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 As A Root Of Life

뿌리로서의 집
아티스트 이서재利敍齋

스물 일곱에 프랑스에 갔다가 마흔이 되어 돌아온 아티스트 이서재는 프랑스를 알고 나니 정작 나의 뿌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삶을 지탱할 뿌리로 그녀가 택한 것은 ‘집’이었다. 서촌에 터를 잡고, 삶과 집, 작품과 작가가 오롯이 하나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집에도 ‘이서재利敍齋’라 이름 붙인 그녀. 작가명과 집의 이름을 나란히 하는 이서재는 오늘도 이롭게 펼치는 데 여념이 없다.

집은 곧 우주

(문을 두드린다.) 실례하겠습니다.

이서재에 오신 걸 환영해요(웃음).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초인종이 안 보여서 한참 찾았어요.

아, 초인종을 따로 두진 않았어요. 소리가 집이랑 안 어울리고 초인종이 대문에 붙어 있는 것도 어색해서요. 여긴 기본적인 뼈대 말곤 따로 덧댄 게 없어서 방음이 잘 안 돼요. 그래서 살짝만 두드려도 ‘똑똑’ 소리가 아주 잘 들리죠. 택배기사가 오는 것도, 환경미화원이 집 앞을 지날 때도 소리만으로 알 수 있어요. 우선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여긴 평화다방이라 부르는 차실茶室인데요. 식사 때가 되어서 간단하게 먹을 걸 준비했으니 편히 앉아서 들어요.

 

주전자가 참 예쁘네요. 이건 무슨 차인가요?

무차예요. 괜찮죠? 몸이 찰 때 따뜻하게 해주는 차라서 밤에 마셔도 좋아요. 끓이는 법도 간단한데, 무 말린 걸 프라이팬에 덖어서 뜨거운 물에 넣기만 하면 금세 우러나요. 덖고 나면 무가 압축되면서 건조한 상태가 되거든요. 수분이 없으니까 오래 보관해도 되고, 맛도 구수해서 부담도 없어요. 최근에 깨달았는데 어떤 재료든 덖어서 우리면 좋은 차가 되는 것 같아요. 오래된 녹차도 프라이팬에 덖어서 마시면 풍미가 좋거든요. 같이 준비한 건 단호박죽인데, 많이 달진 않을 거예요.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어젯밤에 미리 만들어두었어요. 

 

식기도 근사하네요.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던 놋수저인데, 멋스럽죠? 선조들이 살아 온 방식이 우리 고유의 미감이 된 물건이지요.

 

프랑스에서 오래 지내신 걸로 아는데 한국에 돌아와선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현대미술 공부와 작가 생활을 하며 13년을 프랑스 파리에서 지냈어요. 유럽의 문화들을 이해하고 나니 정작 나의 뿌리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 돌아와 마음의 뿌리로서의 집을 짓고자 결심했어요. 지금은 수묵 그림으로 땅을 기록하는 지리지 작업을 하고, 우리 흙으로 그릇을 빚고, 우리 정신문화를 알아가기 위해 전통술을 빚으며 지내고 있어요. 우리 문화의 뿌리와 일상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누고 있죠.

 

뿌리라는 것에 대해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이서재에서 이야기하는 뿌리는 ‘선조들로부터 내려 받은 지혜의 삶’이에요. 우리 땅과 환경적 조건이 만든 삶의 양식과 정신적인 것을 말하죠.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뿌리를 둔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저 자신을 아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나고 자란 땅에 대한 인식이 견고하지 못하다면 어떤 새로운 창작도 순간으로 끝이 날뿐 새로움을 이어갈 길을 만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 문화의 근원과 역사를 묻는 건 제가 누구인지 스스로 묻는 일 같아요. 내 할머니의 할머니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먹으면서, 어떤 생각으로 살던 땅에 내가 살고 있을까를 묻는 일인거죠.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가 지혜로운 도구를 개척했고, 거기서 이런 놋수저를 비롯한 식기들, 가구들, 옹기같은 도구가 만들어졌어요. 생활의 모든 양식들을 삶이 어루만진 도구들이고, 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미감이죠.

 

이런 아름다움은 어떻게 전해진다고 생각하세요? 

