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UGA, Our Good Old Neighbor

아주 오래된 이웃
사러가

동네에서 이웃을 만나도 반가움을 전하는 게 낯설다. “안녕하세요?” 한마디를 떼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겨우 인사를 건네도 데면데면하기만 하다. 정다운 동네 풍경은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사랑방’에서 이웃끼리 살가운 소통을 하는 동네가 있다. 옆집 아이의 아이가 몇 살인지 알고 있는, 앞집이 자전거를 산 데 관심을 가지고, 가게에 들어서면 집안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동네. 연희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러가에서 모이고, 사러가에서 흩어진다. 사러가가 연희동에 자리한 지 언 50여 년. 사러가는 연희동에 살고 있는 아주 오랜 이웃이다.

더불어 기쁨

이웃의 풍요

Brand

연희동에 자리 잡은 낮은 건물엔 ‘SARUGA’라는 알파벳이 나란히 붙어 있다. 더듬더듬 읽어보면 ‘사러가’라고 읽히는 그곳. 보통의 대형마트와는 달리 하늘이 넓게 보이도록 단층으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연희동을 대표하는 쇼핑센터다. 사러가라는 정겨운 이름은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은 것으로, 물건을 산다는 의미의 ‘삼’과 살아간다는 의미의 ‘삶’이 두루 깃들어 있다. 연희동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연희동에 살지 않더라도 이젠 랜드마크처럼 여겨지는 이 장소는 누군가에겐 만남의 장소이고, 누군가에겐 수입 물품이 가득 쌓인 별세계이고,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구멍가게다.

History

사러가의 탄생을 살피기 위해서는 1965년 영등포구 신길동의 재래시장 신풍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신길동 신풍시장 주식회사는 신풍시장을 사러가 신길 쇼핑센터로 확장했고, 이윽고 1975년에는 신길동에서 시선을 돌려 연희시장을 인수하여 사러가 연희 쇼핑센터를 만들었다. 수입 물품이 귀하던 이 시절에도 연희동에는 외국인 학교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수입 식품 시장이 활성화되었고, 수입 물건들은 점포마다 탑처럼 쌓여 사러가만의 진귀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지금도 과거 재래시장의 진열법을 유지하여 독특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1층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게 된다. 이젠 손쉽게 살 수 있는 수입물건도 사러가에 있으면 왜 한 번 더 마음을 더하여 보게 되는 걸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보내는 자그마한 인사는 아닐까.

두루두루

상생하는 온기

Neighborhood

사러가 쇼핑센터가 굳건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연희동 이웃을 사려 깊게 생각한 덕이다. 보통은 대형마트가 동네에 들어서면 소상공인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물건 하나를 팔더라도 덤과 정을 얹어주던 상인들은 대형마트의 어마어마한 할인율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사러가는 고민했다.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주변 상권이 죽지 않기를 바란 따뜻한 마음은 아마 재래시장에서 출발한 쇼핑센터였기 때문일 테다. 주변 상권과 공생할 수 있는 MD를 구성하여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동네를 위해 한 번 더 마음을 쓴 사러가. 기존 대형쇼핑센터와 사러가의 다른 점은 유행을 따르는 트렌디한 구성보다는 지역 커뮤니티를 존중하고 주민의 관계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사러가의 발전은 언제나 연희동의 생애주기와 발을 맞춘다.

Land Mark

연희동은 한국, 일본, 동남아, 서구, 화교의 문화가 공존하는 동네다. 그러나 이태원과는 달리 관광객이나 외부인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가 쌓여가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는 풍경들이 있다. 여전히 주민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동네 이야기를 나누고, 옆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시시콜콜 안부를 챙기고, 옆집 자식의 자식까지 알고 있는 동네. 주민이 형성한 커뮤니티는 어느덧 로컬화되어 굳어졌고, 이 안에는 외부인을 배척하는 문화보단 서로 관심을 갖는 정다움이 성실하게 쌓여 있다. 사러가는 연희동에 뿌리를 내리고 순리대로 움직이면서 이웃과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밝게 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안위를 궁금해하는 쇼핑센터와 주민들. 연희동 주민들은 오늘도 동네와 상생하는 사러가에서 일상을 위한 물건을 사고, 그 위에 삶을 포갠다.

연희동의

다정한 생애주기

Story

과거에 부모님 손을 잡고 사러가를 찾은 어린이들은 어느덧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이곳을 찾는다. 수입 물품이 산처럼 쌓여 있는 1층 점포를 올려다보며 “우와!” 하던 아이들은 이제 자신과 똑같은 표정으로 이국의 물건을 바라보는 아이와 함께다. 자식에게 ‘얼른 가자.’고 채근하는 장면에도 조급함과 짜증 없이 따듯한 표정이 깃드는 건 옛 모습을 유지한 사러가의 풍경 덕분일 테다.

