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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혼이 기거하는 장소
‘집’ 하면 단어 두 개가 먼저 떠오른다. 다들 그러하듯 ‘하우스’와 ‘홈’이다. 글쎄.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배웠다. 하우스는 물리적 공간이고, 홈은 정서적인 공동체에 가깝다는 거다. 오랫동안 이 분류를 신뢰했다. 왠지 그럴듯하게 들려서다. 뭐, 지금 곱씹어 봐도 아주 틀린 구분은 아닌 듯싶다. ‘홈’ 하면 괜히 정서적으로 밀착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보통 “나 집에 간다.”고 말할 때 기분이 슬쩍 풍요로워진다. 저 유명한 마이클 부블레도 노래하지 않았나. “파리와 로마에서의 여름이 또 지났네. 그런데도 나는 집 home에 가고 싶네.” 아니, 파리와 로마를 가뿐히 제압하는 ‘홈’이라니. 마이클 부블레에게 집은 자신의 진짜 영혼이 기거하는 장소임에 분명하다.
나에게도 그랬다. 아마도 당신에게도 집은 그러한 존재였을 것이다. 유년 시절의 집은 무해한 에피소드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친구를 불러 최신 게임을 하고, 생일이 되면 다 함께 모여 케이크를 먹었다. 내가 국민학생이던 시절에는 병아리를 기르는 게 대인기였는데 학교 앞에서 대략 300원에서 500원 사이였다. 병아리 한 마리를 사서 그걸 닭이 될 때까지 키웠다. 닭이 된 그 녀석은 집 안 구석구석을 마구 뛰고 날아다녔다.
그 닭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솔직히 기억에 없다. 어쨌든 재건축 때문에 오래전에 사라진 동부이촌동공무원 아파트 101동 101호에서 닭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는 유의 추억은 에피소드의 당사자가 누가 됐든 결코 잊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하우스를 홈으로 스윽 변신하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하나, 누군가에게 집은 언제나 모든 게 잘못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정인이에게 그랬을 것이다. 상상해 봤다. 그 어린아이가 집에서 겪었을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려 노력해 봤다. 별무소용이었다. 그저 한숨만 나왔다. 분노가 들이쳤다. 세상은 이렇게 항시 양면이다. 명明을 추억하되 암暗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정인이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대학 시절 이후 우리 집이 그랬다. 이사만 열 번을 넘게 했는데 당연히 갈수록 다운그레이드였다. 이사 횟수와 고통의 질량은 정확하게 비례했다.
영화 <기생충>(2019)이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동생이 나에게 웃으며 얘기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던 시절 우리 집에 와본 적 있는 녀석이었다. “형, 기생충 가족 집, 형이 살던 집이랑 완전 똑같던데?” 나는 <기생충>이 진심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 집에서 가족이 나누는 대화와 벌어지는 사건이 블랙 유머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럼에도, 보는 내내 조금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를 그때 알았다. 그렇다. 지금도 가끔씩 무의식의 영역에 침잠해 있던 고통의 뇌관을 수면 위로 갑작스럽게 끌어올리는 방아쇠 같은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이걸 피할 방법이라곤 없다. 그저 똑바로 응시하고 마주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여기, 고통의 시간에, 나에게 응원을 불어넣어 주던 음악이 있다. 이 노래를 플레이하면서 집에 가는 길은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편안했다. 위로가 됐다.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잠시 들뜬 기분에 기만당하지 말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가끔씩 웃음 지을 수 있다. 진창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미소 띨 순간은 분명히 온다. 그 순간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의 고통에 의혹의 눈초리 보내는 행위를 당장 그만둬야 한다. 그건, 너무 잔혹한 행위다.
그랬다. 이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밖에서든, 집에서든 정처 없었을 것이다. 이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아주 잠시나마 행복감에 충만했다. 이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밑에 그 곡 설명을 부기한다. 김윤아의 ‘Going Home’이다. 마지막으로 약속한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는 당신의 고통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가수가 발화하자마자 얼어붙은 노래가 몇 있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나를 초집중 모드로 곧장 진입하게 하는 음악이 여럿 있다. 지금 딱 떠오르는 건 두 곡이다. 아이유의 ‘밤편지’, 그리고 김윤아의 이 곡‘Going Home’이다.
2010년 봄,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단골 음반 가게에서 이 곡이 실린 김윤아의 솔로 앨범[315360]을 구입하고, 버스를 잡아탔다. 1, 2, 3번 곡이 흐른 뒤 ‘그나저나 제목이 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해하던 찰나에 김윤아의 목소리가 다음 가사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때는 적당하게 해가 서서히 지는 저녁 5시 즈음이었다. 온갖 상념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 와중에 다음 구절이 결정타를 날렸다. 하마터면 버스에 앉아서 울 뻔했다.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나는 본래 눈물이 많은 편이다. 이 정도면 ‘특기’란에 ‘대성통곡’을 적어야 하는 건 아닌지 싶을 수준이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은 결국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환기하는” 거라고 믿는다. 최근에는 영화 <소울>(2020)이 그랬다. 음악에서는 이 곡 ‘Going Home’이 언제나 그러하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