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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송가
환희의 송가
2015년 8월, 여름의 끝자락.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고, 갤러리를 돌며 연말 전시를 위해 공간을 섭외하던 중 우연히 학과에서 교환학생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전시 공간 계약도 마쳐가고, 포트폴리오를 보여줄 곳도 다 보여주었다 싶어 마지막으로 비평도 받을 겸 가벼운 마음으로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어쩌다 보니 8월이 가고 9월이 왔다. 합격.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어폰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이 흘렀다. 나는 그렇게, 조금은 어이없게 독일에 왔다.
죽을 땅 고르기
어이없다는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독일에 온 것이, 그것도 바이마르Weimar로 온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학교의 교환학생 시스템이 아니었더라도 한국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이곳의 대학원으로 진학할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독일 국적으로 귀화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막상 기회는 얻었지만, 출국 이전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나는 일전에 어머니께 여쭸다. 태어난 나라는 고를 수 없어도 죽을 나라는 고를 수 있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래, 고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온전히 죽을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꽤 귀찮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땅을 떠나기 전부터 나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글자가 빼곡한 종이 몇 장과 실체 없는 문장, 그리고 틀에 맞춘 초상화가 죽을 땅으로 가는 나의 발목을 잡았다. 태어난 땅을 모국이라 한다. 어머니 땅. 어머니의 품을 저버리고 떠나려는 자식놈의 발길을 돌리려는 것일까.
날개가
머무는 곳
출국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홍콩을 거치는 항공편으로 출국하여 새벽무렵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는 길 옆자리에 앉았던 홍콩 아저씨의 도움으로 공항을 수월하게 빠져나와 고속철도 플랫폼으로 발길을 옮겼다. 홍콩 아저씨와는 기차역에서 작별을 고했다. 작은 키에 다부진 표정과 새카만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던 그는 한 마디를 남기고 제 갈 길을 떠났다.
“Good Luck.”
그와 통성명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마음을 삭이며 기차에 올랐다. 가는 동안 바라본 창밖 풍경은 산 능선으로 둘러싸인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구름으로 뒤덮여 잿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에 펼쳐진 너른 초원과 낮은 언덕들, 그리고 그 위로 드문드문 솟아있는 집들. 이따금 제법 밀도 있는 마을이 나타나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실러가 노래한 ‘환희의 송가’에서 구절을 빌려오자면,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 정도가 어울릴 법한 나라였다.
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날 때쯤, 어느덧 실러가 잠들어 있는 도시,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역사 안으로 내려오니 샛노란 ‘M’ 자가 보였다. 과거 동독 지역으로서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 있었던 이 작은 도시까지도 자본주의의 대명사가 흘러들어온 것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는 여전히 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시간 정도를 기다리니 당분간 머물기로 한 집의 주인아저씨가 차로 마중을 나오셨다. 짐을 풀고, 중요한 장소 몇 군데를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독일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조용하게 끝이 났다.
길 위의
즐거움
이곳에서 가장 많이 하는 행동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걷는 것이다. 그냥 목적 없이 나가서 걷기만 할 때가 많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모습이 나오면 그때나 기록으로 남기곤 했다. 구두를 신은 날에는 단단한 뒷굽과 돌길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즐거웠고, 운동화를 신은 날에는 그 두꺼운 밑창을 뚫고 느껴지는 길바닥의 요철이 신기했다.
걷다 보면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관용구가 쓰이는 상황과는 관계없이, 말을 달리며 고개를 둘러봐도 산천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걷는 것이라면 오죽할까. 장을 보러 가면 그들이 사는 메뉴에서 생활과 식사 메뉴가 보인다. ‘저 사람은 저 맥주를 좋아하는구나, 저 가족의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이겠구나’ 하는 이야기들이 말이다. 옷의 색깔로 사람들의 직업을 유추하고 구분하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우체부는 노란색 비닐 재킷을 입고 다닌다. 빨간색 비닐 재킷에 반사 패치를 붙인 옷도 자주 보이는데, 이 옷은 아직 무슨 직업인지 보지 못했다. 그 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아마 미화원이 아닐까 생각하는 중이다.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채도가 낮거나, 채도가 높더라도 명도가 낮은 옷을 즐겨 입는다. 건물도 대부분이 채도가 낮은 파스텔 톤이거나 어두운 색이 주된 색이다. 길바닥은 말할 것도 없이 회색 투성이다. 이런 환경에서 원색 계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붕붕 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우체부는 다리가 없이 몸만 유유히 떠다니는 샛노란 로봇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물은 대다수가 신고전주의가 유행하던 18~19세기 정도에 지어져서인지, 조금씩 그 모습들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로 드물게 바우하우스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신식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신식이라고 해서 과도하게 튀지 않고, 주변의 고택들과 함께 그 자리에 고즈넉하게 어우러져 있다. 동대문의 DDP와 구로의 디큐브시티, 고척돔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인지, 난 이곳 사람들이 내심 부러웠다.
의외로 가장 좋은 것은 이곳에서 구식 자동차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난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자동차는 다 곤충 같다. 물론 주행 시에 공기 저항을 줄여 연비를 향상하기기 위함이란 것은 알고는 있지만, 좀처럼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리 드문 경우가 아니니까. 하여튼 기계는 직선으로 이루어진 비중이 클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곳의 구식 자동차들이 매우 반가웠다.
글을 쓰다 보니 아래층에서 감자 냄새가 올라온다. 난 한 가정집에서 다락방을 얻어 지내는 중이다. 오늘 집주인 가족의 점심은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Rösti이거나, 매시드 포테이토일 것 같다. 아! 점심을 먹으라는 구리 종소리가 땅, 땅, 땅 울린다. 아이들의 방문이 열리고, 두 남매는 재잘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Ha!”
집주인 분이 내 이름을 부른다. 나도 이만 점심을 먹으러 가보아야겠다. 점심을 먹으며 저녁 메뉴를 생각할 것이고, 저녁에는 내일을 생각해야지. 그렇게 며칠 더 지내다 보면 이윽고 새 학기가 시작하리라 믿는다. 그럼 모두 Gesundheit(잘 지내세요).
에디터 이자연
글·사진 하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