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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가꾸고 정원을 돌보는 일은 아이를 길러내는 일과 닮았다. 식물은 가드너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니까. 그럼 가드너 엄마의 육아는 좀 더 능숙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고 만난 세 명의 조경가, 가든 디자이너, 가드너 엄마들. 하지만 그녀들의 생각은 다르다. 식물을 돌보듯 육아를 잘 해내는 게 아니라, 아이가 엄마 주변에 존재하는 꽃과 나무를 보고 들으며 자연에 유연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엄마가 식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지명 푸릇푸릇한 잎을 보니 봄이 온 것 같아요. 이곳이 오랑쥬리에서 운영하는 식물 편집숍 ‘정원생활’이죠? 건물이 온실을 연상케 해서 인상적이에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례민 안녕하세요. 판교에서 시작해 오랑쥬리를 운영한 지는 10년 정도 됐고, 작년에 용인으로 옮겨 왔어요.
지명 세 분의 인연도 그쯤 됐다고요.
혜령 수현과는 런던에서 공부 중일 때 오경아 작가님을 통해 처음 만났어요. 언니도 그때 봤나?
례민 저는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각자의 길을 갈 때 조언을 구하려고 만났죠. 조경 설계 회사 다닐 때 같이 근무하던 친구가 혜령 씨를 소개해 줬거든요. 서로 이제 막 일을 시작할 시기였죠.
혜령 같은 필드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자연스레 인연이 이어졌어요. 연배도 비슷하고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아 키우고요. 어떨 땐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그녀가 기사로 나오기도 해요(웃음). 우리가 만나서 뭘 거창하게 한다기보다는 소소하게 서로의 안부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궁금해하고요. 안 만나도 이상하지 않고 만나도 이상하지 않은, 정말 편안한 사이에요.
지명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라 일과 육아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겠어요.
례민 맞아요. 제가 쌍둥이를 임신해서 조심해야 할 시기에 맡고 있던 강의를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수현이한테 부탁했죠. 근데 또 이쪽이 둘째를 임신했더라고요.
수현 그때 저는 몸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고 둘째다 보니까 그냥 다녔어요.
례민 대단했어.
수현 4개월까지 사람들이 임신한 줄도 몰랐죠. 건강한 편이라 출산 전까지 일했어요.
례민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어. 선생님이 임신해서 한 번 바뀌었는데 또 이 선생님이 임신하고(웃음).
혜령 아이를 케어하면서 일하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을 서로 이해해 준다는 면에서 사회가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명 정원 일을 하는 엄마의 하루가 궁금해요.
혜령 저는 이 질문이 괴로웠어요. 정원 일이 굉장히 다양해서 정원사나 가든 디자이너처럼 제가 어떤 직업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렵거든요. 계획하고 구상하는 계획가도 있고, 에세이를 쓰거나 정원 히스토리를 연구하는 연구자도 있고요. 저는 기획, 디자인, 설계, 시공, 전시, 브랜드 협업 등 다양한 일을 해요. 보통 ‘정원사’라고 하면 매일 식물을 돌볼 거라 생각하지만 셋 다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명 아까 촬영할 때 보니 손이 희고 고우시더라고요. 저는 그린썸, 그린핑거스를 상상했거든요.
혜령 오해입니다. 손에 네일도 하고 그래요(웃음).
지명 질문을 바꿔 볼게요. 세 분의 일과 육아 사이 하루 루틴이 궁금해요. 일하는 동안 육아를 맡아서 도와주는 분이 있나요?