자연스럽게 전해 내려오는 방법은 대를 이어 물려받고 사용하면서 그 미감까지도 몸으로 스며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 시절과 전쟁을 겪으며 가난했고, 그걸 극복해야 하는 시절을 보내면서 그런 미감을 물려받지 못했어요. 그저 더 빨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문화적으로 앞선 사람이 되는 거란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성찰 없이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버린 것 같아요. 우리 문화와 정신을 이해한다는 건 스스로 기준을 갖게 되는 거예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아는 기준이죠. 기준이 있는 사람은 선택에 근거를 가지게 되고, 확실한 뿌리가 있으니 훨씬 단단한 삶을 살게 돼요. 저는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와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흔들림없는 자신이 되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 뿌리로서의 집을 서촌에 두고 있는 거군요. 이 동네엔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어요?

단순한 이유였어요. 집을 구하려고 동네를 살피러 온 날 캄캄한 밤에 인왕산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매일 이 산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여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이사 오던 2015년만 해도 서촌엔 오래된 집들이 많았어요. 조금씩 변하는 분위기였지만 옛것과 새것, 원주민과 이주민, 노년층과 청년층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였죠. 저는 서촌을 둘러보면서 다양한 삶이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느꼈어요. 그게 좋았고요. 

그러나 서촌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도시 재생이라는 명목 아래 곳곳이 개발되면서 너무 많이 변했거든요. 언젠가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공사가 이어지는데, 공사 소음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어두워지잖아요. 요즘은 집의 앞뒤로 공사가 계속 이어져서 사실 고요한 마음으로 작업을 이루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느끼는 안온한 마음이 그리울 때가 좀 있네요. 우리 선조들은 그런 고요함과 풍경이 수려한 환경에서 공부하려 했잖아요. 그런 환경이 인성을 만들고 완성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변해가는 서촌을 보면 어때요?

오히려 저는 이 집을 있는 그대로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이 집은 굉장히 불안한 집이에요. 많이 기울어서 수평이 어긋나 있거든요. 제가 이사 올 때부터 기울어져 있었고 그 모습에 맞춰 문이나 창이 짜여 있었지요. 그런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틈이 벌어지고 있어요. 저는 이 집을 완전히 다시 새로 짓지 않고 손수 보수하고 다듬어 쓰면서 오래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있는 걸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새로 만들고, 부수고, 다시 또 새로 짓는 걸 보면서 참 힘들었고 곁에서 보는 일에 충분히 지쳤어요. 

어느 날은 하루아침에 한옥 네 채가 부서지는 모습을 보았어요. 충격적이었죠.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이 집 주변에서 아홉 개의 공사를 지켜봤어요. 건물을 올리다 붕괴하는 사고도 있었죠. 그런데도 결국엔 완성하더라고요. 이젠 서촌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한옥이 많이 남지 않게 됐는데, 이렇게 마을이 어디나 다 똑같은 동네가 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참 마음이 아파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이 고즈넉한 옛 정서들이 남아 있던 마을도 어디에나 있는 그런 동네가 되겠죠. 이건 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개개인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눈을 떠야 해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정서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마 서촌의 이런 상황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서촌에 한옥 스테이가 많이 생기고 있잖아요. 한옥 스테이는 옛 정서가 남은 한옥과는 좀 다른가요?

우선,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 다르지요. 주인이 없이 숙소로만 운영되는 한옥 스테이는 숙소의 형태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들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많아요. 마을이란 사람들이 정착하고 서로 이웃이 되면서 마을의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하고,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함께 대응하고, 서로 위로하면서 관계와 문화가 쌓여 가는 것이에요. 그러나 한옥 스테이는 오신 손님이 잘 꾸며진 한옥에 머물다 떠나는 것이지 이웃이 될 순 없어요. 이곳 주민들은 눈이 오면 좁은 골목길에 누군가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눈을 쓸러 나가요. 모두가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내 이웃의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눈을 쓰는 보람이 있어요. 그러나 숙소로 운영되는 한옥 스테이는 자신의 집 앞도 쓸지 못하니 서로 배려하는 이웃은 아닌 것이죠. 이웃집이지만 이웃 사람은 없는 거예요.

한옥 스테이에는 동네와 함께 나이 들어갈 주인이 없는 거군요.

