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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핀현준, 박애리 가족
SHAPE OF CONTRAST
AND HARMONY
팝핀현준, 박애리 가족
공연예술가, 국악인
무대가 밝아진다. 한복을 입은 여인의 절절한 목소리가 넓은 공간을 채운다. 애절한 음성과 구슬픈 장단에 맞춰 한 남자가 몸을 움직인다. 리듬에 맞춰 몸이 멈췄다가 파도 같이 부드럽게 흐른다. 꽁꽁 숨어 있던 마음의 이야기를 온 힘을 다해, 소리와 몸짓으로 분출하는 이들. 공연예술가 팝핀현준과 국악인 박애리를 볕이 따스한 집에서 만났다.
평창 올림픽에서 열린 축하공연은 잘 마치셨죠?
남현준 네, 평창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무대를 펼쳤어요. 평창 올림픽을 기념하며 <평창 아리랑>도 발매했고요. \박애리 <불후의 명곡> 창사 45주년 무대도 준비하고 있어요.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을 많이 고민하며 보여드렸는데, 다시 보고 싶은 공연으로 뽑혀서 기분 좋게 아리랑 무대를 연습하고 있어요.
처음 두 분이 함께 무대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합동 공연을 계획한 계기가 있었나요?
박애리 결혼을 준비할 때였어요. 현준 씨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특별한 결혼식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국립극장에 공연기획안을 제출해서 ‘그와 그녀의 이야기’라는 웨딩 콘서트를 기획했어요.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모았더니 한 편의 공연이 되더라고요. 그 무대를 보고 많은 분이 이런 공연을 또 볼 수 있겠느냐고 기대를 해줬어요. 현준 씨가 음악도 잘 만들어내서 합동 무대를 하나씩 기획하다가 <더 콘서트>, <불후의 명곡> 같은 TV 음악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어요. 공연장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한정적인데 방송은 불특정 다수가 보다 보니 저희 무대를 많이 알리게 되었네요.
장르의 경계를 넓힌 새로운 시도였어요. 관객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해요.
박애리 한때 사람들의 전부였던 국악이 지금은 많이 소외되었어요. 오랫동안 우리 안에서 표현되어 왔기에 언제든지 끄집어낼 수 있는데 그걸 모르고 살아가죠. 지금 내 입맛에 맞는 음악을 쉽게 취하고 국악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어릴 때 판소리를 배우고 매료되면서 이걸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기게 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 소리와 장단, 악기를 노출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죠. ‘국악이 이렇게 나를 편하게 해주는 거였어?’, ‘내 안에 이런 감성들이 있었어?’ 하고 느끼면 좋겠어요.
남현준 국악은 우리의 전통 문화인데 사람들이 잘 몰라요. 알려고 하지도 않고요. 저는 이런 현상이 문화사대주의라고 생각해요. 외부에서 온 문화는 높게 보고 외국에서 터져야 무조건 잘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외국인을 겨냥해서 전통을 바꿀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문화의 내실을 잘 다져서 그 힘으로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해요. 저랑 박애리 씨가 하는 문화는 크로스오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전통과 현대를 100% 살리지 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상한 장르가 될 수 있어요. 두 가지를 다 충실하게 담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박애리 씨는 구음이나 판소리에서 오는 아니리를 잘 바꿔서 대중적인 소리로 전달하려 노력해요. 저도 4분의 4박자인 비보이 춤을 전통 소리나 박자에 맞추려고, 소리의 탄생이나 에너지를 배우며 무대를 준비해요.
진심이 통했네요. 두 분의 무대를 보면 ‘국악이 이렇게 세련되고 편안한 음악이구나.’를 느끼거든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짜는 편인가요?
박애리 우선 저희에게 주어진 곡이 있으면 여러 해석을 해보는 편이에요. 노래를 듣고 서로 얘기하다 그 이야기를 확장해나가요. 성을 몇 번을 쌓았다 무너뜨리는지 몰라요. 처음 생각하던 거에서 전혀 다른 음악으로 발전해나가기도 하고요.
