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t Together What You Like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봐

좋은 콜라주를 발견할 때면 긴장감을 느낀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전하는 아찔한 기분. 비주얼 아트 디렉터 Entfnun의 작품이 그렇다. 그녀가 손으로 직접 골라 자르고 붙인 것엔 어떤 힘이 배어 있다. 전에 있었지만 전에 없었던 그 무엇, 새롭게 남겨질 하나뿐인 이야기가.

본명은 홍정희, 활동명은 Entfnun이죠.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사진, 디자인, 비주얼 디렉팅 등.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시각적인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어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불리고 있어요. 이름은 ‘enter’의 약자 ‘Entf’, 독일어로 ‘그리고’라는 뜻의 ‘Nun’을 합친 합성어예요. 엔트프넌이라고 읽죠. 우리는 한 문장을 마무리하거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때 엔터를 누르잖아요. 현재 일을 잘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다음을 이어갈 준비가 된 사람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독일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름에도 독일어를 넣으신 건가요?

맞아요. 유학까지 생각했었죠. 독일은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유독 뛰어난 나라예요. 제가 좋아하는 예술의 역사는 대부분 독일에서 시작된 것들이 많고요. 그곳의 오리지널리티를 높이 생각하는데, 특히 그곳의 전시 문화를 좋아해요. 거리 곳곳에 있는 작은 갤러리에 계획 없이 들어가서 보는 데 전혀 무리 없는 환경이죠.

 

독일의 작은 갤러리들! 궁금하네요.

꼭 여행해보세요(웃음). 예술을 쉽고 가까운 방법으로 즐길 수 있어요. 일상처럼 좋은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가 있어요.

 

좋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냈나요?

지금은 제가 소속되어 있는 유윌노우you.will.knovv 팀의 브랜딩 단계를 시작하고 있어요. 동시에 개인적인 아트 작업을 진행하면서요. 다른 브랜드와 협업도 이어가고 있고요.

 

개인적인 아트 작업은 어떤 걸까요?

요즘은 TV나 SNS, 유튜브 같은 매체들이 많잖아요. 이런 매체들은 편리해서 좋지만 저는 직접 소유할 수 있는 것들에 더 손길이 가요. 눈으로 한 번 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직접 만질 수 있는,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요. 제가 책을 아끼는 이유기도 해요. 그 자체로 오리지널리티를 품고 있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죠.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지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있어요.

 

올여름 첫 개인 전시가 있었어요. 어떤 주제의 전시였나요?

위클리캐비닛과 함께한 프로젝트였어요. 빈티지 가구를 바탕으로 제 작품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죠. 전시장은 구분 없이 한 공간으로 되어 있어서 공간과 작품의 연결점을 찾는 것이 중요했어요. 작품을 다양한 방향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서 공간을 셋으로 나누고 전시 타이틀을 독일어인 ‘드라이 침머drei zimmer’, ‘세 개의 방’이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각 방의 무드를 다르게 하려고 가구 스타일에 따라 차이를 주면서 그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들을 두었죠.

전시가 끝난 뒤에는 어땠나요? 좋았던 점도, 만족하지 못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독일 갤러리들의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이번 전시에 그 느낌을 담고 싶었어요. 다행히 어울리는 공간을 찾았고 관람 방식도 자유롭게 작품을 직접 만질 수 있도록 공개했죠. 그런데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어요. 실제로 많이 훼손되었거든요. 전시를 마친 뒤 가장 좋았던 점은 제 존재를 알렸다는 거예요. 저를 모르셨던 분들도 제 작품을 알게 되었고 그런 시선이 모여서 언젠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작품 종류의 범위가 넓어요. 앨범 커버부터 포스터, 패키지 디자인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아 있는 작품을 꼽아본다면요?

딘의 인스타그램 앨범 커버 작업이요. 공개적으로 Entfnun이라는 존재를 알린 첫 작품이었어요. 이 이후로 커버 워크 작업을 좋아하게 됐고요. 누군가와 함께하는 아트워크의 가장 이상적인 과정을 배웠죠. 아티스트가 곡을 만든 이유에 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같이 정해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함께 정리한 생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는 단계였고요. 이후에도 좋은 커버 워크 작업을 이어왔지만 이때만큼 구체적이고 열정적인 과정은 드물었어요. 그래서 더 마음에 남아요.

 

작품들이 대부분 콜라주로 이루어져요. 어느새 Entfnun의 스타일이 되었고요. 콜라주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잡지를 좋아했어요. 매거진 에디터를 꿈으로 삼으면서 잡지 안의 사진을 모으고 여러 레이아웃을 익히기 시작했죠. 이 많은 책들을 다 보관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서 책 하나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이미지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콜라주로 이어지게 됐고요. 단순히 좋아하니까, 습관적으로 만들게 된 거죠. 나중엔 본격적인 작품 활동으로 연결되었고요.

