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 Comes Here On The Wind

선택한 여백으로

문장에서 시작해 문장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날들. 이아립의 삶을 책으로 옮긴다면 긴긴 여백과 숱한 쉼표들이 문장 사이에 빼곡하지 않을까. 여기 안온한 공백이 있다.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쉼을 닮은 픽션들.

쉼을 부르는 목소리

이아립을 한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여백’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저는 노랠 만들고, 부르고… 혹자는 제 목소릴 들으면 ‘휴가 가고 싶다’,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하는데요. 퇴사를 부르는 목소리, 싱어송라이터 이아립입니다. 제 노랠 들으면 일하기 싫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퇴사보다 여행이 떠올라요.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노래는 좋은 것 같아요. 굳이 여행 가서 듣지는 않더라도요.

 

20년간 뮤지션으로 소개해왔을 테니 ‘음악’이란 단어를 빼고 설명해 볼까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사람, 흔들리는 곳으로 여행하는 사람.

 

고정된 틀이나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려요.

보통은 자신의 것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는 오히려 확고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있어요. 저는 그 경계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고, 그건 제 안에 있을 때도 있었죠. 돌이켜보면 저는 경계를 지우는 사람보다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같아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여기저기 힐끔거리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음악 활동을 이어오는 게 어떻게 가능했나요?

오히려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이어서 지속할 수 있던 것 같아요.

 

가벼운 마음이란 어떤 태도인지 좀더 듣고 싶어요.

일반적으로 음악을 녹음하는 건 어떤 잡음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걸 말해요. 그런데 저는 일상에서 직접 녹음기를 켜고 녹음하는 게 더 좋았어요. 생활 소음이 섞여 들어가는 자연스러움이 특히 좋았거든요.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공원으로 나가서 녹음하곤 했어요. 모래바람이 부는 3월의 공원에서, 노트북에 들어가는 모래를 툭툭 털어내면서요. 심지어 걸어가면서 녹음한 곡도 있죠. 제 방식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는 얘길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전 항상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꿈꾼 것 같아요. 굳이 공연장이 아닌 곳을 찾아서 공연을 기획하는 식으로요. 제 노래 ‘반도의 끝’에 이런 가사가 나오기도 하죠. “정말 그곳이 어디라도 오래 머물기는 싫어.”

 

그런 벗어남이 이아립의 스타일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맞아요. 그렇게 선택한 일들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죠. 큰길 내버려 두고 사잇길로 가는 사람, ‘저기로 가면 또 어떤 풍경과 만나게 될까.’ 궁금해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

처음 노래를 만든 날 기억하시나요?

정말 옛날이죠. 스마트폰은커녕 녹음기도 없던 시절. 고등학교 때 <대학가요제>를 보곤 저길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락방에서 곡을 썼는데 녹음할 방법이 없어서 악보를 그린 기억이 나요. 처음으로 만든 곡은 ‘엄마야 누나야’란 곡이었어요. 공들여서 그린 악보를 보냈는데 예선에서 탈락했죠(웃음). 인생 첫 자작곡을 경연대회에 보내는 건 무모했단 걸 깨닫고는 혼자 이런저런 곡을 만들면서 지냈어요. 그러다 PC통신 하이텔 소모임 ‘모소모(모던락 소모임)’을 알게 됐는데… 아, 요즘 친구들은 이게 뭔지 모르겠죠(웃음)? 여기서 언니네이발관이나 델리스파이스 같은 이른바 1세대 인디밴드들이 결성됐어요. 모던록 음악 감상회 같은 걸 하던 데였죠. 저는 여기서 흘러 흘러 스웨터라는 팀의 보컬까지 맡게 됐어요. 뭘 하겠다는 또렷한 생각이나 자의식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운 좋게 음악도 하고 공연도 하게 된 거죠.

 

지금은 명확한 목표나 기준이 있나요?

음…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생기는데, 그때그때 달라져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요. 팀 작업을 할 땐 조율이 힘들어서 타이밍을 놓친 것들이 있는데, 개인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을 때 시도할 수 있게 됐어요. 팀으로 지낸 시절이 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할 수 있는 게 명확해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고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많고, 하고 싶은 걸 한다고 꼭 잘될 거란 보장은 없잖아요. 그런데도 하고 싶은 걸 추진한 원동력이 있다면요?

