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식물이 없는 식물 가게
식물이 없는 식물 가게
우리 마을엔 식물 가게가 있다. 모두들 식물 가게라 부르지만 막상 식물은 보이지 않는 가게다. 마을 어귀에서 밭일을 하다 비료가 필요해진 농부 아저씨,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식물에 줄 영양제가 필요한 아주머니, 열매 따는 가위가 필요한 과수원 할아버지가 들르는 곳. 식물에 쏟는 그 어여쁜 마음들이 모이는 곳이다.
지역 농업의
부활
경기도 남양주시에 ‘진접’이란 마을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숙천’이란 개천을 중심으로 들과 밭, 비닐하우스가 군데군데 모여있던 농촌이었다. 서울과 인접해있지만 개발이 되지 않았던 부도심 농촌 마을. 습지가 많은 마을에선 미나리가 많이 재배되었고, 광릉 숲으로부터 이어진 산 아래에서는 신고배와 포도 같은 과일이 재배됐다. 그러던 어느 해에 마을은 신도시 대상지로 지정되었다. 미나리 밭은 흙으로 메워지고, 비닐하우스들이 있던 자리엔 20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은 큰 택배 회사와 대형 마트의 노동자로 고용되고, 타지 사람들이 아파트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결국 농사를 짓는 사람은 줄어들고, 자연스레 그들이 찾던 농약사와 원예사들이 운영하는 식물 가게들도 함께 사라졌다.
신도시가 형성된 지 2년이 지나자, 지역 농업의 부활이 시작됐다. 동네 초입에 농협 영농자재센터란 이름의 농자재 마켓이 들어섰다. 식물을 재배할 때 필요한 모든 재료들이 있는 곳이다. 누군가는 아파트 단지에 농사 자재를 파는 곳이 잘 될 리가 있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대형 마트만큼이나 마을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가게가 되어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영농자재센터의 인기에 힘입어 바로 옆에는 대규모의 로컬푸드직매장이 지어지고 있다. 영농자재센터는 농협 조합원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데, 조합원이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자격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이자 농·축산업에 관련된 일을 하면 된다. 가축을 사육하거나 농지를 소유한 사람,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 혹은 농산물을 판매하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농업과는 관계없는 아파트 주민들, 우연히 방문한 타지인들 모두 이곳의 자재들을 구입할 수 있다.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동네의 가장 초입에 생긴 식물 없는 식물 가게. 어쩐지 우리 동네가 무척 자랑스럽다.
식물을 키울 때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
경제사업소에 들어서면 왼편에 식물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자재들이 진열되어 있다. 식물을 재배하는 일을 ‘원예’라 하니 이들을 ‘원예 자재’라 부를 수 있겠다. 원예 자재라고 하면 식물에 물을 주는 물뿌리개, 식물을 심는 화분, 꽃이나 열매를 따는 가위와 삽 정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키우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온도와 습도를 재는 온습도계부터 다양한 종류의 흙, 그리고 사계절 내내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를 만들 때 필요한 너트와 볼트까지.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원예 자재들이 1층과 2층의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대부분이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들이다. 조금 투박해 보여도 식물 재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기능성만은 믿을만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주변 국가들에 비해 일상 속 정원 문화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원예 자재들을 생산하는 회사가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화훼시장인 양재꽃시장에 가도 원예 자재들이 일본산이나 유럽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최근에 사람들이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화분이나 물뿌리개, 가위도 다양하고 예쁘고 식물에 이로운 제품을 찾는 추세니 원예 자재들을 생산하는 곳이 많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식물의 건강을 위해,
식물 약국
숲과 들에서 서식하는 자생식물은 스스로 씨앗을 번식시켜 잎과 꽃, 열매를 틔우는 게 가능하지만, 도시의 식물들은 인간에 의해 탄생한 존재기 때문에 우리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식물 종이 좋아하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식물이 최상의 생육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애완견에게 매일 밥과 물을 주듯이 식물에도 그들이 좋아하는 온도와 물, 햇빛을 제공해주어야 하고, 강아지가 아플 때 약을 먹이듯 식물의 생육이 좋지 않을 땐 식물에도 약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곳엔 식물 약국이 있다.
식물 약국에선 식물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약재들을 볼 수 있고, 식물의 생육에 해가 되는 병해충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살균제와 살충제, 그리고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영양제와 식물 보호제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약국에 가면 약사가 약을 처방해주는 것처럼, 이곳도 직원분에게 식물의 상태를 이야기하면 그에 맞는 약을 추천해준다. 식물 약국에서 판매하는 약들은 어린아이와 노약자, 임산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유해하기 때문에 신분이 확실한 조합원만 구입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준비,
씨앗 은행
보통 나무를 키우고 싶으면 작은 묘목을 사고, 풀을 키우고 싶으면 모종을 사 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직접 씨앗을 심어서 뿌리를 내고, 줄기와 잎을 틔우는 모습을 보며 식물을 키우는 재미는 색다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씨앗들은 모두 겨울과 초봄에 포장한 신선한 씨앗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묘 회사들의 씨앗들을 구매할 수 있는데, 어떤 식물을 심을지 결정하고 방문해도 씨앗 판매대 앞에 서면 고심하게 될 만큼 다양한 품종들이 진열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호박 종류만 해도 국수호박, 건강맷돌호박, 애호박, 조생풋호박 등의 품종이 있다. 또 같은 품종이라도 다양한 회사에서 생산된 수십 개의 패키지가 구비되어 있어서 씨앗 진열대 앞에서 씨앗을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꽃이나 열매를 관상하기 위한 화훼류보다는 우리가 많이 먹는 채소류의 씨앗들이 인기가 많다.
흔히 패키지 디자인이나 품종 이름만 보고 씨앗을 사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씨앗 구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발아 기한’이다. 씨앗도 살아있는 생물이기에 언젠가는 번식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씨앗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기한을 발아 기한이라고 하는데, 패키지 뒷면에 적힌 포장 연도와 발아 기한을 확인하면 된다. 현재 판매하는 씨앗들은 대부분 2016년 2월 포장된 것들이고, 발아 기한은 씨앗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 발아 기한이 지나면 씨앗을 심더라도 싹이 트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 반드시 확인하고 구매하길 추천한다.
진접농협 영농자재센터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해밀예당1로 13
T. 031 528 3848
에디터 정혜미
글·사진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