 힘들어요.

 

기준이 확고하네요.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할 것 같아요. 브랜드 담당자나 협업 작가를 대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사업할 때 이 부분이 제일 어렵고 힘들다고들 하는데 저는 어렵지 않았어요. 만나는 작가나 브랜드 대표님들은 다 제가 팬인 분들이거든요. 저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잘됐으면 하는 사람하고만 일하기 때문에 태도를 일부러 조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구달 작가님, 웜그레이테일, 삭스어필, 오이뮤 모두 제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들이에요.

 

일단 팬심을 장착하고 가시는군요(웃음).

그렇죠. 원래 누가 자기를 좋아하면 괜히 나도 좋잖아요. 그분들도 그런 걸 느낀다고 생각해요.

 

의외의 답변이네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 게 아니라 제 사업이잖아요. 싫어하는 브랜드나 작가를 억지로 만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업상 불편한 사람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땐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짧게 끝내요.

 

PB 브랜드인 에첼, 삭스타즈에는 개인적인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되었을 것 같은데요. 브랜드 편집에 그치지 않고 자체 브랜드를 만든 이유가 있나요?

PB가 돈이 돼요. 그건 무시하기 어렵죠(웃음). 사실 돈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브랜드 여러 개를 다루다 보면 가끔 ‘이런 건 왜 안 만들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주로 만들어요. 저도 디자이너였으니까 해보고 싶은 디자인이 생길 때도 있고요. 사실 에첼이나 삭스타즈를 하나의 브랜드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요. 브랜드를 하시는 분들은 정말 열심히, 잘하시거든요. 웜그레이테일 같은 경우도 단순해 보여도 점 하나 찍는 데도 엄청 신중하게 작업하세요. 시기는 미정이지만 좀더 독립적인 브랜드 비즈니스를 할 계획은 있어요.

 

양말을 디자인할 때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영감은 저한테는 너무 거창한 말 같아요. 저 혼자 세무, 회계, 운영, 마케팅, 광고, 웹디자인, 웹코딩, 인사 등등을 맡고 있어요. 모두 몇 시간 정도만 공들이면 되는 일들이어서 전문 인력을 뽑기도 애매하거든요. 영감받고 이럴 시간이 없어요(웃음). 그냥 앉아서 뭐라도 그리면 적당한 게 나오고, 그것들 중에서 추리고 추리는 거예요. 진짜 안 풀리면 동네 한 바퀴 돌고 영화나 한 편 보고요.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면 과부하가 올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그랬지만 요즘은 그렇지는 않아요. 하루에 6~7시간 정도만 일하고 있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청담 쇼룸을 오픈하면서 《아무튼, 양말》의 저자 구달 작가님을 매니저로 채용하셨잖아요. 먼저 연락하신 건가요?

네. 제가 출판사에 연락했어요. 작가님 연락처를 받아서 얘기를 나누고, 일단 만났죠. 실례가 안 되면 세컨잡으로 쇼룸 매니저를 해보시면 어떻겠냐고 여쭤봤어요. 제가 오프라인 숍을 작년 4월에 오픈했는데 제일 고민하던 부분이 매니저였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숍 이미지와 맞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희 양말을 소비하시는 분들은 양말 가게에서 일할 만한 나이대나 직업군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쓰기도 뭣하고요. 근데 그 책을 보고 ‘이분이 있으면 숍을 차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명의 팬으로서도, 법인 삭스타즈로 봤을 때도 좋은 기회였어요. 제안을 드렸더니 다행히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어요. 글도 잘 쓰시지만 양말 장사도 엄청 잘 하세요.

 

무척 특이한 케이스인 것 같아요. 직원 한 명 한 명 뽑을 때도
명확한 목적과 이유가 있어 보이고요.

사람은 항상 신중하게 채용해요. 실제로 저희 회사 직원이 네 명이에요. 회사 규모에 비해서 좀 적은 숫자죠. 저는 능력 위주로 직원을 뽑지는 않아요.

 

그럼 어떤 기준으로 뽑나요?

