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Likes Sunshine

해바라기처럼 걷는 사람
김현아—데시엠 코리아 지사장

구석구석 색들이 자리 잡은 집 안엔 해를 따라 거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옷은 한 번 입고 다음 날 안 입을 수도 있지만 집은 그럴 수가 없어요.
집에 좋아하는 걸 갖다 두고 꾸미는 데 마음을 쏟으면
집이 저에게 그만큼의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언젠가 이런 이야길 하신 적이 있죠. “뭔가를 열심히 좋아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다.”라고요. 오늘의 김현아를 소개해 주실래요? 

사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애써 꾸며서 정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소개할 때 항상 ‘회사원’이라고 하는데요. 좀더 덧붙이자면, ‘열심히 살고, 재미있게 사는 회사원’ 김현아예요. 

 

“열심히 산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인생에는 어쨌든 끝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고 싶어요. 그렇다고 매 순간 부지런하게 산다는 건 아니고, 저도 어떤 날엔 당연히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있고 하루를 날려버리기도 해요. 하지만 언제나 인생을 진짜, 정말, 무척 즐겁게 살고 싶어요.이번 인생에서 제가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의 ‘열심히’예요.

 

언제부터 재미를 원했어요?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살아온 환경 때문인 것 같아요.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어릴 때 이사를 많이 다녔거든요. 1년에 한 번은 전학을 가다 보니 생활환경이나 친구들이 계속 바뀌고…. 저한테 변하지 않는 건 가족 말곤 없었어요.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고 재미를 찾는 어린 시절을 보냈죠. 

 

어릴 때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고 싶어요. 

아버지가 철원에서 근무하실 땐 전교생이 100명도 채 안 되는 학교에 다녔는데, 철원의 겨울은 꽤 춥거든요. 그 추운 날 친구들이랑 얼어붙은 강을 깨면서 놀았어요. 얼음낚시 비슷한 걸 하면서 재미를 찾은 거죠.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지내다 보니까 여러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지루할 틈은 별로 없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장난감을 많이 사 주시는 타입도 아니어서 스스로 재미를 찾아 다녔어요.

 

그러다 미국으로 가신 거군요.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현아킴벌리@hyunakimberly잖아요. ‘킴벌리’란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아(웃음), 킴벌리는 제 영어 이름이 아니에요.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미국으로 갔는데, 거기 제 한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외국인이 한 명도 없었어요. 발음을 계속 짚어주는 게 좀 귀찮아져서 나중엔 “난 킴이야.” 그랬더니 한 3-4학년쯤 됐을 땐 킴벌리를 줄여서 킴으로 부른다고 아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제 기준에 킴벌리는 촌스러운 영어 이름이거든요. 한국으로 치자면 ‘영자’ 정도…. 미국 중서부 어디 즈음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의 이름일 것 같은데(웃음), 한국에서 유학 온 애 이름이, 그것도 직접 선택한 이름이 킴벌리라고 생각하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웃자고 지은 계정명이 현아킴벌리예요. 그게 제 이름처럼 완전히 붙어버린 거죠. 지금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어서 ‘The Joke Is On Me.’가 됐어요. ‘내가 한 농담에 내가 당한다.'(웃음).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이미지가 강해요. 요새 특히 좋아하는 건 뭐예요?

정정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남들보다 좋아하는 것에 채도가 높을 뿐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히려 싫어하는 걸 더 열심히 하는 편이죠. 어떻게 보면 싫어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것도 인생을 열심히 살고 싶어 하는 태도의 한 부분 같고요. 그래서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더 대답하기 어려워요. 제가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는 영역이 아니어서요.

 

어, 저는 왜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으로 저를 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기반이기 때문에 거기 굳이 보기 싫은 걸 올리진 않거든요. 싫은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나 이거 진짜 싫어.” 했을 때, 누군가는 ‘나는 이걸 좋아하는데 왜 싫다고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질문을 좀 바꿔볼게요. 지금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건 뭐예요?

