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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이름의 습관
오롤리데이 대표 롤리
행복 보험 같은 게 있다면 여기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아무 조건 없이도, 어떤 이유 없이도 무작정 행복해지는 여기. 또박또박 써 내려간 예쁜 글자 안에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이어리 틈에도, 빵을 가르는 칼날 소리에도, 빼꼼 내미는 발끝 위에도 행복이란 글자가 동동 떠다니는 것 같다. 행복을 부유하는 롤리와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삶에도 절박한 시절과 지난한 날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은 그 시간에 포옹을 보내고 싶다. Not Lonely, Be Happier!
롤리 오롤리데이 대표 박신후
초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식탁이 보기만 해도 고소하네요.
제가 디렉팅했던 브랜드 중 하나인 ‘다이브인브레드dive in bread’의 빵을 좀 준비했어요. 마침 점심 즈음이라 편하게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뛰어가서 사 왔죠(웃음). 시금치 치아바타, 고르곤졸라 바게트인데 옆에 있는 꿀 발라서 드셔 보세요.
다이브인브레드 이야기로 시작해서 빵집 사장님인 줄 아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웃음). 소개부터 들어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롤리데이oh, lolly day!’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밑미meet me’라는 자아성장큐레이션플랫폼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롤리’ 박신후예요. 이 외에도 카페 ‘낫론니,비해피어not lonely, be happier.’와 빵집 다이브인브레드도 운영했죠. 하고 싶은 게 워낙 많고 행동도 빠른 사람이라 많은 일을 하면서 분주하게 지내고 있어요.
최근에 더 바빠진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 유튜브, 클럽하우스까지 활발히 활동하시던데요.
사실 살면서 안 바빴던 적이 없어요. 요새는 바쁨 농도가 좀 더 짙어졌다고 해야 하나, 이전에는 친구들과 만나고 사적인 일들까지 해내느라 바빴다면 지금은 온전히 업무로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작년 초반까지는 오롤리데이 대표로 하는 일이 가장 큰 업무였는데요. 작년 중순에 밑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큰 역할 두 개를 병행하는 사람이 됐어요. 그래서 이렇다 할 쉬는 날이 잘 없죠. 그래도 오늘은 집에서 만나서인지 일하는 건데도 피크닉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렇게 느낀다니 다행이에요. 워라밸은 잘 맞추면서 지내고 있어요?
일반적인 의미의 워라밸이라면 ‘아니요’(웃음). 워라밸의 정의가 저한테는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저도 워라밸을 단순히 업무와 일상의 균형이라고 생각했어요. 여덟 시간일하고, 여덟 시간 자고, 한 시간 취미생활하고…. 근데 이렇게 따지면 살면서 한 번도 워라밸이 좋았던 적이 없는 거예요. 요즘 제가 생각하는 워라밸은 워크 안에서의 밸런스, 라이프 안에서의 밸런스가 얼마나 잘 맞느냐예요. 열 시간을 일하더라도 그 안에서 재미있는 일, 좋아하는 일의 비중이 어느정도냐 하는 거죠.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거나 못하는 일을 잘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나가는 게 훨씬 밸런스가 좋은 거라고 봐요. 그럴 수만 있다면 일을 열두 시간 해도, 스무 시간 해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체력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라이프 안에서 잠자는 시간을 충분히 두려고 해요. 저는 모든 욕구 중 수면욕이 가장 강한 사람이거든요.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어서 수면이 깨지면 균형이 무너지더라고요. 보통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은 자려고 노력 중이죠.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확보해 두면 저만의 여가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 틈새를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어요.
나만의 워라밸 기준이 생긴 거네요.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롤리표 워라밸은 요즘 어때요?
