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ing At The Little Things

그림책 작가 서현

서현 작가를 떠올리면 노란색과 동그스름한 형체들이 그려진다. 그러나 밝은 색감과 귀여운 형태 너머에는 작고 여리고 불완전한 이들이 있다. 불안이 컸던 어린 서현을 위로하고 싶어 날마다 즐거움을 찾았고, 그 길에서 그림과 책을 만났다. 그러모은 즐거움은 그림책이 되어 어린이의 마음속으로 훨훨 날아가는 중이다. 

축하해요! 4년째 작가님의 책이 wee그림책어워드에 선정되었어요. 3년 전 인터뷰에서 곧 달걀 프라이에 대한 책이 나올 거라고 하셨는데, 《호라이호라이》와 《호라이》가 많은 사랑을 받아서 이렇게 또 인터뷰를 하게 되었네요. 

4년째라니 정말 의미 있고 감동적이에요. 큰 응원을 보내준 어린이들, 고마워요. 

 

작가의 집에 초대받고 설레었어요. 최근 결혼을 하셨다고요. 

아직 집 정리가 안 돼서 엉망진창이죠(웃음)? 결혼한 지 세 달 정도 됐어요. 작년 이맘때만 해도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는 거 같아요. 어렴풋이 언젠가는 결혼을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니 서로에게 참 고마워요.

 

집에 들어서자마자 피겨와 장난감에 놀랐어요. 이 친구들이 작가님의 즐거움인 거죠?

맞아요.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아주 좋아했어요. 지금도 학교 앞 단골 장난감 가게가 기억나요. 늘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신상을 확인했어요. 사장님이 지금의 저보다 더 어린 여자분이었는데, 자주 가니까 그 언니와 친해졌어요. 마론 인형을 좋아했는데, 당시 <달려라 하니>가 마론 인형으로 나와서 선물 받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장난감을 보는 것도 좋고 인형놀이를 하는 것도 즐겁고, 나와 같은 공간에 놓여 있는 것도 기뻤어요. 그러다 중·고등학생 땐 캐릭터들을 그리고 스토리를 상상해서 만화를 만들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제 캐릭터를 직접 입체로 만들기도 하고요. 이들을 통해서 내가 존재하는 이곳이 다른 상상의 공간으로 바뀌는 경험을 해요. 재미난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들이에요. 만약에 내가 죽으면 이 피겨와 장난감 들을 다 어쩌지, 같이 묻어 달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진시황 무덤의 병마용갱처럼요(웃음). 어른이 되면 관심사가 바뀐다는데, 전 아직도 그대로인 게 많아요. 몸만 크고 생각과 마음은 그대로라 고민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행복해요. 

 

장난감을 좋아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응원해 주는 편이었어요? 

네. 제 취향과 기질을 존중해 주셨어요. 제가 어릴 때 아끼던 장난감이나 그림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주셔서 지금도 몇 개 가지고 있어요. 가끔 놀리기도 하세요. 나중에 아들딸이 네가 아끼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망가뜨리면 어떡할 거냐고요. 그럼 저는 절대 못 건드리게 할 거라고 장난스럽게 답해요. 피겨와 장난감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는 제 모습을 작가가 되는 자양분이라 생각하고 이해해 주신 것 같아요.

그림책에 직접 작성한 소개글에 ‘매일 한 가지씩 재미난 일을 하고 있어요’ 라는 글이 있어요. 작가님이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 궁금해요. 