요즘요? 늘 달라지는데, 친구들이랑 환경 문제도 자주 이야기하고… 혹시 <걸스>라는 미국 드라마 아시나요?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레나 던햄Lena Dunham이 스물다섯 살 때 감독, 연출, 각본, 연기까지 전부 맡아 만든 드라마인데, 여자 주인공이 전형적인 미인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가 뉴욕에서 살아가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외모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외모는 누군가를 설명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 때때로 특혜가 되기도 해요. 특히 우리나라에는 ‘면접 프리패스상’, ‘상견례 프리패스상’ 같은 단어도 있잖아요. 외모 덕분에 이익을 보기도 하고요. SNS만 해도 예쁘고 멋있는 사람들은 팔로워가 영향력으로 작용하기도 하니까요. 왜 ‘흙수저’나 ‘금수저’ 같은 이야기는 하면서 외모가 누군가에게 특권이라는 얘기는 없을까 싶더라고요.

 

이런 관심이 “열심히 싫어하는 것”과 연결되기도 할 것 같아요. 요즘 열심히 싫어하는 건 뭐예요? 

음… 저를 오래 봐온 친구가 저한테 “넌 되게 자연스러운 사람 같아.”라고 말해 준 적이 있어요. 제가 들은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이죠. 자연스럽다는 건 꾸밈이 없다는 거고, 그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기도 해요. 보여주기 식의 행동은 경계하고 싶어서 제 행동을 종종 점검해요. 혹시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의식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 건 제가 열심히 싫어하는 것 중 하나거든요.

 

그럼 오늘은 꾸밈없이 이야기해 볼까요? 지금까지 살아온 집이 매체에 종종 노출되었고 ‘랜선 집들이 영상’으로 이 집을 직접 공개하기도 했죠. 집은 현아씨한테 어떤 의미예요?

제 기분을 최대치로 유지해 주는 공간이요. 저는 제가 늘 기분이 좋길 바라요. 모두가 암담한 상황이어도 저는 조금 괜찮고 싶거든요. 집은 제 기분에 크게 기여하는 요소예요. 매일 아침 일어나고, 생활하고, 잠드는 공간이니까요. 옷은 한 번 입고 다음 날 안 입을 수도 있지만 집은 그럴 수가 없어요. 집에 좋아하는 걸 갖다 두고 꾸미는 데 마음을 쏟으면 집이 저에게 그만큼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요. 이 집은 제 삶의 양식이 녹아 있는 곳이에요. “여기 있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하고 싶은 거죠.

 

집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고 있어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요(웃음). 이 집을 소개해 주실래요?

여긴 서빙고동이에요. 건너편에 있는 신용산에서 잠깐 살기도 했는데, 이 동네가 그리워서 다시 이사 올 정도로 좋아하는 동네죠. 벌써 서빙고동에서만 7년을 살았네요. 한강이 가까운 것도 좋고, 남산타워와 63빌딩이 다 보이는 풍경도 좋아요. 무엇보다 이 동네에선 아는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어요. 사생활이 보장되는 건 저한테 안전하단 뜻인데, 이 집과 동네가 그런 안정감을 줘요.

 

주변 건물들이 높지 않고 시야가 확 트여서 시원해요. 빛이 잘 들어서 기분도 좋고요. 이 집은 복층인 거죠? 

맞아요. 원래는 이 건물 1층에 살았어요. 그때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줬는데, 여기 함께 사는 이 하얀 친구가 그 길고양이 중 하나였어요. 오드아이여서 ‘오이’라고 부르던 길고양이인데요. 이 아이가 저희 집에 들어온 후로 1층 집이 너무 좁게 느껴지는 거예요. 1층 집은 방이 두 개였는데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고 공간이 확 좁아 보이더라고요. 저는 제가 굉장한 영역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고양이도 마찬가지여서 제 영역을 침범받는 느낌이 들었어요.둘 모두의 영역이 확보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좀더 넓은 집을 찾다가 같은 건물 맨 위층이 나온 걸 보고 구경 갔는데, 너무 마음에 들더라고요. 넓고 채광도 좋고요. 지금은 오이 방을 따로 두어서 어느 정도 각자 공간이 생겨서 삶의 질도 좋아졌어요.