남현준 부부라서 매일 이야기할 수 있어요. 존중하며 연습할 수 있고요. 이벤트로 하는 예술가 박애리와 팝핀현준의 만남이었다면 서로 양보를 안 할 거예요. 이건 내가 반드시 보여줘야 하고, 저건 반드시 저쪽에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불협화음이 나는 거죠. 저희는 부부니까 둘 중에 누구 하나가 돋보여도 우리 무대는 성공한 거예요. 이 노래는 소리로 표현해야 좋을 거 같으면 제가 과감하게 포기하고 소리로 밀어줘요. ‘아리랑’처럼 너무 유명해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는 박애리 씨가 과감하게 양보해주고요.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좋은 무대를 전달하려고 하는데 그게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잘 전달되는 거 같아 정말 다행이에요.
전통적인 악기와 비보이의 세련된 퍼포먼스가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도 많아요. 그 요소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거 같아요.
남현준 사실 무대를 꾸밀 때 과감하게 투자하는 편이에요. 공연예술가와 소리꾼의 공연이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커요. 정말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지 않을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주위에 보석 같은 아티스트가 많아서 그런 아티스트들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도 되는 거죠. 잘 만들고 싶은 마음에 미국에 있는 친구들을 부를 때도 있어요. 세계 대회에서 이미 인정받은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친구들과 함께하니까 무대도 풍성하죠. 저도 더 힘이 나고요.
박애리 우리가 출연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생겨나고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있어요. 더 큰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거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닐 거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잘 가지고 놀아보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무대를 마치고 관객의 환호를 봤을 때, 기분이 어떤가요?
박애리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예전에 했던 작품 중에 ‘변심’이라는 곡이 있어요.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는데, 노랫말이랑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커다란 풍선이 있다면 그 풍선으로 배를 건져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작품에 다시 건져내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긴 줄을 열 개 매달아 놓고 한 줄 끝에는 현준 씨가 매달려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걸 끌어당겨서 현준 씨가 공중으로 확 떠오르는 퍼포먼스였죠. 5미터 높이로 올라가는 거였는데, 높은 연습실이 없어서 새벽에 육교에 매달아 놓고 연습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감기에 심하게 걸려 전날 리허설 할 때까지 목소리가 거의 안 나왔어요. 응급실에 가고 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아주 극적으로 무대에 섰죠. 본 공연 날, 현준 씨가 줄을 타고 올라가다 손을 놓으면 허리에 걸쳐져서 내려와야 하는데, 발에 걸려서 툭 떨어진 거예요. 아찔했어요. 계획대로 해내진 못했지만 큰 무리 없이 공연을 마쳤어요. 환호를 받고 내려오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곡이 주는 아픔과 연습 과정의 마음고생이 한꺼번에 밀려 나왔어요.
예술가로서 서로 어떻게 바라보나요?
박애리 현준 씨를 보면 문득문득 제가 많이 갇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번은 같이 작품을 논의하는데, 저한테 랩을 해보래요. 제가 판소리처럼 랩을 할 수는 있다고 했죠. 그랬더니 랩 하는 사람처럼 하라는 거예요. 그건 좀 아닌 거 같다고 얘기했어요. 저는 되도록 한복을 입고 싶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국악을 노출하겠어, 하는 마음이거든요.그때 현준 씨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젊은 세대가 국악을 좋아하길 바라며 국악의 대중화를 부르짖으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아냐는 거예요. 그네들이 좋아하는 걸 해보지도 않고 마냥 ‘이거 좋으니까 들어. 너네가 듣는 거랑 비슷하지? 이거 사실 우리 음악이야. 그러니까 이거 듣고 우리 좋아해줘 봐.’ 하는 거는 너무 억지스럽지 않냐고요.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고 번쩍 번쩍 빛나는 황금 신발을 신고 모자를 뒤로 쓰고 푸른 치마에 흰색 민소매 옷을 입고 랩을 했어요. 뒷부분은 전통의 소리인 구음으로 노래도 했고요.
그날 저희가 <불후의 명곡>에서 우승을 했어요(웃음). ‘아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현준 씨가 왜 그런 걸 걱정하느냐고 하더라고요. 예술가는 쌓아온 걸 지키는 게 아니라 지켜온 걸 무너뜨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요. 그 용기가 예술가의 특권이 아닐까 하는데, 머리를 딱 맞은 거처럼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저는 33년째 하는 일에 누가 되면 안 되고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건 제가 만들어놓은 허상 같은 거였나 봐요. 자만심과 편견인 거 같더라고요. 현준 씨를 통해 예술이 얼마든지 넓어지고 확장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남현준 대단한 예술가죠. 예술적인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인성이 정말 훌륭하거든요. 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밑천은 인간성이라고 생각해요. 인성이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예술이 들어와도 거기서 무너져요. 자기 욕심에요. 박애리 씨는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고 후배 육성에도 힘쓰거든요. 저도 그런 가르침을 주는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또 정말 부지런해서 제가 좀 안일해지면 자극을 많이 받아요. 자기 길을 각자 열심히 가고 있어요. 거울삼아 보면서요. 박애리 씨는 너무나 좋은 텃밭에 예술성도 출중해서 뭐 대한민국 보물이라고 해도 되죠(웃음).
