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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Go To Oreum Together?
오름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에게 오름은 바다만큼 좋은 곳이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휴식처이며, 친구들에게 제주를 소개하며 꼭 데리고 가는 곳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했다. 이번엔 나의 오름 말고, 그들의 오름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이 오름에 오르는 이유. 단수인 ‘그’가 아니고 복수인 ‘그들’인 이유.
이제 오름 이야기는 흔하다. 어떤 오름은 결혼식 사진 촬영 장소로 유명해져 입구부터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커플로 가득하고, 어떤 오름은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진입로가 막혀 교통정리를 위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피크닉 세트를 빌려 와 사진을 찍는 여행객이 많은 곳도 있으며, 주차장에 푸드트럭이 여러 대 세워져 있는 오름도 있다. 사람들의 걸음이 잦아진 탓에 생태 환경이 훼손되어 정상 주변을 통제하는 휴식년을 실시하는 오름도 생겼다.
그래도 오름을 또 한 번 소개하자면, 오름이란,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있는 기생화산을 말한다. 제주도에만 있는 단어로, ‘오르다’라는 의미가 있는 제주 사투리. 제주 어디서나 아주 흐린 날만 아니면 오름을 볼 수 있다. 제주도 전체에 오름은 368개 정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에 하나씩 올라도 1년 안에 다 오를 수 없다. 제주에서 산 지 7년 남짓. 그동안 가본 오름은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백약이오름, 용눈이오름, 새별오름, 따라비오름, 아부오름, 윗세오름, 말미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지미봉, 산굼부리, 수월봉, 성산일출봉 정도. 어, 하나씩 세다 보니 열 손가락이 넘어간다. 내 예상보다는 꽤 많은 오름을 올랐지만, 결국 368개 중 13개. 많지 않다.
억새가 좋은 계절이면 그 풍경을 즐기기 위해 오름에 올랐고, 달이 밝은 날엔 가까이서 달을 보러 오름에 갔다. 친구들이 여행을 오면 필수 코스로 오름을 찾았다. 하지만 한 번도 혼자 간 적은 없다. 혼자 바다도 가고, 공연을 보고, 영화도 보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는다. 하지만 혼자 오름을 오른 적은 없다. 혼자 밥 먹는 것보다 난도가 높은 일. 바다보다 오름과 더 가까운 중산간에 살면서도 그렇다.
최근 나의 지인은 혼자 오름에 갔다가 말 그대로 ‘변태’를 만났다. 다시는 혼자 가지 않겠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내 다른 친구는 오름에 혼자 갈 때마다 주머니에 칼을 하나 넣고 간다고했다. 칼날도 조금 꺼내 놓는단다. 위급 상황에 그 칼을 적절하게 사용하기는 물론 쉽지 않겠지만 그래야 안심이 된다. 이건 오름의 잘못도 아니고 내 친구들의 잘못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는 혼자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거나, 무기를 들고 오름을 오른다. 평화롭기 짝이 없는 제주의 푸른 오름에 오르며, 용기를 내야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오름에 가는 친구가 있다. 매번 혼자서 가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회원이 모두 여성인 ‘오름 모임’에 속해 있다고 했다. 혼자 가기 힘든 오름에 같이 가자고 모인 사람들이란다. 조금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모임 같은 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특히 모르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라니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오름 모임 이야기를 조금씩 듣게 되었다. 단체 채팅방에서 모임이 이루어지며 “○○오름 갈 사람” 하고 모집해 세 명 이상 모이면 출발한다고 한다. 보통 여럿이 모인 채팅방에서는 사담이 난무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오름 이야기만 한단다. 점점 이 모임이 궁금해졌다.
“너네 오름 모임을 취재하고 싶은데, 좋아하지 않으실 것 같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 매혹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민 끝에 며칠 뒤에 다시 물었다.
“혹시 취재 가능할지 모임에 물어봐 줄 수 있어?”