 

오이랑 함께 사는 건 어때요? 

저는 원래 반려동물에 반대하는 사람이었어요. 친구가 반려동물을 들이고 싶다고 하면 나서서 반대하곤 했죠. 같이 노는 데 규제가 많아지고, 책임감도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런 제가 오이랑 같이 살게 된 건… 오이는 추운 날이면 저희 집에 들어와 몸을 녹이고 가곤 했는데 가끔 안 보이면 걱정이 돼서였어요.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함께 살자 싶어서 집에 들이기로 결심했죠. 처음엔 둘 다 많이 힘들었어요. 오이가 길고양이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밤이면 지치지도 않고 우는 거예요. 새벽에도 다섯 시간, 여섯 시간씩 쉬지 않고 우는데 그게 정말 괴롭더라고요. 달래주고 싶어도 적응을 시키려면 거기 반응하면 안 된다고 하고…. 먹을 걸 주면 ‘울면 먹을 걸 주나 보다.’, 놀아주면 ‘울면 놀아주나 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는 듯 조용히 침대에 누워서 제 할 일을 해야 한대요. 한 달 동안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가 커져서 친구 만나면 매번 하소연하며 울었어요. 그런 시기를 버텨 이렇게 잘 지내게 된 거죠. 오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어요.

 

오이도 비슷한 마음일 거예요.

(오이를 바라보며) 오이가 행복하면 좋겠어요.

 

또 이 집의 어떤 포인트가 좋았어요?

저는 따듯하고, 가볍고, 여름 같은 느낌을 좋아해요. 집도 해가 가득 들어 찬 것처럼 화사하길 바라죠. 그래서 채광이 중요한데요. 채광이 좋은 곳 중에서도 특히 따듯해 보이는 집들이 있거든요.여기가 딱 그 느낌이었어요. 복층 구조여서 생활공간이 넓어졌고, 용도에 따라 어느 정도 구분해서 생활할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어요.

 

2층 테라스 공간 좋아하시죠. 랜선 집들이 영상에서 봤어요. 

전 햇빛이 너무 좋아요. 매일 기분이 날씨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어느 날 친구가 저한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삐뚤빼뚤 걷는다.”고요. 무슨 소린가 했는데, 길에 높낮이가 다른 건물이 있으면 그림자가 들쑥날쑥 지잖아요. 그 그림자를 피해 해 있는 쪽으로 걷더라는 거죠. 저랑 있으면 같이 그림자를 피해 걷게 된다는데, 제가 무의식중에도 해를 찾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해바라기도 아니고(웃음). 그래서 마당이나 테라스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전 집엔 마당이 있었거든요. 

 

집 꾸미기가 자연스러운 생활 같아요. 

어릴 땐 집 꾸미는 데 전혀 흥미가 없었어요. 관심이 생긴 건 온전한 제 공간이 생긴 이후죠. 어릴 땐 이사가 잦아서 제 방엔 항상 유통기한이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이 방은 1년짜리, 운이 좋으면 2년짜리…. 그러다 대학생 때 자취를 시작하면서 집 꾸미기에 관심을 가졌어요. 집에 대한 애정은 그 집이 얼마나 제 것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상황 때문에 부모님 집에서 혼자 3년 정도 산 적이 있는데요. 제가 구한 집이 아니어서인지 꾸밀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정말요? 어릴 때부터 방 꾸미기를 좋아했을 줄 알았어요. (거실 벽을 가리키며) 저 그림들, 랜선 집들이 영상에서 소개하셨죠?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 뮤직비디오에 나왔다던.

