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세상에 없는 마을 :
1997년, 내 손에 들어온 연두색 앨범은 내가 가져본 첫 번째 네잎클로버였다.
“오늘은 ‘에델바이스’야.”
“에델바이스? 그게 뭔데?”
“야! 너 유치원에서 ‘에델바이스’도 안 배웠어?”
부개서초등학교 2학년 3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사물함 앞에 옹기종기 모여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제는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하고 ‘고기잡이’를, 그제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하고 ‘도깨비 나라’를. 그런데 오늘은 ‘에델바이스’란다. 좀처럼 입에 붙지 않아 발음할 수 없던 이상한 단어,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아침 이슬에 젖어 귀여운 미소는 나를 반기어주네” 친구들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기교 없이도 예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경이는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며 영어 발음을 뽐냈고, 재림이는 배꼽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이 불렀다. 세미는 안경을 벗고 눈을 부릅뜨고 불렀고, 민성이는 중간중간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정신없이 불렀다.
에델바이스라는 단어를 너무도 쉽게 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입도 한 번 뻥끗하지 못한 채 어렵사리 쉬는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의 노래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선율에 맞춰 머릿속을 헤집으며 내가 놓쳤을지도 모를 단어, 에델바이스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머릿속엔 꼬마 검둥이 삼보도 있고, 늑대와 일곱 마리 어린 양도 있고, 찌르찌르의 파랑새도 있고, 헨젤과 그레텔이 먹던 수프도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 어디에도 친구들이 입 모아 부르던 그것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에델바이스’. 이국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처럼 멀고 까마득한 단어를 입속으로 열심히 굴리며 하교하던 그날, 나는 종일 부루퉁하게 심술이 나 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엄마의 물음에도 입술만 삐죽, 왜 심술이 났느냐는 아빠의 질문에도 고개만 도리도리. 에델바이스가 뭔지는 몰라도 나만 모르는 거라면 영원히 알고 싶지 않아서, 괜한 아집을 부리며 오리처럼 입술이 삐죽 나온 상태로 불편하게 잠이 들었다.
“엄마, 나 악보 사러 갈래!”
며칠째 에델바이스의 여운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뒤죽박죽인 머리를 어찌할 줄 몰라 뚱땅뚱땅 시끄럽게 피아노를 치다가 불쑥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손을 잡고 육교 넘어 음반점으로 향하던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엔 온통 에델바이스라는 글자로 가득했다. 에델바이스라니, 에델바이스라니…, 쳇.
이날 일을 말하기 위해서는 악보 피스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1990년대엔 드라마나 만화영화 주제가, 뉴에이지, 가요, 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이 한 장짜리 빳빳한 종이에 인쇄되어 반으로 접힌 형태로 판매되었고, 이를 악보 피스라 불렀다. 표지에 뮤지션 사진과 노래 제목이 정직하게 적혀 있는 악보 피스는 한 장에 오백 원일 때도 있었고, 떨이로 천 원에 내어줄 때도 있었다. 내가 에델바이스란 악령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바로 그런 시절이었다.
‘이건 내가 모르는 팝송, 이건 관심 없는 어른 음악, 이건 너무 유치한 동요…. 그래, 이게 좋겠다!’ 한참을 뒤적이다 고른 건 〈피구왕 통키〉 주제가였다. 노랫말에 등장하던 ‘아침 해’라든지 ‘끝이 없는 바닷가’라는 말이 좋아서 나는 저녁 5시가 되면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피구왕 통키〉를 시청하곤 했다. 이제 5시가 아니어도 언제든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기쁨에 엄마에게 악보를 내밀고 계산하기를 기다리는데, 악보 옆에 오도카니 세워져 있는 연두색 앨범이 눈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전히 음반점 사장님 취향으로) ‘최고의 음반’ 같은 타이틀을 달고 진열해둔 게 아니었을까 싶은 그것. 나는 엄마 옷자락을 잡고 씩씩하게 외쳤다.
“엄마, 나 이거 살래!”
다음 날에도 부개서초등학교 2학년 3반 사물함 앞에는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알고 있는 동요를 하나씩 이야기하며 네 것을 부를지, 내 것을 부를지 선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가운데 끼어 별말 없이 더 많은 친구들이 부르고 싶어 하는 곡을 함께 불렀는데, 그건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같은 노래가 아니었을까. 배꼽 앞에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살랑살랑 흔들며 노래를 부른 뒤, 나는 일생일대 비밀 이야기라도 꺼내 듯 조용히 친구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네 ‘언니네 이발관’ 알아?”
갸웃거리는 고개를 마주한 순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왜 그리도 두근두근 뛰었는지. 에델바이스가 뭐라고 모르는 게 그토록 억울했는지, 에델바이스가 뭐라고 뒤늦게 알긴 또 싫었는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을 혼자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쁜 나머지 나는 그 순간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밥 먹을 때도, 발 닦을 때도, 코를 풀 때도, 잠들기 전에도 머릿속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던 그 악령 같던 단어가 주술이라도 외운 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단어를 훈장처럼 쥐고 다녔다. 에델바이스라는 악령을 물리쳐준 연두색 앨범. 아집과 오기로 똘똘 뭉쳐 사들인 1집으로 시작해 2017년에 6집이 발매될 때까지, 나는 그들의 음악을 얼마나 애타게 들었던가. 오랜 시간 도처에 머물던 그들의 음악은 단언컨대 내가 가진 첫 번째 ‘어른 음악’이었다. 지금은 에델바이스 때문에 속상하던 마음은 잘 생각나지도 않지만, 언니네 이발관을 알고 있다는 환희만큼은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선연하다.
쿨의 ‘운명’, 이지훈의 ‘왜 하늘은’, 양파의 ‘애송이의 사랑’,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가 〈가요톱10〉에서 1위를 차지하던 시절, 나는 연두색 앨범을 손에 쥐고 에델바이스 같은 건 영원히 몰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흐린 이런 날에는 내가 좋아 햇살이 없는 거리를 걸어 보네”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1세대 아이돌 H.O.T.와 젝스키스가 처음 얼굴을 맞댄 해, 1997년도의 일이다.
글 이주연
일러스트 혜영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