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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ng Romance
비틀거릴 뿐, 우리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목요일 저녁, 나와 조각가 친구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우선 친구는 예술가로서 자신은 실제적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은 실제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하는 일이 어쩌면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까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일들은 진짜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의 규칙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정말 중요한지 아닌지는 물질적 가치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나는 건축가로서 늘 곤혹스러운 점은, 우리 일이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도면에 집중한 채로 담배 연기를 뿌옇게 내뱉는 행위나 손을 덜덜 떨며 노란색 종이에 검은 사인펜을 긋는 행위 자체로는 이 일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대부분 건축가의 겉모습은 병든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의 작업은 언제나 깨끗하고 안전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쓰레기통과 경비실을 건물의 입면에 가장 영향을 덜 미치는 곳에 배치하고 모든 계단의 높이를 일정하게 맞춰서 발을 헛디디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 세상의 전복을 꿈꾸거나 세상의 이면을 들춰보려는 시도는 건축가에게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예술가들처럼 진한 고뇌를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이 이 일의 가장 큰 역설인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아무리 혁명가라 해도 무릎이 쑤시는 집에 살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니야?”
옆 테이블에서는 직장인들의 조용한 회식 자리가 진행 중이었다. 그들 사이엔 술을 권하는 사람도, 마지못해 마시는 사람도 없었다. 초식동물들의 모임처럼 서로 예의 바른, 아주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하나도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술을 마시는 중’인지 ‘단지 핸드폰을 쳐다보지 않고 있는 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낭만이 변화하기 시작한 건 내가 처음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 전까진 술자리에서 재밌게 노는 사람이 낭만적인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모양이다. 서로 자리를 돌며 잔을 채워주기를 좋아하던 부장님은 요즘 애들은 낭만이 없다며, 젊은이들을 타박하듯 말하곤 했다. 낭만이 없어진 것이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디 타박 받을 만한 일인지. 그는 이어 예전 건축가들의 술버릇과 술과 관련된 일화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학생 시절에 겪던 낭만적인 사회 분위기와 잔디밭에 널브러져 있던 막걸리 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요즘 건축엔 낭만이 없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 스콧 피츠제럴드, 짐 모리슨…. 알코올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빠지지 않는 예술가들이 있다. 술은 사람을 정상 궤도에서 상당히 떨어뜨려 놓는다는 점에서 예술의 성격과도 어느 정도 비슷해 보인다. 술을 마신 사람은 헤프게 웃거나 어딘가 어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생각보다 강한 모습이 드러나 테이블을 넘어뜨리고 세상을 향해 소리 질러볼 수도 있다. 부장의 말대로 낭만은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낭만적이었던 이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낭만이 있던 시절 취한 사람들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80년대 학교 잔디밭에 막걸리 병이 나뒹굴던 시절, 사람들은 변역에 취해 있었고 연대감에 취해 있었다. 비참해질지언정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90년대 대학교를 졸업한 이들도 낭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발전에 취해 있었고 성장에 취해 있었다. 그들은 실업 혹은 가난으로 되돌아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보낸 이들도 오늘날 술을 마신 다음 날, 계단 하나도 삐뚤게 그리지 않는다. 회식 다음 날 아침이면 부장님은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 그럼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멀쩡해져서 출근했고, 세상은 다시 본래 자리를 되찾곤 했다. 직장인들은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았었다. 물론 매번 누군가는 비틀거리며 집까지 걸어서 갔다. 누군가는 길에 구토를 했을 수도, 길에 소변 자국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취하지는 않았었다. 무엇도 변화시킬 생각도 없었고, 무언가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너무나 공고해진 요즘의 세상엔 어느 것 하나 전복시킬 게 없기 때문이다. 그 무력감이 낭만을 저 세상으로 몰아냈다.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부여된 반란은 애교 섞인 반말 정도가 전부다. 반란은 반항으로 대체되었다가 투정으로 대체되었다. 아무도 취하지 않는 세상인데 술이 왜 필요할까?
술을 마시고 강남에서 서대문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창밖으로 나란히 선 건물들이 병풍 같아 보였다. 요즘 건물엔 표정이 없다. 1층엔 로비 대신 편의점이 있다. 역시나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간간이 오래전 지은 상가 건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작은 타일로 촘촘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구석마다 섬세한 곡선이 있고, 건물 정면으로 큰 로비가 있었다. 그리고 너의 모두를 감시할 수 있다는 듯 권위적인 경비실이 그 안에 있었다. 낭만이 있던 시절에 지어진 시대착오적인 건물들. 대체로 그들은 무표정한 건물들 사이에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