혜령 그럴 수밖에 없어요. 다 민폐죠. 친정엄마, 시엄마, 이모님… 온갖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육아는 육아대로, 일은 일대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요. 항상 마감에 쫓기는 인생이라고 할까요. 아이가 하원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요. 데리러 갈 사람이 없는 날은 속이 타는 거죠. 일도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마무리를 내질 못하고 다른 일을 벌이고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취미가 아니라 정당한 경제 활동이잖아요. 필모그래피나 스펙도 잘 쌓아나가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례민 아이들은 유치원에 오래 있게 두고, 저는 출근해서 업무 보고 미팅 있으면 외근 나갔다 다시 복귀해요. 시부모님이 같이 계셔서 아이를 봐주시고요. 일하고 들어가면 저녁인데 애들하고 놀아줄 기운이 없어요. 평소에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진짜 적고, 지방으로 출장이나 답사를 가야 할 일이 생기면 1박 2일 일정을 잡아 하루는 일 보고 하루는 애들이랑 놀다 오고, 이렇게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도 엄마 일 끝나면 같이 놀고 여행한다 생각하고요. 용인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정원생활’이 주말에도 문을 여니까 잘 놀아주지 못하거든요. 하원할 때 여기로 와서 같이 퇴근하는 일도 있어요. 일하는 제 옆에 책상 하나 만들어주면 그림도 그리고 간식도 먹고요. 딸 선아는 여기 오면 자기가 엄마 도와주고 일해야 한다 생각해요. 손님들에게 “여기는 뭐 하는 곳이야. 화장실은 여기 있어.” 안내도 해주고요. 쉬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랑 같이 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반대로 아들 선우는 엄마 하는 일에 관심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요.
수현 보통 아이들 픽업은 친정엄마가 도와주세요. 저는 아침에 학교 강의를 갈 때도 있고요. 요일마다 다르고 시즌마다 다른데… 겨울 방학에는 저보다 아이들이 더 바빠요. 유치원 보내고 나면 집에서 책 읽거나 디자인 작업하고 아이들 학원 픽업 스케줄 맞춰주고요. 겨울엔 조금 여유롭게 보내고 3월부터는 바빠지죠. 그래도 조경 일이 좋은 점이 다섯 시에는 시공이 끝나거든요. 집에 와서 아이들 저녁 챙겨주고 숙제 봐주고요. 제가 디자인 작업할 때는 아이들이 알아서 “엄마 일해.” 하고 숙제하거나 할머니랑 놀면서 일과 육아를 분리해 줘요.
혜령 우리 집은 전혀 안 돼.
례민 단련이 됐네. 하루아침에 된 건 아닌 거 같아.
수현 네. 아이들이 단련되고 익숙해진 것 같아요. 자매니까 둘이서 잘 놀고, 그 시간만큼은 엄마 일하는 거 방해하지 않고 둘이 논다 생각하더라고요. 애들도 나중에 크면 일을 한다는 생각이 있고, 식물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얘기해요.
례민 둘 다? 와, 뿌듯하다.
수현 “식물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해.”라고 얘기해 주지만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한다기보다는 엄마가 자기 일을 갖고 있어서 자랑스러워하는 거죠. 제가 임신하고 산후우울증이 약간 있었거든요. ‘일을 계속 못 하면 어쩌지, 뒤처지면 어쩌지.’ 그런 걱정들이 조금씩 있잖아요. 여자들이 욕심내서 일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자존감 때문이고요. 작년에 울컥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혜령 왜 그래, 왜?
례민 무슨 일 있었어?
수현 학교에서 부모 직업을 공부해 오라고 애들한테 시켜. 직업 체험, 부모 직업은 뭔지 공부해 오는 거지. 동영상을 만들라고 해서 20분짜리 영상을 만들어 보냈거든요. 그걸 전교생에게 틀어줬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애가 그게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례민 기쁨의 눈물이었네.
수현 아이가 인천에서 1학년을 다니고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친구들 사귀고 싶을 때 그걸 보여주니까 “너희 엄마 너무 멋있다.”고 해서 기뻤다더라고요.