뭔가 느낌이 탁 맞는 게 있어요. 자존감이 높고 자기 자신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야망 없는 완벽주의자 스타일 좋아해요(웃음). 유유자적하는 것 같은데 내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렇다고 너무 ‘오바’ 하면 좀 부담스러워요. 제가 원하는 가치관과 지점이 애매해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는데, 그게 어느 정도 맞으면 어떻게든 뽑아서 직무를 주려고 해요. 작은 회사여서 사람한테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거든요. 제가 큰 회사, 작은 회사에 다 있어 봤는데 업무가 아무리 괜찮아도 결국 사람이 안 맞으면 일을 못 하겠더라고요. 사람들끼리의 합이 중요한 것 같아요.

 

면접 질문으로 뭘 물어볼지 궁금해요.

‘캠핑과 호텔 중 어디에 가시겠어요?’, ‘제일 감동적이었던 영화, 음악은?’ ‘인생에서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지금 당장 20억이 생겨서 이틀 안에 다 써야 한다면 어디에 쓰시겠어요?’, ‘원하는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고 그 월급에 비례해서 일해야 한다면 얼마로 정하고 싶으신가요?’ 이런 거 물어봐요(웃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렵죠. 답이 없으니까요. 답변을 본다기보다 그 사람의 말하는 태도를 봐요. 저희 회사에 들어온 분들이 모두 똑같은 답을 선택한 건 아니에요. 캠핑이 좋을 수도, 호텔이 좋을 수도 있죠. 공통점은 말할 때 중심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무엇을 선택하든 이유가 있고, 제 눈을 똑바로 보고 자기 이야기를 납득시키면 합격을 시키죠.

 

지난 인터뷰 중 ‘이제는 스티브 잡스가 집에서 일하는 전업주부보다 위대한 존재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겠다. 뭘 하고 사는지보다 어떤 철학을 갖고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요즘은 어떤 철학을 갖고 살고 계세요?

예전엔 ‘너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어봤지 ‘너 커서 어떻게 살래?’라고 물어보는 어른들은 없었어요. 저 역시 ‘난 커서 뭐가 될래.’라고 생각했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꿈이 없으면 흠이 되는 시기가 있었잖아요. 큰 꿈이 있어야 되고, 열정을 갖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미쳐야 하고요. 한때는 그런 삶을 동경했는데 그렇게 살면 직업적으로 성공할지언정 놓치는 게 너무 많을 것 같았어요. 

살아보니 저는 열정보다는 고요하고 평온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더라고요. 꿈과 목표에 큰 의미를 두고 성취하는 것도 멋지지만 하루하루 작은 미션을 성공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사실 뭐가 맞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냥 본인한테 맞는 스타일이 있는 거겠죠. 한 점을 보고 달려가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소소한 미션이라면 어떤 거예요?

보통 4~5시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딸 시윤이가 아빠 아빠 하면서 뛰어나와요. 아내 얼굴 보고 오늘 아이랑 있던 일, 회사에서 있던 일을 서로 나누고 뉴스 보면서 이야기도 해요. 요리하는 걸 옛날부터 좋아해서 저녁은 제가 만들어요. 같이 밥 먹고 시윤이랑 춤추고 놀다 보면 이제 목욕하고 잘 시간이 돼요. 딸이 19개월인데, 앞으로 더 크면 씻겨줄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거의 매일같이 아내와 함께 씻겼어요. 아들 같으면 나중에 같이 목욕탕 가면 되니까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것 같은데, 딸을 케어해줄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3년이면 끝나겠더라고요. 아이 목욕하는 6시에서 8시 사이엔 무조건 집에 붙어 있으려고 해요.

너무 바빠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을 줄 알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시는군요.

일부러 의식하려고 해요. 그렇지 않으면 무뚝뚝한 아빠가 될 확률이 다분해서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서 그런지 삭스타즈가 투자를 크게 받아서 전국 지점을 내고 해외 수출을 몇 천만 달러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 같지는 않아요. 일에서 오는 행복은 딱 지금 정도에 만족해요.

 

제일 큰 행복을 가족 안에서 찾고 계신 것 같네요.

맞아요. 사람들이 회사를 혼자 운영하면서 시간을 어떻게 내냐고 하는데, 저는 그냥 가족들이랑 뭔가를 하는 사람이고 시간을 내서 돈을 벌어오는 거예요. 개념이 완전 달라요. 제 인생에서 CEO라는 역할은 결코 맨 위가 아니에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돈이나 직업적 성취, 일에 대한 야망이 가족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어요. 결국 우리 가족 먹여 살리려고 하는 일이니까요.

