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A NIGHT IN THE FOREST

동네 숲 야영

어릴 때는 동네에서 새로운 놀이터를 찾는 게 일이었다. 뒷산의 큰 묘지나 동네 목장으로 가는 가파른 길은 겨울엔 언제나 눈썰매장이었고 굴다리 밑에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미끄럼틀이나 그네가 갖춰진 놀이터가 드문 이유도 있었겠지만, 비밀의 장소를 찾아내는 건 어린아이들의 본능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을 위한 만들어진 놀이터도 많은 지금, 여전히 그런 장소를 찾아 동네 숲으로 가는 한 남자를 만났다.

동네 숲의 발견

동네 숲에서 야영을 한다는 그가 알려준 주소는 용인의 한 편의점이었다. 숲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문명(?)과 닿을 수 있는 장소, 일종의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단지 동네의 숲에 갈 뿐인데 “안 가져오신 것 있으면 사세요. 더 들어가면 이런 곳 없어요.”라고 하는 그의 말에 어쩐지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탐험을 가는 것 마냥 떨렸다.

밤에 산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동네 어귀에 차를 세웠다. 사실 편의점이 있던 도로를 지나 시골 동네로 들어가면서부터 방향 감각은 사라졌다. 차에서 내린 뒤 헤드 랜턴을 끼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그는 어떤 표지판이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길을 헤쳐나갔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지만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키가 큰 풀을 제치면서 여러 번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십 분쯤 되었을까 그가 말했다. “여기예요.” 우리가 목적지라고 멈춰 선 곳에는 작은 터가 있었다. 그곳에 그의 가벼운 배낭과 가볍게 오려고 애썼지만 그러지 못했던 나의 배낭을 내려놨다. 내내 그의 등 뒤를 좇던 시선을 위로 돌리니 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둥그런 밤하늘이 보였다.

그는 부시크래프트 캠퍼도 아니고 백팩커도 아니다. 물론 그런 말에도 교집합을 두고 있겠지만 산에서 일하고 산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어떤 분들이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면 선뜻 말을 못해요. 크게는 산림경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하거든요. 주로 산주山主가 의뢰를 하는 사업을 하는데 숲을 가꾸거나 산에 길을 내는 일도 그중 하나에요. 평상시엔 동네 근처 산에 탐사하러 다니고요. 돌아다니면서 야영하기 좋은 곳을 찾고, 신기한 동식물을 관찰하고, 앉아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요. 저한테는 그게 노는 거예요. 예전에는 놀려면 무조건 서울에 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시에서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좋아요. 사는 동네를 좋아하다 보니 다른 것에도 큰 욕심이 없어져요.”

전나무 아래서 하룻밤

도착한 터는 전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전나무는 근처에 다른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피톤치드를 뿜어내 듬성듬성한 공간이 생긴다고 한다. 가만히 서 있는 생명체가 제 나름대로 살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숲에 자리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보통 참나무나 밤나무가 많은 용인에서 전나무는 쉽게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익숙하게 자리를 만들었다. 짐은 간소했다. 그가 배낭에서 꺼낸 물건은 침낭과 텐트를 대신해 한기와 습기를 막아줄 침낭 커버, 그리고 핫팩 서너 개와 보온병 정도였다. 사실 핫팩을 제외한다면 모두 돗자리가 되어주거나 음식을 보관하는 등 본연의 역할 외에도 두세 가지 정도의 일을 하는 것들이다. 그가 꺼낸 것들은 모두 당황스러울 정도로 오래된 제품이었는데, 유독 침낭만은 멀쩡해 보였다. 야외활동할 때 저체온증만큼 무서운 게 없기 때문에 침낭은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자리를 만들고 나무 아래 둘러앉으니 이상하게도 여러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그는 어릴 때 얼마나 대책 없이 놀았었는지 얘기하다가, 소나무 재선충이 유행이라 나무가 고생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함께 온 친구는 정동진 바닷가에서 고양이와 함께 한 캠핑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자연 속에 있으면 편안함, 다정함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 묘한 두려움에 연대감을 느껴 자꾸 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이나 터에는 기운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 우음도에서 캠핑한 적이 있는데 원래 바다였던 곳을 메운 장소거든요. 원래 밖에서 잠을 잘 자는 편인데, 그날 이상한 꿈을 꿨어요.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여기선 정말 잘 잤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결과적으로는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잤다. 아침이 되어서야 어젯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일어나니 별안간 숲이었다. 어제 힘들게 헤쳐온 길인데도 꼭 선물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올라온 길을 더듬어 보았다.

