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Book]

자전거를 타는 기분

이달의 주제는 지구와 환경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지구와 환경에 대해 뭐라고 쓸 수 있을지 고민해 봤는데, 아무리 해 봐도 이 문제에 대해 나는 달리 흥미로운 생각을, 읽어볼 만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 것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에게 맡긴다.

유례 없는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경고를 쉴 새 없이 보내고 있음에도 이 미물에게 미래란 너무나 멀다. 최소한 우리 집에서 북극까지의 거리만큼은 멀다. 북극이 우리 집 뒷산이었다면 나도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역류성식도염이 도지고 입안에 혓바늘이 돋았겠지. 그러나 나는 지금 나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역류성식도염을 앓고 혀가 쓰려 괴로워하고 있다. 내 인생이야말로 진짜 위기인 것이다.

요 근래에 나는 염증도 없이 몇 주째 혀가 아파서 동네 병원을 전전했으나 다들 이유를 몰랐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구강작열감 증후군이라 했다. 그다음부터는… 건강 문제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울적해지다 못해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마련이다. 안 되겠다, 큰 병원에 가보자. 

아침 7시에 전철을 타고 가서 세 시간을 기다려 겨우 만난 의사는 보자마자 “이 증상으로 오시는 분들이 아주 많은데… 암이 아니에요. 절대 암은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안심시키려 한 말인 것 같았다. 나는 ‘암이 아닌 줄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고요!’ 하고 속으로 소리쳤다. 내가 걱정하는 건 이런 거였다. 나는 이 증상이 강도를 더해갈까 봐, 내 일상을 잠식할까 봐 두려워요. 이것 때문에 내 삶이 피폐해질까 두려워요. 내가 더는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 자신이 변해갈까 두려워요.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래가 두려워요. 맞아요. 사실 나는 모든 게 두려워요. 밤중에 아파트에 불이 날까 두려워요. 아침에 학교에 가던 아이들이 교통사고라도 당할까 두려워요. 남편이 갑자기 사라질까 두려워요. 바다에 가면 물에 빠질까 두렵고, 산에 가면 실족할까 두려워요. 얼마 전에 생긴 점이 흑색종이 아닐까 두렵고, 내 아이들의 성적표가 그 아이들의 미래일까 두려워요. 내가 가난하고, 아프고, 외로운 노인이 될까 두려워요. 아니, 노인이 되지도 못한 채 죽을까 두려워요. 그래서 나는 매일 밤 악몽에서 깨어나서 벌벌 떨어요.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두려워요. 이게 사는 건가요? 네? 하지만 여긴 정신과가 아니고, 나는 그냥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병원을 나올 때쯤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좋아졌다. 걱정했던 병원 진료를 끝냈다는 성취감에, 날씨마저 맑아서 마음이 절로 들떴다. 그래, 도넛을 사자. 이 기분엔 도넛이다. 도넛을 사러 가다가 따릉이가 보여서 따릉이를 탔다. 나는 따릉이를 좋아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말해 뭐해, 최고다.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기분 때문인지 실로 오랜만에 혀의 통증이 견딜 만했고, 나는 오르막길도 쉴 새 없이 페달을 밟으며 달렸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세로토닌이 폭발했다. 아아, 인생은 아름다워!

마이크 리의 영화 <해피 고 럭키>(2008)는 자전거를 타고 런던 거리를 달리는 포피를 오랫동안 비춰주며 시작한다. 포피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서른 살의 여자다. 늘 웃는 얼굴에 낙천적인 성격인 그녀의 삶은 항상 즐겁다. 포피의 재산은 좋아하는 직업과 좋은 친구들 그리고 건강한 몸과 마음이다. 자전거를 도둑맞아도 웃고 아파도 웃고 당황해도 웃고 미안해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무시를 당해도 웃는 포피. 그야말로 ‘해피 고 럭키’, 낙천적이고 태평한 사람.

그런데 포피의 운전 강사 스콧은 그녀의 정반대 쪽에 있는 사람이다. 언제나 화난 얼굴의 스콧은 늘 최악을 생각하는 꽉 막힌 원리원칙주의자에 온갖 불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종차별주의자에 음모론자다. 누구도 그를 좋아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스콧을 포피는 비좁은 차 안에서 웃으면서 놀려대는데, 거의 불난 집에 휘발유 끼얹기다. 두 사람의 운전 교습은 웃기면서도 조마조마하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 변하는 것이 동서고금 대부분 이야기의 줄거리이나, 스콧은 그러지 못한다. 아니, 포피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착각한 스콧은 상처받고 절규한다. 이제 스콧은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아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포피의 인생은 앞으로도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간이 변한다는 건 달콤한 거짓말이 아닐까. 인간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을까.