실은 바람이자, 스스로 하는 다짐이에요. 즐거움은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모토거든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면 꼭 어디선가 즐거움이 발견되더라고요. 요즘에는 분리수거에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까 고민하거든요. 박스 정리를 하면서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꼼꼼하게 테이프를 떼고, 박스를 한곳에 차곡차곡 쌓는 게 게임 같아요. 같은 행위도 어떤 날은 굉장히 귀찮을 때가 있지만 갑자기 매일 하던 루틴도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제는 습관이 돼서 미뤄뒀거나 잊었던 일을 해보고 평소와 다르게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일상의 사소한 변화에서도 즐거움을 찾곤 해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결혼하고 달걀 프라이가 아닌 제대로 된 달걀 요리를 하고 싶어서 달걀말이를 처음 해봤어요. 달걀에 당근과 양파, 호박을 잘게 잘라 넣고 프라이팬에 부쳤어요. 따끈하게 완성된 달걀말이의 단면을 잘랐는데, 달걀 안에 당근과 호박, 양파가 알록달록 보석처럼 박혀 있는 거예요. 즐거움이라는게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걀말이를 꾸며주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존재인 거죠. 일상에서 발견하는 즐거움들이 우리의 삶을 반짝반짝 꾸며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즐거운 관심사는 뭐예요?

결혼을 한 뒤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어요. 인생을 함께 보낼 새로운 파트너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까?’가 가장 즐거운 관심사예요. 피겨나 장난감, 직접 만든 작품들은 나한테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저와 닮은 점이 많아요. 그것들은 제가 쉽고 편안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세계지만 사람은 다르잖아요. 미지의 세계죠. 때론 상대를 관찰하면서 연구하는 느낌도 들어요. 서로 다른 세계를 가진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내고 삶을 공유한다는 것이 처음엔 조금 두려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흥미롭고 재밌어요. 제가 피겨를 사서 선반에 올려두면 남편이 귀여운 거 잘 골랐다고 얘기해줘요. 그 세계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더 신나요.

 

《호라이》 주인공이 달걀 프라이예요. 그동안 쓰고 그린 책, 《눈물 바다》, 《커졌다》, 《간질간질》, 《호라이》, 《호라이호라이》에 모두 달걀 프라이가 등장하던걸요?

어릴 때, 마땅한 반찬이 없으면 엄마가 달걀 프라이를 자주 해주셨어요. 저는 특히 계란간장밥을 좋아했어요. 혼자 밥 먹어야 할 땐 달걀 프라이를 반숙으로 부쳐서 따끈한 밥 위에 올리고 간장과 참기름을 부어 골고루 비벼 한 그릇 뚝딱하곤했죠. 좋아하는 음식이다 보니 커서 뭔가를 그릴 때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노랑과 하양의 색 조화도 예쁘고 생김새가 너무 귀엽잖아요. 말랑말랑 푹신하고 영양가도 높고요. 친숙한 음식이니까 그림책 곳곳에 슬쩍 출연시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그렸는데, 급기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게 되었네요(웃음).

 

《호라이 호라이》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잖아요. ‘나는 왜 하얗고 노란 걸까?’ ‘왜 톡 터질 것처럼 약한 걸까?’‘왜 매끈매끈 둥근 걸까?’ 작가님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하곤 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왜 이리 게으를까?’,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걸까?’, ‘왜 자꾸만 즐거움이라는 감정에 집중하는 걸까?’ 등등이요.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게 대부분이지만 계속되는 질문을 통해 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질문은 대체로 자책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하는 거 같아요.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면서요. 앞으로는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게 사소한 질문을 해봐야겠어요.

 

작가님에게 즐거움이 중요한 이유, 저도 궁금해요.

저도 답을 계속 찾고 있는데요, 어릴 때 불안한 상황에 부닥치면 슬프고 걱정스러운 감정이 자꾸만 들었어요. 그 감정들로 내면이 가득 차버리니까 그걸 떨치려고 즐거움을 찾았던거 같아요. 즐거우면 잊을 수 있으니까요. 코미디 배우 짐 캐리가 아픈 어머니를 웃게 하고,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려고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 역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즐거움을 찾았어요. 어린 시절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 인생의 커다란 모토가 되고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 거죠.

 

호라이는 자신의 하얀 몸과 노란 얼굴을 인정하기로 하면서 스스로 벽을 허물어 너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 같아요. 작가님의 경험이 담긴 거예요?