혜령 좋다. 저는 사실 주말도 크게 없고, 대표지만 큰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니까 제가 움직여야 회사가 굴러가요. 디자인 설계하고 시공하는 회사라 현장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다르고 네 시에 끝나도 다시 사무실 들어가서 자료 만들죠. 직원들이 많지 않아서 대표들이 직접 프레젠테이션 만들고 준비해요. 주말에 일이 있으면 현장 나가기도 하고 지방 출장 있으면 길게는 일주일, 보름간 집을 비워요. 저는 주 대표님과 다르게 현장에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아요. 피곤해요. 작년에 부산에서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최장기간 집을 비웠거든요. 남편이 너무한 거 아니냐 했지만 사실 제 일을 많이 지지해 주는 사람이에요. 친정엄마가 앞 동에 살아서 아이가 유치원 끝나고 외갓집에 가 있으면 집이랑 회사가 가까운 아빠가 데려오고요. 저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 열 시, 열한 시 이렇게 들어오는데,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이제 초등학교 가는 시기가 와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회사 파트너들한테 얘기했죠. 여덟 살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니까 난 육아휴직하겠다. 1학년 1학기까지는 집중해 주고 일은 비상근으로 나가려고요.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2022년을 보내려고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주부예요(웃음).
지명 식물을 돌보는 일은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육아와 닮은 것 같아요.
례민 예전에 제가 임신하고 누가 “애기 낳으면 잘 키울 거야.”라고 말했을 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싶었어요. 생각해 보면 내가 식물을 잘 키워서 아이도 무던하게 잘 키울 거라고 얘기한 것 같거든요. 하지만 식물을 대하는 거랑 아이를 대하는 감정은 완전히 달라요. 여건이 다르니까 동질화될 수 없는 거고요. 그것보단 엄마가 식물을 키우고, 땅에 삽질을 하고, 꽃이나 나무 심으러 가는 걸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사니까 흙 만지는 데 스스럼없고 유연해지는 것 같아요.
혜령 남들은 그걸 돈 주고 교육하잖아요. 저는 그게 일상이고 아이가 엄마 주변에 가면 꽃이나 나무를 보고 들을 수 있으니 그게 우리 아이한테 주어진 특권인 것 같아요.
수현 아이들한테 일부러 교육한 건 아니지만, 놀이터 갔을 때 다른 애들이 신경 안 쓰고 뛰어놀다가 식물을 밟거나 하면 “식물 아픈데 왜 밟아.” 이런 식으로 얘기하거든요. 안 가르쳐도 알아서 습득하는구나 싶죠.
혜령 너의 DNA인 거지.
례민 은연중에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랑쥬리가 판교에 있을 때 아이들을 자주 데리고 갔거든요. 거기서 아이들이 즐겨 만지는 게 흙통이었어요. 넓고 긴 테이블 사이에 흙통이 있는데 아이들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통에 있는 흙을 다 던지고 안에 들어가서 놀아요. 그런 건 부모가 만들어줘야 하는 놀이인데 저희 애들은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
혜령 이상적이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네.
례민 엄마가 가드너라 너희에게 이런 걸 해줄 수 있다, 따로 놀아주진 못해도 이런 건 해줄 수 있다는 거죠.
혜령 맞아. 거기에 죄책감을 덜 심지. 우린 위험하다거나 더럽다고 하지 않아요. 삽을 가진 사람들을 경이롭게 보거든요. 연장 너무 좋아하고요.
지명 그런 부분에서 아이에게 관대해지는군요. 벌레나 곤충에도 친숙한 편인가요?
혜령 지렁이는 흙에 들어가서 유기질을 만들고… 교과서에 들어간 그런 말을 아이에게 해주지만 실제로 나오면 저희도 싫어해요(웃음). 그래도 애들은 커 가면서 바뀌지 처음에는 재밌어하고 지켜보죠. 기어가는 거 보고 있고.
수현 우리 애들은 되게 무서워해. 그래서 자주 보여주고 흙에 좋은 거라 말해줘요. 저도 벌이 날아오면 무섭고 일할 때도 모자 눌러쓰고 일하지만 한 번이라도 더 얘기해 주는 거죠. 시골에서 옛날 어른들은 애들 물릴까 봐 개미 보면 밟아 죽여야 한다고 얘기하시는데, 저는 “얘들도 자기 집으로 가는 거야. 놔두면 너한테 안 올 수도 있어.”라고 얘기해 줘요. 애들을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아요. 식물을 팔거나 할 때도 손님들에게 너무 신경 쓰면서 키우실 필요 없다고 얘기하는데 아이들도 비슷한 것 같아요. 너무 애지중지 키우면 오히려 엇나간다고 생각해요. 기대감에 아이를 키우면 애들도 부담감이 생기고…. 약간 무관심도 필요한 거 같아요. 내버려 두는 거.