잘 유지되고 있어요. 라이프에서의 밸런스는 리추얼로 만들어가고 있는데요. 밑미에서 온라인 리추얼 ‘원데이 원드로잉 X 짧은 글쓰기’를 이끌어가고 있거든요. 리추얼 메이커가 되었으니 반강제이자 의무적으로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려야하죠. 반년 정도 하고 나니까 습관이 되어서 아무리 피곤해도 드로잉을 하고 글도 한 줄 이상은 꼭 쓰려는 몸으로 바뀌었어요. 그냥 지나가 버렸을 법한 일들이 기록으로 남으니까 좋더라고요. 대단한 이벤트를 그리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행복을 곱씹으며 그리고 있거든요. 오롤리데이 직원들이랑 시시콜콜 대화하는 거, 밑미 친구들이랑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거…. 사실 이런 작은 순간들은 기록해 놓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리잖아요. 우리 머릿속엔 큰 이슈만 남으니까요.
리추얼 메이커로 지내면서 타인의 기록을 보는 건 어때요?
엄청 재밌어요. 제가 하는 건 그림일기다 보니까 내밀한 이야기가 오가는 건 아니지만 일상이 다 보이거든요. 어떤 분은 소소한 데서 재미를 느끼고, 어떤 분은 진지한 이야기를 담기도 해요. 옛날이야기로만 채우는 분도 있고요. 세상엔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에게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는다면, 결국에는 공감해 줬을 때 모두가 행복해한다는 거예요. 타인의 기록을 보면서 ‘즐거우셨겠어요.’라든지 ‘힘드셨겠군요.’ 같은 이야기가 오갈 때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결국 다들 관심받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숨기고 싶은 이야기도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면 의미 있는 기록이 되니까요.
롤리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네. 심리상담사가 끌어가는 밑미 리추얼 프로그램 ‘나를 껴안는 글쓰기’에 참여했을 때인데요. 타로카드를 콘텐츠로 ‘바보’의 여행을 따라 글을 써보는 내용이었어요. 여왕, 황제, 사제들을 만나면서 “나를 군림하려던 사람이 있나요?”, “아픈 경험을 떠올리고 그때로 돌아가서 나에게 말을 걸어 보세요.”같은 질문을 통해 나의 경험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해요. 이 프로그램은 제 리추얼과는 달리 묵직한 이야기가 오가요. 개인적인 문제부터 사회적인 어려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죠. SNS에서 쉽게 배출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들 후련해하시더라고요.
저도 어디에서도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여기서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저를 괴롭혔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 쉽게 말할 수 없는 사건이었거든요. 오프더레코드로 여기서만 말할 테니 인터뷰에는 싣지 말아 주세요(웃음).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다들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후련해해요. 다른 참여자들도 남들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꺼내면서 안도감을 느끼고요. 다른 참여자와 경험을 나누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내밀한 마음을 꺼내는 프로그램이었군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공유하는 데 거부감은 없었어요?
안전하다고 확신했어요. 이건 그냥… 믿음이에요. 그 프로그램에서는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요.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서 선생님을 믿지 않으면 상담이 진행되지 않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누구나 치부가 있고, 아픔을 겪어요. 우리는 그 마음을 연대하기 위해 모인 거고요.
계속 뭔가 하는 이야기만 해주셨는데 틈틈이 쉬기도 하는 거죠…?
저요(웃음)? 그럼요. 진짜 힘든 날에는 아무것도 안 해요. 하루 종일 누워서 드라마를 보거나 멍 때리며 시간을 죽이는 날도 있어요. 얼마 전엔 <겨우, 서른>이라는 43부작 중국 드라마를 다 보기도 했는걸요.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일하면서 어떻게 그걸 다 본 거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놀 때도, 쉴 때도, 일할 때도 무조건 확실하게 하려고 해요. 강약중강약 조절을 잘하는 거죠.
저는 쉴 때도 일 생각이 나던데 그렇진 않아요?
당연히 그래요. 근데 전부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일 생각을 하는 게 스트레스는 아니에요. 어제도 이 의자에 앉아서 책 보다가 갑자기 회사 생각이 나서 비전, 미션, 코어밸류를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정리했어요. 늘 그런 식이에요. 푹 쉬다가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각 잡고 일하고(웃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그래서 좋은 거 같아요.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피하라고도 하고요. 어떻게 계속 해나가는 거예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많이 겪어봐서요. 저는 실행을 많이 해본 사람이어서 좋아하지 않는 일도 많이 해봤거든요.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아니었던 일도 있고요.