문화, 양식, 관계 같은 건 소통과 시간이 쌓여야만 형성될 수 있어요. 잠깐 왔다 떠나는 건 사람이든 마음이든 금세 사라지기 때문에 쌓일 수가 없죠. 저희 집 바로 앞 두 곳이 지금 게스트하우스로 바꾸려고 공사 중이에요. 그런 와중에 대문 앞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를 왔어요.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이사 오셔서 고맙다고 여러 번이나 인사를 하고 식사도 나누었어요. 다른 이웃들도 소개해드리고요. 저는 시대가 변해도 이웃 간의 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촌에 처음 이사 왔을 때도 시루떡을 돌리며 인사로 시작했어요. 요즘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잘 없더라고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의 양식이 바뀌고 경제적으로 부를 이루며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나 각자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이런 변화를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자꾸만 우리가 중요한 걸 놓치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변해 갈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요.

 

이 집에 작가명과 같은 ‘이서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집이 이름을 가진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서재利敍齋’를 작가명과 집의 이름으로 정한 것은 삶과 집이, 작품과 작가가 오롯이 하나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어요. 창조된 무엇에 이름을 준다는 건 살아갈 운명을 결정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부모에게서 이름을 부여받고, 성경도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서 이름을 주는 걸로 시작해요. 이름을 갖는다는 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이름에 의미를 담는 건 그 대상이 어떤 소명으로 존재할 것 인지를 창조자가 기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이 집의 이름 이서재는 이롭게 펼치는 집이라는 의미예요. 저 스스로 ‘이롭게 펼쳐 또한 남을 이롭게 하라.’는 소명을 준 거기도 하고요.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실감할 때가 있나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 않나요(웃음)? 저는 이 집을 저만을 위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분 한 분 오시는 분들이 이 한옥이 품고 있는 생각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는 변화를 일으키는 게 사회 시스템이나 커다란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개개인이 지금 당면한 문제를 인식하고 절실함을 가질 때 변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제가 실천하는 일들, 이를테면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수돗물을 끓여 마시고, 자전거를 타는 이 모든 소소한 행위도 가치를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서재에 손님을 자주 맞는 이유에는 그런 마음도 있어요. 저의 생활 양식을 나누고, 어떤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문을 여느냐 닫느냐에 따라서 사적인 공간이 되기도 하고 공적인 공간이 되기도 하는군요.

이서재는 집이에요. 그런 의미에선 엄연한 개인 공간이죠. 그런데 혼자만의 일은 관념에서 끝나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좋은 공간도 혼자 누리는 일은 없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서재에 지인을 초대해서 식사하는 일도 많고, ‘우주적宇宙的 식사’라 이름 붙인 행사를 열어 모르는 분들의 신청을 받아 초대하기도 해요. 2018년 인도에 다녀왔을 때는 다즐링 차와 차밭의 사진과 경험담을 파는 ‘우주상점’을 열어서 인도 커리를 대접하며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제 생일에는 SNS를 통해 모르는 분들을 초대하여 잔치국수를 대접하기도 했고요. 2017년에는 이 공간에서 <집 전>이라는 전시를 열어 한 달 동안 참여자들과 함께했는데요. 제가 이 전시로 전하고 싶던 건 ‘집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뿌리 문화로서의 집과, 집답게 기능하는 집의 이야기였어요. 일상이 쌓여가는 ‘진짜’ 집에 대해 나누고 싶던 거죠.

집을 처음 구했을 땐 이 모습이 아니었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집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전세로 들어온 집이지만 내가 쓸 집이니 나에 맞게 고쳐야겠다는 마음으로 침낭에서 자며 직접 고쳤어요. 집에 관한 뚜렷한 방향성이 있는데 남에게 의지해서 고쳐 나가면 과연 제 마음에 들까 싶었거든요. 저는 집에 뭘 덧대거나 크게 바꾸지 않고 원상태로 돌리고 싶었어요. 프랑스에서 설치미술을 해왔기 때문에 여러 도구를 다루는 데 익숙했고, 처음 다루는 재료도 부담이 없었어요. 설치미술 작가가 쓸모 있을 때는 집을 고칠 때구나 싶었죠(웃음). 프랑스에서의 경험 때문에 겁 없이 도전했던 것 같아요. 프랑스는 인건비가 워낙 비싸서 모든 걸 스스로 해야만 하거든요. 파리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직접 집을 고치는 데 거부감이 없었어요.