사실 저는 호라이처럼 용기 있진 않아서 경험을 투영했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호라이는 너무나 약하고, 병아리가 되지 못해 불완전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죠. 하지만 ‘이대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먹히며 내 삶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나는 조금 다른 존재여서 그런 걸지도 몰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라고 자신의 가능성을 상상하며 멀리 날아가죠. 저는 겁이 많고 늘 머릿속이 작은 걱정들로 가득해서 무언가를 도전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하지만 호라이는 제 상상의 매개였기 때문에 호라이가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머무르는 것이 싫었어요. 그럼 제 상상도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할 거 같았거든요. 호라이를 저 멀리 떠나보낸 건 제 바람인 거죠.

작가님이 일상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호라이가 해주는 거네요. 

그렇죠.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걸 이야기 안에서 안전하게 상상하며 신나게 대리만족하고 있어요. 해방과 자유로움을 느끼면서요. 그래서 호라이를 저 세상 멀리 보낼 수 있었나 봐요(웃음).

 

작가님 책은 둥글고 나약한 대상에서 이야기가 시작해요.《눈물바다》의 울고 싶은 밤톨이, 《커졌다!》의 커지고 싶은 꼬마, 《간질간질》의 머리카락, 《호라이호라이》와 《호라이》의 달걀 프라이가 그렇죠. 작고 연약한 존재에 애정을 느끼는 편인가요?

작고 여린 존재들을 보면 자연스레 애정이 샘솟아요. 일부러 관심 있게 보려고 한 건 아닌데, 마음이 움직이면서 꼬물꼬물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작은 건 잘 안 보이니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어지고요. 아마도 우리 모두가 작고 나약한 어린이 시절을 지나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달걀 프라이 말고 또 좋아하는 작은 존재가 있을까요?

먼지요. 먼지는 작고 연약한 존재 중에서도 정말 하찮게 여겨지잖아요. 사람들이 관심 주지 않는 것 중 하나인데 분명 존재하고 있고,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어느 구석에 가서 뭉쳐지면 갑자기 커다랗게 변하거나 작게 흩어지기도 해요. 재미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아 먼지를 주인공으로 한 시놉시스를 짜고 아이디어를 모았어요. 이야기를 확장해나갈 시간이 부족해 잠시 보관해 둔 상태예요. 제가 《호라이》 전에는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주로 만들었는데요, 나중에는 동물이나 곤충, 식물을 캐릭터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 별명이 너구리라서 너구리도 좋아해요.

 

《호라이호라이》와 《호라이》는 함께 구성된 걸로 알아요. 오랜 시간 고민했다기보다 후루룩 만들어진 이야기 같아요. 어떤 과정이었어요?

아이디어는 쉽게 떠올랐지만 구성에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처음엔 달걀 프라이를 주인공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1번 이야기는 그대로 《호라이》로 만들어졌고, 2번과 3번 이야기가 합쳐지면서 《호라이호라이》가 되었어요. 이야기가 모아지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에피소드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버무리는 것이 꽤나 힘들었어요.

 

못다 한 이야기는 뭐예요?

엄마 닭이 알을 일곱 개 낳았는데, 여섯 개에선 병아리가 태어나고 마지막 일곱 번째 알에선 호라이가 태어난 거예요. 엄마닭과 병아리들은 호라이를 두고 떠나버려요. 그리고 혼자 남겨진 호라이는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해요. ‘나는 왜 형제들과 다르게 태어났을까.’ 다른 동물들에게 물어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러 다니는 과정이 있었어요. 미운 오리 새끼처럼요. 좋아하는 에피소드였지만 페이지가 넘치는 상황이라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면 좋겠다는 편집부의 의견이 있었어요. 대체로 제 이야기가 직관적이고 명료한 편인데, 처음엔 떠오르는 에피소드를 마음껏 넣고 나중에 덜어내며 정리해요. 아쉽다고 모두 넣으면 이야기 흐름에 방해가 되고 산만해지더라고요. 비록 책에 실리지 못하지만 오늘 같은 인터뷰나 작가의 만남에서 들려드릴 이야기가 생기는 거라 생각하니 아주 아쉽진 않아요.