야망이 크지 않아서…? 또렷한 지향점이 없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소박한 제 삶에 작은 목표가 있다면, ‘하루에 한 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음악도 이 정도의 야망으로, 이 정도의 욕심으로 곡을 만들고 발표해 왔거든요. 평소 물욕이 별로 없는 것도 한몫한 것 같고요.

 

하고 싶은 걸 해서 잘됐다 싶을 때도 있고, 망했다 싶을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해요. 그러곤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떠나죠. 저는 그걸로 충분한 사람이에요. 망했다거나 잘됐다는 건 항상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저 제 노래가 나오기만 하면 “됐다!”거든요. 가령 제가 농부라면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걸 보기만 하면 “됐다!” 하고 돌아서는 거예요. 다른 농부들은 포장은 어떻게 하고 판매는 어떻게 할지, 수익은 얼마나 낼 수 있을지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어요. 사실 다른 농부들처럼 해야 결과물이 쌓이는 건데, 저는 그런 면에서 아카이브에 욕심이 없는 뮤지션 같아요. 그래서 음악을 20년이나 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무리에서 벗어난 태도 같기도 해요.

되돌아보면 팀 생활을 제외하면 무리에 속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유년 시절에도 친구들 무리에서 한참 벗어나 쉬는 시간에 혼자 창밖을 보는 아이였죠. 창밖으로 고갤 내밀면 저기 복도 끝에 있는 누군가와 종종 눈이 마주쳐요. ‘아, 나 같은 애가 한 명쯤은 더 있구나.’ 하면서, 그 정도의 느슨한 소속감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열두폭병풍’ 같은 활동도 가능했군요. 레이블을 만들어서 소속사 없이 직접 앨범을 만들었잖아요.

열두폭병풍은 저 혼자 기획, 녹음, 유통, 홍보까지 했던 개인 레이블이에요. 초기엔 평범하지 않은 형태로 음반을 발매해서 복합 예술을 하는 거냐는 말도 들었어요(웃음). [첫번째 병풍-반도의 끝]은 까만 종이봉투에 담아서 발매했고, [두번째 병풍-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은 전시회를 시작으로 엽서, 수첩, 포스터와 함께 구성한 앨범을 작은 책방에서만 판매했거든요. 어설픈 작업과 유통으로 불친절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제 의지대로 한 거라 저는 재밌었어요. 

 

열두폭병풍은 어떤 의미인가요?

할머니가 병풍 자수를 하시던 분이셔서 어릴 땐 마루에 병풍을 펼쳐놓고 한 땀 한 땀 수놓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어요. 음악으로 개인의 아름다운 배경을 만들어주고 싶단 생각이 병풍 자수와 닮은 것 같아 열두폭병풍이란 이름을 붙였죠. 제 음악이 누군가의 중심이 아니라 병풍 같길 바랐고, 그 병풍에는 개인의 모든 것을 담고 싶었어요.

 

방금 말한 ‘개인’은 이아립 본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뜻하나요?

네. 누구여도 상관없어요. 어떤 창작물이 한 개인의 온전한 것이 될 때 그 결과가 몹시 흥미로워 보였거든요. 모든 걸 혼자 하면 놓치는 부분이 많지만,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분명하게 있어요. 그게 재밌고 좋아서 열두폭병풍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2016년에 발매한 [다섯번째 병풍-망명] 이후 소식이 뜸해요.

아, 4월 8일에 싱글이 하나 나올 예정인데 [여섯번째 병풍]으로 해볼까요? 생각도 못 했네요. 말 나온 김에 한 번 들어볼까 봐요. 제목은 ‘마중 가는 길’이에요. (함께 노래를 듣는다.)

 

마스터링도 안 된 곡을 듣다니 영광이에요. 한 음절, 한 음절 집중해서 듣게 돼요. 어디로 마중 가는 건가요?

