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tchhiker’s Guide To The Animals In Books, Movies, And Music

당신 곁을 여행하는 동물들을 위한 안내서

당신 곁을 여행하는
동물들을 위한 안내서

인간이 아닌 것들 중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것은 단연 동물이다. 이따금 우리는 그들이 필요했고, 그리웠으며 묵묵히 감상했다. 그렇게 마주한 어느 시선들을 모았다.

MOVIE
필름으로 만든 동물들
영화 읽는 여자 이현아

개 같은 내 인생, 1985
우주와 사육장으로 보내진 두 마리 개

“생각해보면 나쁘지만은 않았다. 더 나빴을 수도 있으니까.”

 

라이카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강아지일 거다. 영화로, 책으로, 음악으로 사람들은 라이카를 기억한다. 라이카는 사람보다 먼저 우주에 갔다.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서 발사됐다. 그리고 죽었다. 사람들은 라이카가 대기권 재돌입을 앞두고 독이 들어있는 먹이를 먹어 안락사했다고, 혹은 다섯 달 동안 우주를 돌아다니다 굶어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세기 후 러시아 정부는 라이카가 발사된 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스트레스와 과열로 죽었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라이카의 죽음으로 생명체가 지구 궤도에 진입하는 과정과 무중력 상태에서 견딜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라이카의 죽음으로. 

<개 같은 내 인생>의 소년 잉마르는 엄마와 형과 함께 산다. 아픈 엄마를 두고 말썽만 피우며 속을 긁는 두 형제는 각각 할머니와 삼촌네 집에 보내진다. 잉마르는 함께 사는 강아지 ‘싱킨’을 데려가고 싶지만, 싱킨은 결국 개 사육장에 보내진다. 

삼촌네 집에서 잉마르는 생각한다. 보스턴에서 신장 이식을 받고 모든 신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엔 죽고만 불쌍한 소년, 선교 활동을 하러 에티오피아에 갔지만 설교 중에 맞아 죽은 여자, 타잔을 흉내 내며 고압선에서 줄타기하다 감전돼 떨어져 죽었다는 아이, 그리고 원하지 않았지만 우주로 보내진 개, 라이카를. 아픈 엄마나 사육장에 갔다는 싱킨은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불행한 것만 같은 다른 이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 소년이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이다.

어느 날, 동네에 외줄을 타며 사람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하는 아저씨 ‘칼’이 나타난다. 친구는 그는 뭐든지 다 안다며 너도 물어보라고 한다. 잉마르는 싫다고 대답한다. 모든 걸 다 안다는 것은 소년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잉마르는 집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잉마르는 다시 삼촌네 동네로 보내진다.그곳에는 말도 안 되는 고물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가겠다는 친구들이 있다. 그 우주선을 만들어주는 할아버지와, 우주선이 당연하게도 중간에 멈추자 비웃지 않고 내려오라며 사다리를 대주는 동네 사람들이 있다. 그들 곁에서 잉마르는 생각한다. 다른 이의 불행한 일과 자기 앞의 일을 비교하지 않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도 전에 떠나버린 엄마를, 개 사육장으로 보내졌다는 싱킨을. 우주로 떠난 개 라이카는 기억하지만 싱킨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잉마르 뿐이겠지. 

마을에는 겨울이 돌아오고 잉마르는 엄마가 죽었다는 걸, 싱킨도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마주한다. 잉마르는 드디어 엄마를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해달라고 얘기하며 아이처럼 운다. 나는 그 울음이 반갑다.

더 랍스터, 2015
짝이 되어야만 하는 동물, 인간

“등에 연고 발라줄까요? 손이 안 닿는 곳에요.”

닿기 힘든 등의 어딘가에 손을 뻗어 애써 보디로션을 바를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역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좋겠어.’ 로션을 다 바르고 맨몸으로 나올 때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역시 혼자 사는 게 좋겠어.’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등에 보디로션을 바르지 못한다고 내 등이 쩍쩍 갈라져 죽거나, 동물로 변해 사냥 당해 죽거나, 로션을 대신 발라줄 사람을 찾지 못해 죽는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더 랍스터>에서 일어나는 그런 일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45일 간 머무르며 자신의 짝을 찾아야 하는, 그러지 못하면 동물이 되는 호텔이 나온다. 그 호텔 밖에는 짝을 만나면 죽게 되는 외톨이들의 숲(호텔에서 커플이 되길 포기하고 도망친 자들이 사는 곳)이 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떠나 호텔로 왔지만 결국 탈출한 데이비드는 외톨이들의 숲에 닿는다. 호텔에서는 무조건 짝을 이뤄야 했지만 여기서는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고 혼자인 채 남아야만 한다.

