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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세계
플레따 김양희 X 코브라파스타클럽 윤지상
성격유형 검사를 한다면 전혀 다른 결과지를 손에 쥘 것 같은 두 사람이 만났다. 신부는 ‘플레따’라는 이름으로 옷을 만들고 신랑은 ‘코브라파스타클럽’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만든다.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당도한 두 사람은 결혼식이 노는 것처럼 즐거워서 지금도 왕왕 생각한다고. 한 사람이 A를 말할 때 다른 한 사람이 Z를 말해도, 한 사람이 차근차근 나아갈 때 다른 한 사람이 벼락치기를 해도, 입이 마르고 닳도록 싸우고 또 싸워도, 같은 순간에 웃는 둘이어서 서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이들은 부부가 되었다.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했고 신부의 아버지는 드레스를 만들었다. 신랑은 축가를 불렀고 ‘웃음을 어떻게 참지?’ 고민하던 신부는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다. 친구들은 결혼사진을 찍거나, 스타일링을 해주거나, 부케를 만들거나, 청첩장을 그리면서 둘을 축하했다. 신부 대기실에 앉아 손님을 맞는 대신 풀밭을 돌아다니며 손님이 올 때마다 해사하게 웃던 신부는 말한다. “최고로 재밌던 내 결혼식. 또 하고 싶다.”고.
상상만 해도 황홀해요. 직접 디자인하고 아버지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다니!
양희: 저희 부녀는 플레따라는 의류 브랜드를 함께 하고 있어요. 플레따는 처음부터 둘이 시작한 브랜드는 아니었어요. 오랫동안 패턴사로 일하신 아빠가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때 아빠가 옷을 같이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묻더라고요. 언젠가 아빠랑 함께하고 싶단 생각은 있었지만 그건 제가 자리를 잡고 난 먼 미래의 일이었거든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자신도 없고 걱정도 많았는데, 결국 ‘둘이 잘해보자!’ 다짐하곤 이렇게 호흡을 맞추고 있네요. 제가 디자인한 옷을 아빠가 제작하는 건 플레따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아빠가 만든 옷은 저에게 익숙하죠.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과정도 플레따 옷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아서 새로울 건 없었어요. 다만, 아빠와 함께 만든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는 신부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뜻깊기도 하고… 아빠한테 참 고마워요.
‘내가 입을 드레스’는 어떻게 만들고 싶었어요?
양희: 어릴 때부터 야외 결혼식에 로망이 있어서 저희 결혼도 야외에서 했거든요. 야외에서 입기 좋은 형태로, 오로지 제 취향을 담아 디자인했어요. 퍼프소매를 좋아해서 퍼프에 신경을 많이 썼죠. 다른 일로 바빠서 제 드레스는 거의 결혼식 임박해서 부랴부랴 만들었어요(웃음).
지상: 양희는 옷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웨딩드레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시험작으로 본인의 웨딩드레스를 만든 거기도 하고요. 웨딩 분야가 쉬운 쪽은 아니어서 우선 여성 브랜드로 플레따를 시작한 건데, 지금도 웨딩드레스에 대해 생각이 많아요. 곧 웨딩드레스 라인도 본격적으로 선보일거라 공부도 열심히 하더라고요.
두 분은 7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고 들었어요. 짧지 않은 시간인데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나요?
지상: 그럼요. 벌써 10년 전이네요(웃음). 저희는 브런치 카페에서 일하다가 만났어요. 저는 주방을 맡고 있었고 양희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으로 홀 서빙을 담당했죠. 그땐 각자 애인도 있었는데 긴 시간 일하다 보니 둘 다 헤어지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제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면서 연애가 시작됐어요. 당시에 양희를 좋아하는 남자 직원들이 꽤 있어서 미움을 좀 샀죠(웃음).
선택권은 양희 씨한테 있었군요(웃음).
양희: 사실 처음엔 오빠 방식이 부담스러웠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애정 표현을 정말 잘하거든요. 근데 그런 모습도 계속보다 보니깐 익숙해지고 다정해 보이더라고요. 나이 차이가 좀 나지만 자기를 잘 가꾸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더 좋아 보이기도 했고요.
두 분 나이 차이가…?
지상: 둘 다 양띠예요.
네? 띠동갑이요?
지상: 겉으로는 그렇게까지 차이 나 보이지 않아도 연애 초반엔 스스로 아저씨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너무 어른 같이 굴면 어려워할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고요.
양희: 어른스러운 면이 좋았지만 의외로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부딪치기도 참 많이 부딪쳤어요.
어떤 면에선 나이 차이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양희: 나이보다는 성격 차이로 더 많이 싸웠어요. 오빠가 일반 직장인이었으면 나이가 장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직업 특성상 그런 건 덜했어요. 겉모습도 워낙 젊어 보여서 특별히 힘든 건 없었죠. 제 친구들이 오빨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랬고요.
지상: 양희랑 달리 저는 좀 불편했어요. 7년을 연애했는데 결혼 직전까지 양희네 부모님께 비밀로 하고 만났거든요. 저희집보다 양희네가 훨씬 보수적인데 제가 나이도 있고…. 그래도 7년 동안 이렇게까지 숨기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매년 명절이면 양희네 집에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많이 답답하고, 솔직히 힘들었죠.
