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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절을 나누던 친구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괜스레 까마득한 추억 속으로 빠지게 된다. 내 인생 최초의 친구는 여섯 살 시절, 또래라곤 만나기 힘들던 조용한 우리 동네에 이사 온 옆집 아이였다.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아 친구 집 앞에서 “민정아~ 노올자~.”라고 소리치면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곤 했다. 겨우 1년이 조금 지났을 즈음 이사를 가버려 친구로 오래 지내지는 못했지만, 함께 소꿉놀이하던 기억과 그 친구네서 처음 먹어본 옛날 소시지의 신기했던 맛은 여전히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친구랑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준 첫 번째 친구였다. 그 무렵 나의 또 다른 친구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 영자였다. 요즘과 달리 마당에 묶어두고 개를 키우던 시절이라 영자는 많은 시간을 개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나오면 목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 하루의 절반을 마당에서 놀던 시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릴 때부터 함께하던 친구였지만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영자는 없었고 엄마는 영자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알려주셨다. 그렇게 작별 인사도 못 한 채 영자를 보냈는데, 어린 나에게도 그 이별은 큰 충격이었는지 내 방 벽 가득 영자 모습을 그렸다가 엄마한테 혼난 기억만 난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사람과 동물 사이 확실한 구분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내게 첫 이별의 아픔을 알려준 슬픈 기억의 친구다.

몇 년 전 생일, 축하 메시지가 많이 오지 않아 ‘나 이제는 정말 친구가 없구나.’ 하며 쓸쓸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소원해진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어떤 관계는 서로의 쓸모가 다하여 끊어지기도 했고, 어떤 관계는 별다른 이유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했다. 내가 속한 단체가 바뀌어 생긴 인연도, 끊긴 인연도 있었다. 이래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 용어로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라는 뜻이다. 이제는 그 인연이 다해 더 이상 만나지 않는 친구라도 나의 한 시절을 채워주었고 그들과 함께한 순간의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까. 떠나보낼 때 슬프기도, 화나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그 시절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고 삶의 빈틈을 따뜻한 우정으로 채워준 것에 감사하다. 당신의 한때에 머문 친구는 누구인가? 내 이름을 불러주던, 내게 이별의 상처를 남긴 친구는 누구인가? 오늘은 오랜만에 싸이월드와 카카오스토리의 사진첩을 들춰봐야겠다. 그 안에서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을 내 시절인연에게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임민정
그림책 작가론, 북스타트 부모 교육 등의 그림책 강의를 하고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편집장을 맡고 있다. 열두 살 현이, 여덟 살 윤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일상의 순간순간을 작은 행복으로 촘촘히 채워가고 있다.

눈구름 사자

글 짐 헬모어 | 그림 리처드 존스 | 옮김 공경희 | 웅진주니어

상상 친구란 말 그대로 실제 존재가 아닌 상상 속에서 만든 친구를 말한다. 주로 유아기에 많이 만드는데 재미있는 점은 불안이나 두려움, 목표가 있을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카로 역시 낯선 곳으로 이사하며 상상 친구를 만난다. 하얀 사자의 모습을 한 이 친구는 당장 놀 사람 하나 없는 카로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차츰 친해진 동네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자 사자는 카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외롭고 막막하던 카로의 시간을 함께한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이다. 실제 상상 친구를 둔 아이들은 마치 누군가 있는 듯 대화를 나누고 놀기 때문에 이를 정신 질환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상상 친구와의 상호작용은 인지 능력도 향상시키고 대인 관계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하니 꼭 걱정스럽게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 상상 친구와 놀 만큼 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친구와는 작별하고 현실의 친구와 능숙하게 어울릴 테니 말이다. 이토록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상상 친구는 중요한 존재라서일까. 그림책, 영화 등에도 상상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존 버닝햄의《알도》,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을 그린 《잘 가, 나의 비밀친구》는 상상 친구를 다룬 대표적인 그림책.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빙봉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상 친구일 테다.

소중한 하루

글·그림 윤태규 | 그림책공작소

아이들에게 모험이란 거창하거나 위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잠깐의 시간을 버티는 것, 혼자 유치원 복도를 걸어 화장실에 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겐 용기가 필요한 모험이다. 《소중한 하루》의 똘이와 욱이에게도 모험의 순간이 찾아온다. 단골 떡볶이집이 멀고 먼 꿀단지 마을로 이사 간 것!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떡볶이의 유혹을 어찌 참으랴! 꿀단지마을까지 가는 길은 욱이와 똘이가 그린 지도만 봐도 멀고 험하다. 무시무시 숲, 마녀탕, 그리고 악마의 입을 거쳐야만 도착하는 마을까지 아이들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비장하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아이들이 두려워했던 무시무시 숲, 마녀탕, 악마의 입의 실체를 알게 되면 그만 웃음이 터지고야 만다. 이토록 귀여운 모험이라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모험의 추억은 있었다. 쉬는 시간 10분,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뛰어내려 헉헉거리며 다녀왔던 매점, 주위를 재빨리 살피고 우르르 들어갔던 만화방 등등. 함께 모험을 다녀온 친구와 우정지수가 +1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다음 날이면 어제의 모험담을 나누느라 쉬는 시간마다 모여 까르르 웃던 기억까지. 이제 ‘모험’이라는 단어는 주식 투자할 때나 듣는 나이가 됐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함께 학교 앞 떡볶이집에 가던 그 시절 친구가 그리워진다.

