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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ct What Found Out Too Late
‘아직은’ 일기장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모아둔 일기장이 사라져버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검사하지 않는 학년이 될 때까지 매일같이 쓰고 모아 온 것들이다. 족히 스무 권은 됨직한 공책들은 매일 저녁 졸리는 눈을 부릅뜨고, 연필을 꾸욱 눌러가며 쓴 고행의 결과물이었다. 일기를 다 쓰고 나면 세 번째 손가락 옆, 연필이 닿는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다 썼어!” 엄마에게 일기를 보여주면 엄마는 틀린 글씨와 어색한 문장을 고쳐주고 일기 아랫부분에 짧은 코멘트를 남겨주었다. 그러면 다음 날 나를 편애하던 담임 선생님은 그 옆에 초록색 플러스펜으로 짧은 소감을 남겨주고는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세상엔 엄마와 아빠와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매일밤 아빠가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오시기 전까지 나는 하루 종일 엄마와 누나와 시간을 보냈다. 나의 신경은 온통 엄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누나와 나 중에 누굴 더 예뻐하는지, 누가 말할 때 더 크게 웃어주는지, 간식을 줄 때 누구에게 더 큰 걸 주는지…. 나는 때로 누나를 미워할 정도로 어머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했다. 이미 키는 껑충 커버리고, 볼은 갸름해져 버린 누나를 상대로 그것은 너무한 짓이었다. 어머니의 시선과 말투와 그 밖에 모든 제스처를 통해 어머니가 나를 편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누나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어머니 말에 필요 이상으로 순종하곤 했다. 어머니는 여러 차례에 걸쳐 어머니가 싫어하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어른처럼 구는 걸 싫어했다. 어린아이가 콧소리를 섞어가며 가요를 부르는 것과, 어른들이 쓰는 말을 따라하는 걸 싫어했다. 여자아이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길 때 어른의 표정이 엿보이는 걸 싫어했다. 누나는 옆머리가 밖으로 새지 않도록 머리를 야무지게 묶었고, 난 어머니가 싫어하는 것들을 피해 바른 아이처럼, 때 묻지 않은 어린이처럼 행동했다.
어느 날 밖에서 아이들이 하는 말을 집에서 따라 했다가 어머니에게 혼났다. 어머니는 그런 나쁜 소리를 어디서 배웠냐고 하며 화장실에 가서 입을 씻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쁜 소리를 들었으니 귀도 씻고 오라고 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순진한 척 글씨를 지우듯 입과 귀를 깨끗이 닦았다. 영화에서 조금 거친 이야기가 오가는가 싶으면 나는 화장실로 가 귀를 씻고 돌아왔다. 학교에서 친구가 못된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며, 집에 오자마자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귀를 씻었다. 엄마가 집으로 놀러 온 엄마 친구들에게 “얘는 참 유별나다.”라고 말하는 것에 나는 만족스러워했다. 추가로 티브이에서 입맞춤하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했는데, 그것은 어느 누구도 시킨 적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바보 같은 행동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몰라 중학생이 된 이후에도 계속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는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 나는 어린아이들을 대면할 때마다 어린아이만이 가진 특별하고 솔직한 모습을 발견하길 기대한다. 그들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솔직한 세상 속에 살고 있을 거라 믿는 것이다. 어쩌다 친한 친구들의 자녀를 만날 때마다, 어린 조카아이를 만날 때마다 아이들의 통찰력에 놀라 자빠질 준비를 하며 간단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거 새로 산 옷인데 어때?” “여자 같아요.”
2021년에도 여전히 남자 색깔과 여자 색깔을 구분하는 아이들을 목격하고 나는 머쓱해지고 만다. 그들도 엄연히 제도 안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인데, 아이들이라면 응당 특별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 내가 편협했던 거다.
어린아이는 세상에 불현듯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사회의 시스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은 자신이 새로운 행성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뿌듯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나의 일기장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자랑스러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숙제를 일찍 끝내고 친구들과 놀아서 마음이 편했다는 내용과 부모님을 돕고 나서 칭찬을 받아 뿌듯했다는 내용…. 식탁에 앉아 연필 끝을 씹어가며 쓰던 이야기들은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기록이었다.
솔직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난 다음부터였다. 그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은 일기 검사 때문도 아니고, 제도의 탄압도 아니었다. 단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야 겨우 사회에 적응을 마친 것인지, 제도에 융화되어가는 즐거움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나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원하는 일인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원하는 일인지…. 지금의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은 드러내는 과정이다. 나를 드러내고,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고, 그냥 덮어두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들춰내 생각해 보는 것이다.
2021년의 첫날, 나는 편한 의자에 앉아 부모님이 애지중지 가꾸어 온 가족에 대해 너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 버렸다. “나는 종종 혼인 제도가 보장하는 가족 관계가 얼마나 억압적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멀쩡한 가족은 아주 다양한 이유로 결손 가정이 되어버리고 만다.”, “가족들은 손상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어느 단체나 손상되지 않기 위해선 누군가의 마음에 멍이 들어야 한다.”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들이었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처럼 말했지만, 오히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멍이 든 사람은 어머니였다. 이번에도 멍이 든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며 슬퍼했고, 아버지는 그렇게 착하던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느냐고 안타까워하며 물었다. 부모님의 격정적인 반응에 나는 신경질적으로 맞대응했다. 새해 벽두부터 고성이 오가는 쪽팔리는 집구석을 올해는 우리 집이 담당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일기장이 사라져버린 것을 나보다 더 많이 아쉬워한다. 그 속에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며, 심지어 일기장은 이미 사라져 찾을 수도 없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 일기장이 진짜 나를 기록하는 공간이었다면 나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적었을 것이다. 길에 떨어진 작은 과자를 습관적으로 주워먹던 이야기와 운동장에서 주운 거라고 말하고 집으로 몰래 가져온 친구의 테니스공에 대해 적었을 것이다. 신발 끈을 묶는 척, 땅에 떨어진 스키틀즈옆에 무릎을 대고 앉던 아이, 그리고 테니스공 때문에 볼록해진 주머니를 들키지 않기 위해 옆으로 걷던 아이….
어제 어머니의 형제분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차를 타고 급하게 전주로 내려가시고, 나는 뒤늦게 불편한 마음을 끌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전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아직은 일기장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쉽지 않다. 그것은 어차피 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하지만 언젠가 일기장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아쉬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임을 깨닫게 되는 어느 날, 나는 한 명의 아이를 둘러싼 여러 어른들의 다정함을 그리워하며 나는 꺼이꺼이 목놓아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 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