 

직접 집을 고치다니,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상상도 안 되네요.

이 좁은 한옥에 원래는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어요. 공간이 좁다 보니까 대청에 마루를 연장하고 비닐을 쳐서 공간을 넓혀 지내고 있었죠. 그래서 지금과는 집의 모습이 많이 달랐어요. 담을 따라 자라난 저 대나무들도 그땐 제대로 빛을 못보고 시들시들한 상태였어요. 이사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원래 살던 사람이 설치한 친환경적이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는 거였는데, 이 작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최대한 기본 뼈대만 남기고 집 본연의 모습만을 남기려고 했거든요. 이 작업을 마치고는 주민센터에서 도구를 빌려 도배하고, 부엌 타일을 직접 사 와 붙이고, 싱크대 시트와 손잡이를 교체하면서 조금씩 분위기를 바꾸어 나갔죠. 장판도 직접 방산시장에서 길이만큼 잘라 버스로 들고 와 깔았고, 창호를 바르고 조명을 고르고 전기를 설치하는 모든 일을 직접 했어요. 집의 높이와 크기에 맞는 가구를 가장 간소하게 디자인한 뒤 동네 목공소에서 짜 오는 일, 색을 넣고 옮기고 설치하는 일 모두를 몸소 부딪쳐가며 완성한 거죠.

 

모든 과정이 엄청나 보이는데 그중 가장 힘든 건 뭐였어요?

한지 도배요. 저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는데 과정이 복잡하고 여러 번 붙여야 하더군요. 동네에 있는 벽지 파는 집을 찾아가 한지 도배도 하시는지 물었더니 가게 주인이 예전에 창덕궁 도배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며칠 동안 마실 걸 사 들고 찾아가 이것저것 물으며 말로 배웠고 결국은 홀로 해냈는데, 그 과정에서도 사건 사고가 많았어요. 안방 천장 도배지를 뜯어내다가 천장을 받치던 나무가 내려앉아 엄청난 양의 흙이 쏟아졌거든요. 그걸 다시 올려 박고, 단열재를 넣고, 도배하면서 생각보다 큰 공사가 되었죠. 한 평짜리 작은 방 하나를 끝내는데 이주일이 넘게 걸리더라고요. 열 손가락이 다 갈라지고 피가 나서 양손 손가락에 고무를 씌우고 작업했어요. 글을 쓰거나 자판을 두드릴 수가 없어서 공사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워요.

(문틀을 만지며) 이게 다 직접 공사한 거라니…. 이 집은 각 공간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데 소개해 주실래요?

이서재는 총 네 공간으로 구성돼 있어요.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마주 보이는 곳이 부엌이고, 그 앞이 안방이에요. 피아노와 이부자리를 두고 잠을 자는 곳이죠. 그 앞은 작업실인데, 원래는 마루로 만들어진 공간을 막아서 방으로 만들어 쓰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있는 여기는 차실이에요. 지금처럼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제가 차를 마시며 정돈하는 용도로 사용하죠. 저는 집 전체에 새시나 방충망 같은 걸 전혀 달지 않았어요. 자연에 가까운 집에서 계절을 통하며 살고 싶었거든요. 저는 제 집 근처의 집들이 다 이서재 같은 줄 알았는데, 이 동네에서 저만 이렇게 살더라고요(웃음). 다른 집들은 공사 소음도 들리지 않고 외풍도 없다더군요. 창에도 강화 유리를 달아 튼튼하던데, 저는 3밀리 두께의 얇은 유리만 달아 바람이 많이 불면 바람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요. 오늘 아침처럼 한기가 들 때도 있지만 뽁뽁이나 플라스틱 같은 걸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아 가장 기본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죠.

 

기본에 충실해서인지 유난히 아늑해요. 이 집에서 특히 애정가는 공간이 있나요?