어디로, 누구를 마중 가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게 너였으면, 그게 기다리는 소식이었으면, 하고 쓴 곡이에요. 빗소리를 듣다가 옷을 주워 입고 무작정 마중 가는 장면을 상상하며 만든 곡이죠.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면 먼저 마중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렇게 비 내리는 밤이라면 더욱 괜찮을 것 같았고요. 말하자면 빗소리가 부추긴 마중 가는 길이죠.

나란히 뒤로 걷는 음악

많은 사람이 이아립의 음악은 위로라고 이야기해요. 알고 있나요?

왜 그럴까요(웃음)? 요즘은 다들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한밤중에도 도시는 반짝거리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어 쉴 틈이 없죠. 요 앞 빌딩들만 봐도 불 꺼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다들 앞만 보고 걸어갈 때, 제 음악은 혼자 뒤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위로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는 이 무리를 벗어날 수 없지만 나와는 반대로, 뒤로 걷는 것 같은 음악을 들으며 위안 삼는 거죠. 쉼표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 삶에 없는 것에 위로받는 거네요.

노래가 뒤로 걸어가는 건 그런 느낌일 뿐, 실은 듣는 사람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을 거예요. 뒤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나눠 가진 채 같은 쪽으로 걸어가는 게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공감을 통해 위로받는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려면 노래에 내 이야기만 담을 순 없을 것 같아요.

나’가 있어야 ‘너’도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사랑 이야기를 참 많이 써왔는데요. 제가 누군가에게 품는 마음은 어느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게 사회적이란 말이 있듯, 개인적인 마음이 가장 보편적인 마음일 수 있거든요. 남의 마음을 상상하며 써본 적도 있지만 복잡하고 부자연스럽게 들리더라고요. 제 마음이 오히려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제 이야기에만 집중해요. 좀 아이러니하죠?

 

반대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들으며 내 마음 같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너무 많아요. 슬플 때, 외로울 때, 쓸쓸할 때, 하지만 진짜 제 맘 같은 곡은 아무렇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틀었는데 어떤 노래가 헉 하고 꽂혀선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하잖아요. 택시에 탔는데 들려오는 노래가 내 맘 같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땐 혼자 중얼거려요. “미쳤네, 타이밍….”

 

이아립의 음악은 음악이지만 그림 같기도 하고, 그림 같지만 영화 같기도 하고, 영화 같지만 시 같기도 해요. 모든 예술이 골고루 묻어 있는 느낌이죠.

노래를 쓸 때 영상이나 장면이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예컨대 ‘서라벌 호프’ 같은 곡은 오래된 커플이 헤어지는 날의 이야기인데요. 두 사람이 평소에 자주 다닌 서라벌 호프에서 만나 건배하는 모습에서 시작돼요. 그러면서 여자의 독백이 이어지는데 그게 이 곡의 가사가 되었죠. 이렇듯 영상과 함께 떠올리는 가사여서 노래가 좀 회화적이지 않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노랠 들으며 또 다른 장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장르라고 하니까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디자이너로 일한 경력도 있잖아요. 일 잘하는 직원이었다던데, 그때 경험이 지금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그럼요. 디자이너 경력 덕분에 제 음악도 디자인이 좀 된 것 같아요. 실제로 디자인한 적도 있고요. 무슨 말이냐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불러오면 음파가 파형으로 그려지거든요. 저는 그 음파를 시각적인 요소로 파악하고 디자인하듯 장난친 적도 있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한 게 아니라 오로지 파형의 모양만 보고 걷어내면서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만든 음악이 ‘헤드라잇 춤’이라는 곡이에요. 음악을 디자인한 셈이니 음악적으로는 법칙이 없는 것처럼 들리죠. 들어보면 아실 텐데, 뒤쪽에 노래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게 그런 이유예요. 이건 믹스를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고(웃음). 이렇게 하고 싶은 걸 다 해봤기 때문에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의 뮤지션들과는 다른 길을 걸은 셈이죠. 그렇다고 제가 특별하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많이 모자라죠. 조금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고나 할까요?

안녕, 이기분 씨?