마이크 리의 영화에는 대개 비현실적으로 좋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동화 속에나 존재할 것 같은 착하고 따뜻하고 낙천적이고 건강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주변에는 항상 불행한 사람들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실패한 사람들, 부적응자들, 비관주의자들, 약자들, 밉상들, 진상들. 그런데 그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언제나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유령은 주인공, 그러니까 좋은 사람들이 아닐까? 현실에는 존재할 리 없는 사람들. 이상향들. 지독하게 운 좋은 사람들. 햇살 아래에서 그림자가 더 진해지는 것처럼 불행한 이들은 행복한 이들 때문에 더 불행해 보이고, 나는 왠지 그 불행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불행은 이상하게 친근하다. 그래서 스콧을 보면 화가 나기보다는 슬퍼지고, 포피를 보면 좀 어이가 없다가 슬슬 화가 난다. 나는 도무지 포피에 나 자신을 대입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스콧에 나를 대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껏 나를 마이크 리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착각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포피처럼 행운아이며 행복한 사람이라 믿었다. 내가 남보다 더 많은 걸 가진 줄 알았고, 남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주변의 외로운 사람들, 어리석은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때로는 넌더리를 냈다. 마치 영화 속에서 포피에게 철 좀 들라고 잔소리를 퍼붓는 여동생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 심신이 흐트러지자, 이유 없이 혀가 아픈 이상한 상태에 처하고 나자 화창한 날 새똥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병에 걸린 걸까? 어쩌면 나는 불행한 것이 아닐까? 내가 불행한 걸 나만 몰랐던 게 아닐까? 이 와중에 누가 누굴 동정하나? 그래, 이게 꼴값이다. 이런 게 꼴값이 아니면 무엇이 꼴값이겠는가.

나의 꼴값이 당황스러워 나는 이럴 때 내가 하는 일을 했다. 내 책장에 꽂힌 책들 중 이런 나를 구원해 줄 책을 꺼내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박혜윤의 《도시인의 월든》이다.

전작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통해 미국의 시골집에 살며 온 가족이 농사도, 노동도 하지 않고 한가롭게 빵을 굽고 주로 뒹굴뒹굴하며 사는 실험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그는, 이번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생각하고 배운 것들을 썼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지난번에도 밑줄을 그은 프롤로그의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의 어떤 것은 모순이고, 어떤 것은 실패이고, 어떤 것은 성공인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삶이다.” 그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 누구도 자격이 있어 태어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 삶 역시 유능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그 상태 그대로 살아남을 공간이 있다.” 

“삶 역시 유능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기분 좋은 충격이다. 아닌 척했지만 나는 늘 내가 유능해야 삶이 온전히 주어진다고 믿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필연적 오만함으로 이어진다. 지금껏 내가 이룬 모든 것이 100퍼센트 내 노력의 결과라는 자랑스러운 확신. 불행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분명하다는 남부끄러운 속마음. 

그런데 이런 오만한 확신은 사실, 불안과 등을 맞대고 있다. 유능하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데, 과연 나는 삶이라는 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 그런데 삶이 역경이라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거지?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으면 미래에 어떻게 될까? 지금 돈을 벌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하지만 공부를 하거나 하지 않고, 돈을 벌거나 벌지 않고 대가를 치르는 양자택일의 선택이 아니라 그런 선택 밖의 삶을 떠올리는 것도 상상으로 가능하다. 아직 방법은 모르지만 공부를 하든 말든 살아갈 수 있고 삶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그려보는 것이다.

– 박혜윤, 《도시인의 월든》 중에서

박혜윤은 불안과 공포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 밖의 삶을 떠올리는 상상력에 대해 말한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유유자적 놀며 생활하는 것이나, 한 달에 생활비가 100만 원이 드는 것이나, 부모가 아이들 공부에 목매지 않는 것 모두 그들만의 사적인 실험일 뿐이다. 정답도 아니고, 따라 할 필요도, 반박할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그는 성공도 실패도 우리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며, A의 반대는 ‘A가 아닌 것’이 아니라 B나 C, Z, 또는 A’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스스로 정해놓은 경계와 한계 밖의 세계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상상해 보는 노력, 힘을 빼고 이런저런 일들을 실험하듯 사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상력의 부재와 지나친 경직성은 때로 삶을 피하고 싶을 만큼 무시무시한 역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삶을 역경처럼 느낄 때 나는 마치 포피의 운전 강사 스콧 같다. 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사람들과 세상을 미워하고, 돌처럼 잔뜩 굳어 있는 나.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면 불행해질 것이라 믿었다. 아프거나, 실직하거나, 돈을 잃거나, 가족을 잃으면 삶이 끝장날 것 같았다.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서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일들 때문에 인간이 반드시 불행의 수렁으로 빠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근래 내가 겪은 위기도 어쩌면 이런 것들의 축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내 마음과 몸이 어느 지점에서 살짝 오류를 일으킨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의 경계와 한계 너머에 대해 좀더 상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의 중요성을 과장하고 그 때문에 불안에 빠져 실상은 남의 일이나 사회적 시선, 걱정거리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나’ 밖의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그 상상의 세계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로 채우는 것이다.

– 《도시인의 월든》 중에서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 자전거를 탈 때 나는 언제나 <해피 고 럭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포피 같다. 나는 ‘해피 고 럭키’다. 나는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나는 세계에서 최고로 낙천적이고 태평한 여자다. 내 혀의 통증은 암이 아니고,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페달을 밟을 수 있고, 나는 자전거를 탈 줄도 안다. 나는 능력자다. 내 앞에 어떤 미래가 놓여 있어도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외적인 조건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으나, 자전거 위에서 페달을 밟는 나는 마치 경계를 가볍게 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끔찍하고도 확실한 미래를 담담하게 긍정하면서도 지금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혹은 누리고자 노력해야 하는 자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유는 종종 나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내가 그토록 강력하게 믿고 있는 주장들은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작이다.

– 《도시인의 월든》 중에서

아, 그리고 자전거는 환경에도 좋다(간신히 이달의 주제와의 연결 고리를 발견했다). 지구도 이런 나를 어여삐 여기리라.

Movie—마이크 리 <해피 고 럭키>(2008)

Book—《도시인의 월든》 박혜윤 |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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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