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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발걸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그런 기분을,
혹시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
얼마 전부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원래는 허리가 아팠고, 허리가 어느 정도 나으니 어깨가 아팠다. 어깨가 좀 괜찮아지니 이제는 무릎이 아픈 것이다. 내 관절들은 전쟁터의 불타는 다리처럼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다.
하긴, 관절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2.0의 시력이었는데, 눈은 날이 갈수록 침침해져서 안경 없이는 TV도 보지 못한다. 듣도 보도 못한 비문증이라는 것도 생겼다. 한쪽 시야에서 언제나 날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질환이다.
40대에게 운동은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는데,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 개운치 못한 몸은 마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나마 지금은 그럭저럭 살고 있지만 더 늙으면 어떻게 되려나?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내 마음 같지 않은 몸일 것이다. 불행한 나의 미래를 떠올리며 나는 아침마다 한숨을 쉬며 체조를 하고, 저녁이면 운동장의 트랙을 달린다.
영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2020)의 주인공은 외로운 독거노인, 모모코 할머니다. 할머니는 매일 혼자 일어나고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혼자 TV를 보다가 혼자 잠이 든다. 가끔 병원에서 하루 종일 기다려 약을 타고, 도서관에서 공룡 도감이라든가 고대 생물 도감 같은 걸 빌려 오는 것이 유일한 사회 활동이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기 직전 시골집을 뛰쳐나온 모모코는 도시의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다가 동향 출신의 슈조를 만났다. 그와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이제 남편은 죽었고, 큰아이는 연락이 끊겼고, 작은아이는 결혼해 근처에 살지만 가끔 의무적으로 얼굴을 비추며 돈 빌려달라는 소리만 한다. 평생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할머니는 이 독거 생활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모모코는 짬이 날 때마다 지질 시대를 외운다. 선캄브리아대, 고생대와 중생대, 신생대.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 치매에 걸릴까 무서워서다. 책 속의 고대 생물들을 열심히 따라 그리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할머니는 이런저런 취미 활동 모임들을 권하지만, 모모코는 언제나 거절한다.
혼자 있지만 모모코는 혼자가 아니다. 모모코는 세 어릿광대의 모습으로 나타난 자기 자신과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그들과 춤을 추기도 한다. 간혹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한테 못되게 군 것을 후회하며 모모코는 운다.
“할머니 손녀는 이렇게 혼자 쓸쓸히 집에 있으면서 노을 진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다우. 이렇게 돼버렸어요. 미안해요, 할머니. 이래도 괜찮아요?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할머니는 다만 웃으면서 할머니가 된 손녀의 등을 토닥일 뿐이다.
“다 그런 거란다.”
멸종한 공룡처럼, 매머드처럼, 모모코 할머니는 서서히 소멸해 간다. 외로워서, 외로워서 죽을 지경이지만, 누구도 이 외로움을 달래줄 수 없다는 것을 할머니는 잔인할 정도로 잘 안다. 아무도 없는 눈 쌓인 벌판에 자기 몸 하나 집어넣을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 사람처럼 할머니는 외롭고, 또 외롭기로 작정했다. 외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로, 누구에게도 외로움을 달래주기를 바라지 않기로 다짐했다.
영화를 보다가 오래전에 읽은 한 소설이 떠올랐다. 노르웨이에서 온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라는 소설의 주인공 역시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다. 남편 엡실론이 죽은 후 그렇지 않아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마테아는 점점 더 고립된다.
어릴 때부터 극도로 수줍음이 많고 괴팍한데다 친구가 없던 마테아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남자가 바로 엡실론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엡실론과 결혼한 마테아는 임신을 하지만 곧 유산을 하고 만다. 그리고 엡실론은 이웃집 여자와 오랫동안 바람을 피운다. 엡실론이 죽고 난 뒤 회사 동료가 가져다준 짐 속에는 마테아가 매일 아침 가방 속에 넣어주었던 편지들이 뜯지도 않은 채 가득하다. 마테아는 사랑받고 싶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다. 자기가 여기 있다고 알리고 싶다. 하지만 마테아는 좀처럼 타인에게 다가서지 못한다. 결국 그가 죽어도 아무도 모를 테고,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마테아는 외롭고 또 외롭다.