<오늘의 기분>도 조금 다른 행보였죠. 어라운드 이번 호 주제도 ‘오늘의 기분’이어서 반가웠어요. 소개해 주실래요?

<오늘의 기분>은 작년부터 인스타그램으로 연재한 그림의 제목이에요. 소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이기분’ 씨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그림인데요. 누구든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예쁜 구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생각해 보면 기분이 나빠질 때도 별거 아닌 경우가 많아요. 문득 이 ‘기분’이라는 것이 참 사소한 건데도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아니 나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죠. ‘오늘의 기분’은 사소하지만 소중한 오늘의 기분을 생각하며 지은 제목이에요.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내게 다가오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의 기분을 만듭니다.”라는 생각으로, 좋았던 기분을 떠올리며 한 컷 한 컷 그린 그림이죠.

 

어떻게 시작된 그림인가요?

전성기를 지난 음악가의 현실적인 고민에서 시작됐어요(웃음). 작년엔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촌에 작업실을 하나 구했어요. 노트를 펼쳐놓고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을 보냈죠.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문방구, 포스터 숍부터 공연장, 백과사전 서점, 나중에는 의류 브랜드까지 떠올렸는데 고민할 때마다 내용이 바뀌더라고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저는 점점 지치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뭐든 새롭게 시작할 준비가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오늘의 기분>이 찾아온 거군요.

고민만 거듭하다 번아웃 직전이 되어선 ‘와, 도저히 안 되겠다.’ 하면서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거기서 뭘 했는지 아세요? 노트를 사서 매일매일 동그라미만 그렸어요. 하루에 한 권씩은 그린 것 같아요. 머릿속은 복잡해서 터질 것 같은데 이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를 펼치고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펜을 못 쥘 만큼 손이 아플 때까지 그렸죠. 그러다 그 동그라미가 얼굴이 되고 팔다리가 생기면서 이기분 씨가 탄생했고, 일주일 치 계획을 세워서 에피소드를 만들어갔어요. <오늘의 기분>은 나는 뭐가 될까, 앞으로 뭘 하고 싶은 걸까 같은 고민을 멈추게 한 유일한 통로였어요.

 

오후 4시면 커피를 내리고 도서관 입구에 붙일 문장을 쓰는 이기분 씨의 삶은 어쩌면 아립 씨가 꿈꾸는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처음엔 <오늘의 기분>을 그리면서 서촌 작업실에 소도서관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들어와서 책을 읽거나 작업할 수 있고, 원하는 분에겐 드립 커피도 내려 드리는 공간을 구상했죠. 부지런히 작업해서 그림과 함께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무산됐어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게 힘에 부쳐서 소도서관을 준비할 여력이 없었거든요. 반년 동안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를 질문해 봤는데 안 될 것 같았어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제가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일한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되더라고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할 때마다 울상인 얼굴이 그려졌는데, 그런 기분으로 소도서관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민하다 보니 ‘그림을 모아서 책을 내자!’는 생각에 닿았어요. 그리고 출판사를 열기로 했죠.

 

출판사요?!

그간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을 했던 이아립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생각한 거죠. 작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면서 다짐을 하나 했는데, 뭘 하든 문장에 기반한 일을 하자는 거였어요. 음악도 문장이 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고, 책이랑 포스터를 만들고 싶단 생각도 문장으로 완성된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거든요. 문장이 담기는 물성은 곧 책이니 출판사를 하면 되겠단 생각이 든 거죠. 전 어릴 때부터 음악보다 책을 좋아했어요. 작년에 가장 많이 한 생각 중 하나가 ‘책 한 권을 다 쓸 수가 없어서 대신 3분짜리 음악을 만들어온 게 아닐까.’라는 거였죠.

출판사 소개를 들어봐야겠는걸요.