집이 크지 않아서 모든 곳을 다 좋아해요. 한옥은 변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하나만 콕 집기 어렵기도 하고요. 한옥은 문을 뗐다 붙였다 할 수 있어서 공간 활용이 유연해요. 그래서 변할 수 있는 거죠. 이런 유연함은 우리의 뿌리나 정신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 하나를 꼽긴 어렵지만, 계절별로 더 많이 사용하는 공간은 이야기해 볼 수 있겠네요. 봄이나 가을처럼 바깥 활동이 편한 계절이나 시간대엔 거의 마당에서 생활해요. 그러다 조금씩 어두워지면 방 안에서 마당의 대나무 보는 걸 좋아하고요. 이서재에서 가장 행복할 때를 꼽으라면 햇살이 드는 날 차실 문턱에 낮은 다리미판을 놓고 손수건들을 다릴 때예요. 햇살이 좋을 때는 피아노옆의 창을 열고 온 동네 사람들과 나눈다는 마음으로 피아노를 치기도 하는데, 이 시간도 무척이나 좋아하죠.

 

그런데…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네요. 불편하지 않으세요?

저는 이게 편해요(웃음). 집에 혼자 있을 때도 항상 몸에 맞는 치마를 입고 있어요. 바닥에 앉을 때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일이 익숙해졌지요. 혼자서 보내는 집이니 더 정갈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의 공간에서 작업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둘의 균형을 지켜나가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는 이서재에서 쉬기 위해 한낮에 이불을 편다거나 누워 있지도 않아요. 혹여나 몸이 좋지 않아 정말 쉬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차라리 숙소를 잡고 나가 종일 잠을 자요. 1년에 한두 번쯤 있는 일이죠. 좀 우습지요(웃음)? 집에서는 가능한 마음이나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 선명히 깨어 있는 상태가 편안해요.

그럼 이서재에서 ‘쉰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오롯이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고, 차를 마시고, 청소나 다림질을 하는 것이 쉬는 일 같아요. 마음에 안정을 찾아오는 일이지요. 여긴 편히 기대 있을 소파도 하나 없어요. 거의 절에 가깝다고 생각해요(웃음). 집을 정돈된 분위기로 만들어서인지 늘 집에만 오면 고요하고 정갈해져요.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서재에 저 혼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자신을 거울처럼 마주보며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해요. 오롯이 저 자신을 인식하고 마주하는 거죠.

 

이서재는 어떤 의미에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인간의 삶 자체가 작품 아닐까요? 인간은 처음엔 모두 똑같이 밋밋한 나무 기둥 같은 몸으로 태어나는데 살아가면서 각자 다른 자신의 무늬와 조각들이 새겨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고유의 무늬가 새겨지게 될 테니까요. 저는 제 죽음을 상상할 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는데요.죽기 전의 제 모습은 스페인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처럼 섬세하게 조각된 나무토막 같으면 좋겠어요. 이서재가 하나의 작품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집 역시 삶처럼 다듬고 매만져 줘야 하는 존재예요. 조금씩, 섬세하게 자신을 조각하는 일과 다를 게 없죠.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숭고한 일이기 때문에 집에는 한 사람의 우주가 온전히 담길 수밖에 없어요. 집을 손보는 일, 침구를 정리하는 일, 식사를 준비하는 일, 손님을 맞는 일, 청소하는 일 모두가 나의 삶을 이루는 일이자 마음을 곧게 만들어주는 일이에요.

 

삶을 대하는 태도는 반드시 작품에 드러나게 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삶의 일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창작물에 마음을 담을 순 없어요. 결국 작품에는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인격이 담기고, 그 깊이만큼 보는 이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생각해요. 죽음을 맞는 날 우리 인격이 완성될 텐데, 그때 제 나무 몸이 아주 정교하게 잘 조각돼 있기를 바라는 거죠. 

 

삶과 집이 유기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네요. 더 나은 삶을 위해 집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요.

우리의 전통 주거 공간은 소통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집 같아요. 우아하고 편안한 지붕의 기울기, 비늘 같은 기왓장의 질감, 안팎을 구분하지 않고 통하는 쓸모와 유연함, 계절마다 다르게 드는 해의 깊이를 헤아린 마음… 저는 이 모든 요소를 좋아하죠. 그 안에 있으면 계절과 온전히 하나인 삶을 살게 돼요. 해가 드는 시간을 따라 사람들을 초대하고, 해가 지는 시간을 따라 잠자리에 들면서 생활하게 되니까요. 마당에 있는 대나무의 생애는 제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해요. 일거리가 될 때도 있고, 제 희로애락을 지켜보는 벗이 되어 주기도 하죠. 한옥에서 지내면서 좋아하게 된 것 중 하나는 달빛이 투명하게 드는 때인데요. 그 빛을 가만히 지켜보며 밤을 보내면 금방 충만해져요. 이 장면은 무척 은밀해서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요. 세상 모든 전통 가옥이 그 나라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는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중에서도 한옥은 그런 환경을 집 안으로 품고 누리는 양식을 갖췄다고 생각해요. 전통 가옥은 그 나라의 환경을 대변하면서 자연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는 공간이 되는 거죠.