예를 들면요?
요식업이요. 너무 힘들었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니 요식업은 당연히 잘 맞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막상 업계에 들어가 보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저희 엄마가 수십년간 식당을 운영하셨는데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쉽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어요.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한 사람이더라고요(웃음). 직원 관리도 오롤리데이랑은 완전히 달라요. 직접 부딪쳐보니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뭔지 선명해지기도 했어요.
어찌 보면 실패한 셈인데 다음 도전이 두렵진 않았어요?
안 그랬어요. 저는 걱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요. 사람들이 도전을 못 하는 이유는 대체로 걱정 때문인 거 같아요. 행동보다 생각이 먼저 몸을 지배하고 묶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행동하지 못하고 계속 생각만 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제 생각은 이래요. ‘어차피 행동하지 않아도 머릿속을 맴돌 거라면 (주먹을 불끈 쥐며) 직접 하자!’ 그래야 깨닫는 타입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거든요. 계속 행동해 나가다 보니 좋아하는 일이 선명해지고 좋아하는 일을 많이 벌이는 사람이 되었어요. 경험이 많아지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고요.
실패는 좋은 자산이지만 극복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저는 회복탄력성이 좋아요. 회.복.탄.력.성. 발음이 왜 이렇게 어렵죠(웃음)?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릴 때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방법을 어린 나이에 혼자 터득했거든요. 지금은 많은 사람이 저와 ‘행복’이라는 단어를 엮어서 생각하지만 우울증이 아주 심했던 적도 있어요. 사는 것보다 죽는 걸 더 많이 고민한 시절도 있고요. 그게 열아홉, 스무 살 때 일이에요. 어릴 때 정신적 힘듦을 심하게 겪고 나니까 대수롭지 않아지기도 했어요. ‘실패하면 어때, 다시 올라오면 되지.’ 이런 마인드가 생긴 거죠. 물론 원래 성격이 낙천적인 것도 한몫했고요. 근데 우울증에 걸리면요, 이런 천성도 소용이 없어요.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건 결국 자기 몫이에요. 누군가 도와줄 순 있겠지만 저를 끌어줄 순 없어요. 저는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서 저 자신을 신뢰하게 됐어요.
힘들었던 시절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제 고향은 제주도 시골인데 제주도에서는 시로 고등학교를 가면서 자취하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시로 통학을 하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나가야 하거든요. 제주에서의 한 시간은 서울의 한 시간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래서 저도 열일곱부터 자취를 시작해야 했죠. 그즈음 저희 집이 심하게 기울기 시작했는데, 자취하느라 밖에 있어서 저는 상황을 잘 몰랐어요. 아버지가 무리하게 일을 벌이면서 집이 침몰했고 집 안 곳곳에 빨간딱지까지 붙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엄마가 제 자취방에 동생을 데리고 오셔서는 너희를 공부 시키려면 아빠랑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상태로는 제 학비는 물론이고 여섯 살 터울인 동생 급식비도 못 낸다고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엄마를 붙잡겠어요. 엄마는 강원도로 가셨고, 그때부터 우울증이 생겼어요. 저는 학생때도 밝은 사람이었거든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웃기는 애로 통했고요. 근데 집에만 오면 너무 우울했어요. 자취방에서 울다가 일기 쓰다 잠들고…. 왜, 중이병이라고 해서 슬픈 일이 있으면 더 비련에 빠지고 괴로우면 자기를 극한으로 몰아간다고 하잖아요. 제가 꼭 그랬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도 심해지고 몸도 안 좋아졌죠.