10년을 함께하다 보면 설렘보단 익숙함이 훨씬 커질 것 같아요.
지상: 설렘이라는 게 만화처럼 ‘뿅’ 하고 눈이 하트로 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전 아직도 양희를 보면 설레요. 매일 봐도 지겹지가 않거든요. 유머 코드가 잘 맞아서 웃느라 지겨울 틈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양희: 한 번쯤 권태기가 올 법도 한데 그런 게 없었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헤어진 적도 많지만, 상대가 지겹고 보기 싫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죠. 결혼하고도 똑같아요. 오히려 같이 있는 동안 웃느라 바빠서 싸울 시간이 없어요.
지상: 연애 때랑 달라진 게 있다면 덜 싸우게 됐다는 거예요. 연애할 땐 한 번 싸우면 무서울 정도로 크게 싸웠어요. 양희가 자존심이 센 편이라 사과하는 일도 없고 양희 잘못이든 제 잘못이든 화해하기가 쉽지 않았죠. 애걸복걸해도 소용없을 정도였어요(웃음). 근데 지금은 미안하다는 말도 잘하고 싸우면 먼저 풀어주려고 노력도 해서 싸움이 길게 갈 일이 거의 없어요..
변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양희: 오빨 처음 만났을 때 제 나이가 스물하나였는데 벌써 서른하나예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사는 동안 경험도 생기고 함께한 시간도 길어지면서 싸우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옛날엔 사소한 것들로 얼마나 트집을 많이 잡았는지 몰라요. 오빠는 망원동에서 코브라파스타클럽이라는 가게를 해왔는데요. 오픈하자마자 장사가 잘돼서 바빠지니까 저한테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드는게 너무 싫더라고요. SNS에 댓글이 달리면 ‘이 사람 오빠 좋아하나?’ 그러면서 터무니없는 생각도 하고, 오빠가 댓글이라도 달아주면 왜 그렇게 샘이 났는지 몰라요. 유치하죠(웃음). 이젠 그런 작은 부분에 연연하지 않아요. 오빠도 저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니까요.
지상: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싸우다 헤어지는 일도 많았어요. 이젠 다시 안 사귀겠다고 다짐할 만큼 크게 싸우고 헤어진 적도 있는데,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되더라고요. 연인이 너무 편안해지면 안 좋다고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양희가 가족 같아서 없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양희가 곁에 없으면 식구가 가출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게 돼요.
10년간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화를 하나 이야기해 본다면요?
양희: 옷장 사건!
지상: 아….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기억인데요. 비밀 연애를 하다 보니 양희를 데려다줄 때도 장인어른이나 장모님 같은 실루엣이 보이면 도망치고 숨고 그랬거든요. 근데 어느 날 양희가 부모님이 멀리 여행 가셨다고 집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웬만해선 안 가고 싶었는데…. 놀러 가서도 불안하고 조마조마했는데, 왜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을까요? 하필 여행지에 폭우가 쏟아져서 두 분이 새벽에 돌아오신 거예요. 양희랑 저랑 혼비백산해서는 장모님이 문을 열려고 덜컥거리는 찰나에 신발을 숨기고 옷장에 숨었어요. 정리가 안 된 옷장이어서 온몸을 구겨 넣어야 했는데, 곧 문밖으로 튕겨 나갈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죠. 그런 상태에서 문틈으로 장모님이 양희 방에 들어오신 걸 보고 있는데 정말이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아, 진짜 끔찍한 경험이었어요. 그 뒤로 절대 양희네 집에는 안 갔어요.
결국엔 안 걸린 거예요?
양희: 네. 부모님은 아직도 모르세요(웃음). 그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오빠가 옷으로 꽉 찬 옷장에 들어가 있는 게 너무 웃긴 거예요.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해서 참느라 혼났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따라 엄마가 좀 이상하긴 했어요. 새벽이니까 자다 깬 척 연기를 했는데 엄마가 제 침대에 앉으시더라고요. 얼른 가서 자라고 하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고 10초 정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가셨어요. 평소엔 그런 분 이 아닌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던 건가 싶기도 해요.
등줄기가 서늘한걸요…. 두 분은 언제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지상: 저는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땐 늘 결혼을 전제로 연애하곤 했어요. 그래서 양희랑도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근데 연애 5년째에 들어서면서부턴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제 존재조차 모르시고, 저는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양희야 나이가 어리니까 저랑 헤어져도 새 삶을 살 수 있지만, 저는 아니잖아요.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될까 봐 점점 맘이 급해졌어요.
양희: 연애 5년 차부터 오빠가 결혼 얘길 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흘려듣기만 했어요. 요리조리 피해 다녔죠(웃음). 근데 7년째가 되니까 오빠가 이젠 못 기다린다고 하더라고요. 담판을 짓자는 식으로 결혼 아니면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결혼은 제게 너무 먼 이야기라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오빠랑 헤어지는 건 상상할 수 없었어요.
