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 사진을 돌아보다가 여행에 자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자리가 어디였는지 모르게 뒤죽박죽 섞여 있기에, 제자리를 찾아주기로 했다.
우리는 프라이드를 타고
다섯 살이 되는 해였던 것 같다. 아빠가 자동차 한 대를 집 앞 주차장에 세웠다. 은빛으로 빛나는 작은 차는 귀여웠다. “아주 작은 차지만, 이건 나의 프라이드지.” 아빠는 이 말을 자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모양새 나는 차가 아녔겠지만,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프라이드를 10년 넘게 탔고, 그걸 타고 전국 곳곳을 여행했다.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나 동생도 매번 억지로 옷을 주워 입고 투덜거리며 짐을 쌌던 걸 보면, 여행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었다. 열정은 그녀의 몫이었고 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몇 살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가 긴 휴가를 얻은 해가 있다. 열흘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때 엄마가 우리는 바닷가를 따라 전국을 일주할 거라고 했다. 어쩐지 또 귀찮은 일이 시작되었다는 예감이 들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대로 숨어 있고 싶었지만, 어김없이 프라이드 뒷좌석에 올라타야만 했다.
강원도를 시작으로 경상도를 지나 전라도, 경기도, 서울에 들러 강원도로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주로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잤고, 아빠나 엄마의 친구 집에 들르거나 멀리 사는 친척들을 만나기도 했다. 태풍을 만나 텐트가 날아갈 뻔하고 차 위로 우박이 떨어졌던 것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사실 그 외의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기억하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것들
그런데도 몇 가지 장면은 영화를 본 것처럼 기억나기도 한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지나 전라도에 닿았을 때, 친할머니 댁에 갔다. 엄마는 여행뿐만 아니라 사진에도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 어딜 가든 우리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부엌에 있던 할머니를 부르고, 담배를 태우시던 할아버지를 붙잡고, 아빠와 나, 내 동생도 낡은 초가집 앞에 섰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옷도 갈아입고 나오셨다. 그 사진을 찍던 전후의 상황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툇마루 옆에 열려있던 부엌 문짝이나 마당에 치고 있던 텐트 도구들, 할아버지가 찍기 싫다고 구시렁거리던 목소리 같은 것들이.
억지로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우리는 텐트를 쳤다. 그 전까지는 바닷가에서만 쳤는데, 어쩐지 할머니 집 마당을 보니 거기에 눕고 싶었다. 아빠와 텐트를 치고 있으니 할머니가 옥수수를 쪄다 주셨다. 맛이 없어 몇 알 먹다 말았다. 할머니 댁에서 먹는 음식들은 어쩐지 다 맛이 없었다. 텐트를 치고, 아빠와 그 안에 누워서 옥수수가 맛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빠는 갑자기 내 손을 붙잡더니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 고등학교 때, 광주에서 자취를 했어. 아빠는 크게 될 사람이라 시골에서 광주로 유학을 갔거든. 크게 될 사람인데 집이 너무 가난한 거야. 그래서 얼마 동안 김밖에 못 먹었지. 쌀이 없었거든. 그때 한 번 쓰러졌는데, 그 뒤로 귀가 잘 안 들려. 아빠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이유가 다 그 일 때문이야. 나는 할아버지가 너무 미웠어.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쳤거든. 김만 먹으면서도 할아버지한테 밥을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지. 그때,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할아버지 같은 아빠는 되지 않기로.” 아빠가 나한테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깍지 낀 손이 더워서 그저 손을 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빠는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늘 모든 얘기를 친구에게 하듯 들려줬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커가면서 아빠를 친구라 여기는 사람이 몇 없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옥수수는 맛이 없었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친척들이 돈을 모아 벽돌집을 지어 드렸고, 얼마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몇 년 뒤 할머니도 따라가셨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떠났을 때, 울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아빠는 할아버지를 평생 원망했어.”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빠의 손을 붙잡고 내가 울었다. 아빠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맛없는 옥수수를 먹던 날처럼.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가족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며 고향 집에 가서 앨범을 뒤졌지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사진 속의 내가 몇 살인지도 이제는 가늠하기 어렵고. 엄마에게 슬쩍 물었지만, 엄마도 가물거린다며 대충 쓰라고 했다.
몇 장의 사진을 빼놓고 앨범을 뒤지다가 우연히 엄마, 아빠의 앨범을 발견했다. 앨범 꽂이에는 내 앨범과 동생 앨범이 있고, 부모님 것은 따로 있다. 보통 내 것만 꺼내 보기에 그걸 꺼낼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꺼내 봤다. 젊은 엄마, 아빠의 여행이 눈에 보였다. “엄마는 처녀 시절 여행을 좋아했어.” 엄마는 입버릇처럼 그런 얘기를 하곤 했는데, 한 번도 그 처녀 시절이란 걸 궁금해한 적이 없다.
엄마와 아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다가 ‘내가 아무리 상상해도 이 시간을 알 수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사진은 애를 쓰면 기억이 나기도 하고, 같이 있던 이들에게 물을 수 있지만, 내가 없던 가족의 순간은 알 길이 없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당연하게 묶어둔 것들을 떠올려봤다. 세상의 어떤 사랑하는 사람도, 그의 생의 모든 순간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익숙하고 길든 것들이어도, 그들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사진 속의 어린 부모를 바라보며 (귀찮더라도) 조금 더 그들의 어제를 물어봐야지.
그때 할 수 있는 여행과 지금 할 수 있는 여행
사진 속의 아빠와 엄마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런 여행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때처럼 호기롭게 작은 자가용을 끌고 전국을 일주할 힘도 없고, 그 시절의 가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여행을 한다. 아픈 아빠가 불편하지 않을 여행, 지친 엄마가 편히 쉴 수 있는 여행, 결혼을 앞둔 동생이 다시는 할 수 없을 우리 가족만의 여행이 남아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일상과 다르다. 여러 여건이 맞아야만 함께 떠날 수 있고 그 기억은 분명 여느 시간과 다르게 남게 된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일상과 같은 선에 놓을 필요도 없다. 겨울이 지나기 전에 또 아빠, 엄마, 동생과 함께 시간을 맞추고 돈을 모아 어디론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앨범 속의 여느 여행들이 기억 속에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듯, 또 새로운 자리를 내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