좋아하는 작가나 그림책이 있어요?

재밌는 그림책과 멋진 작가들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 돼요. 음… 그중에서 초 신타를 참 좋아해요. 그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엉뚱함과 천진함이 진심으로 느껴져요. 저도 꾸며내지 않은 진심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초 신타가 어느 강연회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오징어나 문어가 되고 싶다고 그랬대요. 오징어와 문어를 좋아해서요. 저는 버섯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기왕이면 귀여운 존재면 좋겠는데 버섯 형태가 동글동글 귀엽잖아요. 귀여운 주제에 어딘가에 기생해서 살고 질감도 뽀송뽀송해요. 동물 같은 질감을 가졌으면서 식물이 아닌 균류에 속하는 것도 신비해요. 버섯의 삶이 궁금해요. 다음 생엔 문어가 된 초 신타 작가님과 버섯이 된 제가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문어와 버섯이 만난다니, 그림책의 한 장면 같아요. 

말하고 보니 ‘버섯으로 태어나고 싶다.’와 ‘버섯의 삶을 살고 싶다.’는 굉장히 다르네요. ‘버섯의 삶’이라는 단어에서 갑자기 상상이 구체화돼요. 버섯은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할까, 사람처럼 살까, 잠드는 시간은 있을까. 어떤 날은 비를 맞고, 어떤 날은 포자를 뿌리는 날도 있겠지. ‘우와 내가 여기까지 보냈어.’ 하고 뿌듯한 날도 있겠고요. 우와, 이 이야기 너무 재미있는데요? 잠시 메모를 좀 할게요(웃음). 

 

둘은 어디서 만날까요?

시장에서 만나겠죠? 둘이 깨끗이 손질되어 깔끔하게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웃겨요. 누워 있다가 시장 아주머니들 피해서 이야기를 나누겠네요. 버섯은 순순히 잡혀 시장으로 왔지만 다시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이렇게 단어나 재밌는 말에 꽂혀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상하는 걸 좋아해요. 시간이 허락되면 끝까지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끊어지는 순간이 너무 많아요. 그때 메모가 정말 큰 힘을 발휘해요. 그래서 일단 떠오르는 건 아주 사소한 거라도 메모를 하고, 수시로 들여다봐요. 직업상 끊임없이 이야기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하니까 이런 과정이 습관이 되었어요.

 

《호라이》 책 속의 네 컷 만화를 좋아하는 어린이가 많은데요. 만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림책과 어떻게 다른가요?