지명 수현 씨는 《꼬마손정원》이라는 교육지침서를 쓰셨던데요. 엄마라서 가능한 일들도 있죠?
수현 육아하면서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해서 만든 이유도 있고,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만한 일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아이들 어릴 때만 만들 수 있는 책이라 의뢰가 왔을 때같이 사진 찍고 함께 만들었죠. 영국에서는 정원 관련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어린이용 정원 용품도 예쁜 게 많아요.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다이소 어린이 장갑 같은 게 있지만 그땐 거의 없었어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수업에서 사용할 수 있게 중국에서 용품도 만들어 교본이랑 같이 보냈어요.
혜령 영국엔 교과 과정에 있어요. 이런 책들이 교과서로 나오는 거죠.
지명 정원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선 아이들이 식물을 쉽게 접하고 배우겠어요.
혜령 비영리 조직이 많아요. 물리적으로 정원 개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같이 수반되어 있죠. 예를 들어, 내가 정원을 만들겠다 하면 그걸 나눌 사람들이나 정보가 실린 잡지와 책, 티브이 프로그램이 많아요. 국가 단체나 민간단체, 지역 센터 등 사람들이 쉽게 식물을 사고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있어요. ‘정원생활’ 같은 공간이 많이 있는 거죠. 전문인이나 단체가 많은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르면 전문가한테 찾아가 조언을 얻는 거죠. “식물에 흰 가루가 묻어 나와요.” 하면 약을 처방받아 사고, 흙갈이를 할 수 있고요. 주말이면 사람들이 놀이 삼아 찾아와요. 꼭 뭘 사지 않아도 그냥 와서 보는 거죠. 그게 자연스럽게 대중화되는 접점이 아닌가 싶어요. 역사적인 정원도 많아서 관리도 잘 돼 있고, 관광 루트도 발달되어 있어요. 감히 말하면 영국인들은 놀기 위해 일하는 거 같아요. 흔히 말하는 워라밸이죠. 중세시대 정원부터 스톤헨지 같은 돌덩이를 보는 것도 정원 여행이고, 전원으로 드라이브 가거나 하이킹, 식물원, 수목원, 민간단체의 견본 정원, 플라워쇼 등이 있어요. 멀리 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주변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례민 얼마 전에 애들이랑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스누피 가든에 방문했어요. 안에 광장 같은 공간이 있는데 스누피 야구장을 만들어 놨더라고요. 애들이랑 원반 던지고 한 시간 가량을 뛰어놀았어요. 영국은 그런 공간이 곳곳에 정말 많아요. 집에 정원이 없어도 주변에 공유 정원, 커뮤니티 가든이 있어요. 건물 뒤뜰에서 나올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하는 거죠. 한국엔 체력 단련 시설물이 많다면 영국은 조금이라도 더 넓은 공간에서 뛰어놀 수 있게 돼 있죠.
혜령 비워놓는 거예요. 거기서 어떤 행위를 하든 허용해 주는 거죠.
례민 채소밭 사이나 장미원 사이에 아이와 돗자리 펴고 책 보고 누워 있는 엄마를 자주 볼 수 있고, 사람들 심리도 자유롭게 어디든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게 돼 있어요. 문턱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곳곳에 있어서 좋아요.
혜령 도시가 만들어질 때 법령 안에서 이만큼의 녹지가 필요하다 해서 공간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그걸 어떻게 소비해야 되는지에 대한 시선과 생각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가 아니라 녹지 공간을 내 걸로 즐긴다는 시민 의식이 커 나가고 있고, 앞으로 더 성장할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 공원은 대형 관목이나 교목이 큰 나무들로 이뤄져 있잖아요. 이용하는 관점에서도 “철쭉이나 진달래도 좋지만 다양한 예쁜 꽃들이 철철이 피면 좋겠어.” 이런 시선까지 확장되는 거죠. 아직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선 법규나 제도적 어려움이 많지만 일반인들과 전문가들이 자연스럽게 정원 얘기를 나누다 보면 보이지 않는 문화가 되는 거죠. 꽃 한 송이 사는 것에도 인색하지 말고요.