안녕, 내 친구

글 샬롯 졸로토 | 그림 벵자맹 쇼 | 옮김 장미란 | 웅진주니어

주인공 소년에게는 소중한 갈색 머리 친구가 있다. 일상 속 반짝이는 순간들을 함께 나누고 우정을 쌓아가는 두 친구. 그런데 어느 날, 소년은 갈색 머리 친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친구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와 하던 즐거운 놀이를 다른 친구와 하다니! 이 모든 것을 숨어서 지켜보는 소년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와 온종일 울고, 그러다 잠이 드는 소년. 꿈속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 소년은 잠에서 깨어나 담담히 얘기한다. 나에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길 거라고, 그리고 갈색 머리 친구가 그리울 거라고. 친구를 빼앗긴 질투심과 당혹스러운 소년의 심리를 꽤 잔잔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온종일 울다가 잠이 든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모두 한 번쯤 겪어 봤을 흔한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이 감정을 정리해 가는 과정 또한 평범하면서도 현실적이다. 왜 다른 친구와 노느냐고, 나도 함께 놀면 안 되냐고 묻기 어려워 조용히 받아들이고 울음을 삼킨 경험이 왜 없을까. 이 이야기는 그림 작가를 바꿔가며 지난 50년간 세 번이나 출간되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 선배가 떠나가는 인연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라고 충고해 주는 것만 같다.

나만 없어 토끼!

글 토베 피에루 | 그림 마리카 마이얄라 | 옮김 기영인 | 블루밍제이

《안녕, 내 친구》의 소년이 노력 한 번 해보지 않고 친구를 떠나보낸 것이 영 못마땅하다면 이 책의 카야를 소개한다. 카야는 친구 코테와 카르멘 사이에 잘 끼어들지 못한다. 카야에게만 토끼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야는 불쑥, 거짓말을 해버린다. “나도 토끼 있어!” 물론 거짓말은 나쁘지만, 카야의 거짓말은 셋이 함께 놀 기회를 만들어준다. 존재하지 않는 토끼를 기다리며 셋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차츰 거리를 좁혀간다. 카야가 우리 아이였다면 나는 엄마로서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그래도 거짓말은 나쁜 거야. 토끼는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너희와 함께 놀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어때?”라고 충고했을까. 아니면 “거짓말은 나쁘지만 친구와 함께 놀고 싶었던 네 마음을 이해해. 네 나름의 노력을 하느라 마음고생했겠네.”라고 다독였을까. 삼각관계의 숙명은 가장 마음 약한 한 명이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정해진 것 같지만, 처절하게 혹은 영리하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 간절한 마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친구와의 갈등 상황을 어떻게든 헤치고 나가려는 당신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당신의 거짓말도, 노력도 절대 나쁘지 않다. 끝내 “그럼 우리, 내일 보자!”라고 말하게 된 카야처럼 당신도 그렇게 인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부댕이!

글 제니 오필 | 그림 크리스 아펠란스 | 옮김 이혜선 | 봄나무

2020년 기준 전체 가구 중 15퍼센트인 312만 9천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보살피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주변 아이들을 보면 딱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반려동물이 있는 아이 그리고 반려동물을 원하는 아이. 이 작품의 소녀 역시 엄마에게 늘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조른다. 엄마는 안 된다고 하지만 결국 조건을 걸고 허락한다. “산책시키지 않아도 되고, 목욕시키지 않아도 되고,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면 된다는 것. 소녀는 모든 조건에 딱 맞는 ‘나부댕이’라는 이름의 나무늘보를 키우기 시작한다. 나부댕이는 정말로 산책도, 목욕도, 먹이를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다만 좀 많이 자고(이틀 동안), 무슨 놀이를 해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소녀는 나부댕이를 본인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결국 나무늘보는 나무늘보일 뿐, 개나 고양이처럼 훈련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나부댕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소녀의 변화는 얼마나 지혜롭고 성숙한가. 친구를 바꾸려고, 내게 맞추려고 쏟은 쓸데없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그 갈등을 우린 기억하니까. 왜 우린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도 이 책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4998 친구

글 다비드 칼리 | 그림 고치미 | 옮김 나선희 | 책빛

“요즘 당신의 일상을 가장 잘 아는 친구는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 ‘시냇물님’, ‘뮤즈님’, ‘푸른고래님’ 같은 닉네임을 떠올렸다면 이 책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본격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와 개인 SNS의 발달로 온라인 친구는 더 이상 얼굴 없는 친구도, 가상의 친구도 아닌 시대가 되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어느 때나 만날 수 있다는 온라인의 장점 그대로 우리는 랜선 친구와 시도 때도 없이 대화하고 일상을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먹은 음식, 갔던 카페, 읽고 있는 책을 모두 아는 사람이 가족일 확률보다 인스타그램 친구일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이 책의 첫 장에서 “내 친구는 4,998명이나 돼요.”라고 말하는데, ‘에이, 현실감 없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싶었다가 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를 더해보고는 ‘아, 가능하겠네.’라고 생각했다. 버튼 한 번 누르면 친구가 되고 다시 누르면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온라인 친구라지만 어느 누구도 그 관계를 가볍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어떤 선입견도 없이 취향과 성향만으로 맺은 온라인의 인연도 마음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라는 것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요즘 사람들의 친구’를 생각해 보게 하는, 가장 현대적인 친구를 말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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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글 임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