이름은 ‘픽션들’이에요.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거짓들이란 의미죠. 저는 조금의 거짓이 들어가야 더 진짜 같아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표적으로 영화가 그렇고, 일기도 거짓말을 한 스푼 정도 담아야 훨씬 재밌어지잖아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정말 좋아했어요. 남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서 평생 남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면 내걸 다 팔아서라도 듣고 싶다고 생각했죠. 저는 세상이 모두 픽션이라고 생각해요. 저라는 사람은 하나지만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생각할 텐데, 그것도 전부 픽션 같아요. 그래서 픽션들이란 이름으론 무엇이든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픽션들에서 다루게 될 책은 그리 두껍지 않은 책들이에요. 얇고, 가볍고, 재미있고, 빨리빨리 읽을 수 있는 책. 소설집 위주의 작업이 될 거고 사진집도 구상 중이에요. 《오늘의 기분》도 픽션들에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되는데요. 픽션들에 직원도 생기는 건가요?

그럼요. 지금은 편집과 디자인을 제가 하고 있지만, 2-3년 정도 브랜드로서 픽션들을 알리고 직원도 두면서 차차 소도서관 같은 공간을 만들 계획이에요. 

 

정말 소도서관이 생기는 거군요.

언젠가 꼭 하고 싶은 꿈이에요. 사실 요즘엔 동네 카페만 가도 소도서관 같잖아요. 저는 커피가 있고, 개인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소도서관이라 부르고 싶어요. 작은 서가에 픽션들 책도 놓고 원하는 분들께는 커피도 내려 드리고…. 이기분 씨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어요. 

 

꿈을 향해 가는 데 두려움은 없나요?

작년에 인생의 두 번째 성장통 같은 것을 겪으면서 외적으로, 또 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그 힘듦의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죠. 그런데 희미한 꿈이더라도 스스로를 재촉하거나 몰아세울 필요는 없단 걸 깨달았어요. 꼭 확고한 꿈과 완벽한 준비가 아니더라도 방향만 잡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저는 시행착오도 많이 두렵지만 시행착오도 못 하는 삶보단 해보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뭘 해야 포기도 하고 실패도 하는데, 포기도 실패도 못 하는 삶은 결국 성공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거든요.

 

뮤지션을 은퇴하는 건 아니죠?

뮤지션을 한다, 안 한다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음악을 해도, 혹은 안 해도 제 바탕은 뮤지션이니까요. 다른 게 있다면 전에는 책을 좋아하는 뮤지션이었다면 이젠 출판사를 하는 뮤지션이 되는 거겠죠.

 

아립 씨의 미래에 잠깐 다녀온 느낌이에요.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요?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질문을 들으면 “곱게 미치고 싶어.” 그랬어요. 지금 저는 곱게 미쳐 있는 것 같아요(웃음). 어떻게 살고 싶은지는 모르겠어요. 그때그때, 바람이 부는 대로 달라질 것 같아요. 어떻게 살고 싶은지 확신하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확신을 가질까 봐 무서워요. 확신을 갖게 되면, 그게 틀어졌을 때 사람이 괴물 같아지거든요. 

 

질문을 바꿔 볼게요. 지금의 이아립을 이야기해 본다면?

<오늘의 기분> 중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어요. 양말통을 열면 새 양말과 헌 양말이 있는데, 이기분 씨는 항상 늘 신는 낡은 양말을 골라요. 옷과 잘 맞는 양말이 있더라도요. 지금까지는 저도 신고 버릴 것 같은 낡은 것들을 선택했어요. 요즘엔 새것도 신으려고 애쓰는데, 그 새것들을 보니 살아오면서 선택한 것보다 선택하지 않은 게 나를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좀 모호하지만 저를 단정적으로 설명하진 못하겠어요. 

어떻게 보면 첫 질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저에겐 여백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릴 때도 여백이 많은 게 좋아요. 여백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가 선택하고 디자인한 공간이잖아요. 저는 그런, 의도한 여백을 만들기 위해 애쓰며 살아요. 그게 없으면 나중엔 제가 전혀 원하지 않은 그림이 나오거든요.

이렇게 정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아립에게 여백은 ___________다.’

저에게 여백은 ‘당신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빈칸’이다. 픽션들도 어떤 여백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거든요. 책이 나오면, 제가 여백을 만들기 위해 어떤 애를 썼는지 펼쳐봐 주세요.

이기분 씨, 소도서관을 소개해줄래요?

이기분 씨, 요즘 일과는 어때요?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