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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어느 날의 여행 기록
쌀람! 모로코
스페인 알헤시라스Algeciras에서 페리를 타고 세우타Ceuta에 도착한 나는 걸어서 국경을 넘었고 멋지게 모로코에 도착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라마단(이슬람교에서 행하는, 약 한 달 가량의 금식기간)의 시작과 끝을 그곳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다. 얼떨결에 물 사는 일조차 조심하게 된 것이다. 돌아올 때 내 몸에는 빈대에게 물린 상처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자 혼자 한 달 동안 여행하기에 모로코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상처가 아물고 나니 금세 모로코가 그립다.
마르틸에서 수영을 배우다
지구 반대편 모로코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 늑장을 부려 열 시쯤 일어나 에쉴리와 수다를 떨다가 근처 시장에 가서 사과와 빵을 하나 샀다. 다시 집으로 와서 과일을 씻고 짐을 챙긴 후 우리는 마르틸 해변Plage Martil으로 향했다. 에쉴리 집에서 5분 거리에, 그저 앞마당 같은 그곳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일단 우리는 집에서 가져온 파라솔을 모래에 박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한 번도 수영을 해본 적 없는 내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자, 에쉴리는 수영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물에 뜨는 것부터 시작해 꽤나 엄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운동 신경이라고는 없는 내가 한 번에 뜰 리 없었다. 비록 나를 흉내 내며 한참 놀린 다음이었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처음 물에 들어왔을 때보다 나아졌다고 칭찬도 해줬다. 파도에 휩쓸려 짠 물을 마셔도 좋고 콧물이 찔찔 나도 좋았다.
출출해졌을 때 모래사장으로 올라온 우리는 파라솔 밑에 앉아 준비해온 음식을 먹었다. 사과를 먼저 해치우고 빵에 요거트를 찍어 먹었다. 시장에서 3디르함(한화로 830원 정도)에 산 큰 빵은 말할 필요도 없이 꿀맛이었다. 그렇게 복숭아까지 해치운 뒤 에쉴리는 담배를 피웠고, 다시 바다로 들어가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온몸을 가린 채 수영하는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여자는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가리개)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로코 여인들이 입는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수영은 하고 싶고 수영복은 입을 수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섬뜩하기도 했다. 모로코 여자들은 이렇게 수영을 하는구나.
바닷속에서 모래 사장 쪽을 바라봤다. 낙타 두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까는 오리 두 마리가 지나가더니 이번에는 낙타다. 좀 더 있으니 색색의 천을 걸친 말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 넓은 바다에서 보는 모래 사장 위 낙타와 오리와 말에는 왠지 믿기지 않는 구석이 있다. 파란색이라고만 말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 많은 단어들을 가져다가 비슷하게 묘사할 수야 있겠지만, 그저 ‘바다색’이라고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물속에 있으니 너무 행복해져서 그만 한국말을 해버렸다. “진짜 좋다.”
파란 마을,
쉐프샤우엔
7월의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온 벽들이 파랗게 물든, 무척이나 더운 마을이었다. 이곳의 채도 높은 파란색 때문에 마치 스머프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로코 전통 의상인 젤라바Djellaba를 입은 할아버지들은 가가멜을 연상시켰다. 쉐프샤우엔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에 뿔처럼 솟은 두 개의 산봉우리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집들이 다닥다닥 장난감처럼 모여있고 뒤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이 큰 산봉우리가 있다. 그 크기의 대비가 주는 아름다움이 장관이다.
밤의 쉐프샤우엔은 좀 더 특별하다. 중앙 광장에는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본 것 같은 큰 나무가 있고 어설프게 전구들이 매달려 있다. 사방이 탁 트여있는 작은 마을에는 아잔(이슬람교에서 신도에게 예배시간을 알릴 때 쓰느 나팔) 소리가 여기저기서 돌림 노래처럼 울려댄다. 터키에서 매일 다섯 번씩 아잔 소리를 듣다가 이제서야 유럽 성당의 종소리에 적응해 있었는데, 다시 아잔 소리가 들리는 곳에 와 있다. 집집마다 코란 외는 소리도 들린다. 또 라마단 때문인지 밤마다 북을 쳐댄다.
함께 다니던 중국인 친구가 어느 날 중앙 광장에서 헤나를 한다고 해서 따라가게 됐다. 처음에는 30디르함이라고 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 50디르함을 요구했다. 헤나도 삐뚤삐뚤해서 돈을 덜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더 받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우리는 40디르함밖에 없다며 주고 나와 버렸다. 모로코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면 사기를 당하고 만다. 부른 가격에 반 정도만 줘도 비싸게 주고 사는 거라는 말이 이곳을 떠돈다. 모로코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흥정의 기술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베짱일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비키의 도시!
웨즈안
웨즈안Ouezzane은 마르틸에서 조금 떨어진 아주 작은 도시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길을 묻는 내게 왜 가느냐고 되묻는 상황이 펼쳐진다. 아마 웨즈안에 사는 비키에게 카우치 서핑을 하지 않았다면 발음도 요상한 그곳에는 평생 가보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웨즈안에서 지내는 동안 비키의 친한 지인 집에서 맛있는 모로코 가정식을 대접 받았다. 특히 타진 요리가 일품이었다. 타진이란 특정 요리 이름을 뜻한다기 보다 원뿔 모양으로 생긴 그릇을 일컫는 말이다. 그릇의 모양 덕분에 채소가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그 전에 식당에서 먹었던 타진과 전혀 다른 맛이었다. ‘타진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구나.’