각자 해오던 음악과 새로운 예술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요?
박애리 둘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가 함께하는 활동은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이지 가지고 있는 거를 버리는 건 아니다.’ 해오던 걸 덜어내고 옅어지면서 새로운 것에 모든 걸 쏟아붓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오는 4월 21일에 국립극장에서 ‘춘향가’를 완창하며 판소리를 올려요. 우리가 해오던 자리에서 뿌리내린 것이 흩어지지 않고 깊이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겠죠. ‘전통 판소리를 계속하는구나. 하지만 장르를 개척해나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구나.’ 하고요. 같은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정말 슬픈 일이잖아요. 소모되는 것 이상 생산해야 하는 게 있는 거죠. 아무리 물을 퍼내도 이만큼의 물이 차올라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또 물을 줄 수 있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끊임없이 물을 만들어내는 게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현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해야죠. 그래야 우리가 창조한 새로움이 의미가 있잖아요. 그래도 전통문화는 확실한 체계가 있는데, 춤은 그렇지 못해요. 힙합은 어린 친구들이 만들어낸 모든 문화이기 때문에 오늘 챔피언이 영원한 게 아니에요. 내일 되면 챔피언 벨트 필요 없고 다시 인정받아야 해요. ‘저 형은 우리 춤 세계에서 제일 대단한 형이지.’라는 말을 들으려면 제가 누군지 늘 증명해야 해요. 1999년부터 저는 계속 세계 대회에 나가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대상도 받았죠. 계속 보여줘야 후배들이 제가 국악이랑 뭘 해도 인정할 거예요. 팝핀현준이라는 이름에 존경을 가지게 하려면 지속적으로 제 분야에 깊이를 가져야죠.
예술에 대한 단단한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유년 시절은 어땠나요?
박애리 아홉 살 때 목포시립국악원에 다니며 처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 소리를 코앞에서 듣는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소리를 배우고 싶고 잘하고 싶었어요. 어깨너머로 가야금도 익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한국 무용도 함께 배웠죠. 그런데 이것저것 배워도 판소리가 제일 좋더라고요. 친구들이 ‘노래하는 병’에 걸린 사람 같다고 놀릴 정도로 흥얼흥얼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어요. 학교에서 배운 시조를 소리로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했죠. 판소리를 정말 좋아했어요.
남현준 저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집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거리를 맴돌았는데, 당시 학교도 안 다니고 춤춘다고 하면 다들 비행청소년으로 알았죠. 배기바지를 입고 있으면 버스도 안 태워줬고요. 뭐가 되려고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댄서는 직업군에도 속해 있지 않거든요. 춤이 좋아서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나갔어요.
어쩌면 여러 편견과 싸워온 인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남현준 맞아요. 그 편견은 결혼 후에도 이어졌어요. 마흔 되면 춤 못 춘다, 춤춰서 우리 애리 먹여 살릴 수 있겠냐,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 편견과 늘 싸워야 했죠. 편견이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편견 때문에 많은 부분을 돌아와야 했어요. 배우지 못한 무지함은 가르침으로 바뀔 수 있지만, 배운 자들의 무지함과 알량한 자만심에서 생긴 편견은 저같이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큰 장벽이에요. 이 길을 가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춤춰서 너 뭐 될래?’가 아니라 ‘그래 한번 해봐라.’가 될 수 있게요. 안 봤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고 안 가봤다고 그 길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꾸준히 보여주고 고치며 노력하는 것이 이 사회의 편견을 좁혀가는 방법인 듯해요.
20년, 30년 같은 일을 해오고 있어요.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일 텐데요. 지금까지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요?
남현준 저에 대한 사랑이 원동력이에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확신도 있고요. 일, 사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의 미래는 다 연결되어 있어요. 현재가 좀 힘들고 고된 길이라면 그건 분명 좋은 미래를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끝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게 곧 인생이죠.