외로운 10대나 외로운 20대의 마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외로운 중년의 마음이 어떤지도 점점 알아가고 있다. 하지만 외로운 노년의 마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오래 산 노인인 우리 외할머니는 90세가 넘어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노년과 말년은 외로움의 결정체였다. 한밤중 불 꺼진 방에서 커다란 벌레처럼 등을 둥글게 만 할머니는 벽에 기대 티브이만 보고 또 봤다. 언젠가 할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죽고 싶은데, 죽어지지가 않는다.” 할머니는 노인 우울증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노인 우울증이라는 말은 참으로 잔인한 것 같다. 병원에 갔더라면 분명 노인 우울증을 완화하는 약을 처방해 주었을 것이다. 할머니 마음에 뚫린 구멍은, 할머니의 지독한 외로움은 수많은 노인들이 겪는 비슷한 질환 중의 하나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평생을 간직해 온 할머니의 개인적인 상처와 회한은 떨치고 나가야 할 과거의 기억일 뿐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더 외로워진다.
외할머니의 우울증 유전자는 나의 피를 타고 흐른다. 나도 할머니처럼 외롭고 우울한 노인이 될까 두렵다. 어쩌면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도, 아주 먼 옛날, 들판에서 창을 던져 매머드를 때려잡던 선사 시대에도 우리의 할머니는 우울했던 것이 아닐까. 어느 밤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등을 둥글게 말고 앉은 채 죽고 싶은데 죽어지지가 않는 인생에 대해서 고뇌하지 않았을까. 죽을 용기는 없고, 살 희망도 없는 인생에 대해서 곱씹고 또 곱씹지 않았을까. 나의 인생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문득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우리 외할머니도, 모모코 할머니도, 마테아 할머니도 이전까지는 굳이 자신의 삶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할머니들의 삶에는 언제나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할머니들에게도 해야 할 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맞서야 할 하루하루가 있었다. 탄탄한 몸과 매끈한 피부와 매일 아침 새로 채워지는 활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없다. 할머니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건강도, 사랑도 없다. 의무도, 책임도 없다.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이란 존재 가치가 없어진 삶이다. 이 허무를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모모코 할머니가 여느 날처럼 병원 진찰실로 들어갔을 때,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할머니의 상상 속, 매머드를 때려잡던 원시인이다. 원시인은 할머니의 얼굴을 경이로운 표정으로 만져본다. 그는 원시인의 말로 할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신은 굉장해, 정말 굉장하군. 살고, 죽고, 살고, 죽고,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긴 시간을 잇고 이어서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어. 기적과도 같은 목숨이야.”
늘 약이나 타 가라고 하던 무심한 의사에게서 할머니가 듣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이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굉장해. 기적과도 같은 목숨이야. 당신은 정말 굉장해. 모모코는 그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제대로 살아온 걸까?”
모모코의 질문에 원시인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경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잔인하게 들리는 마테아 할머니의 이 생각은 오히려 모모코 할머니에게는 구원이 된다. 내 삶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수많은 삶과 연결된다.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살고 죽고 살고 죽고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긴 시간을 잇고 이은 그 수많은 삶들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자신은 거대한 흐름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 그 일부로서 내 삶은 소중하고, 나는 그 일부로서의 소명을 다했다는 것. 이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의 삶은 그렇게 소중한 동시에 또 털끝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것. 모모코는 다짐한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가겠다고. 그래서 모모코는 뭐든 한번 해보기로 한다. 도서관의 할머니가 권하는 탁구도 해보기로 한다. 도서관을 나서는 모모코 뒤로 거대한 매머드 한 마리가 따라 걷는다. 할머니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털끝처럼 가볍다.
오늘 아침,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ʻ합창’ 교향곡 영상을 봤다. 넓은 야외 공연장의 객석에서 티셔츠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시민들이 ʻ합창’ 교향곡의 그 유명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감격에 겨워하고 있었다. 문득 200년 전에 살다 간 한 천재가 만든 곡을 200년 후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합창단이 부르고, 200년 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는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ʻ합창’ 교향곡의 멜로디만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 이렇게, 오랜 시간을 잇고 이어서, 함께 있다는, 잠시라도 마음을 합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생명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하고 문득 생각했다. 이번 생에 내가 그 흐름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