맞아요(웃음). 이 거실 인테리어가 저 그림 두 점에서 출발한 거예요.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색감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복숭아 같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안정되면서 고요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특히 작품처럼 큰 걸 구매할 땐 직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투자하는 게 아니고 옆에 뒀을 때 좋을 것들을 고르는 거여서 작가의 명성보단 제 직감을 중요시하거든요. 남들이 꾸며놓은 걸 보고 ‘나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은 잘 안 하는 편이라 물건은 따라 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특히 인테리어는 매일 곁에 두어야 하는 거니까 남이랑 겹치는 게 더욱 싫더라고요.

 

어떤 걸 보면 사고 싶어요?

오로지 직감. 딱 봤을 때 예쁘다, 갖고 싶다, 하는 것들!

 

아이템 하나만 자랑해 주실래요?

이 튤립 조명이요. 정말 특이하고 예쁘지 않나요? 이런 등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빈티지 조명인데 해외에서 배송 받았거든요. 판매자가 깨질 걸 걱정해서 몇 번을 안 팔겠다 했어요. 그래도 괜찮다고, 꼭 구입하고 싶다고 해서 들인 건데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깨져서 왔어요. 깨진 거야, 돌려놓으면 되죠 뭐(웃음).

가장 최근에 산 건 뭐예요? 

위에 있는데 올라가 보실래요? (2층으로 올라간다.) 침대에 있는 저 이불이에요. 이것도 튤립 패턴이네요(웃음). 제가 튤립을 참 좋아하는데 오이 때문에 생화를 들이지 못해서 튤립 모양 물건을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이불도 빈티지 침구인데, 배송할 때 문제가 좀 있었어요. 해외에서 오는 거다 보니 검열이 많더라고요. 도대체 이게 뭐길래 해외에서 오는 거냐고 통관 담당자한테 연락이 오길래 “이불이다. 중고 이불이다.”라는데 이걸 왜 해외에서까지 들여오는지 이해를 잘 못 하시더라고요(웃음). 오늘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어젯밤에 극적으로 배송돼서 기분이 엄청 좋았죠.

 

이거, 하나하나 손으로 만든 것 같은데요?

맞아요! 퀼트 이불이에요.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재택근무를 하신다고요. 좋아하는 집에서 일하는 게 스트레스이진 않아요?

전혀요. 저는 노동의 가치를 엄청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일은 제 가치를 증명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회사에 다닌다는 건 회사의 공동 목적을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는 거고, 성과를 내기 위해 모두 저마다 제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기도 하지만, 이런 과정이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집에서 일하는 건 좋아요.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까요.

 

세상엔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사람도 많은데….

어우, 진짜 우울할 것 같아요.

 

집에서 일하면서 새롭게 좋아진 부분도 있어요?

일단 늦잠 잘 수 있다는 거,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출퇴근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아요. 특히 제가 요리를 하게 됐다는 거, 팬데믹 이전만 해도 집에 요리 도구나 재료랄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밥해 주겠다고 놀러 온 언니가 올리브유, 소금 같은 걸 직접 들고 올 정도였죠. 근데 재택근무를 하니까 집에서 제가 스스로 뭔가를 해 먹게 되더라고요. 재미도 있고 맛도 있어요(웃음). 또 저는 업무 특성상 글로벌 회사랑 소통할 일이 많은데, 이른 아침에 연락할 일도 잦은 편이에요. 옛날 같으면 일찍 가서 업무를 봐야 할지, 집에서 보고 좀 늦게 출근해야 할지 고민했을 텐데 이젠 집에서 편하게 처리할 수도 있어요. 자잘한 고민거리가 사라지니까 일이 더 좋아졌어요.

 

근무는 2층에서 하고 있는 거죠? 

네. 재택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시간표를 정해두고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지금부터 일해야지.’ 하고 모드를 바꾸는 타입은 아니에요. 오히려 경계가 없는 상태로 생활과 일을 병행하는 편이죠. 집에서 일하더라도 루틴은 비슷해요. 9시 30분 출근인데, 20분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시간엔 밥을 해 먹어요. 저는 매끼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라 뭘 먹을지 열심히 고민하고, 퇴근이 6시라 퇴근하면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제가 엄청난 주당이거든요(웃음). 그렇다고 매일 마시는 건 아니고, 필라테스도 해요. 서른이 넘어가면서 허리가 안 좋아져서 마사지도 받고, 병원도 다녀봤는데 차도가 없던 증세가 필라테스를 다니니 사라지더라고요. 이젠 몸이 아픈 건 방치하면 안 되겠단 생각도 하게 됐어요.