수현 식물이 죽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지명 저는 화분을 사 오면 자꾸만 죽이니까 식물을 사고 싶어도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들도 “엄마 또 죽으면 어떡해?” 걱정하고요.
혜령 당연해요. 아이들한테는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그건 생로병사의 이치야.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진리거든. 이게 죽는 게 아니란다.”
수현 비료가 되고 다시 또 꽃이 피죠. 저는 영국이 정원사들이 많은 나라여서 부러웠어요. 우리나라는 정원을 만들기는 하는데 관리가 안 되는 곳이 많거든요. 영국에는 직원들은 몇 안 되고 자원봉사 10년 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세요. 정원사들 못지않게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이죠. 식물에 해박하시고요. 그런 분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면 공공 정원이나 지방 정원이 만들어졌을 때 관리도 되고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을 붙이지 않을 수 있거든요. 문화로 정착되는 정원사와 전문가가 많아지고 커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가 없어요. 삽질하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고요. 식물원 같은 데도 2년을 못 채우고 나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영국처럼 정원사가 행복한 직업, 존중받는 직업으로 눈높이가 올라간다면 훨씬 정착하기 좋지 않을까 싶어요.
지명 ‘정원생활’이 오픈했을 때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이들이 식물과 친해질 수 있겠다 싶었고요.
례민 ‘셀프 가드닝’이라고 해서 화분에 식물을 심는 수업을 진행하는데, 엄마와 아이가 함께 와서 많이 참여하세요. 끝나면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놀고 엄마는 차 마시고 사진 찍는 시간을 가지고요. 잔디밭에서 피크닉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싶어요. 매니저님들도 애들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활동이나 체험이 뭐가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아이들이 스스로 잘 놀 때 엄마들은 그게 자유 시간이 되잖아요.
혜령 아이를 낳아 봤기 때문에 아는 거지.
례민 의도하지 않았는데 여기 방문한, 오늘 처음 만난 아이들끼리 술래잡기하고 놀 때도 있어요. 그럼 엄마들은 살짝 수다 떨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생기거든요. 받아들여 주는 입장에서 충분히 즐겨주니까 좋은 선순환이죠.
지명 오랑쥬리를 용인으로 이전하면서 생활 공간도 주택으로 옮기셨죠?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겠어요.
례민 아파트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 살면서 주택으로 가고 싶다 생각했어요. 막상 결심하기 쉽지 않았는데 아이들 때문에 옮기게 됐죠.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 사교육이나 다른 엄마들이 하는 것들을 내가 제대로 케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전부터 있었어요. 제 육아 성향을 봤을 때 학원을 돌리고 싶진 않고 자연은 가까이 보여주고 싶은데 일하는 엄마라 늘 자연으로 아이들을 데려갈 수 없으니 학교나 사는 곳을 옮겨야겠다 싶었죠.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고요. 외곽에 있으니 불편한 점도 많지만 아이들 어릴 땐 괜찮을 것 같아요. 가드너로서도 평소 사람들한테 정원이 있는 집이 얼마나 좋은지, 전원생활이나 원예 활동이 얼마나 좋은지 계속 얘기하게 되는데 정작 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잖아요. 일맥상통하지 않는 얘기들을 계속하는 데 조금 괴리감이 있었어요. 실제 생활이 그래야 진심으로 추천할 수 있는 거고요. 이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부분도 있었어요. 계속 시골에서 살겠다는 건 아니고요.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거나 입시 때가 되면 또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모르겠는데, 현재는 만족해요. 마음은 언제나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요(웃음).
지명 세 분은 아이에게 허용해 주는 것과 아닌 것이 무엇인가요?