외톨이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그러니까 등에 손이 닿지 않아 상처에 연고를 바를 수 없어 통증에 시달리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몰랐던 데이비드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여자는 자신과 같은 근시이고 상처난 등에 연고까지 발라줄 수 있는 사람이다. 둘의 사랑을 눈치챈 외톨이 숲의 수장은 여자를 도시로 데려가 여자의 눈을 멀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여자와 도시로 탈출한다. 그리고 도시의 커피숍에서 스테이크 칼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데이비드는 호텔에서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커플이 되려고 공통점을 만들어 연기했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와 살기 위해 자신의 눈을 멀게 한다. 

짝이 된 사람들은 대게 서로가 얼마나 비슷한지 말한다. 정말로 그와 나의 차이점이 우리를 다르게 만들고 그와 나의 공통점이 우리를 같게 만들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같아져야 할까? 그냥 다른 채로 살 수는 없는 걸까? 아니 그냥, 혼자이면 안 되는 걸까? 여기도 결국, 등에 보디로션을 혼자 바를 수 없으면 동물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인 걸까?

언젠가 너로 인해, 가을방학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고 생각해 본 적 없던 헤어짐에 대하여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너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지만
약속해 어느 날 너 눈 감을 때 네 곁에 있을게 지금처럼”

내가 열두 살이던 해 엄마는 할머니 댁인 비금도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함께 있던 형제들은 굶어 죽었고, 거기서 살아남은 유일한 고양이라고 했다. 거리 위 낯선 인간들의 삶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느라 바빴던 모양인지 꼬리는 반쪽으로 잘려 나가 있었다. 콩밭에서 발견한 이유로 그 아이의 이름은 콩콩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고,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콩콩이 없는 나의 삶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고 하면 이해가 가려나.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누군가 설명한다면, 나는 콩콩이를 떠올린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나는 그를 통하여 체득했다. 내가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어느 동물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면, 그건 내 세계로 그가 유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콩콩이를 할머니네 집으로 돌려 보내자고말이다. 작은 시골집 마루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름방학이면 할머니 댁에 자연스레 내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의 이별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콩콩이의 모든 것을 보면 찔찔 짰다. 매일같이 울다가 하루는 펜 하나를 들고 그의 목에 별 하나를 그렸다.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역시나 울며 말했다. “콩콩아, 내가 너 보면 바로 알아볼게. 알겠지.” 하면서. 어린 나이의 내게 먼 죽음보다 당장의 물리적 거리감이 더욱 버거운 이별이었다. 하루하루 그를 더 만지고, 더 이야기하려 안간힘을 썼다. 언젠가 그로 인해 울게 될 거란 걸 잘 알던 시절이었다. 난 이 노래가 시작되는 전주만 들어도 마음속이 쨍해온다. 이제껏 너로 인해 행복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노랫말 하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없다. 

사실 2013년 가을, ‘가을방학’ 수변 콘서트에 갔을 적에 보컬인 계피가 이 노래의 뒷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를 키웠고, 상황도 나와 전적으로 달랐다. 하지만 내가 이들의 노래로부터 정확하게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딱 하나가 있었다. 그들의 삶 또한, 반려동물이 오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달라졌으리라고.

고래의 꿈, 바비 킴
바다 한 편에 곱게 숨겨진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먼 훗날 어느 외딴 바다의 고래를 본다면
꼭 한번쯤 손을 흔들어 줘
혹시 널 아는 나 일지도 모르니”

정호승 시인의 ‘고래를 위하여’라는 시에는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래가 의미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애써 내 마음속 바다의 고래를 찾으려 했다. 왠지 모르게 열정인 것 같기도 했고, 젊음이나 패기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가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연에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라며 나를 놀린다. 세상에나, 고래가 바다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었다니. 바비 킴의 ‘고래’도 역시 사랑을 찾아 바다를 헤맨다. 파도 위를 가르며 지쳐도 사랑하는 누군가 하나만이 나를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 노래 특유의 몽글거리는 분위기와 고래의 여행기는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리는지. 