“사러가에 입점한 점포들은 30-40년씩 유지된 점포들이에요. 손님들이 자주 ‘사러가가 어릴 적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주세요. 오래 운영한 동네 쇼핑센터이다 보니 단골도 많고, 수십 년을 함께한 직원들도 있어요. 명절이면 추천 선물 세트를 물어보시는데, 추천해 드리면 그걸 사서는 직원들에게 쥐여주는 일도 잦죠. 그럴 때마다 거절하느라 애를 먹어요.”

연희동에 사러가 쇼핑센터가 생긴 지 어느덧 50년이 되어 간다. 연희동에 터를 잡고 살아가면서 반찬을 사고, 빵을 고르고, 약을 구하러 사러가에 드나들던 사람들은 이 상점과 함께 시간을 먹으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이웃도 생겼다. 작별 인사를 건네받고 오랜 단골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네 쇼핑센터. 그것만으로도 사러가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지 않을까.

“사러가 직원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한 중년 여성이 사러가슈퍼마켓 사무실에 방문한 일이에요. 양손 가득 꽃다발과 케이크를 들고 오셨는데요. 어머님께서 연로해서 얼마 전에 명을 달리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대요. 평생 사러가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니 꼭 고마움을 표해달라고요.”

우리가

이웃이라면

Local Culture

사러가 신념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웃’이 있다.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지금껏 시간을 쌓아온 이 작고 단단한 건물은 단순히 재화를 사고파는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다. 여기에는 정직하고 안전한 물건이 있고, 이 모든 재화를 가족에게 제공한다는 마음으로 꾸려지는 정성이 있다. 좋은 상품을 만날 수 있어 즐거운 공간,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어 즐거운 공간, 마음을 나눌 사람이 있어 즐거운 공간, 내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즐거운 공간. 사러가가 말하는 즐거움엔 언제나 내 이웃과 가족이 스며 있다.

사러가에는 대기업 쇼핑몰처럼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을 최저가로 판매하는 장사수완은 없다. 다만, 동네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데 필요한 상품을 정직하게 건네기 위해 두 번, 세 번 고민하는 마음이 있다. 살갑게 안부를 묻고, 눈인사를 나누는 이웃 같은 쇼핑센터. 사러가의 시간은 조금 느리고 가끔은 뒤처지지만,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안다. 이웃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공간을 꾸려나가는 사러가는 연희동에 편의를 더하는 건물이 아니라, 이웃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A.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23
H. saruga.com
O. 매일 10:00-22:00

연희동에 모여 사는 주민 중에 ‘연희동 김작가’가 있다. 
연희동에 처음 걸음 한 건 1970년도 중반, 연희동에 거주한 건 어느덧 21년.
긴 시간 연희동의 생애주기를 가까이서 목도한 그는 1970년대의 사러가와 2000년도의 사러가, 그리고 오늘날의 사러가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연희동과 사러가 마트는

그렇게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글 연희동 김작가

며칠 전에 당근마켓에서 첫 거래가 성사되었다. 새로 산 자전거 안장이 너무 딱딱해서 교체하고 본래 장착되어 있던 안장을 내놓았는데 구매자가 나타났다. 자신은 연희동에 살지 않지만 퇴근하는 길에 우리 집 주변으로 오겠다고 했다. 약속 장소를 어디로 정할까? 사러가…. 그래 사러가 정문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두말없이 약속이 성사되었다. 어느 도시 또는 동네마다 그곳의 이미지를 알리는 랜드마크가 있다. 우리 동네 그러니까 내가 20여 년을 살고 있는 연희동에서 사러가를 랜드마크로 꼽으면 누군가는 ‘얼마나 내세울 게 없는 동네면 한낱 슈퍼마켓을 랜드마크로 꼽을까.’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희동이라는 동네를 알면 그곳이 왜 동네의 이미지를 빼닮은 곳인지 깨닫게 된다.

