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ftop Jungle

식물이 있는 생활
실외식물생활

지난해 봄 작업실을 얻으면서 실외식물생활이 시작되었다. 바깥에서 풀과 나무와 꽃을 돌보는 일은 식물생활의 모든 문장 앞에 좀처럼 쓰지 않는 부사 ‘너무’가 붙는 일이었다. 덩달아 나무들도 무성하게 자랐다. 언제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정글맨션’의 한 장면처럼.

행궁동은 모든 것이 다 오래되었다. 성곽도 골목도 집도 나무도. 그리고 어디에나 노인들이 있다.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고 욕을 하고 노상 방뇨를 한다. 그 옆에서는 젊은이들이 가게를 꾸리고 작업실을 연다. 가게 앞에 울창하고 멋스러운 정원을 가진 세탁소와 미용실이 있고 빌라와 주택 마당에서 할머니들이 파와 고추 사이에 꽃을 심어 키운다. 담장 너머로 키를 가늠할 수 없는 목련나무가 있는 집,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린 집, 수국이 흐드러진 집 앞으로 파지 줍는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간다. 고양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작업실 맞은편으로 온몸에 기름 범벅으로 해코지를 당한 고양이가 지나가고, 연인들이 길게 줄을 선 밥집과 중년 나이트가 성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행궁동에는 온갖 것들이 뒤섞여 있다. 이 기이한 풍경은 갖가지 원초적인 감정들을 자극한다. 모든 눈금이 평균을 넘어선다. 멀미가 날 것처럼 마음이 울렁거린다. 그래서 자꾸만 가게 된다.

지난해 봄 행궁동 골목의 주택 2층에 작업실을 얻은 것 역시 내 인생의 여러 항목에서 평균 눈금을 넘는 수치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였다. 안으로는 무모함과 결단력이 그랬고 밖으로는 우정과 행운이 작용했다. 이것들을 다 모아 누군가는 운명이라 부를지도. 작업실이 되기 전 이곳은 친구들이 운영하는 내 단골 베이커리 카페였다. 말끔하게 고친 낡은 집의 1층과 2층을 두 친구가 각각 베이킹 작업실과 카페로 나눠 쓰고 있었고, 우리는 손님이 뜸할 때마다 1층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2층에 올라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들은 이 동네가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부지런히 바닥을 쓸고 잡초를 뽑았다. 가게를 정성껏 단장하고 다정하게 손님들을 맞았다.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두른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었고, 어느 날부터 와서 살기 시작한 나이 든 암고양이를 살뜰히 보살폈다. 그러다 가끔 실없는 소리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지난해 봄, 내가 2층 작업실로 들어온 일은 우리가 함께 세웠던 수많은 계획 중 유일하게 실행된 것이다.

작업실 거실에서 창문을 열면 흰색과 붉은색 천으로 만든 깃발들이 곳곳에 나부낀다. 모두 장군님, 동자님, 선녀님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깃발의 흰색은 점사를 본다는 뜻이고 붉은색은 굿을 한다는 뜻이라는데, 두 가지 모두를 하는 점집들이 당장 작업실 창밖의 시야 안에 족히 네댓 집은 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셀 수도 없다. 이게 모두 궁 때문이다. 예로부터 가장 기운 좋은 땅을 골라 궁을 짓는다고 했다. 그런 땅에는 귀신도 많아 점집도 많다고. 성곽 안에 궁과 함께 자리 잡아 온 이 동네에는 그래서 붉은 만卍 자가 붙은 대문이 많다. 그바람에 동네는 오랫동안 낙후됐다. 문화재 때문에 개발이 제한되었고 골목마다 늘어선 점집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꺼렸다.

 

어려서 길 하나 건너에 살았던 나는 오래된 점집보다 갑자기 달라지고 있는 요즘 골목의 풍경에 위화감이 든다. 지난 10년 동네가 많이 달라졌다. 말끔하고 세련된 새 상점들이 골목의 가장 좋은 자리들을 채워나갔고, 창작자들이 골목 구석에 조용히 작업실을 열었다. 낡은 집들은 차례로 카페와 밥집이 되었다. 월세가 뛰었고, 어느 골목에서나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나타났고, 어느 건물주가 얼마나 비열하게 세입자를 쫓아냈는지가 화제였다. 친구들과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이 고장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동네에 작업실을 얻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닌가. 이 모든 것은 출퇴근길에 늘 마주하는 ‘소문난 19세 꽃도령’의 뜻인가.

5월부터 작업실 생활 2년 차가 시작되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통에 월세가 꼬박꼬박 나가는 작업실 생활 1년 중 절반은 집에서 온라인으로 일했다. 그 와중에도 출근은 했다. 나무들 때문이었다. 그렇다. 작업실에서도 나는 식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저는 잊지 않았습니다. 이 글의 연재 명이 ‘식물이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요). 작업실로 쓰는 주택 2층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동네에 높은 건물이 없으니 볕도 바람도 아주 좋았다. 때마침 식물 상점을 하는 S씨가 작업실 입주를 응원하며 나무들을 선물로 보내준 덕분에 아파트에서는 키워볼 꿈도 꾸지 못했던 나무들을 품에 안고 실외식물생활이 시작되었다.