 

랜선 집들이 영상에서 어머니가 인도에서 사 오신 빈티지 의자에서 일한다고 했죠. 좀더 편한 걸 찾게 되지는 않아요?

부연설명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단순히 예뻐서 사용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전자기기에 거부감이 심하거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블루투스 기기는 쓸 줄도 모르고 이해도 잘 못 했어요. 오랫동안 티브이랑 인터넷 없이 살기도 했고요. 전자기기랑 가까울수록 수동적으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지도 않았죠. 주체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옛날엔 인터넷도 없이 살았는데요. 3년 전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어요. 두 달 정도 못 걷고 지낼 때여서 재택근무를 하게 됐고, 집에도 인터넷을 설치해야 했죠. 그때 깨달았어요. ‘아, 나 왜 인터넷 없이 살았지?'(웃음). 그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데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와이파이 공유기를 2층에 설치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1층으로 내려오면 와이파이 신호가 거의 안 잡히더라고요. 뭔가 방법은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걸 찾아내기보다는 2층에서 일하는 게 편할 거 같아서 여기서 작업하는 거예요. 빈티지 의자가 생각보다 편하기도 하고요.

 

뭐든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못 참을 정도의 불편함이라면 빨리 조치를 취하자고 생각하고, 그 정도 불편함이 아니면 어서 적응하자는 주의예요. 1층에서 잘 안 터지면 2층에서 하면 되죠(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주는 제약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잘 못 찾겠어요. 공간이라는 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주체는 저예요. 이곳을 제가 어떻게 채우고 싶은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니까, 모든 게 저한테 달렸다고 생각하죠. 온라인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제 이야기로 채워나가는 거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공간에 대해 따로 의미를 생각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단지 나를 반영하는 요소라는 거네요.

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거.

 

이 집은 온전히 현아 씨만의 공간이겠군요.

맞아요. 그래서 친구들이 저희 집에 오는 것도 싫어요(웃음). 제발 좀 안 왔으면 좋겠어.

 

(웃음) 혹시 내 집 말고 또 기억에 남는 집 있어요?

달리의 집이요. 고등학생 때 살바도르 달리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제 사인을 달리 사인으로 사용할 정도로요. 그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바다 마을에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거기 달리의 집이 있거든요. 직접 가보지는 못했고 사진으로만 봤는데요. 조용한 바닷가가 펼쳐진 곳에 덩그러니 집이 한 채 있어요. 지붕 꼭대기엔 커다란 달걀 모양 조형물이 있고, 내부에는 천장이 있어야 할 곳에 엄청나게 큰 일본식 양산 같은 게 뒤덮고 있죠. 그 집 자체가 달리 작품 같아요. 초현실적이고…. 이 사람의 작품 세계나 성격, 유머가 전부 드러나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보실래요? (검색해서 휴대폰 화면을 보여준다.) 달리를 모르는 사람도 이 집을 보면 ‘여기 사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제가 원하는 집도 그런 곳이거든요.

 

그런 집에 가까워진 것 같아요. 여기 있는 동안 ‘밝고 건강한 사람이 사는구나.’ 싶었거든요. 앞으로는 어떤 요소들로 이 집을 채우고 싶어요?

그런 계획이 있었으면 벌써 들였을걸요(웃음). 앞으로 뭘 채워 넣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들이지 않을까요?

가벼운 미소를 마주할 수 있어 좋았고, 단단한 말씨에 귀 기울일 수 있어 좋았다. 발에 부딪히는 오이의 꼬리가 좋았고, 가만가만 들려오는 셔터 소리가 음악 같아 좋았다. 우리 사위에 있는 것들이 아름다워 더없이 좋았고, 이대로 열심히 좋아하고만 싶었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