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With Animals

멀리 달아나며 늘 함께
완두의 서울

제목을 정확히 고치자면, ‘완두가 있는 서울’.

골목의 냄새

내가 늘 오른쪽으로 가자고 해서 그런가. 산책을 나가려고 1층 현관문을 열면, 완두는 늘 왼쪽으로 줄을 살짝 당긴다. 오른쪽은 홍제천으로 가는 횡단보도, 왼쪽은 동네 골목으로 향하는 방향이다. 개라면 당연히 풀과 나무, 흙이 있는 길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내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종종 홍제천에서 아예 풀 냄새를 맡지 않고 앞으로만 걷는 걸 보면 말이다. 반대로 사람들 많은 복잡한 골목길에서 오히려 신나게 걸으며, 완두는 문 열린 곳 여기저기에 기어이 고개를 집어넣는 개다. 이런저런 시간들을 보내며 내가 짐작하는 것은 ‘개도 좋아하는 게 자꾸 변하는 것 같다.’ 정도.

나는 늘 완두 몸에 끈 매지 않고 살아가길 꿈꾼다. 대문도 헐겁게 만들어서 가끔씩은 하루 이틀 먼 곳에도 다녀오는 개의 지친 표정을 생각하면 명치가 찡하다. 그게 좋겠다고 하늘이 알려주는 기분까지 든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우리는 서울에서도 꽤 잘 지낸다. 거리에 사람들이 적은 시간을 알고 있고, 하루에 두 번 나가는 산책 시간을 거기에 맞춰 놓았다. 줄을 맸지만 안 맨 것처럼 많이 돌아다닌다. 완두 덕분에 알게 된 길들이 내 머릿속 서울의 모습을 적잖이 바꿔 주었다. 서울은 ‘구석’이 많은 곳이어서 애틋하다. 어디에나 구석은 있지만, 서울의 구석에는 사람들이 묻혀놓은 흔적들이 참 많다. 밤늦게, 멀리서부터 집에 걸어오는 길이면, 이 동네에 묻어 있는 우리 모습도 여기저기서 볼 수가 있다. 저 벤치에서 친구가 버스 타는 걸 기다려 줬었지. 방금 나온 꽈배기를 사서 걸으며 나눠 먹었지. 늘 완두의 브로콜리를 사던 슈퍼마켓. 한번은 매대에서 일하시던 분이 완두를 잠깐 잡아줘서 나 혼자 들어가 브로콜리를 사올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완두가 똥을 쌌는데, 바닥에 떨어진 그 똥이 세로로 딱 섰던, 기류가 유난히 좋았던 골목도 보인다. 이 동네에는 나와 완두의 기억만 해도 수없이 많이 담겨 있는데, 또 다른 이들이 남기고 떠난 일들은 얼마나 많을까. 문득 서울의 골목들은 물건이 계속해서 들어가는 가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의 후각은 사람보다 몇 배나 더 좋다고 하던데, 완두는 골목에 쌓인 그 냄새들을 맡고 있었을까.

서울의 산

완두를 데리고 먼 곳까지 여행한 적이 몇 번 있다. 차를 타고서 다른 친구들과 그들의 개 친구들도 함께.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그 여행은 부모님과 친척들까지 모시고 간 여행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고 일어나는 루틴, 먹이를 먹는 루틴도 모두 깨지고 잠자는 곳도 계속 바뀌는 바람에 개들도 지치고 사나워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지쳐 있던 완두 모습. 결국 그 여행들은 내 욕심의 모양을 잘 보는 꼴이 되었다. 내 생각에 완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가장 적당한 방법은 근처 산에 가서 하루 저녁 자고 오는 일정이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고, 들머리에 도착해서부터는 다음 날 하산할 때까지 끈 묶는 일이 없어야 좋다. 길 따라 걷는 우리가 한두 시간 남짓 산을 오르는 동안 개들은 그보다 서너 배는 더 움직인다. 야영을 시작하면 옆에 누워 금세 잠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게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다. 집에서 챙겨 온 특식도 먹고, 마음껏 짖고, 풀벌레 소리 들으며 잔다. 낙엽 위에 앉아 개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행복한 기분이 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신 뒤에 산에서 내려간다. 얼떨결에 활기찬 아침 산책까지 하게 된 개들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또 새근새근 잠을 잔다. 어린아이처럼 그 잠은 집에 와서까지 이어지는데, 꼭 산에 다녀왔을 때만 가능한, 그런 잠을 자고 있다. 개와 함께 사는 친구들은 이런 만족감 때문에 한여름이나 한겨울만 아니면 되도록 자주 산에 가려고 한다.

어느 지역의 산이나 그럴까? 내가 느끼기에 서울의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눈에 보인다. 길이 선명하고 위험한 곳에는 꼭 안전장치가 준비돼 있다. 그리고 높이 올라가면, 서울 한쪽의 불빛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나는 멀리 불빛이 깜빡거리는 걸 보는 게 좋다. 산속이라 주변은 아주 고요하고 저 멀리 내가 사는 곳에서 깜빡거리는 불빛. 별빛에는 없는 어떤 신호가 거기에는 담겨 있다. 아마 완두가 없었다면 야영하는 취미도 내 삶에 없었을 텐데, 하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숲속에서 우리가 잠들 때까지 도시 불빛들은 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창문이 많은 집

25평 투룸. 우리가 지내는 곳에는 큰 창문이 여섯 개나 있다. 서울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 작업실과 집이 하나로 합쳐져 있어서 산책할 때나 따로 약속이 있을 때가 아니면 우리는 좀처럼 나갈 일이 없다. 서울 안에 있지만, 그런 이름들은 이 안에서 지워진다. 서울의 특징이 아닌 우리 생활 방식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일과 먹이와 쉼이 있고 그걸 안전하게 지켜나가기 위한 것들만 있다. 의정부에서 살다가 독립해 서울살이를 한 지 이제 10년이 되었다. 늘 혼자 지내다가 덜컥 완두와 살게 된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직접 해보니 참 특별한 일이다.

사람과 함께 사는 게 늘 두려웠는데, 동물과 지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동물과 살다 보면 챙겨주고 지켜주는 관계가 역전된다. 사람들 대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엔 동물에게 챙김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완두가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혼자서 꽤 긴 외출을 한 적이 있다. “혼자 있을 줄도 알아야 돼.” 괜히 혼내듯 말하고 집을 나선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볼일을 보고 후다닥 집에 돌아왔다. 집 앞에 와서 3층 창문을 올려다보며 완두를 부르자 금세 창가로 나와 나를 알아봤다. 멀리서 봐도 엉덩이가 흔들리는 작고 검은 그림자. 나는 그때 눈물이 핑 돌며 깨달았다. 혼자 있을 줄도 알아야 돼. 완두가 내게 그 말을 해주려고 나에게 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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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