군사정권 시대의 연희동은 한때 장관촌으로 불리기도 했다. 70년도 중반 파릇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당시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 연희동이라는 동네에 처음 와 보았다. 친구의 언니가 사는 집이 연희동에 있었고, 친구는 언니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각각 다른 형태와 구조를 지닌 단독주택들이 즐비하고 높은 담장과 정원을 품고 있는 동네, 더 놀라운 것은 지붕에 있는 네모난 굴뚝이었다. 저 굴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시대 부의 상징인 벽난로가 있다는 뜻이다. 벽난로와 파란 잔디정원에 기가 죽은 나는 동네 초입에 있는 사러가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곳은 마치 영화 속에서 본 미국의 쇼핑상가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미국을 동경했으므로) 마트 중앙에 있는 수입 상가에 진열해 놓은 알록달록한 초콜릿과 과자, 화장품, 멋스러운 주방 기구, 이름 모를 서양 소스들. 그 현란한 아름다움에 빠져 촌티를 풀풀 날리며 바라보고 서 있는 내가 친구는 조금 겸연쩍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결혼하여 서울의 이곳저곳에 살다가 20여 년 전 연희동에 정착하였다. 놀라운 것은 내가 처음 느꼈던 그대로 변하지 않은 동네의 모습이었다. 플라스틱 그릇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 어머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며 무거운 유기그릇을 사정없이 바꿔 치워 버렸다. 아파트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서울에서 단독주택은 버려진 유기그릇만도 못했다. 하지만 연희동은 내가 처음 왔던 군사정권 시대 모습 그대로였다. 늙은 장군이 벗어놓은 옷처럼 품위는 있으나 낡아버린 집들이 옛날의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곳에 사러가가 있다. 하물며 그 옛날 그대로다. 나를 홀린 수입상품 가게도 그대로이고 심지어 그때 그 상가의 주인도 여전히 그대로인 가게가 있다고 한다. 함께 늙어가는 것. 연희동과 사러가는 오래된 부부처럼 그렇게 닮아 있었다.

단지 역사가 깊다고 해서 랜드마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울림과 조화로움은 동의 개념이다. 집과 집이 어울리고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곳,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첫째가 ‘그 건물이 주변과 잘 어울리는가?’를 먼저 생각한다고 귀동냥으로 들었다. 그렇다면 사러가야말로 한때 잘나가던, 그러나 지금은 빙 둘러쳐진 산 소쿠리 안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는 연희동 우리 동네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동네의 지붕보다 높지 않은 건물도, 지하가 아닌 널찍한 마당 주차장도, 주차장 가장자리에 심은 아기 벚나무 울타리도, 그냥 마을에 스며든다. 저녁이면 공터가 되는 이곳 주차장은 동네를 몹시 한적하게 보이게도 한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건축물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덕목은 어울림이다. 부부가 서로 어울리면 금실이 좋아 보이고, 이웃이 잘 어울리면 동네가 풍요로워 보인다. 동네 초입에 있는 사러가는 생뚱맞게 높지도 않을뿐더러 화려하게 치장하여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저 아담한 건물이 연희동의 오래된 집들과 잘,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 글은 어느 특정 가게의 리뷰가 아니다. 그래서 상품의 품질에는 함구하겠다. 다만 더운 여름에 수박 한 덩이를 무겁게 사 들고 온 손님이 “저 아래 사러가에서 샀어요.”라고 한다면 나는 그냥 믿고 자를뿐이다. 오히려 사러가 마트에서 파는 물건보다 한 곳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꾸준히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마트 사장님의(쇼핑센터 대표님이 더 격이 있어 보이지만 왠지 정스럽게 들리지 않아서) 경영철학에 평점을 주고 싶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혹은 선선한 오후 시간에 장바구니를 들고 그곳에 가면 아는 얼굴들이 모인다. 한 번도 자신의 집에서 물건을 산 적도 없는데 늘 웃는 얼굴로 눈인사를 하는 상가 주인도 만난다. 나는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오래된 중세 건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은 적이 있다. 그곳은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겉과 달리 건물 안은 초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연희동 사러가 마트를 보면서 나는 가끔 유럽의 건물에서 느꼈던 표리부동을 느낀다.

아무렇지 않게 건물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확 트인 상가의 오밀조밀한 수입 상가를 만난다. 뜻밖의 조합이다. 요즘 세상에 수입품이 무슨 대수냐고 콧방귀를 뀌는 사람도 이곳의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발길을 머물게 된다. 베이커리와 떡집, 약국, 커피숍, 반찬 가게와 건어물 가게, 꽃집과 철물점까지 없는 게 없는 쇼핑센터다. 그리고 그 옆으로 싱싱한 청과와 식료품, 해산물 코너를 갖춘 슈퍼마켓이 있다. 이곳이 왜 마트라고만 부르기 애매한 곳인지 사러가 쇼핑센터를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

오늘은 동네 미장원에 갔다. 어느 곳이나 미용실은 동네 사랑방이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파마를 하러 왔다며 헐떡이며 들어와 에어컨 바람을 차지한다. “아이고 여긴 시원하네, 사러가 주차장에는 햇빛 가리개 하나 만들어 줘야 되겠더라.” 동네 사람이 불볕더위에서 일하는 사러가의 주차 요원들을 걱정한다. 사랑이 없으면 관심도 없다. 연희동 사람들은 사러가를 사랑한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나 혼자 평점을 많이 주고 있는 마트의 경영자님도 연희동을 사랑할 것이다.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데 사러가가 우리 동네의 랜드마크라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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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사진 사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