바로 지난주에 엄마가 내게 다가와 아빠가 근래 써주었다는 편지를 보여주었다. 한 줄에 ‘여보’, 다음 한 줄에 ‘나야’, 그다음 또 한 줄에 ‘당신 남편.’ 정말 쓰기 싫었나 생각하며 웃음이 나던 찰나에 몇 줄을 더 읽고 나니 요상한 기운을 알아차렸다

“여보, 아직도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마음이 설레.”라고 쓰인 문장이 금세 눈에 들어왔던 탓이다. 내 마음속 푸른 바다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바로 내 옆에 고래와 푸른 바다가 있었다. 나는 이내 푸스스 웃으며 편지를 돌려주었지만, 사실 내 마음 속에서 고래가 움찔하고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뜨겁기만 했던 시절과 멀어지고 이제는 중년에 접어든 이들의 사랑이라 하면 젊은이들의 것과 단연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더 쑥스럽달까. 고깔모양으로 가지런히 접힌 편지 하나만으로도 왠지 두 눈이 간지러워 감기는 듯했다. 왜 굳이 중년의 사랑을 논하느냐면, 다른 세대들보다 유난히 이들의 로맨스에는 ‘상상’이 덧붙여지기 때문이다. 왁스가 아니라 무스를 쓰고, 스키니 진이 아니라 디스코바지를 즐겨 입던 시절의 어색하기 그지없는 연애 감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고래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는 말을 깔끔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비 킴의 고래처럼 나도 이곳저곳 푸른 바다를 유랑하고 싶어라. ‘고래의 꿈’을 함께 고래고래 부를 사람을 만나련다. 유치하다고? 삼순 언니가 그랬다. 사랑은 원래 유치한 거라고. 푸스스.

BOOK
잉크로 만든 동물들
밑줄 긋는 남자 김건태

아마도 아프리카, 이제니
농담의 몸을 가진 우리가 동물을 부르는 방식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어떤 시집은 동굴의 성질을 갖는다. 둥글고 울리며 축축하고 미끄럽다. 그곳에서는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늪이거나 귀신으로 태어난 시집도 있다. 그들은 그림자마저 삼킨다. 이제니의 《아마도 아프리카》를 읽으며 나는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소금사막을 떠올렸다. 지구 안쪽에도 ‘세계’라는 것이 있다면 소금사막은 땅속의 나와 땅 바깥의 내가 서로의 발바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니의 소금사막 속에 몇 번이고 몸을 담갔다 빼기를 반복했다. 자주 가슴이 젖고 가끔은 머리까지 시가 차오르기도 했지만 결코 숨이 막히는 법이 없었다. 이제니는 맑고 짠 시를 쓰는 시인이다. 

표제작 ‘아마도 아프리카’ 속에는 다섯 마리의 동물(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과 하나의 농담이 나온다. 이제니의 호랑이는 ‘따뜻하고 보드랍고 발톱이 없’다. 단지 멀리 있는 것들은 그 이름만을 빌려줄 뿐이고, 아마도 아프리카, 그러니까 ‘아마도 아주 조금’이라는 뜻으로 통역된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이라는 위안의 말. 문득 아프리카라는 공간이 아주 조금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시인의 몸에 밴 농담에 대해서 생각했다. 농담의 몸을 가진 사람의 혀는 붉고 딸기 모양을 갖는다. 성홍열이라는 병의 증상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사랑을 속삭이거나 유혹의 달콤한 말을 건넬 때조차 병든 입으로 딸기 모양의 농담을 뱉게 되는 것. 그런 아이러니가 시인의 입에는 있다.

