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Book]

불면과 악몽의 밤

잠을 잘 잘 수 없게 된 것은 작년 가을부터였다. 몇 달 후 불안 장애와 우울증과 자살 충동, 공황 장애가 굴비 두름처럼 줄줄 딸려 왔다. 이러다 진짜 큰일 나겠다 싶어 병원으로 달려갔다. 요즘은 그때 일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쩡하다. 운이 좋았다.

나는 원래 잠을 잘 잔다. 어릴 때는 머리만 대면 자는 타입이었고 청소년기에도 9시만 넘으면 졸려서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런데 작년 가을 무렵부터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기 시작했다. 악몽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고, 그렇게 깨면 끔찍한 잔상이 남아서 몇 시간 동안 괴로워하며 자지 못한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 한 시간 반쯤 지나면 또 깨어났다. 하룻밤에 악몽을 세 개 정도는 꿨다.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 줄은 몰랐다.

그러다가 혀가 아프기 시작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다가 대학병원까지 가게 됐는데 예진 검사지에 수면 장애와 우울감에 대한 항목들이 있었다. 그 기나긴 항목들에 하나하나 체크하다가 어느 순간 종이에 먹물이 번지듯 서서히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나 우울하구나. 당황스러웠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그럴 리가. 나는 행복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가 불행할 이유는 없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가족 모두 건강했고, 금전적인 문제도, 특별한 고민거리도 없었다. 하던 일도 잘 되어가고 있는 편이었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았다. 매일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도 했다. 억눌린 욕망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내 삶을 사랑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지?

잠이 오지 않은 지 오늘로 며칠째일까. 처음으로 잠을 못 잔 것이 지지난주 화요일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로 십칠 일째다. 십칠 일 동안 나는 한숨도 자지 않았다. 열일곱 번의 낮과 열일곱 번의 밤. 대단히 긴 시간이다. 잠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이제는 그것조차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잠》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잠》은 잠들지 못하는 한 가정주부의 이야기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린 후 갑자기 잠을 못 자게 된 여자는 기나긴 밤을 때우기 위해 기나긴 러시아 소설들을 읽는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이상한 것은 며칠째 잠을 못 자는데도 전혀 피로하지 않다는 것이다. 책은 전에 없이 잘 읽히고, 얼굴과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쁘고 건강해 보인다. 그리고 이 여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 이상한 일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루하루가 거의 똑같은 일의 되풀이였다. 나는 간단하게 일기 같은 것을 쓰고 있지만 이삼 일 깜빡 잊고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벌써 구별하지 못한다.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거기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이게 대체 무슨 인생인가, 때때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허망함을 느낀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단순히 깜짝 놀랄 뿐이다. 어제와 그제의 구별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런 인생에 나 자신이 끼워 맞춰져 버렸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찍은 발자취가 그것을 인정할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람에 날려가 버린다는 사실에.

 《잠》 중에서

이 여자도 나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을 산다. 남편의 치과는 순탄하게 운영되고 있고, 둘 사이는 여전히 끈끈하며, 아이는 제 아버지를 꼭 닮았다. 주로 집에 머물며 남편과 아이를 돌보는 그녀의 삶은 안정이라는 말 그 자체다. 아마 이대로 쭉 삶은 흘러가리라. 죽을 때까지. 그러나 안정과 평온이라는 표피를 쓴 매일의 틈새에 불면이라는 의심스러운 씨앗이 싹을 틔우더니, 결국 그녀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이른다. 이제 현실은 전과 다르게 보인다. 그녀는 남편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남편을 닮은 아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다가 급기야 공포에 사로잡힌다. 어쩌면 나는 이대로 죽어가는 건 아닐까? 중년의 나이에 나를 찾아온 불안과 불면에 대해, 그것이 불러온 우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대단치는 않지만 어쨌든 젊은 시절이라는 난관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미래가 막막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겨우 겨우 안정되었다. 그러나 내 삶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두려웠다. 겨우 얻은 이 행복과 안정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이 불안감은 망상으로 연결됐다. 집에 불이 나는 망상, 남편이 모는 차가 사고를 당하는 망상,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망상, 끔찍한 질병에 걸리는 망상, 건물이 무너지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망상,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빼앗기는 망상. 망상은 통제할 수가 없었다. 망상은 공포로 연결되었고, 나는 그렇게 두려움에 떨다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일을 겪어야 한다니, 무서워 죽을 것 같아. 이럴 바엔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어떻게 죽어야 덜 고통스러울까?’ 깊은 밤 침대 위에서 인천대교와 번개탄을 저울질하던 나는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죽음에 성공한 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저린다. 성공이란 말이 웃기지만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겐 죽음은 미션 성공이다. 나는 여러 번의 실패로 죽음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김예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중에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나타나기 한참 전, 어느 서점의 행사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가 《저 청소일 하는데요?》라는 책을 쓴 김예지 작가를 만났다. 나는 그 서점에서 아직 읽어보지 않은 그의 책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를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읽으면서 좀 놀랐다. 내가 본 김예지 작가는 구김 없이 밝고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사회 불안 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자살충동이 있었다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 후에 내게도 우울증이 찾아오고 결국 이 만화책 덕분에 구원을 받게 될 줄 그때의 나는 역시 상상조차 못했다. 병에 걸리기 전에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미리 배워뒀기 때문에 나는 생각보다 빠르고 순조롭게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내내 이 작가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다.

