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imental Journey

에디터 K의 가소로운 일상 기행
나의 집, 다섯 개의 짧은 이야기

유치하고 시시한 농담만 하고 싶지만 집을 생각하면 나는 늘 감상적이 된다.

연남동

30대 중반에 독립했다. 시작은 가벼웠다. 함께 살던 아버지가 딸기를 키우겠다며 지방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출퇴근을 구실로 서울에 방을 하나 구할 생각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고모가 말했다. “이제 완전한 독립이구나.” 지금 나이에 나가서 살면 돌아올 길이 요원하다는 말이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언젠가는 거쳐야 할 일이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때부터 나는 방이 아닌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모든 짐을 담아야 할 곳. 떠나기보단 머무르며 지켜야 할 곳. 부모가 죽으면 내가 붙들며 의지할 유일한 곳.

첫 집은 연남동의 2층짜리 오래된 주택이었다. 1,2층을 전부 쓴다면 좋았겠지만 내게 주어진 공간은 계단 아래 10평 남짓이 전부였다. 옆집엔 할머니가, 윗집엔 할아버지가 살며 작은 마당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감나무가 무르익는 곳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법한 크고 단단한 철문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소파를 사고 빔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식용유가 아니라 올리브 오일로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대도시의 잘나가는 여피가 된 것 같았다. 이웃 노인들의 귀가 어둡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매일 친구를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읽고 춤추다 잠들었다. 완벽하게 방탕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적어도 그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벌레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깨닫고는 이렇게 독백한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혼자 산 지 4년째 되는 해, 처음으로 다리 스무개 달린 벌레를 발견했을 때 내 반응이 딱 그랬다. 이 쾌적한 환경에 벌레라니 어찌 된 영문일까? 이 현란하게 생긴 아이는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그게 시작이었다. 녀석들은 화장실 타일에 끼는 곰팡이처럼 집요하게 나의 일상을 좀먹기 시작했다. 돈벌레, 꼽등이, 바퀴벌레··· 대충 지은 이름만큼이나 아무렇게나 생긴 녀석들이 제멋대로 집 안을 휘젓고 다녔다. 하루는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데 수챗구멍에서 꼽등이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그는 조금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뛰용 뛰용!’ 레트로 게임 속 용수철 효과음이 들리는 듯한 점프. 반복적이고 역동적인 움직임에 나는 겨우 이렇게 소리칠 뿐이었다. “자꾸 이러면 나는 죽고 싶어진다고!”

방역 업체를 불렀지만 박멸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래된 집의 특성상 외부로 통하는 구멍을 다 막을 수는 없다고. “그렇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죠? 대지진의 징조인가요?” 나는 울먹였고, 방역 청년은 주변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 무렵 연남동은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식당으로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마침 바로 옆집과 앞집에도 새로운 브런치 카페가 생긴 참이었다. 식당에서 방역을 하면 벌레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그게 우리 집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사진 속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한 브런치가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니. 그렇지만 그곳은 무려 인스타 맛집인걸···.

불면증에 시달린 지 여러 달, 환청처럼 들린 ‘샤샤샤’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어둠 속에서 두 마리의 정다운 짐승이 서로의 더듬이를 확인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샤샤샤.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채 눈을 감았다. 그래, 사랑이구나. 집세를 내는 사람으로서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다는게 서러웠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올린 채 울며 나는 생각했다. ‘과연 인생은 짠맛이로군.’

이사

도망치듯 새로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다섯 곳에 연락해 몇 가지 조건을 일러두었다. 외부로 통하는 구멍이 없을 것. 최소한의 볕이 들 것. 주변에 인스타 맛집이 없을 것. 그러나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서울의 집은 필요 이상으로 좁거나 어두웠다. 그게 아니라면 괴짜 건축가가 술김에 만든 전위예술 같았다. 다락을 오르듯 가슴 높이만 한 위치에 변기가 놓인 집, 억지로 공간을 분리한 탓에 창문 하나를 옆집과 반반씩 나눠 써야 하는 집, 수도를 틀면 뻘건 녹물이 터지는 집. 물론 그런 곳에도 사람이 살았다. 그것마저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기에, 타인의 집을 방문하는 동안 나는 매번 조심스러웠다. 선뜻 다음 집을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중 부동산 사장님의 급한 연락을 받았다. 금방 나온 매물이 있는데 벌써 세 명이나 보고 갔다는 거였다. 서둘러 반차를 쓰고 망원동으로 향했다. 지은 지 30년도 지난 낡은 빌라였다. 두 명의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사는 곳이었다. 집안 곳곳 손봐야 할 것이 많아 보였지만 긴 고민은 하지 않았다. 하루빨리 벌레와의 동거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장님, 제가 할게요. 다른 사람은 보여 주지도 마세요.” 집을 본 다음 날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국민은행에 구걸해서 빌린 돈으로 계약금을 치르고 이삿날을 잡았다. 그렇게 나의 연남동 라이프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식물

