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oftop house for weekend

서울에서 별장 갖기

서울에서 별장 갖기

재수학원에서 만나 10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는 두 남자가 서울에 별장을 얻었다. ‘옥탑바’로 불리는 그들의 별장은 통유리 너머 한강이 보이거나 홈바에 와인셀러를 갖춘 화려한 독신 남성의 집은 아니다. 이름 그대로 누군가 여름엔 더위에, 겨울엔 추위에 시달리며 살았을 합정동 주택가의 허름한 옥탑. 그들이 아무리 부모님과 함께(혹은 얹혀) 사는 직장인들이라지만, 꿈꿔왔던 공간을 위해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30대 남자라면
서울에 별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두 남자와 나는 오 년 전 여행에서 처음 만났다. 한 명은 우리 팀의 여행을 이끄는 팀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내가 속한 조의 조장이었다. ‘저렇게 매일 투닥거릴 거면 대체 왜 붙어 다니나?’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둘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들이 ‘작당’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합정에 옥탑방을 얻어 별장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옥탑바’라는 이름의 공간. ‘멋있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누구는 월세 내기도 빠듯한데, 별장이라니.’하는 삐딱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초대를 받고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그들의 공간은 흔히 떠올리는 별장과는 어쩐지 거리가 있었다. 방에는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빨간 소파가 피곤하게 누워 있었고 한쪽 바닥에는 술병들이 즐비했다. 문 닫은 나이트에서 만오천원 주고 사왔다는 미러볼은 주방 찬장 밑에 뜬금없이 달려 있고, 캠핑의자들과 장난감, 주인 잃은 옷과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담요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러 깨끗하게 청소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치우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나는 정돈되지 않은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람과 시간이 묻어있는 물건에는 처음 가본 공간도 익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30대 남자라면 서울에 별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외치던 그들이 별장에서 우리를 맞이한 첫 모습이, 높이가 한참 낮은 싱크대에서 허리를 구부려 설거지 하는 모습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평일의 삶과
주말의 삶

이 옥탑을 별장으로 쓴 건 그들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친구 세 명이 비슷한 용도로 쓰다가 하나둘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인수하게 됐어.” 평일에도 퇴근하고 가끔 들리느냐고 묻자 둘은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평일에는 안 와. 집과 직장, 옥탑바가 서로 가깝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평일에는 평일의 삶을 살아야지. 회사에서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시간에 내 삶을 즐기고. 그래야 그 에너지로 다시 일을 하지. 일부러 옷가지도 안 가져다 놨어. 처음부터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은 아니었거든.” 그들은 일과 일상을 철저히 분리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일이 일상이고 일상이 일인 삶을 살아와서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던 나는, 그 말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평일과 주말의 온도 차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일에 그동안 얼마의 관심을 줬었나. 그들에게 던진 질문은 자꾸 나에게 되돌아왔다.

일상의 분리는 공간의 분리와도 연결된다.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공간을 찾는 건 가장 쉽게 각하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만큼 천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처음 내 방이 생긴 설렘이 가시지 않았던 때에도 그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공간을 찾았었다. 책상 밑으로, 다락방으로, 침대와 방문 사이 구석으로. 사람들에겐 계속해서 새로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커버린 그들이 찾은 공간은 이 옥탑이었다.

인생의
황금기

평상에 둘러앉아 준비한 음식을 먹는 동안, 옥탑바의 주인장은 우리가 지나온 시절의 노래를 틀어주었다. 같이 간 친구는 꼭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말했다. 멀리 보이는 으리으리한 고층 빌딩, 길거리의 분주한 사람들과 차로 가득한 도로. 평일에는 항상 내가 서 있던 풍경인데도, 멀리서 바라보니 남의 이야기인 듯했다. 내심 고소한 기분이 들어 콧노래가 나왔다. 한동안 흥에 겨워 있는데 옥탑바의 주인장이 캠핑의자에 묻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삼십 대 초반, 지금이 그들의 황금기고, 여기가 황금기를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오랜만에 만나 대뜸 인터뷰하겠다고 달려드는 나에게 계속 시큰둥한 대답을 해주던 그들이,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해준 말이었다. 황금기는 특히나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아직 지나지도 않은 현재에 황금기라는 단어를 붙이는 이 남자들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멀리 보이는 양화대교 위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INTERVIEW

김익현(31), 박성윤(31)

제가 보기엔 둘이 참 다른데, 공통분모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익현 성격은 다른데 성향이 비슷해. 좋아하는 코드가 비슷한 건데 그게 우리한테는 되게 중요한 거야. 예를 들면 음악을 좋아하고, 축제를 좋아하는 것. 같이 좋아하는 것들이 우리 일상에 녹아 있어서 잘 맞았던 것 같아.
성윤 성격은 진짜 달라. 대학교 때 같이 MBTI 성격유형검사를 했는데 둘이 알파벳 네 개가 다 달랐어. 맞는 게 하나도 없었어.