혼자 지내서 더 힘들었겠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아파서 학교도 툭하면 빠지니까 담임 선생님이 저희 집까지 오셔선 “야, 신후야. 이제 학교 올 때 되지 않았냐?” 그러면서 부른 일도 많아요. 그 시절에 제가 유일하게 몰입한 게 미술이었어요. 근데 미술학원에 다니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 동생 급식비도 못 내는 마당에 엄마가 제 학원비를 어떻게 냈겠어요. 학원비가 엄청나게 밀렸다는 걸 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든요. 짐작은 했지만 미술마저 포기하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모르는 척했어요. 버티고 버티다 더는 안 되겠을 때 원장 선생님께 집 상황이 좋지 않아 미술을 더는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너 지금 나가면 미술 평생 못 해. 그래도 괜찮니?” 그러시더라고요. 이건 어른들이 해결할 문제니까 눈치 보지 말고 다니라고 하셔서, 힘들었지만 정말 모른 척하기로 했어요. 그게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같았거든요. 아주 나중에 엄마한테 듣게 됐는데 선생님이 방학 특강비만 내면 신후가 3수를 하든 4수를 하든 책임지겠다고 하셨대요. 천만 원이 넘어가는 비용을 눈감아 주신 거죠. 저는요,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사각지대 청소년이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신용불량자일지언정 두 분 다 살아계시고 제가 차상위계층이나 소년소녀가장은 아니어서 지원을 받을 수 없었어요. 자취방에 보일러 뗄 돈도 없어서 패딩입고 겨울을 났는데도요.
오늘의 밝음에 오기까지 어두운 날들이 있었군요.
그래도 다행인 건 제 성격이 어릴 때도 긍정적이었다는 거예요. 미술학원 선생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목표로 한 대학에도 진학했고 연애도 시작했어요. 오랫동안 저를 좋아해준 친구인데 스무 살이 되니까 드디어 걔한테 맘이 열리더라고요. 저한테 지극정성으로 잘해줬고 저도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을 연 건 처음이었어요. 인생을 다 바쳐도 되겠다는 마음으로 영혼까지 다 줘버렸는데 항상… 끝은 그렇잖아요(웃음). 그 친구가 마음이 변해버렸어요. 그때 처음 경험한 것 같아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느낌. 그 친구와의 관계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었나 봐요. 그런 상황이 닥치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우울감이 한꺼번에 터지더라고요. ‘펑!’ 그 친구랑 헤어지고 한 달에 8킬로가 빠졌어요. 한 끼도 안 먹고,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율무차 한 잔으로 버티고…. 그때가 우울증이 정말로 심했던 시기예요. 표면적으로는 연애에 실패해서 우울증이 온 것 같지만, 사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힘듦이 이별을 계기로 터진 것 같아요.
어떻게 벗어났어요?
책을 읽다가 ‘나에게 편지를 써보라.’는 대목을 읽게 됐거든요. 그때부터 밤마다 저에게 편지를 썼어요. 제삼자가 되어 ‘신후야, 너 오늘 이거 정말 힘들었지?’ 하고요. 꾸준히 하다보니까 정말 에너지가 올라오더라고요. 완전히 무너지고 극복하기까지 한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는데 그 시간을 스스로 이겨냈다는 게 제게 큰 힘이자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 경험이 제가 번아웃을 겪을 때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그 시절을 겪고 난 뒤에는 드디어 저답게 살기 시작했는데요. 진짜 바쁘게 지냈거든요. 학회장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이것저것 해보고…. 그때도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제 삶에서 돈이 중요한 가치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돈이 없다고 불행한 적은 없어요.
그럼 롤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역시 행복?
맞아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꿈인 것 같아요.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가 다를 뿐이죠. 어떤 사람은 돈일 거고, 어떤 사람은 가족, 또 어떤 사람은 친구일 거예요.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게 뭘까?’ 질문해 본 적이 있는데, 몇 년의 경험을 돌이켜보니 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그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깨달음이나 인사이트를 줬을 때 행복해져요. 결국 제가 행복해지려면 제 경험을 나누고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알았기 때문에 오롤리데이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제품으로 행복을 전하는 건 새로운 걸 좋아하는 제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야예요. 저는 변덕이 정말 심한 사람인데 7년 동안 이걸 안 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오롤리데이 안에서라면 새로운 걸 탐험하고, 적용하고, 만들면서 얼마든지 확장해 나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오롤리데이의 행보를 예측하는 게 어려워졌어요. 문구 제품으로 시작해서 핸드폰 케이스, 의류, 립밤까지 카테고리를 계속 확장하는 것 같아요.