저도 네 컷 만화를 참 좋아하는데, 《호라이》와 《호라이호라이》의 네 컷 만화를 고이 간직한다는 어린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고마웠어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보고 따라 그리면서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만화는 저에게 익숙한 장르예요. 학교 다닐 때 만화 따라 그리거나 그림 좋아하는 친구의 연습장 돌려본 기억 있으시죠? 저도 연습장에 만화를 그려서 연재하듯이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도 종종 받았어요. 고등학생이랑 대학생 때는 만화 동아리 활동도 했죠. 지금도 그림책 작업에서 만화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요. 그림책과 만화 모두 그림으로 하는 이야기 책이고 방법만 다를 뿐 같은 영역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두 매체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만화는 그림책보다 좀더 섬세하고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어요. 특히 컷과 말풍선으로 이미지를 연출하고 컨트롤할 수 있어서 좋아요. 더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도 분명 있고요. 네 컷 만화는 네 컷 특유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어요. 네 컷 안에 반드시 마무리되어야 하는 조건이 저에겐 기분 좋은 제약이에요. 최근 박성우작가님의 동시에 그림 그리는 일을 했어요. 콘셉트를 네 컷 만화로 잡아서 세 권 정도 작업했거든요. 컷으로 표현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한 권 두 권 세 권이 쌓이니까 더 재미있었어요. 컷 만화로만 이루어진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눈물바다》가 2009년에 나온 책이니 그림책 작가로 산 지 13년이 되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가장 크게 용기를 낸 것 중 하나가 그림책 만드는 일이에요. 언제 뚫릴지 모르는 단단한 벽을 두들기는 것 같은 지난한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그걸 읽은 독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 과정은 정말 불안하고 두렵거든요. 내가 설정한 이 방향이 맞는지도 늘 의문이죠. 이 일을 용기 없는 제가 어떻게 10년 넘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한가지 믿음이 있다면 내가 즐겁게 작업하면 보는 사람도 그걸 느껴줄 거라는 거예요. 처음 품었던 ‘재밌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다행히 재미있다는 응원을 받아서 힘을 내 나아가고 있어요. 그 즐거움을 ‘어떻게? 얼마나?’ 펼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요. 가끔 욕심 때문에 무리하기도 하지만 좀더 부지런히 작업하고 싶어요. 재미난 생각이 펑펑 샘솟을 때 열심히 책으로 만들어둬야겠어요.

 

상상을 많이 하지만 책으로 만드는 건 신중한 편 같아요.

맞아요. 한창 작업하다가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재미가 없어.’라는 생각이 들면 잠시 멈추고, 좀더 재미있고 술술 풀리는 다른 이야기를 찾아서 만들어요. 즐거움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필요하거든요. 제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만들 때 다른 사람과 의논하기보다는 혼자서 마무리 짓는 편이에요. 최대한 제 안에서 마무리를 하고 나서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해요. 스스로 온전히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나중에 수정이 되더라도 처음에 생각했던 메시지나 생각한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불안하고 외로운 순간도 많지만 제가 의외로 무모하고 과감한 면이 있거든요(웃음).

 

10년 뒤쯤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요?

꾸준히 건강하게 그림 이야기 책을 만들면서 작은 캐릭터숍 사장님이 되면 좋겠어요(웃음).

어린이가 묻고 작가님이 답한 이야기

1. 달걀 후라이를 맞춤법에 맞게 쓰면 ‘달걀 프라이’잖아요. 하지만 ‘달걀 프라이’라고 쓰니 우리가 좋아하는 따뜻하고 맛있는 달걀 후라이가 떠오르지 않고 엄청 딱딱한 느낌이 들었어요. 달걀 후라이라는 이름에서 주는 좋은 느낌을 살리면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후라이의 ‘ㅜ’자를 뒤집어서 호라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어요. ‘호라이!’ 하고 외치면 ‘호이!’ 처럼 신나는 느낌이 들어서 주인공에게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2. 옛날에는 완숙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반숙이 좋아요. 반숙 프라이를 해서 간장과 밥을 넣고 비벼도 먹고 빵 사이에 넣어 에그베네딕트처럼 샐러드를 더해서 먹는 것도 좋아해요.

3. 흰자를 동그랗게 만들어서 받을 수도 있고 튀어나온 노른자 위에 올리고 뛸 수도 있어요.

처음에 호라이는 알에서 태어났답니다. 하지만 나중에 수박에서 다시 태어나지요. 음 그리고… 다음엔 또 어디서 태어날까요?

고양이는 처음에 호라이를 좀 싫어했던 것 같아요. 자기가 아끼는 파란 상자에 허락도 없이 들어갔으니까요. 잡아먹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호라이를 쫓아다니면서 서로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호라이>뒤표지엔 호라이와 고양이가 사이좋게 누워 있답니다.

호라이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제일 좋아해요. 그다음엔 숨바꼭질이요.

저는 머리 위에 올라간 호라이를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수박에서 태어난 호라이요. 머리 위에 올라간 호라이는 따끈따끈할 거 같고, 수박에서 태어난 호라이는 시원할 거 같아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