 

서울 생활을 접고 파주로 이사한 지 꽤 오래됐다고 알고 있어요. 그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나요?

너무 좋아요. 결혼하고 바로 갔으니까 이제 4년째네요. 파주는 밸류에 비해 집값이 정말 저렴한 편이에요. 결혼 전에 저와 아내 모두 서울 실정을 잘 몰랐어요. 저는 수에 바른 사람도 아니었고 버는 족족 양말에 투자를 해서 재테크도 전혀 몰랐거든요. 아내는 미국에서 살다 왔고요. 결혼하려고 보니까 우리 돈으로는 해도 안 들어오는 원룸 월세밖에 못 가는 거예요. 십몇 억 하는 아파트는 물론 좋겠지만 저는 집에 그만한 돈을 들일만 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와이프하고도 생각이 잘 맞아서 파주로 갈 수 있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상가 주택 맨 꼭대기 층인데, 복층 구조로 아래 위층에 테라스가 넓게 있어요. 거실에 티브이도 없어서 날 좋을 때는 밖에 나가서 의자 펴놓고 장작에 불 피워놓고 책 읽거나 유아 풀장 만들어서 아이랑 물놀이를 하기도 해요. 

 

아이한테도 좋은 환경이겠어요.

그렇죠. 앞에 나가면 다 들판이고 인도도 넓거든요. 건물 간격도 서울보다 훨씬 넓고, 스카이라인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하늘도 엄청 높게 보여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뭐든 다 살 수 있으니 불편한 것도 없고, 서울과 그리 멀지 않아서 아이 데리고 갈 만한 곳은 차 타고 나가면 되니까요. 미술관 옆에 산다고 꼭 미술관에 자주 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시윤이가 태어나고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을 것 같아요. 아빠가 되어보니 어떤가요?

아내랑 둘이 있을 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는데 확실히 아이가 생기니까 부모님과는 독립된 내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생겼어요.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모님의 행동들도 이제는 좀 이해가 되고요. 생활은 언제나 아이에게 맞춰져 있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영화 보러도 못 가고 여행도 못 가고…. 당장은 그런데 조금 더 크면 같이 뭔가를 할 수 있겠죠. 지금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몸으로 놀아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 부모님께서 좋은 곳 많이 데려가 주셨는데, 그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아빠 목마 탄 거랑 아빠 엄마 손 한쪽씩 잡고 손그네 탔던 것만 기억나요. 그게 너무 재미있었나 봐요. 시윤이가 더 크면 캠핑이나 낚시를 같이 가면 좋겠어요.

시윤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길 바라나요?

인성이나 적응력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교육 면에서 말하자면, 예전에는 암기나 사고가 중요했잖아요. 공부는 외우는 거니까요. 이제는 그런 것보다는 구조나 원리를 잘 파악하고 빨리 배울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한 가지 직업만 가지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직업이라는 개념이 점점 없어질 수도 있고요.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적응력을 키워주고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요. 

 

시윤이를 키우면서 아내분과 ‘이것만은 지키자’고 약속한 게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빠 없을 때 아빠 욕하고 엄마 없을 때 엄마 욕하지 말자.’ 경험상 그게 안 좋더라고요. 감정이 담긴 부모의 말은 뇌에 각인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하시면 엄마 아빠가 각각 저한테 하소연을 빙자한 험담을 하시곤 했는데(웃음),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제가 부모님을 바라볼 때 험담을 들었던 지점은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갖고 보게 되더라고요. 아빠나 엄마에 대해 항상 칭찬만 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 없을 때 험담은 하지 말자, 그것만 지키자고 그랬어요.

 

마지막으로, 만약 시윤이가 자라서 가업을 이어받고 싶다고
하면 뭐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잘 생각했다, 월급쟁이 별거 없다고요(웃음). 직장인이 적성에 맞을 수도 있지만 꼭 삭스타즈가 아니더라도 사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디자이너가 되도, 경영학과를 나와도 자기 일을 하는 게 좋죠. 궁극적으로 사업하는 건 무조건 찬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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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