어제 오롤리데이의 사업 모델을 정리하면서 비전에 이렇게 적었어요. “오롤리데이는 카테고리를 어떤 한 분야에 가두지 않는다.” 오롤리데이 미션은 누군가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그 방식이 꼭 제품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저희가 만드는 콘텐츠일 수도 있고, 서비스가 될 수도 있죠.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하거나 오롤리데이라는 심리상담센터를 열거나 다시 요식업을 할 수도 있…(웃음). 누군가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형태는 상관없어요. 가능성을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오롤리데이가 뭐야?’라는 질문에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브랜드.’라고 누군가 대답해 주면 좋겠어요. 문구팬시브랜드 같은 단어로 규정되고 싶진 않아요.
오롤리데이가 무형의 것을 다룰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럼요. 지금 하고 있는 유튜브도 제품 홍보 채널은 아니에요. 습관을 만드는 방법이나 제 경험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콘텐츠를 보고 누군가의 삶이 개선되고 더 행복해진다면 오롤리데이스러운 일을 한 거죠. 시작은 문구였지만 카테고리가 확장되고 제품을 넘어 더 큰 것으로 나가고 싶어요. 한번은 오롤리데이를 몇 년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거든요. 저도 나이가 들 테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날이 올 거잖아요. 근데 롤리가 롤리다움만 잃지 않는다면 아무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약 없이, 어떤 분야에서든,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즐거워지더라고요.
뭐든 대충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열정이 대단해 보여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에너지를 한 번에 쏟는 타입이죠. 사업을 시작할 때도 남편이랑 가진 돈을 올인했거든요. 남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 둘이 만나서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근데 그만큼 접는 것도 빨라요. 안 되는 걸 끌고 가느라 잘하는 걸 놓치긴 싫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도 확실하게 하죠. 물론 포기하는 게 쉽진 않아요. 요식업을 그만둘 때도 괴로웠거든요. 잘할 수 있을 줄 알고 시작했는데 그렇게 안 됐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최근에 제가 기질 및 성격 검사인 TCI 검사를 받았는데요. 거기 완벽주의 항목이 있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제가 힘들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어요. 저도 사람이어서 모든 데 100퍼센트 기력을 쏟을 순 없어요. 더 잘하는 거, 더 재미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죠.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요식업을 접으면서는 번아웃 증후군이 심하게 오기도 했어요. 그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오롤리데이에 더 집중할 수 있었죠.
‘내 약점이 곧 브랜드의 약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뭐든 써놓고 보면 달리 보인다고 이야기했어요. 기록하는 게 어떤 이유에서 현상이나 사실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돕는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조그마한 것에 감동이나 영감도 많이 받고 통찰도 빨리 얻는 편이에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머릿속이 정돈되는 편이라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특히 이런 인터뷰는 제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돼요.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말들이 체계화되거든요. 말하는 것만큼 글도 생각을 정제하는 데 도움을 줘요. 저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편이고 제 글을 보여주는 데 두려움이 없어요. 다만, 보여주기 위해서는 글을 어느 정도 정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쓴 기록을 보여 줄 수 있을 문장으로 다듬으면서 생각이 견고해지고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장인처럼 노트를 달고 다니면서 기록하는 편은 아니지만 하루에 짧은 글 한 편씩은 꼭 쓰려고 해요. 요즘은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데요. 글 쓰는 힘이 생겨서 더 길게 쓸 수 있고, 확실히 글쓰기 스킬이 좋아지는 게 느껴져요. 너무 피곤한 날엔 잘 안 써져서 횡설수설하게 되지만 그대로 기록하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SNS에서 롤리를 지켜보는 팔로워가 참 많아요. 인스타그램만 해도 6만 명이 넘는데 조심스럽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이 지켜본다는 건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을 공적인 영역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저만 보는 일기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비밀을 적는 건 아니어서 SNS에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쓰고 있죠. 제 인스타그램을 보면 ‘뭐 이런 거까지 다 얘기해?’ 싶은 것들도 많아요. 이를테면 남편이랑 부부상담 받은 얘기가 그렇고요. 저희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부부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공유한 이야기였는데요. 우리나라는 이혼율이 참 높잖아요. 저는 그게 나를 모르는 채로 결혼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나에 대한 탐구가 없으니 상대를 탐구할 여력도 없는 거죠. 부부에게 마찰과 갈등은 당연한 거고 저희도 피할 순 없었지만 서로를 탐구하면서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방법이 부부상담이었고요.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니까 전에 비할 바 없이 행복해지더라고요. 지금은 그 게시물 ‘좋아요’ 숫자가 5천을 넘었어요. 여전히 많은 분들이 보시고 저한테 DM으로 부부상담을 하곤 해요. 최선을 다해 정보를 드리고 있는데 간절한 사람들에게 제 경험담이 용기와 힘이 되면 좋겠어요.