집에 이토록 깊은 의미가 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지내는 것 같아요. 평소에 집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 게 좋을까요?

집에 애정을 느낀다는 건 삶에 대한 애정이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지요. 집에서 내가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마음의 평정을 지켜가는 일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리는 이런 사소하고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누리면서 좋아하는 걸 하나하나 몸에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몸이 부수어질 듯 일하고 돌아가야 하는 곳이 집이니, 그 집은 내 일상을 지키고 마음을 차분하게 돌봐주어야 하는 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누구도 사는 방법을 규정하진 못해요. 삶의 가치와 방향은 오직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지요. 나 자신과 삶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집을 사랑해 보세요.

 

집 이야기를 나눌수록 집이 점점 입체적인 공간이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원초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집이란… 뭘까요?

집은 ‘우주宇宙’예요. 태초부터 집은 모든 것을 품고 있었어요. 모든 시작부터 끝,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벌어지는 곳이지요. 현대로 오면서 집의 역할과 기능을 구분하고 있을 뿐이에요. 집의 역할은 사회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규정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집에선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어요. 제게 집은 뿌리이고 일상이에요. 우리의 옛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를 그릇 삼아 그 위에 반복하는 지금의 일상을 쌓아가는 길, 그래서 집은 사실 ‘길’이에요. 멈추어 있는 틀 같지만 끊임없는 매일의 생각과 지혜가 쌓여가는, 그런 길이요.

집을 이루는 조각

01.항아리
“술을 담고 싶어서 골동품을 파는 분께 사 온 항아리예요. 그런데 술은 새 독에 빚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지 않으면 온갖 냄새가 술에 스며들어서 좋은 향이 나는 술을 빚을 수 없대요. 새 독에는 술을 빚고요, 나머지는 장을 담아두거나 매실 효소를 담거나 빈 곳은 저장 창고처럼 쓰고 있어요. 장독의 형태와 용도는 오롯이 지혜가 만든 거예요. 우리의 미감에서 품고 있는 자연스러운 선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그 형태나 용도에서 작업의 영감을 많이 받고 있어요. 옹기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지혜로운 도구가 참 많아요. 옹기는 저에게 영감을 주는 미감 중 하나죠.”

02.대나무
“이사 오기 전에 이 집에 여섯 식구가 살고 있었어요. 세 명의 아이와 부모, 그리고 조모였는데요. 집이 너무 좁으니까 마루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지내서 한옥의 형태가 거의 사라진 집이었죠. 집 안에 너무 큰 가구가 있으니까 집이 더 작아보이더라고요. 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들어와서 마루를 다 걷어내고 나니까 뒤에 작은 대나무가 보였어요. 전혀 예쁘지 않았고, 이사 온 뒤에 잘라내고 다듬으니 다음 해 봄에 새로 죽순이 올라오고 자리 잡기 시작하더라고요. 대나무는 적절히 잘라내고 가지 쳐서 돌보지 않으면 금세 무성해져서 하늘을 뒤덮어요. 햇빛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죠. 번식력이 강한 나무여서 가지를 치고, 잘라내고, 일이 정말 많아요. 손이 많이 가지만 대나무 잎새 사이로 아른거리는 빛은 이루말할 수 없는 평온을 주지요. 빛과 그림자가 집의 깊이를 주는 것 같아요.”

03.등자
“초를 올려둔 저 도구는 등자예요. 말에 오를 때 안장 아래서 발을 받쳐주는 발 받침 있잖아요.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구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천으로 매달아서 그 위에 초를 올려 두었어요. 이렇게 만든 뒤로는 아침에 일어나서 초를 켜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었어요. 제가 둔 초는 딱 네 시간 동안 타는 초인데요. 왠지 초를 꺼뜨리고 싶지 않아서 네 시간마다 새로운 초를 올려서 늘 밝혀두고 있어요. 저기서 항상 타고 있는 초를 보면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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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