친구가 속한 오름 모임 ‘소오름’에 정식으로 취재 제안을 했고, 소오름 회원 열다섯 명은 논의끝에 투표로 취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과반수 찬성이면 된다고 했지만 만장일치이어야 회원들도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 투표 기간인 만 하루 동안 조금 떨며 기다렸다. 투표 결과, 아홉 명이 투표했고, 모두 찬성!
“화요일 11시 물영아리오름 앞” 장소가 정해졌다. 미리 검색해보니 탐방로는 두 가지로, 경사가 심한 계단 길과 둘레를 돌아 오르는 능선길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천 개에 육박하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계단 길은 꽤 힘든 코스라고들 했다. 평소 등산을 잘 못 하는 편이고 걸핏하면 넘어지는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오름을 오르며, 취재하고, 사진도 찍어야 한다! 전날 밤엔 꿈도 꿨다. 듬성듬성 놓인 계단 옆으로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고, 마치 흔들 다리를 지나듯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건너는 꿈.
모두 여덟 명이 참석했다. 당연히 모두 여성이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연령대는 다양해 보인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회원들은 우선 능선길을 선택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름을 올랐다. 표지판 앞에 서서 오름 소개 글을 천천히 읽기도 하고, 미리 오름 공부를 해오는 편이라는 한 회원이 조금 더 상세히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노루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중간에 잠시 멈춰 각자 준비해 온 초콜릿과 귤, 커피를 나눠마시기도 했다. 그 사이 회원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는 주로 모레 오를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라산 등산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주저하고 있는 회원을 다른 회원이 같이 갈 사람이 있을 때 가야 한다며 설득했고, 자녀 하원 전에 하산을 완료해야 하는 회원은 등반 시간을 계산했다. 그리고 꽤 가파른 계단 길로 내려오는 동안은 다들 말수를 줄이고 발아래만 보며 오름을 내려온다. 서로를 배려하며 걷는 회원들 사이에서 나도 어렵지 않게 오름을 오르고 내려올 수 있었다.
회장님 옆을 걸으며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소오름은 ‘소규모 오름 모임’의 준말로, 처음엔 지역 카페를 통해서 모인 서너 명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보통 일주일에 네 번 정도 오름에 가는 편이고, 그중 각자 일정에 맞는 날에 참여하면 된다. 처음에는 규칙이 딱히 없었지만 모임이 지속되고 회원이 늘며 몇 가지 규칙이 생겼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참석할 것. 혹시 제주를 떠나게 되면 바로 탈퇴할 것 등등.
회원들이 모임에 가입한 이유는 하나, 오름. 제주에 사는 동안 최대한 제주를 경험하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엔 오름 하나 오를 때도 힘겨워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오름 두 개쯤 끄떡없이 오르기도 하고, 체중이 많이 줄어든 회원도 있단다. 그들은 꾸준히 오름을 오르며 체력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제주를 걸으며 건강해지다니. 이보다 좋은 제주살이가 있나.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회원들은 대부분 ‘엄마’들이고, 등교와 하교 시간 사이에 오름 모임이 시작되고 마무리된다고. 그런데 아이 이야기는 잘 하지 않고, 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단다. 단 하루였지만 오름을 함께 걷는 동안 나 역시 회원들의 나이도 자녀 유무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 친구와도 그렇다. 친구는 자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아이의 나이와 이름도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친구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으며, 동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의 신상을 캐는 자리를 불편해하는 편인 나는, 물영아리오름 계단을 하나씩 걸어 내려오며 이 담백한 모임에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오름은 열다섯 명으로 충분하다. 더 많아지면 단체가 되고 단체는 개인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개인과 단체 사이 적당한 숫자의 제2, 제3의 소오름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오늘도 몸을 일으켜 오름을 걸을 텐데, 함께 걸으면 편안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전한 마음으로 겨울의 오름을 걸어 올라갈 텐데.
글·사진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