SNS는 악플의 성지이기도 하잖아요. 언짢은 피드백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지인의 친구가 저를 언팔로우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 이유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재수 없다.’는 거 였는데요(웃음). 그 피드백이 좀 충격적이었죠. 저라고 왜 힘든 일이 없겠어요. 매일이 고난과 힘듦의 연속인걸요. 그래도 저는 그 힘듦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행복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SNS를 통해서는 행복한 모습 위주로 보여주려 하는 거고요. 이런 피드백을 받거나 언팔로우를 당하면 저도 물론 속상해요. 하지만 과거에 비해 지금은 크게 영향받지 않아요. 옛날엔 저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는 순간 거기에 연연하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건 불가능하단 걸 인지하고 다 초월해 버린 것 같아요.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신경쓰기보다, 좋아해주고 기꺼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눠드리고 싶어요.
여러모로 중심을 잘 잡는 사람 같아요.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줄래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요. 저도 저한테 실망할 때가 있어요. 실수하거나 맡은 일을 제대로 못 한다거나… 하면 화도 나고요. 이런 감정은 제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거 같아요. 제 실수와 실패를 부정하면서 생기는 거죠. 결국 이걸 다 납득하고 소화해야 화를 없애고 저를 인정하게 될 거예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데요. 여기서 핵심은 ‘실수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인 것 같아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한 거죠. 전 글을 쓰면서 많이 정리하는 편이에요. 쓴 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으면 SNS에 올리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가지고 있죠. 그런 식으로 기록을 계속 쌓아가는 거고요.
최근에 나한테 실망한 일이 있었나요?
최근엔, 음… 없었네요? 저 건강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웃음). 그나마 가장 최근 일은 재작년에 번아웃이 왔을 때인데요. 허리 디스크가 터지고 계속 누워 지내면서 생각이 참 많았어요. 특히 제가 좋은 리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제가 좋은 리더가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2019년 연말에 한 페스티벌에 나가서 저희 부스가 굉장히 잘 된 적이 있어요. 5일 동안 수천만 원을 벌었으니 어마어마한 실적이었죠. 근데, 그때 다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힘들어했거든요. 그걸 보는 게 참 괴롭더라고요. 그러다 행사가 끝날 즈음엔 실망스러운 마음도 생겼어요. 그동안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금요일이면 2시에 퇴근하는 주 32시간 근로제도 시행해왔는데, 닷새 힘들었다고 이렇게 티가 날 정도로 힘들어할 일인가 싶었던 거죠. 처음엔 서운한 마음에 다시는 이런 거 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끝낼 문제가 아닌 거예요. 과연 나에겐 문제가 없었을까 하고 돌이켜보니 우리에겐 목적이 부재했던 것 같아요. 대표인 저조차도 행사에 왜 나가야 하는지 뚜렷한 이유를 모르겠는데 직원들이라고 납득했을까요? 비단 이 행사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동안 우리 브랜드에 뾰족한 목표가 없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제가 좋은 리더가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 즉시 서점으로 달려가서 좋은 리더가 되는 방법에 대한 책들을 전부 사서 읽고 적용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빨리 퇴근 시켜주고 일을 덜 하게 하는 좋은 친구였을 뿐, 동기 부여를 해주는 좋은 대표는 아니었던 거예요.