거한 저녁을 먹고서 우리는 비키가 자원 봉사자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에 찾아 갔다. 파티가 있다고 했다. 나는 비키와 그녀의 동료인 레이첼, 프랭크와 함께 ‘Happiness runs’라는 짧은 돌림노래를 무대 위에서 불렀다. 가사를 외우지 못한 우리는 종이쪽지를 들고 올라가야 했지만, 오늘 처음 만난 도시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무대를 오르는 건 짜릿한 경험이었다.
호스텔 명예 실추 사건
페스Fes에서 체크아웃을 하려는데 한국인 친구 두 명이 현금을 도난당한 듯했다. 우리는 직원에게 말했지만 직원은 못 알아듣는 척 하다가 기도하러 가야 한다며 사라져 버렸다. 사장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현금에 번호를 적어놓았느냐며, 주의 하지 않은 당신들 잘못이라고 우리를 나무랐다. 사실 우리는 돈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호스텔에 말해 보는 것도 방법 아닌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해결하려는 성의조차 없이, 전에는 전혀 보인 적 없는 차가운 태도에 우리는 더 화가 났다. 하지만 그들은 성스러운 라마단 기간에 직원들이 의심을 당했기에 호스텔 명예가 실추됐다고 했다.
우리들 행동에 관해 ‘빅 프라브럼’이라고 말하며,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 돈을 찾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경고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좁은 호스텔 1층 로비에서 우리는 일렬로 마주 보고 앉아 대치 상태를 겪었다. 처음에 짐을 들고 내려왔을 때 더워서 선풍기를 돌려놨었는데 그 선풍기조차 자기네 쪽으로 돌렸다. 그들은 경찰을 불렀다고 말했지만,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치 상황이 풀리고, 문제는 해결 아닌 해결이 되었다. 우리는 도망치듯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페스는 ‘PASS!’
라마단의 끝,
그리고 에사우이라
에사우이라Essaouira는 모로코 서쪽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어촌 마을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모로코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에사우이라를 칭찬했다. 모로코의 낭만 정류장답게 에사우이라는 여유로움 그 자체였고 아프리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한낮에도 시원한, 그야말로 숨통이 트이는 곳이었다.
오후 7시, 동네는 요란했다. 모든 사람들이 마치 화장실 앞에 줄 선 사람들처럼 분주하고 들떠있고 급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7시 반 아잔 소리가 울리면, 그들의 하루 중 첫 식사 시간이자 길고 긴 한 달여간의 라마단이 끝나기 때문이다.
아잔 소리가 울리고 동네는 텅 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터널 뒤의 동네 같다. 길고양이가 황량한 거리의 주인이 된다. 참 신기한 광경이다. 그들과 함께 나 역시 에사우이라에서 라마단의 끝을 맞이했다.
에사우이라는 어촌 마을답게 갈매기들 천지다. 항구 쪽 비린내 나는 곳은 물론 내가 머무는 유스 호스텔 옥상에서도 미친 듯이 울어댄다. 갈매기가 바닷물 위에서 오리처럼 떠다닌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을까? 나는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오리든 갈매기든 간에 하늘 위로 날고 있는 새들이 너무 커서 위협을 느낀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사막의 밤
붉은 흙으로 된 산인지 돌로 된 산인지 모를 황무지에 듬성듬성 풀이 자라 있었다. 그리고 그 풀들을 염소 떼가 먹고 있었고. 마라케시Marrakesh에서 메르주가Merzouga가는 길은 대관령 고개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험난했다. 에어컨을 절대 켜지 않는 작은 봉고차 안, 북적북적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열여덟 명의 사람들, 그 사이에 있던 나는 다리도 못 편 채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쩌자고 8월에 여길 왔을까. 식성 좋은 내가 입맛을 잃을 정도였다. 미리 준비해간 물은 저녁에 온수 안 나올 때 써도 될 만큼 뜨거워졌다. 콜라에 몸을 던져 수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숨을 골랐다.
돌아보면 이 사막에 오기 위해 장장 서른 시간 이상 고생을 했다. 좀 지나치다 싶긴 했지만, 사막이 시작되는 입구에 서니 그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사진으로 봤던 사막보다 훨씬 멋졌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감당 안 될 만큼 흥분되었다. 낙타는 생각만큼 순했다.
나는 더 순해지라는 마음을 담아 내가 탄 낙타 이름을 ‘두부’라고 지어주었다. 두부는 걸으면서 초콜릿 같은 똥 덩어리들을 마구 쏟아내는, 나처럼 성질이 급한 녀석이었다. 사막이 깜깜해져서야 캠프에 도착했다. 불은커녕 물도 나오지 않았다. 내 배낭에 들고 온 드라이기가 이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깜깜했다. 그런데 눈을 뜨면 그 깜깜한 곳에 별들이 떠 있었다. 눈을 감은 것이나 뜬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이 어두웠는데 눈을 뜨면 어쨌든 별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하늘이었다. ‘이게 사막의 밤이구나.’ 사막에는 성당도 모스크도 가우디도 없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바뀌는 지형과 곱디고운 모래 바람. 묵묵히 걷는 낙타. 인간이 아무리 멋들어지게 무언가를 만든다고 해도 사막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나는 눈 감고 있는 시간 조차 아까워 캠프 안에 있던 매트리스를 밖으로 꺼냈다. 매서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사막의 별 아래 잠이 들었다.
에디터 전진우
글·그림·사진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