언젠가 나는 농담으로만 일기장을 채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거짓말이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아니다. 거짓말로 백지를 까맣게 지우는 일. 자신의 일기장에 거짓말을 쓰는 이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일까.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참 많은 농담이 있고, 그것들은 스스로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양파는 익고 우리는 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그들과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울음이 다 그치고 난 다음,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아마도 아주 조금’, 먼 땅에서 온 농담들이 우리 모두의 위안이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꽃과 뼈의 문장들, 그 화려한 무력감을 읽어낸 후에

‘전몰자 기념비 주변에 장미가 피어 있다. 장미는 우거진 덤불. 아주 무성하게 자라나 풀들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종이처럼 돌돌 말린 작고 흰 꽃을 피운다. 꽃들이 바스락거린다. 동이 튼다. 곧 날이 환해질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아주 오래 묵혀둔 소설이다. 6년 전에 책을 사서 처음 몇 개의 문장을 읽어본 뒤 그대로 책장 속에 넣어두었다. 어떤 작품들은 손을 뻗기 위해 오래 숨을 참아야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동물이 등장하는 책을 찾다가 나는 화석이 된 이 작품을 꺼내 들었다. 두껍게 쌓인 먼지를 손바닥으로 쓸어내고 차를 끓이고 연두색 펜을 준비했다. 음울하게 반복되는 연주도 틀어두었다. 띄엄띄엄, 더듬거리며, 겨우 마지막 문장을 읽어낸 뒤, 나는 그 여운을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백지 위에 글을 썼다.

구름공장에는 잠들지 않는 시간이 있다. 웅장한 기계울음 소리가 있고, 빽빽하고 두꺼운 공기가 있다. 하늘로 뻗은 두 개의 굴뚝은 구름을 낳고, 구름은 때때로 비를 내린다. 비는 견고한 담을 타고 흘러 공장 마당에 고인다. 굴뚝이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마른 적 없는 웅덩이. 그 안에 묻힌 수많은 언어와 시간과 사유들.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저마다의 잃어버린 것들을 찾지 못한다. 그들은 그곳을 죽은 짐승들의 정원이라 부른다.

하루를 경계 지을 수 없어 동일한 나날들. 웅덩이에서 닭이 떠올랐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그들은 이제 정원을 거닐던 눈먼 닭에 대해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이름을 부르고 발자국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정작 그가 어떤 목소리를 가졌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닭의 사체를 건져라. 공장장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바벨 이후의 유일한 아담의 언어. 누군가 닭을 건져낸다. 굵고 커다란 손 위에서 닭은 모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바닥으로 물이 떨어진다. 그들은 죽은 닭을 바라본다. 일손을 쉬지 말라. 공장장은 명령한다.

노인은 침대 귀퉁이에 앉아 곰팡이 자란 모포를 손으로 쓸어 내린다. 노인의 허리는 봉분처럼 둥글다. 노인의 몸이 둥글게 말리는 것은, 그들에게 허용된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손이 느려진 자들의 마지막 안식은 몸을 둥글게 말고 자신의 배꼽에 고개를 박는 것. 그리하여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을 때까지 혼자서 숨을 죽이는 것.

긴 어둠이다. 지난한 항해다. 바다 위에서 죽은 선원은 범포에 싸여 수장된다. 바람이 빠져나간 그들의 몸은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밑으로, 더 깊은 곳으로 흐를 것이다. 바다 깊은 곳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다 아무 저항 없이 멈출 때 굶주린 고기떼의 마지막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거칠게 뜯긴 살점과 아지랑이처럼 춤추며 피어 오르는 핏물. 마침내 모든 환대가 끝나면 선원은 범접할 수 없는 고독으로 잠들게 될 것이다.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노인은 말한다. 청년들은 노인의 주름진 입가를 쳐다본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여공은 간난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먼지 낀 창문 너머로 바람이 분다. 죽은 짐승들의 정원에서 울음소리가 들린다. 눈먼 닭과 수장된 선원들의 침묵의 울음소리.
‘우리가 꿈꾸지 못한 것만 가질 것이다.’

노인은 사라졌다. 언제 사라진 지 몰라서 더 오래 기억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꾹꾹 눌러쓴 글씨에서 노인의 희미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눈먼 닭의 파편을 하나씩 되새긴다. 화석이 된 날갯죽지, 흩어진 깃털. 이제는 구름조차 쫄 수 없는 뭉툭한 부리. 그러나 잃어버린 날개는 침묵으로 말한다. 남겨진 이들은 지금 죽은 짐승들의 정원에 서 있다. 그들은 담장에 새겨진 작은 균열 앞에 서 있다. 눈먼 닭이 남긴 거대한 침묵의 구멍을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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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글 김건태, 이현아, 이자연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