지상: 저는 연애하고 1-2년 뒤면 부모님도 뵙고 결혼 얘기도 오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7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이 없는 거예요. 나이 차이가 크다 보니까 이대로 두면 곧 마흔이 넘어설 것 같고…. 그래도 앞자리가 바뀌기 전엔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할 거 아니면 헤어지자고 한 거죠.
7년간의 우여곡절을 끝내고 결혼 2주년이 되었네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지상: 5년 동안 해오던 코브라파스타클럽이 휴업 중이라 가게 시작하고 처음으로 쉬고 있어요. 망원동에 가게를 열고 한자리에서만 해왔는데, 집주인에게 갑자기 정리하란 통보를 받아서 정신이 좀 없었죠. 지금은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급변한 상황 때문에 일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네요. 식당 일이 워낙 힘들어서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건가 계속 고민도 되고요.
어떤 점이 특히 고민스러워요?
지상: 제 전공은 음식이 아니라 영상 디자인 쪽이거든요. 그래서인지 음악이나 영화, 디자인, 잡지 같은 데서 위안을 찾으면서 지내왔어요. 근데 코브라파스타클럽이 바빠지면서 책 한장도 펼쳐볼 여유가 없더라고요. 쉬는 날을 이틀 두었지만 경조사나 행정 업무 등을 처리하고 나면 온전히 휴식할 시간이 남질 않아요. 게다가 본가가 용인이라 결혼 전에는 왕복 4시간씩 걸려서 가게를 오갔는데,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쳤죠. 몸이 힘드니까 자꾸 졸음운전을 하게 되더라고요. 결혼식 일주일 전에도 마감하고 돌아가다 사고가 났는데 차가 거의 폐차수준으로 찌그러졌어요. 지금은 영혼결혼식 할 뻔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아찔했어요. 그래도 식당은 다시 할 예정인데요. 어쩌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 될 것 같기도 해요.
워낙 사랑을 많이 받은 공간이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코켓팅’, ‘코강신청’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예약이 어려웠잖아요.
지상: 그런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오픈하고 싶은 맘이 커요. 근데 아직 제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망원동 공간도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취향을 담아온 곳이었는데 다시 그 작업을 하려니까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요. 제 취향이 트렌디한 쪽은 또 아니어서 사람들이 낯설어하지 않을 정도의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양희: 코브라파스타클럽을 하는 동안 오빠는 정말 바쁘게 지냈어요. 휴가 기간을 가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오래 쉬는 건 이번이 처음이죠. 좀 철부지 같은 소리긴 한데, 저는 지금 상황이 내심 좋아요. 오빠도 저도 각자 브랜드 때문에 정신없었는데 요즘은 결혼 초보다 더 신혼처럼 지내는 거 같아요(웃음). 얼마 전엔 일어나니까 커피도 내려놓고 아침밥도 차려주고, 플레따 쇼룸 준비할 때도 이것저것 같이 보러 다닐 수 있어서 좋았죠.
그러고 보니 꼭 배턴 터치 같네요. 코브라파스타클럽이 휴업하는 동안 플레따 쇼룸이 오픈했잖아요.
양희: 의도치 않게 그렇게 되었네요. 제가 직접 브랜드를 운영해 보니까 깨닫는 게 참 많아요. 업종은 달라도 그간 오빠가 왜 그렇게 바빴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유치하게 사소한 거로 트집 잡고 토라지던 게 민망해질 정도로요(웃음). 플레따쇼룸도 망원동에 자리 잡았는데요. 이젠 피팅하거나 바로 가봉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데다가 아빠 작업실이랑 나란히 있어서 더 많은 게 가능해질 것 같아요. 늘 계획 중이던 웨딩드레스 라인도 오픈 예정이라 설레고요. 제가 셀프 웨딩을 하고부터는 웨딩드레스 문의가 많았는데 피팅할 공간이 없어서 진행이 영 어려웠거든요. 얼른 선보이고 싶은데 코로나19로 결혼식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일이 많아서 마음을 좀 느슨하게 먹고 있어요.
쇼룸이 브랜드의 흐름을 바꾸는 것처럼 결혼 또한 인생 주기의 터닝포인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또 어떤 계획들을 세우고 있나요?
지상: 자녀 계획이요(웃음). 아이가 생기면 여행을 많이 못 다닐 것 같아서 올해 긴 여행을 하고 연말엔 아이를 가지려고 했어요. 근데 코로나19가 터진 데다가 플레따 쇼룸도 오픈했고 제가 예정에 없이 쉬게 되면서 계획이 틀어졌죠. 아마 아이는 내년쯤 갖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고 나면 또 많은 게 변하겠죠?
양희: 저희 둘 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한 명씩 낳고 싶어 해서 원하는 미래 모습은 네 식구가 되는 거예요. 60살이 되고 70살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지금처럼 살 것 같아요. 그러고 싶고요.
지상: 양희가 60살이면 제 나이가…. 아, 갑자기 계획이 하나 더 생겼네요. 자기 관리를 더 열심히 해봐야겠어요(웃음).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