박애리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다 보니 10년, 20년이 훌쩍 지나 있더라고요. 제가 하는 소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일이에요. 삶에서 얻은 수많은 경험이 소리에 녹아나게 되거든요. 평생 내가 걷고 싶은 길 위에 서 있으니 앞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 것 같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길다 보면 다투기도 하죠?
남현준 안 싸워요. 같은 분야였으면 싸웠을 수 있죠. 모르는 장르니까 늘 물어봐야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저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서로에 대한 존경이 있으니까 싸우지 않아요.
박애리 제가 정말 못하는 분야를 잘하니까요. 게다가 많은 사람을 봤기 때문에 남편이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알죠. 제가 춤을 배워봤더니 역시 저는 목을 써야지 몸 쓰는 건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싸울 일이 없어요. 같은 무대에 오를 땐 서로 챙겨요. 제가 노래를 많이 부르면 현준 씨가 저한테 물 챙겨주고. 저는 남편 좀 쉬어야 하니 제가 노래하겠다고 하기도 하고요. 저희 어머님이 가끔 공연을 보러 오시는데 남편 자랑 좀 그만하라고, 팔불출이 따로 없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길거리를 누비던 춤꾼과 국악을 전하던 소리꾼이 아빠, 엄마가 되었어요.
남현준 전 친구 같은 아빠 같아요. 같이 춤추고 그림 그리죠. 예술이가 저한테 영감을 받을 거예요(웃음). 사실 딸이 가끔 저한테 “야”,“너가”라고 친구처럼 부르기도 해요. 편해서 그렇겠죠. 저도 그게 싫지 않아요.
박애리 저는 딸에게 무한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하는 말은 다 옳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바른 생각을 가진 엄마가 되어야겠다.’ 다짐하게 돼요.
두 예술가의 아이라서 이름도 예술이라고 지었다고요.
남현준 맞아요. 두 예술가가 만나서 생긴 아이니까 얼마나 예술일까 하는 생각에 태명을 예술이로 지었고 그 태명을 이름으로 정했어요.
박애리 현준 씨가 태명을 그대로 이름으로 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좋지만 아이가 나중에 어떻게 생각할까, 살짝 고민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예술이를 보면 자기 이름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곱 살 때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저희 소개를 하며 “우리 엄마와 아빠는 예술가야. 그래서 내 이름을 예술이라고 지은 거지. 나도 나중에 예술가가 될 거야.”라고 얘기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이들이 언어보다 먼저 배우게 되는 게 리듬이나 노래인 거 같아요. 예술이는 유독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겠어요.
박애리 배 속에서 함께 공연을 했죠. 그래서 박수도 늘 두 배로 받았어요. 예술이가 아기 때는 자장가 만들어서 불러주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즉흥으로 노래로 만들어 불러줬어요. 예술이가 세 살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어느 날은 코피를 보고 놀라서 울길래 그 상황을 노래로 만들어 불러줬더니 울음을 뚝 그치고 재밌어하더라고요. 예술이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해요.
남현준 지금도 예술이는 이야기나 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아마 태교의 영향인 거 같아요.
요즘 피아노도 배우나 봐요.
박애리 예술이가 배우고 싶다고 해서 다섯 살 때 놀이처럼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잖아요. 양손으로 치기 시작하면서 어려워하기도 하는데,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또 신나서 해요.
집 안 곳곳에 예술이의 흔적이 많아요. 사진 찍는 내내 종이와 펜을 들고 다니더라고요.
남현준 예술이는 화가가 되고 싶대요. 어릴 때부터 같이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지금은 혼자서도 잘 그려요. 예술이가 그리거나 표현하는 거 보면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나온 창작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마이크를 그릴 때 마이크 크기, 잡고 있는 손 크기 등을 머리로 생각하고 그리는데, 예술이는 손을 마이크에 얹고 노래하면 마이크가 빛나고 이런 상황을 한꺼번에 다 그리더라고요. 선이 막 엉켜있어서 정신이 없는데 다 표현하고 있는 거죠. 제가 보기엔 그림에 소질이 많아 보여요.
박애리 (예술이가 벽에 그림 그리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며) 한번은 예술이가 그린 그림을 어머님이 지웠는데, 현준 씨가 왜 지웠냐며 아쉬워하더라고요. 저희는 아이의 흔적이 집 안에 있는 게 좋아요.