“야영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근처에서 고라니가 자고 있을 때도 있어요. 가끔 토끼나 두꺼비도 볼 수 있고요. 흔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보긴 힘든 동물이죠.”

자연에 대한 예의

동네 숲으로 야영을 간다고 했을 때, 머릿속에 그린 그림은 자유라는 단어와 가까웠다. 아무 데나 벌렁 눕고, 음악을 크게 틀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그런 그림. 내 생각과는 반대로 숲에서 그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오히려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휴대폰으로 듣는 음악도 동식물에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말하며 작게 틀었다. 가능한 작은 공간을 쓰려고 노력했고, 남은 음식이나 물건들은 가져왔던 통에 담아 다시 배낭 속으로 넣었다. 음식이야 거름이 될 거라 생각해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조미 음식은 자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도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좋아하면 아끼잖아요. 산도 마찬가지예요. 막 쓰지 않고 아끼게 돼요. 겉으로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쉽게 노는 것 같지만 지킬 건 지켜야죠. 오히려 캠핑장에서 쓰레기도 많이 만들고, 더 시끄러워요. 갖춰진 장소에서 자연을 해하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게 아쉬워요. 산에 있을 때 쓰레기 버리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미안한 마음이 드니까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전날 밤 잠들기 전 텐트에 누워 휴대폰으로 전나무에 대해 검색한 내용이 기억났다. ‘어릴 때는 제멋대로 자라나 클수록 매우 곧아진다.’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를 설명하는 말 같았다.
“야영도 처음에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해요. 캠핑은 붐이 일었잖아요. 뭐든지 급속도로 되면 부작용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생각보다는 보여주는 것이 우선시 되고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려주고 배울 수 있다며 좋겠어요. 그 후에 즐기는 건 각자의 몫이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자리를 정리했다. 자리를 펴는 것보다 정리하는 일이 더 오래 걸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는 지나가며 마을 구경을 했다. 우연히 왔다면 정말 시골 동네네,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근처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니 어쩐지 동네 개들마저 정다워서 경운기가 서 있는 촌스러운 동네의 풍경을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가벼운 야영을 위한 물건

01. 캔버스 베드 롤
Canvas Bed Roll
침낭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사용하던 물건. 캔버스 재질로 된 커버에 담요, 매트리스, 베개를 넣고 말아서 사용했던 것이다. 비나 눈이 오지 않는다면 텐트 대용으로 쓰인다. 지인이 직접 만든 것으로 그가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02. 노르웨이군 배낭
Norway Army Canvas Backpack
옛 물건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배낭이다. 캔버스와 가죽, 철로 만들어진 제품이라 굉장히 튼튼하다. 현재 배낭의 원형으로 생각하면 된다. 아영할 때는 보통 이 가방 안에 모든 물건을 넣어서 간다.

03. 마운틴로버 에코색
Mountain Rover Ecosack
산에 가서 나온 쓰레기는 되가져 오자는 취지로 만든 마운틴로버의 에코색. 한 마디로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봉투이다. 배낭 외부에 걸어 사용할 수 있으며, 연소 시에도 독성 물질이나 다이옥신을 방출하지 않고 물과 탄소만 배출된다고 한다.

04. 나이프와 톱, 가죽 장갑
Knife, Saw and Leather Gloves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용도가 다르겠지만, 톱과 튼튼한 나이프 하나면 어려움 없이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다. 그는 보통 나무를 다듬거나 음식을 준비할 때 쓴다고 한다. 사용 시 위험빈도를 줄이기 위한 가죽장갑도 항상 가지고 다닌다.

05. 스탠리 보온병
Stanley Classic Vacuum Flask
내구성이 뛰어난 스탠리의 보온병은 전쟁 중에는 군인들의 총알을 대신 막아주거나 온도에 민감한 약을 옮기는 운반함으로도 사용했다고 하니 그 기능에는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겠다. 스탠리 고유의 빈티지한 녹색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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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