두 분 다 아직 가족들과 살잖아요. 옥탑방 얻은 것에 대해 뭐라고 하세요?
익현 방을 얻은 건 나중에 아셨어. 뭐라고 하시지. 집이 있는데 또 집을 얻겠다고 하니 좋아하실 리 없잖아. 원래는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옥탑방 계약서를 모르고 책상 위에 둔 거야. 그걸 보고 아셨어.
성윤 나는 아버지 명의로 된 통장을 쓰거든. 그런데 통장에서 갑자기 오백만 원이 빠져나가니까 이게 뭐냐고. 그래서 익현이와 하는 게 있는데 나중에 받을 돈이라고 얼버무렸어.

매달 내는 월세가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500/45면 관리비까지 한 달에 25만원씩은 나가잖아요.
익현 아깝진 않아. 그렇다고 그게 적은 돈이란 말은 아니야. 고정비가 나가는 건 맞는데 어차피 주말엔 친구들 만나면서 놀잖아. 그런데 마트에서 장 봐서 옥탑바에서 먹고 놀면 얼마 안 나오거든. 1차 비용으로 2, 3차까지 놀 수 있는 거지.
성윤 부담스럽지 않은 돈은 아닌데, 무엇보다 마음 편한 내 공간이 있다는 게 중요해. 여기에 자주 오고 안 오고를 떠나서.

별장을 갖게 되면서 생활이 달라진 점이 있어요?
익현 나 같은 경우에는 비슷해. 내 친구들이 먼저 운영을 했었고, 여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알고 있어서 인수받겠다고 한거니까.
성윤 여긴 정말 별장 개념이라 딱히 변한 건 없어. 그나마 있던 집에서의 시간이 더 줄었다는 정도?

둘이 성향이 달라서 쓰는 데 오히려 좋을 것 같아요. 한명은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고, 한 명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성윤 맞아. 술 마시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요리를 하거나 혹은 잠을 자도 집에서는 누군가의 시선이 있잖아. 그런데 옥탑바엔 자유가 있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아.
익현 나한테 여기는 만남의 장으로서 의미가 있어. 살다 보면 서로 이런저런 이유로 바빠서 만나기 힘든데 옥탑바를 통해 과거의 사람들이 만나지더라고. 그러고 보면 너도 되게 오랜만에 만난 거잖아. 또 친구가 친구의 친구를 데려오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귀게 되고. 직장 생활 하다보면 새로운 사람 만날 기회가 거의 없잖아.

옥탑바의 물건들은 이 공간을 위해 산거에요? 빔프로젝터도 있고, 원터치 텐트도 있던데.
익현 내가 산 것도 있고, 선물 받은 것도 많아. 요즘엔 선물을 받을 일이 있으면 옥탑바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물건을 말하지. 여자친구가 사준 것도 있고. 그런데 여기서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라면 사실 솔로인 게 좋아. 여자친구랑 놀려고 여길 구한 건 아니거든.

둘이 정한 이곳의 규칙이 있어요?
익현 절대 안 되는 규칙이 하나 있지. ‘내가 오는 걸 네가 막지 못한다.’ 같이 쓰는 공간이고 같은 조건으로 움직이는 공동 운영자니까.
성윤 이건 손님이 왔을 때 규칙인데, 친구들하고 놀 때는 중간에 한 번씩 청소하자고 했어. 물론 안하는 애들도 있지만. 그러면 내가 중간중간 해야지. 그렇게 안하면 다음날 너무 힘들더라고.

나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게, 많은 사람이 꿈꾸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 일을 결심하고 해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성윤 사실 다른 사람들 생각처럼 막 신이 나거나 들뜨거나 하는 건 아니야. 담담하고 소소한데, 그 소소함이 좋은 거지.

놀러 오는 친구들 반응이 궁금해요.
익현 너는 어떤데? 

좋아요.
익현 다 그런 반응이야.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농담조로 빌려달란 말 많이 하지.

그럼 빌려줘요?
익현 아니 왜 빌려줘(웃음).

두 남자가 청소하는 동안 옆 건물 교회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골목을 거닐 땐 몰랐는데 5층짜리 건물 위에는 옥탑이 하나씩 있었다. 어떤 옥상에서는 갖가지 식물을 키우고 있었고, 막대를 세워 줄줄이 빨래를 널어놓은 곳도 있었다. 모양은 다르지만 제각기 예쁜 섬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생활공간이기도 할 옥탑을 그렇게 부르는 건 모르는 사람의 속 편한 사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멀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옥탑에 사는 사람들도, 똑같은 일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가끔은 더 높은 곳에 올라와 그들이 있는 곳을 내려다봤으면 좋겠다. 삭막한 빌딩 위에서 내가 본 옥탑은 건물들이 저마다 피운 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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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포토그래퍼 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