 

유윌노우와의 시작은 어땠을까요?

소속 아티스트 중 라드 뮤지엄의 앨범 [Scene]의 포토 작업이 처음이었어요. 그때 라드 뮤지엄과는 제가 사진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죠. 정말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쳤는데, 앨범 작업을 부탁받았어요. 그 당시엔 제가 하던 작업을 다 포기하고 있을 때라, 거절했었어요. 카메라도 다 팔아버렸을 때니까요. 그런데 계속 부탁하시더라고요(웃음). 다행히 그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정말 다행이네요! 사진 작업을 하던 때라면, 어떤 시기였을까요? 우여곡절이 엿보이는 것 같아요.

스물한 살 때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학교를 자퇴했어요. 실패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독해지고 싶었던 거죠(웃음).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진 스튜디오였어요. 그때 인터뷰 매거진도 만들었고요. 혼자서 취재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요. 나중엔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었죠. 그때는 저 혼자의 힘으로 어느 정도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부지런히 살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대단해요. 자퇴까지 했다면 어떤 목표가 있었을 것 같아요.

패션 에디터가 되고 싶어서 패션디자인과를 선택했는데, 디자이너에 맞춰져 있는 커리큘럼과 잘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로 하던 사진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맨땅의 헤딩을 시도한 거죠. 사실, 큰 고민 없이 결정한 일이었어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직관적인 선택이 도움이 되었네요. 작업을 할 때도 큰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혼자서 하는 스크랩, 콜라주 작업은 편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멍 때리면서 커피 마시는 것처럼요(웃음).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손이 가는 방향에 맡겨요. 오히려 생각을 비우자는 마음으로요. 그러면 스트레스도 풀리는 느낌이 들어요. 워낙 습관처럼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에 익은 것도 있고요.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했을 때 당연하게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여럿 있어요. 

그만큼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기 때문이겠죠. 콜라주, 그리고 스크랩이 좋은 이유는 뭘까요?

콜라주는 하나뿐이라는 것이 좋아요. 똑같은 이미지가 주어져도 제가 어떤 생각으로 배치하고 편집하냐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지니까요. 우린 모두 다른 사람들이고 저마다 생각과 취향이 있잖아요. 다름을 표현하는 건 아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결과물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요. 제 스크랩북엔 각각 제목이 있고 책마다 통일된 무드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보고 싶어 하는 것들만 담겨 있죠.

 

가장 좋았던 때를 스크랩북으로 남긴다면 어떤 추억을 말하고 싶나요?

런던에서 유윌노우 팀과 함께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각자의 작업을 위해서 떠난 여행이었고, 특별한 일이 있던 건 아니지만 함께 공원을 산책하면서 숙소에서 다 같이 밥을 먹던, 사소한 시간들이 참 좋았어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가족같이 지내던 추억이죠. 스크랩북으로 남긴다면 그때를 기록하고 싶어요. 그곳의 분위기와 나눴던 대화들을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은 마음으로요.

 

마지막으로, Entfnun의 이름처럼 그리고, 그다음의 시간들은 어떻게 채워질까요?

우선은 유윌노우라는 팀의 이미지를 잡아가는 일에 집중하려 해요. 이 안에서 아트 디렉터라는 제 위치를 다지면서요. 아티스트의 색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가 담고 있는 것들을 유연하게 표현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동시에 제 개인 작품활동까지 꾸준히 이어가고 싶고요. 제가 만드는 모든 것들이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영감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 형태가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자세를 배우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자신감을 찾는 일이 된다면 더 좋겠죠!

01. Bless You

“블래스Bless라는 패션, 비주얼 아트 브랜드의 아트북을 재구성했어요. 제가 브랜드를 만든다면 이런 이미지일 것이라 상상하고 싶은, 무척 좋아하는 브랜드죠. 그들이 만든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둔 작업이에요.”

02. Abib Hand Creme Type W Fragrant Tube - Entfnun Edition

“화장품 브랜드 아비브와 함께한 패키지 디자인 작업이에요. 손을 이용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다가 수화를 키워드로 잡았죠. 수화의 손짓이 점점 넓어지는 이미지를 구상했어요. 바를수록 손에 잡힌 주름이 펴진다는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03. MATTE AND GLOSSY PANTONE GRID

 

“팬톤 컬러칩을 잘라서 새롭게 그리드 구성을 했어요. 작은 컬러 조각들 사이에 톤을 맞춘, 화보 이미지를 조합했고요. 선명한 상태의 이미지보다는 흐릿하게 깨진 이미지를 택했어요. 영상을 캡처한 듯한,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04. CRUSH

“입체적인 스크랩북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체가 하드보드지로 이루어진 책을 이용했죠. 사진 안에 문이 열리거나, 사진 조각이 빠지는 재미가 있어요. ‘상상 가능한 지점을 깨부수자!’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고요.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스크랩북이에요.”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