침엽수와 과실수, 꽃나무와 허브, 사초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원산지도 생김새도 매력도 각기 다른 식물들로 채워진 주택의 야외 공간을 가지는 일은 몹시 벅찼다. 이 기분 대로라면 수업이 있든 없든 콧노래를 부르며 매일 출근하게 될 것이었다. 어쩌면 기적처럼 아침형 인간이 될지도 몰랐다. 일찌감치 출근해 의젓하게 책상에 앉아 그날의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싱싱하게 자란 허브를 한 줌 뜯어 부엌으로 가서 파스타를 한 그릇 말아 먹고 커피도 한 잔 내려 마셔야지. 그런 다음에는 테라스로 나가 다정하게 식물들에 물을 주고 나서 느긋하게 동네 산책도 할 테다. 틀림없이 이런 우아한 작업실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말이다.

실상은, 일하는 날 제시간에 맞춰 출근하느라 몸이 바빴고, 일이 끝나면 얼른 퇴근하고 싶어 마음이 바빴다. 위아래로 보일러와 히터가 뜨끈하게 돌아가도 어쩐지 작업실은 늘 추웠다. 해는 너무 빨리 졌고 낯선 기분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눈뜨면 일기예보부터 봤다. 오늘은 비 안 오나 하고. 나무들 물 주러 가는 일이 고단해서 나는 비 예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물 주기만이 아니었다. 2층 테라스는 예상대로 볕이 잘 들었다. 그런데 너무 잘 들었다. 어떤 나무든 새로 오고 나면 당장 잎이 말라버렸다. 적응한 뒤에 새 잎이 나도 한 번 말라버린 잎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숨을 그늘이 한 뼘도 없어 양지식물이 아니면 버티지를 못했다. 바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 동네에는 정말 미친 바람이 불었다. 2미터도 넘는 나무들이 매일 번갈아 훌렁훌렁 넘어갔다. 봄 한 철, 출근하면 넘 어진 나무 수습하는 것이 일이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쓰러진 나무를 대신 세워 주었다는 1층 동료의 카톡이 왔다.

그러나 정작 여름에 비하면 봄의 고난은 댈 것도 아니었다. 7월이 되자 땡볕에 매일 물을 줘도 흙이 바짝 말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일 출근했다. 장마는 더 최악이었다. 태풍에 나무들이 날아갈까(그래서 지나가던 행인이라도 덮칠까) 태풍 예보가 있을 때마다 우산도 못 쓰고 무거운 화분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느라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었다. 그사이 좁은 화분 속에서 뿌리에 물 마를 새 없는 동안 나무들은 빠르게 시들어갔다. 허브는 전멸했다. 장마 전 몸집을 줄여 수월하게 여름을 나도록 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내 키만 한 라벤더 나무가 장마 뒤에 시름시름 앓더니 끝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게 크고 멋스러운 수형을 가진 라벤더 나무를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몹시 자책했다. 식물생활의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갔더라면 지금쯤 더 크고 풍성하게 자라 한창 초여름을 만끽하며 연보라색 꽃들이 만개했을 텐데, 하필 서툴고 요령 없는 인간에게 와서 아깝게 죽고 만 것이다.

그 와중에 고맙게도 침엽수들은 사계절 묵묵하게 잘 버텨주었다. 꽃나무들도 겨우내 잎을 다 떨궈 죽었나 걱정했는데 지금 잎도 꽃도 한창이다. 겨우내 각각 작업실 안방과 S씨의 상점에서 겨울을 나고 돌아온 나무들도 다시 테라스로 나와 볕을 실컷 쬐며 새잎을 내고 있다. 아쉽게도 사초들은 다 죽었다. 절반은 장마에 죽고, 남은 것들은 겨울을 나면서 죽었다. 서운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실컷 보았으니 충분하다. 올해는 올해의 사초를 새로 심으면 될 일. 새 나무들도 합류했다. 그중에서도 커다란 레몬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온 레몬나무가 모두의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도 안 되게 울창해진 테라스를 보며 올여름을 어쩌나 싶어 벌써 까마득하다. 실외식물생활은 상상하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든 눈금이 평균을 넘어섰다. 빛도, 바람도, 더위도, 습기도, 추위도 너무 강했다. 모든 것이 너무하다는 건 나무들 상태 봐도 알 수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요리하는 친구의 상점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키우기 시작한 같은 나무들이 있다. 친구네 가서 볼 때마다 나는 그 나무들의 단정하고 고운 자태에 놀란다. 돌아와 다시 보면 내 나무들은 고생한 티가 너무 역력하다.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마르고 바랜 이파리투성이였다.

나무들이 고생하는 사이 나는 조바심을 내려놓았다. 상처난 이파리도 적당히 보아 넘기게 되었고, 정신없는 와중에 바깥 물건은 맨손으로 만지지도 못하던 강박증이 한결 좋아졌다. 이제 벌레도 곧잘 잡는다. 문밖에서 하는 식물생활은 섬세하고 우아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씩씩해야 했다. 밖에서 나무들과 생활하는 동안 내 속에서도 문을 열고 나온 것 하나가 있는 듯했다. 평균 눈금을 넘는 수치들 중에는 분명 즐거움도 기쁨도 있었다. 요즘은 매일 찾아오는 벌을 기다린다. 꿀을 빨 때마다 통통한 궁둥이를 실룩거리는 것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부지런히 꽃을 피운다. 매일 양봉을 검색한다. 작은 벌통 하나를 테라스 구석에 두는 것이 요즘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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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