망원동으로 이사를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구석구석 새로운 동네를 산책했다. 오래된 주택들 틈에 젊고 작은 상점이 많다는 점에서 망원동은 연남동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연남동이 매일 다른 물건을 선보이는 세련된 쇼룸 같다면, 망원동은 아무렇게나 늘어놓고 파는 시장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동네였다. 자전거 벨을 울리며 쾌속 질주하는 할머니, 손녀의 입에 묻은 꽈배기 설탕을 닦아주는 할아버지, 분홍색 파마 캡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주머니, 경계심도 없이 느긋한 걸음으로 길을 건너는 고양이를 보면서 이곳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보다 망원동엔 자전거 수리점과 동물 병원, 꽃집이 많았다. 이름 모를 이웃의 일상이 무엇으로 채워지는지 상상하며 나 역시 습관처럼 퇴근길마다 꽃집에 들렀다.

집에 식물을 들이면서부터 일상에 작은 루틴이 생겼다. 각각 다른 생육 시기를 기억했다가 물을 주고, 해가 짧은 계절이면 볕이 드는 시간에 맞춰 창가로 자리를 옮겨줬다. 집에 물건이 쌓이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식물만큼은 아무리 보태도 과하지 않았다. 커다란 잎을 가진 알로카시아부터 물에만 담가도 쑥쑥 자라는 스킨답서스, 그의 친구 호야와 율마, 이름도 고상한 관음죽과 각종 야자들, 시장에서 주워온 고사리, 먼바다를 건너온 마오리 소포라까지. 외모도 내성도 다른 그들이 망원동의 작은 집에 모여 각자의 끈기로 살아갈 때, 나는 문득 어떤 고마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앙상한 계절에도 푸름을 간직해 줘서 고맙고, 무심한 나를 버텨주어 다행이라고.

힘든 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는데, 캄캄한 방에서 한참을 울다가도 식물이 자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엔 늘 작은 볕이 들었다. 그 손바닥만 한 온기를 바라보며 겨우 일어나 차가운 물을 마시고, 우는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며 ‘참 못났다.’ 생각할 때조차 식물은 말이 없었다. 그저 잎을 떨구는 것만이 자신의 가장 큰 울음인 것처럼 가만히 기다려줬다. 말보다 귀한 그 작은 고요로 나는 종종 커다란 위안을 얻곤 했다.

시차

여름에 겨울을 떠올리고 겨울에 여름을 속삭이는 것처럼, 지나간 후에야 그리워하는 시절이있다. 새로운 집에서 시간을 보낸 지 1년도 훌쩍 지났지만 나는 종종 연남동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곳을 거쳐 간 친구와 연인, 갈색 털을 가진 고양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어떤 인연들을 그리워한다. 그런 감상에 빠질 때면 벌레와의 끔찍한 추억조차 아련해진다. ‘살겠다고 도망 온 애들을 내가 다 죽이고 말았구나.’ 하고, 다 깨달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망원동 집 역시 다음 사람을 위해 비워줘야 한다. 그 끝이 오면, 그러니까 하나의 시절이 끝나고 나면 나는 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넉넉하진 않아도 식물이 자라기 좋은 볕이 들었고, 아이보리색 벽지가 따듯했으며, 소박한 모서리에 지도를 붙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한 여행이 끝나고 다른 여행을 준비할 때, 몇 번의 터뷸런스 끝에 처음 떠났던 시차로 스스로를 되돌릴 때, 그 통제할 수 없는 어지러움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다만 바랄 뿐이다. 이 멀미가 길지 않기를. 유치하고 시시한 농담으로 웃고 떠들며 마침내 온화하기를. 당신과 나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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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