사회공포증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수줍음’과는 다른 감정이다. 일반인에겐 ‘수줍음’이지만, 사회공포증 환자에겐 ‘공포’다. 일반적인 사람은 수줍음을 느낀다 하여 기분이 거북하고 행동이 꺼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그 상황에서 공황에 빠지거나 몸이 경직된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중에서

내가 겪는 장애가 불안 장애라면, 작가 김예지는 어린 시절부터 사회 불안 장애를 앓았다. 물론 그때는 그도 그게 장애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밝아 보였지만 사실은 어떤 그룹에서나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면 더 소외될까 두려워 아닌 척하면서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런 자신의 소심함을 탓하면서 우울증이 생겼고, 우울증은 자살 충동으로 연결됐다.

정신적인 고통은 신체적인 고통보다 이해받기 어렵다.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 내어 고백했을 때, 나는 마치 벽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바로 얼마 전,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어린 여자 연예인을 두고 “그 시기만 넘겨보지, 왜 자살을 했을까?” 하고 말한 사람이 나였으니까. 아무리 우울하고 힘들어도 정신과는 정말로 가고 싶지 않았고,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던 사람도 나였다(천벌이다).

나의 김예지 스승님은 스스로 공부한 끝에 우울증을 상담 치료나 운동, 생활 습관, 정신력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뇌 속의 세로토닌이 너무 빠르게 재흡수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기분을 안정되게 만드는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물론 흔히들 말하듯이 햇볕을 많이 쬐고, 건강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심한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뇌 속에 세로토닌을 좀더 오래 머물게 하려면 약물 치료가 불가피하다.

치료 과정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심리적 상담은 상담 선생님에게, 약물 복용은 정신과 의사에게 확실하게 구분하여 치료를 받았다. 이렇게 마음먹으니 더 이상 정신과 치료에서 상처받지 않았다. 딱 내가 필요한 부분만 채워주면 됐고 심리적인 부분은 다른 곳에서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이분법을 선택했지만 사실 여러모로 정신과가 다정해지길 바란다. 더 친절하게 병명을 설명해주고 약을 설명해주길, 누군가는 마지막 선택으로 정신과를 찾기만 하니 말이다.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중에서

나도 스승님의 방식을 똑같이 따라 했다. 우울증에 이어 공황 장애까지 찾아오자 일단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가 조언한 대로 정신과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소파에 누워 심리 상담을 받는 곳이 아니라, 약 처방을 받는 곳이라는 것부터 나 자신에게 확실히 했다. 첫 번째로 간 동네 병원이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두 번째로 찾아낸 병원은 다행히 잘 맞았다. 선생님은 밝고 쾌활했고,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왜 생겼는지, 이를 어떤 식으로 치료할 것인지, 치료는 얼마나 걸리게 될지를 명쾌하게 말해주었다. 그가 모호한 심리 이론보다는 분명한 뇌과학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해주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안심이 되었다.

약을 먹고 난 뒤부터 곧 잘 잘 수 있게 됐다. 한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내가 더는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상에도 빠지지 않았고, 끝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지도 않았다(예전에는 정말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도 했다). 작은 자극에도 짜증과 화가 나는 일이 줄었다. 나는 너무 기쁘지도, 너무 슬프지도, 너무 불안하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았다. 그저 평온해졌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것 같은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이런 기분으로 살았겠구나, 싶으니 억울할 정도였다. 지금껏 자기 자신과 싸우며 힘겹게 살아온 나를 나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버티고 선 두툼한 암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암흑은 우주 그 자체처럼 깊고 어떤 구원도 없었다. 나는 외톨이였다. 내 의식은 집중되고 확장되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우주의 저 깊은 곳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다. 아직은 너무 일러, 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 중에서

저녁마다 나는 육상 트랙을 달린다. 땀이 날 정도로 달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오늘치의 약을 먹는다. 두 알이고, 두 알 모두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약을 하나씩 삼킬 때마다 이 약들이 내 뇌 속 환경을 더 좋게 만들어줄 거라고 했던 선생님의 발랄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10시가 되기 전에 침대에 눕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든다. 악몽은 더 이상 꾸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될 것이다. 그러다 가끔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점 같은 암흑을 생각한다. 우주 그 자체처럼 깊고 어떤 구원도 없는 암흑을. 그 깊은 어둠을 바라보기에, 아직은 너무 이르다.

Book—《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김예지 | 성안당

Book—《잠》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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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