혜령 평일에 휴대폰을 만지거나 텔레비전 보는 걸 허용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가 직장인처럼 주말을 기다려요(웃음). 금요일 저녁은 미디어 보면서 밥 먹는 날이죠. 그런 절제 정도는 가르치고 있어요.
지명 아까 인터뷰 전에 아이에게 용기상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어떨 때 주는 상인가요?
혜령 이갈이를 계속하고 있는데, 직접 이를 뽑으면 용기상을 주겠다고 했어요. 원하는 걸 사주는 거죠. 그럼 애가 지나치게 다가와요. 오만 원이 넘는 걸 사달라고 하죠. 너무 과한 거야. 그럼 엄마, 아빠가 서로 상을 주라고 미루게 돼요. 그래서 제가 정했어요. 용기상은 빅 프레전트니까 아빠가 주는 거. 스몰 띵도 있어요. 숙제를 하고 스스로 이를 닦았다 하면 그냥 뽀뽀.
수현 우린 뽀뽀는 매일 하는 건데?
혜령 하기 싫은 걸 할 때, 감정적으로 촉발시키는 것들을 상주는 거죠. 물론 걱정은 있어요. 아이가 뭐든 거래를 하면 어떡하지 싶은 두려움이요. 아이들은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잖아요. 그건 어릴 때 받을 수 있는 거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그게 잘 크는 거라 생각해요.
례민 이름이 좋다. 용기상.
혜령 왜 이걸 해야 되는지 얘기는 해주지만 엄마, 아빠에게 네가 이걸 왜 받는지 다시 설명해 보라고 해요. 아이들이 은근 논리적으로 얘기 못 하거든요. “이를 빼서.” “이를 빼서 주는 게 아니라, 네가 용기를 냈잖아. 용기는 되게 중요하거든. 무섭지만 용기를 내서 뽑은 것 때문에 상을 준 거야.”
지명 이유를 다시 정확하게 짚어주시는군요.
수현 칭찬받고 싶어 하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지출이 크잖아요. 그래서 저흰 스티커 모으기를 해요. 스스로 하면 스티커 하나씩, 20개 모으면 천 원.
례민 좀 풀어줘라. 스무 개 언제 다 모아. 우리는 둘이 성별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니까 서로 서운한 게 많아요. 다투면 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되는 거야. 요즘은 혼내기보다는 “각자 공책하고 연필 가져와 봐.” 하고 시켜서 서로 바라는 점을 써보라고 해요. 받아쓰기로 써서 교환하고 계속 읽으라고 하죠. 심하게 싸울 땐 벌 서는 계단이 있어요.
혜령 “계단이 있어” 이러는데 벌써 무서워(일동 웃음).
례민 애들이 또 키득키득 웃어. 그럼 강도를 높여야 해. 계단에서 어깨동무하고 열 번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거야. 그래도 안 풀리면 손잡고 눈을 마주 보게 해. 상도 주지만, 요즘은 애들이 싸웠을 때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이 많이 돼.
지명 얘기를 나눠보니 세 분이 생활 스타일도, 성격도 다른 것 같아요.
혜령 셋이 결은 비슷하지만 달라요. 저는 입으로 조경하는 애고, 수현이는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지만 똑소리 나고, 주 대표님은 가장 대중화의 접점에 있고 소통도 많이 하죠. 서로 도움이 되고 영감이 되어줘요.
지명 정원 생활과 식물 생활의 대중화에도 세 분의 역할이 기대되네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었으면 하나요?
혜령 크든 작든 이 일을 계속하고 있겠죠. 아이들도 잘 크면 좋겠고, 가족이 건강하면 좋겠어요.
수현 지금은 엄마가 이 일을 하니까 식물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얘기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길 바라요. 저도 아이들도 같이 커나가면 좋겠고요.
례민 아이들이 크면 육아에도 여유가 생기고 일에서도 연륜이 생겨서 체력적으로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한 가지에 몰두하고 싶어요. 지금보다 좋은 엄마, 아내가 되고요. 스스로 자랑스러운 자신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10년 지나면 나 스스로 만족하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20대에도 하고 30대에도 한 것 같은데(웃음)?
에디터 황지명
포토그래퍼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