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piece Story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비밀, 피터 일스테드

얼마 전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한 권 읽었다.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라는 책이었다. 저자이자 일본의 디자인 가구 쇼핑몰 ‘리그나’의 대표이사 오자와 료스케는 가구 거래처를 개척하기 위해 덴마크에 방문한다. 2016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뽑힌 국가다. 이 신기한 나라에서 그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덴마크 사람들이 대부분 첫 월급을 받으면 의자를 비롯한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를 구입한다는 것이다. 오자와 료스케는 이 흥미로운 사실에 대해 연구한 자신만의 의견을 한 권의 책 안에 담았다.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돈이 생겼을 때 손목시계나 옷 등 자신을 꾸미는 물건에 투자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가족, 친구들과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에 가장 먼저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덴마크인들은 인테리어와 가구, 소품에 우리보다 더 큰 의미를 두고 돈을 투자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다 떠오른 그림이 있다. 바로 덴마크 화가 피터 일스테드Peter Ilsted다. 그의 그림에는 다양한 의자가 등장한다. 등받이가 넓고 뚫려있는 의자, 흰색에 샛노란 방석으로 매칭된 의자….

피터 일스테드, Little Girl in a Flat Cap, 1924

코펜하겐 실내파를 아시나요?

피터 일스테드는 초기에는 장르화와 초상화 위주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의 누이인 이다가 당시 덴마크의 유명한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와 결혼한 뒤 함메르쇠이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함메르쇠이와 칼 홀소에Carl Holsoe 같은 화가들과 함께 진보적인 미술가 그룹 ‘The Free Exhibition’을 만든다. 이 화가들은 고요한 실내 풍경, 그리고 빛과 공간에 대해 탐구했다. 훗날 그들은 ‘코펜하겐 실내파’라고 불린다.

피터 일스테드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고요한 실내에 가족들을 등장시킨다. 어두운 실내에서 그가 그린 몇 안 되는 주인공들에게는 늘 후광이 느껴진다. 온종일 생활 전선에서 뛰어다니다가 집에 와서 피터 일스테드의 그림 속 풍경을 보면 조심스럽게 저 의자에 앉아 한없이 정착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정연한 실내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까닭이다.

피터 일스테드, Two Girls Playing, 1900

이 그림 속에는 의자 두 개가 등장한다. 소녀가 앉은 의자와 소녀 앞에 있는 의자는 한 세트인 것 같다. 자세히 보면 오랜 시간 앉고 또 앉아서 나뭇결이 반들반들 빛이 난다. 아마도 저 의자의 시작은 소녀의 아버지, 또 아버지의 아버지부터였을지 모른다. 긴 세월 동안 소녀의 가족에게 휴식처가 되어주고, 귀한 손님의 자리도 되어주었을 것이다. 화가의 집에서도 의자는 꼭 필요한 가구였다.

북유럽은 추운 날씨 덕분에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다른 나라보다 길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도 인기가 많은 북유럽 가구들은 이런 환경적 조건에 따라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가구들보다 오랜 시간 동안 집에 있어도 질리지 않는 심플한 디자인과 실용성이 발전한 것이다. 덴마크 의자는 장식이 많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의자들과는 다르다. 색 역시 긴 겨울과 긴 밤 시간을 산뜻하게 보내기 위한 파랑, 노랑, 빨강 같은 원색이 많다. 

그 화가의 집, 그 화가의 의자

의자는 침대나 책상, 식탁 같은 가구들을 구입할 때보다 부담이 적고, 이 공간 저 공간으로 옮기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의자에 애정이 깊은 의자 수집가들이 있다.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인 탑은 예술 콜렉터로 유명한데 그가 콜렉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의자부터였다. 열아홉 살에 데뷔한 그는 스물두 살 때부터 디자인 의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의자는 작은 건축과도 같다.’며 의자 사랑을 표현했다. 멋진 의자를 수집할 때 행복해지고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이다.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멋진 디자인에는 좋은 에너지가 있어요. 그런 의자에 앉아 있으면 노래 가사도 더 잘 써지고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는 어쩌면 삶의 질이 나아지는 공간의 비밀을 이미 터득한 것 같다. 인테리어는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인생은 곧 시간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공간이다. 그러므로 공간을 꾸민다는 것은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고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은 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게 된다.

일상이 소란스러울 때는 피터 일스테드의 그림 속 의자들과 조용한 실내 풍경을 떠올린다. 그리고 작지만 가장 안락한 내 집으로 대피해 휴식을 누릴 시간을 꿈꾼다. 사소한 지혜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 그중 하나가 내 집에 나를 위한 의자를 들여놓는 일 아닐까.

피터 일스테드, At the Window

BOOK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

글 오자와 료스케 | 옮김 박재영 | 꼼지락

정말 순수하게, 제목에 대한 답이 궁금해서 나는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읽다 보니 깨달았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찾는 것이라는 것을. 두께도 얇아서 금방 읽히지만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인테리어 책도 아닌 이 책에서 나는 의외로 많은 통찰을 얻었다.

MOVIE

대니쉬 걸

톰 후퍼 | 드라마 | 미국, 영국 | 119분

덴마크 화가 부부의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자가 되고 싶어서 세계 최초로 수술을 감행한 남편을 오로지 이해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영화 곳곳에서 그들이 살았던 덴마크의 풍경이 나온다. 영화를 통해 100년 전 화가 부부였던 게르다 베게너와 릴리 엘베의 삶을 만나다 보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되묻게 된다.

MUSIC

Betty

Blink

대학 시절부터 좋아하던 덴마크 밴드를 소개한다. 이름은 Blink. 타이틀 트랙이었던 ‘Betty’는 덴마크 방송 차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곡이다. 이들은 1986년 개봉한 장 자크 베넥스의 영화 <베티블루 37.2>를 보고 이상하지만 아름다웠던 인물 베티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음악을 만들었다. 늘 털모자를 쓰는 그들에게 자꾸 털모자를 쓰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들은 덴마크가 너무 추워서 7개월 정도는 털모자가 필요하며, 동시에 털모자를 쓰면 약간 모자라 보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그들의 음악 중 ‘Kiss Me’도 광고에 나와 인기가 많았다. 한번 검색해 들어보시라. 첫 구절에서 ‘앗! 이 노래 나도 알아!’ 할 만큼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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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