예술은 유전일까요? 환경일까요?
남현준 유전적인 성향을 무시할 순 없지만, 재능을 타고나는 것보다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나는 게 더 중요해요. 예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시간 본인과 싸우고 또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성을 찾아내야 하거든요. 꾸준하고 진정성 있게 노력하는 마음은 재능만큼 중요하죠. 예술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타고나야 하거든요. 아니면 중간에 다 포기하게 돼요.
박애리 유전보다는 환경에 더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재능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각기 다른 선물과도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모님께 없는 재능이 아이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는 현준 씨 말에 공감해요. 어떤 재주를 타고나건 어려운 시기는 오기 마련인데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바탕에 있다면 인내하고 이겨낼 수 있거든요. 반면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더라도 본인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유전적으로 타고 난 것을 본인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금상첨화겠죠.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을 타고난’ 부모의 모습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어요. 예술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나요?
박애리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어요.
남현준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돼요. 예술이에게 저는 춤을 가르치고 엄마는 판소리를 가르치는데,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고 있어요. 만약 예술이가 깊이 배우고 싶어 한다면 적극적으로 끌어주고 도와주겠지만,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어요. 저도 예술이 엄마도 단 한 번도 예술을 억지로 한 적이 없거든요.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들의 감성이 자라며 무뎌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어린이의 유희를 이어가는 거라 생각해요. 어린이들의 예술적 감성을 이어줄 방법이 있을까요?
남현준 감성이 무뎌지기보다 우리나라 사회 구조상 감성적이면 성공할 수 없고 살아남을 수 없어서 그런 듯해요. 저는 중학교만 졸업했는데 사람들이 저한테 이러더라고요. “나이에 비해 굉장히 천진하네요.”, “창의적이네요.”, “개성이 강하네요.” 대한민국 시스템 안에서 길러진 사람이 아니라 그런 듯해요. 전 영어도 독학으로 공부했거든요. 외국 춤꾼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초대하면서 소통했어요. 많은 외국 친구들도 저에게 “넌 생각이 한국 사람 같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아마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과 유교 사상이 가지고 있는 틀이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창의성을 가두는 듯해요.
박애리 아이들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예술에 정답은 없잖아요. 이건 이렇게 해야지, 저건 저렇게 해야지, 하며 어른의 잣대로 틀이나 답을 강요하지 않고 각기 달리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존중해주는 거죠.
현준 씨는 재미와 열정이 가득해보여요. 애리 씨도 침착하게 자신의 꿈을 이어가고요. 열정과 꿈을 실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댄서나 국악인을 꿈꾸는 어린이를 위해 조언해주세요.
남현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면 길이 보일 거예요. 모든 고난과 그에 따른 보상은 다 순리이며 그런 높고 낮음이 우리 삶의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그 길을 가면 좋겠어요.
박애리 쉬운 일이 아니죠. 연습을 많이 해서 결절이 심해진 적도 있고 앞으로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인가 암담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좌절과 아픔들이 또 다른 감성으로 소리에 더해지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금세 잘할 수 있는 건 없어요.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그 길을 가면 좋겠어요. 빨리 잘하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보다는 천천히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정진하다 보면 꿈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갈 수 있을 거예요.
현준 씨의 유일한 취미가 예술이의 장난감 모으기라고요.
남현준 제가 원해서 모으는 거예요(웃음).
박애리 현준 씨 장난감과 예술이 장난감이 따로 있어요. 예술이 장난감이 아니라 자기 장난감을 모으는 거죠(웃음). 현준 씨가 아끼는 레고 장난감이 있는데, 어느 날 예술이가 그러더라고요. “아빠, 죽으면 이거 나 줄 거야?” 그 말을 들은 현준 씨가 죽기 전에 줄 수 있다며 바로 예술이에게 줬어요. 예술이 장난감과 구분해서 자기 장난감을 따로 잘 관리하고 있어요.
애리 씨의 취미는 뭐예요?
박애리 저는 판소리 사설이나 역사, 한시에 관련된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예술이랑 어린이 동화책을 읽는 게 재미있어요.
아이들이 어우러진 무대나 예술 활동도 기대가 돼요. 캐럴 음반도 만들었죠.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활동도 구상하고 있나요?
박애리 부모가 되고 나니 더욱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어린이들을 위한 무대도 많이 계획하고 있어요. 어린이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레퍼토리도 구축해갈 생각이에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