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듯 흐르는 음악들

Music Flowing Like Running

어느 날인가 문득 어린 시절 내가 자전거 타는 걸 엄청나게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곧장 실행에 옮겼다. 비싸지 않은 자전거를 구입해 한강을 질주해 봤다. 기분 끝내줬다. 내가 이걸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 나 자신을 나무라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벗 삼아 한강을 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로 땀을 씻어낸 뒤에 이 글을 쓴다. 으음. 이 글을 잘 쓸 수 있을지 고민인데 이미 너무 많이 써버렸다. 돌아가기엔 늦어버렸다. 아아. 고민이여.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혀라. 그리하여 결론은 요즘의 내가 다시 운동을 좋아하게 됐다는 거다. 다음은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리스트다. 자전거 탈 때 참고하면 당신도 효과 볼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만약 있다면) 전국자전거협회에서 돈 받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다.

인생을 즐기는 잔재미

운동을 좋아‘했’다. 그것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푹 빠져 지낸 시절이 있었다. 그중 가장 몰입했던 건 농구와 축구였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랬다. 그중 농구는 1990년대 대한민국 스포츠의 꽃이었다. 야구 못지않은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아니, 그런데 말입니다. 곱씹어보면 고려대나 연세대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서로 다퉜는지 모를 일이다. 고려대의 각 선수와 연세대의 각 선수를 만화 《슬램덩크》 속 주인공과 비교하면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어쨌든, 인생을 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갖고 이해할 수 없는 말싸움을 벌이곤 한다.

축구에서 누가 최고냐는 갑론을박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라. 리오넬 메시가 최고가 되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최고가 되건 당신 인생에 도움 되는 거 있나? 폭락하던 주식이 갑자기 상한가를 치나?집에서 석유가 콸콸 솟아오르나? 평소에는 말도 안 걸던 사장님이 당신을 불러서 “당신 같은 인재를 잃긴 싫으니 연봉을 대폭 올려줘야겠어.”라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지나?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늘도 둘 중 누가 넘버원인지를 자기 시간을 써가면서 열과 성을 다해 설파한다. 그 격렬함으로 따지자면 ‘입’농구와 ‘입’축구의 세계는 실제 운동의 그것에 비해 모자라지 않다. 도리어 더 뜨겁게 타오를 때가 많다. 심지어 손가락과 입만 사용하면 되니까 큰 힘 들이지 않고도 괜히 운동하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을 선물해 줄 수도 있다. 이거 참 신묘한 효과다. 나는 이걸 (악플은 달지 않는 한에서) 인생을 즐기는 잔재미라고 부른다. 내 경험에 이런 잔재미라도 있는 인생이 그나마 살 만하다. 주기적으로, 마치 필연인 것처럼 들이치는 따분함을 조금이라도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을 해주는 셈이다.

특단의 조치

하지만 아무래도 그렇다. 더욱 탄탄한 방파제를 찾는다면 운동의 세계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을 이길 순 없다. 예를 한번 들어보자. 우리의 고민 리스트는 한도 끝도 없다. 고민을 해서 고민이 해결되면 고민이 없겠지 싶지만 인간인 이상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민은 대개 예고도 없이 침입한다. 한번 거기에 빠지면 헤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걸 물리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 이른바 고민을 제거하기 위한 고민이다.

실험을 해봤다. 책을 읽어보니 육체를 한계까지 몰고 가면 거기에 고민 따위 들어설 구멍은 없다고 써져 있었다. 돌이켜보니 맞는 말 같았다. 대학 시절 나는 수업도 안 들어가고 하루에 농구를 거의 다섯시간 넘게 했다. 당시 내 집안 환경은 최악이었다. 극단적인 상상도 여러 차례 해봤다. 예전에도 썼듯이 삶이 나를 끊임없이 비웃고 있는 것만 같던 시기였다. 한데 그 비웃음이 잠시라도 들리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농구장이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내 삶은 꽤나 안정적이다. 그럼에도, 고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시작했다. 나는 주말이 되면 자전거를 끌고 나가서 한강을 달린다. 원래는 두 발로 달렸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달렸다. 그러다가 너무 바빠서 운동을 안 하게 됐다. 배가 자연스럽게 부풀어 오르면서 체력이 뚝 하고 떨어졌다. 혹시 그거 아나? 글은 정신력으로 쓰는 게 아니다. 글도 체력이 있어야 쓴다. 위기라고 판단했다.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렸다. 글은커녕 기상하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나 자신에게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신발장](2014)

에픽 하이, ‘막을 올리며’

나는 지금 심각하다. 한강 공원에 막 진입했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서서히 속도를 올리려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 바로 과할 정도의 진중함이다. 무릎의 진동을 느끼는 동시에 조금씩 힘을 가하면서 페달을 돌려야 한다. 유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흥분을 이기지 못해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는 거다. 속도를 자연스럽게 올려야 나중에 더욱 짜릿한 기분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 구간에 ‘막을 올리며’보다 더 어울릴 노래는 몇 없다. 그러니까, 출발과 함께 내 나름의 진지한 의식을 치르는 셈이다. ‘막을 올리며’ 뒤에 흐르는 ‘헤픈 엔딩’도 이어 들으면 더욱 좋다. 왜, 준비 운동은 길면 길수록 유익하다고 하지 않나.

[Crystal](2001)

New Order, ‘Crystal’

뉴 오더를 좋아한다. 가장 애정하는 밴드들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다. 그중 이 곡은 자전거 타기에 최적화된 리듬을 들려준다. 규칙적이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까닭이다. 마치 로봇을 연상케 하는 리듬인데 뉴 오더의 곡이 대부분 이렇다.

주로 속도 변화 없이 쭉 치고 나아가고 싶을 때 이 노래를 선택한다. 게다가 이 곡은 러닝 타임도 꽤 길다. 거의 7분에 가깝다. 이 곡 플레이하면서 7분 동안 꾸준히 페달을 밟아보라. 자잘한 고민 정도는 저절로 소멸할 게 분명하다. 대신 그 자리에 튼튼한 두 다리와 쪽 빠진 뱃살이 들어설 것이다.

[Aviation](2016)

The Last Shadow Puppets, ‘Aviation’

속도를 더욱 올리고 싶을 때 트는 곡이다. 일단 제목을 보라. ‘항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왠지 질주하지 않으면 노래에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죄의식은 중요하다. 때로 그것이 책임감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하는 까닭이다.

‘Aviation’을 플레이하면서 나는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진심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그리하여 가끔은 몸이 붕 뜨는 듯한 착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중력은 과연 위대하다. 이 곡 역시 러닝 타임을 고려해서 선곡했다. 4분이 채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과속은 금물이다. 자동차든 자전거든 안전이 제일이라는 점 명심하고,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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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