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The Same Thing As Them

이따금 돌아보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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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이 그랬다. 상상은 기억이 될 수 있다고. 우리는 영화를 보며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고 상상한다. 그 상상은 기억의 일부가 되어 남는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니, 더 많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계에 기대어 기억을 찾고 싶을 때 이 영화 속 말들을 되뇌어본다.

내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으니까

<공포분자>(1986) | 에드워드 양 |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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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수록 세상이 작아진다는 것. 나이를 먹고 살아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경험 역시 그만큼 늘어 간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존재하는 세상이 작아진다고 느끼는 것은 알맹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소설가 주울분은 위태로운 결혼 생활 속에서 글도 잘 쓰지 못하는 답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걸려온 거짓 전화 한 통에 그의 삶은 큰 변화를 마주한다. 어쩌면 그 전화는 그가 원하던 새로운 사건일 수도 있겠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주울분은 남편을 배신하며 이기적이고 잔인한 선택을 이어간다. 제목 그대로 공포를 몰고 오는 공포 분자 같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한 편으론 그의 괴로움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늘 같은 하루가 이어질까 불안했고 자신의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외로워했다. 품었던 아이가 떠나간 슬픈 과거도 있었다. 총성으로 시작해 구역질로 끝나는 영화는 많은 물음을 남긴다. 나도 누군가의 공포 분자가 아닐까.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의 말에 이토록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 주울분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아니, 새로운 삶이 있기는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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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알잖아, 처음에는 기본적인 작법이나
학창 시절 경험에 기댈 수 있었어.
내가 겪은 일이 아니더라도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런 잡다한 것을 노트에 적어뒀어.
근데 이렇게 쓰는 건 의미가 없어졌어.
이제야 알겠어. 내가 가진 걸 다 써버린 느낌이야.
내가 살아온 30년이 이렇게 빨리 고갈되다니….
이제 난 부부들 얘기밖에 쓸 수 없어.
다른 건 생각이 안 나.
내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으니까.”

휴가를 즐긴 것처럼

<조 블랙의 사랑>(1998) | 마틴 브레스트 | 멜로

어느 날 ‘죽음’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자신을 죽음이라고 소개하는 그의 이름은 ‘조 블랙’이다. 그는 곧 죽을 운명에 처한 재벌가 ‘빌’에게 찾아와 세상을 구경시켜 주길 부탁한다. 빌과 함께 지내며 조가 바라본 세상은 다름 아닌, 사랑. 빌의 딸 수잔과 함께 전에 없던 최초의 사랑을 경험하며 삶에 머물고 싶게 된다. 죽음 그 자체인 존재가 살아 있길 바란다니, 얄궂은 설정이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와 조의 마지막 대화는 삶에 남길 바라는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할머니를 죽음으로 안내한 뒤, 조가 빌에게 말했다. “이곳에 여행 온 목적을 이룬 것 같아.” 살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롭고 운이 좋은 사람은 떠날 때 가져갈 좋은 추억이 많다는 것, 좋은 추억은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 죽음 그 자체인 조는 이제 알게 됐다. 그게 어떤 종류의 사랑일지라도 아무렴 사랑이면 그뿐.

“내가 보고 싶은 꽃은 내 무덤가에 놓인 꽃이야.
여기는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나도 그렇고.
더는 싫어. 나랑 같이 가자.”

 

“하지만 여기에선 외롭지 않아.
내가 여기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좋은 경험을 했군.
마치 섬으로 와서 휴가를 즐긴 것처럼 말이야.
햇볕에 몸은 구릿빛으로 그을리고
모기 한 마리 없이 깊은 잠을 자는 거지.
하지만 현실은 돌아오기 마련이야.
너무 오래 머물면 말이야.
그러니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 세상 사람들도 거의 다 외로워.
운이 좋다면 떠날 때 가져갈 좋은 추억이 많겠지.”

 

“그럼 당신은 좋은 추억을 충분히 얻었나?”

남겨진 사람의 시간

<나인 라이브즈>(2005) | 로드리고 가르시아 | 드라마

모든 시퀀스가 컷 없이 원테이크로 이뤄진 아홉 개의 이야기. 10분이라는 리얼타임 속 아홉 명의 여자들의 일상이 있다. 그들의 삶에서 특별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순간들이다. 소개하고 싶은 시퀀스는 마지막 ‘매기’의 이야기. 맑은 한낮, 묘지를 찾은 모녀가 있다. 맨발로 잔디를 걷는 소녀는 이곳이 아주 익숙해 보인다. 엄마는 돗자리를 펴고 소녀에게 포도를 건넨다. 누군가의 묘지 앞에서 덤덤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은 아주 평화로워 보였지만 어딘가 먹먹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결말은 그 어떤 극적인 영화보다도 극적으로 마무리된다. 평범한 대화, 평범한 몸짓, 모든 장면을 비추는 아주 평범한 시선까지. 아무런 사건 없이 모녀의 대화로만 채워진 10분은 그 뒤에 가려진 인생까지 가늠하게 한다. 결말을 아는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마지막 장면을 기다리며 10분을 보낸다. 보고 또 봐도 매번 왈칵하는 대사가 있다. “내 작은 눈으로 푸른 무언가를 보고 있어요. 작은 아이의 드레스요.”

“내가 더 크게 느껴져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내 작은 눈으로 푸른 무언가를 보고 있어요.
작은 아이의 드레스요.”

 

“앞으로 더 늙겠지.
변하는 거란다.
계속 가는 거야.
여기 있는 사람들도 그랬고,
모두 무거운 짐들을 지고 갔겠지.
네가 지고 가야 할 것들이지.
다들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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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