엄청난 통찰이네요. 지금은 어때요?
저는 좋은 대표는 아니었지만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직원들과 쌓아온 신뢰가 있었어요. 그게 지금의 오롤리데이를 있게 한 힘이기도 하고요. 저는 좀더 탄탄한 오롤리데이를 만들고자 2019년 연말에 성과관리기법인 ‘OKRObjective Key Results’을 도입해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구글에서 했다는 그거요(웃음). 그러기 위해선 직원들도 함께 공부하고 관련 서적을 읽는 노력이 필요했는데요. 그때 직원들이 싫은 내색 없이 따라와 주더라고요. ‘내년부터 오롤리데이는 다시 태어날 거’ 라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 이전에 관계를 잘형성해 두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직원들에게 고마웠죠. 실제로 2020년에 우리 브랜드는 다시 태어났어요.
기록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 볼게요. 기록할 때 디지털 도구와 아날로그 도구를 두루 사용하는 것 같아요. 특히 선호하는 기록 방식이 있나요?
용도가 좀 달라요. 영감이 떠오를 땐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데, 빠르게 스케치하니까 오타가 엄청 많아요. 나중에 보면 뒤죽박죽이라 우습기도 하고요(웃음).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주고 싶을 땐 컴퓨터로 블로그에 글 쓰는 일이 많아요. 반면에 감정적인 글은 손으로 써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 쓰는 루틴을 만들던 리추얼을 할 때도 그랬고 기승전결 없이 아이디어를 확장해 나갈 때도 그렇죠. 낙서하듯 끼적이는 정도인데도 뭔가 기록한다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정리가 돼요.
정리한 걸 한데 모으는 게 아니네요?
제가 편집이랑 정리를 진짜 못해요. 기록은 엄청나게 쌓아놓는데 그게 다 뿔뿔이 흩어져 있죠. 노트도 이거 썼다 저거 썼다, 어디에 둔지 잘 모르겠으면 새것도 쓰고(웃음). 오늘 보여드리려고 최대한 많이 모으긴 했는데 아마 이거 말고도 회사 여기저기에 흩어진 노트가 많을 거예요. 저는 늘 열심히 기록하지만 체계적으로 아카이브하는 능력은 없어요(웃음).
그럼 찾고 싶은 내용이 있을 땐 어떻게 해요?
손으로 쓴 건 느슨한 내용이 많아서 정제된 글은 보통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찾을 수 있어요. 아, 그래도 찾아볼 수 있게끔 모아놓은 게 하나 있긴 하네요. 회사 업무는 다이어리에 적고 있거든요. ‘그거 몇 년도에 했지?’ 하고 찾는 일이 종종 있어서 연도별로 기록해두고 있죠.
어? 업무를 다이어리에 기록해요?
네. 요즘은 노션이나 구글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전까지는 전부 다이어리에 손으로 썼어요. 손으로 쓰면 브레인 스토밍이 잘 되거든요. 오히려 저는 사적인 기록을 거의 디지털로 하는 편이에요.
업무를 디지털로 기록하고 사적인 걸 손으로 쓸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노트를 펼치며) 근데 글씨가 멋져서 아무렇게나 적어도 모든 페이지가 참 예뻐요.
이렇게 갈겨 쓰는데도요(웃음)? 벽에 붙이고 꾸준히 봐야 하는 목표 달력 같은 건 각 잡고 예쁘게 쓰지만, 그때그때 쓰는 다이어리나 메모 노트는 그렇지 않아요. 전 제 글씨가 익숙해서 솔직히 예쁜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릴 땐 예쁘게 꾸미고 글씨 쓰는 데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쓰고 싶어져서 지금은 예쁘게 쓰는 집착은 내려놓고 막 휘갈겨서 메모해요.
사적인 기록도 자주 들춰보는 편인가요?
아니요. 지나간 감정엔 그리 마음 쓰지 않아요. 과거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한 번 해본 건 또 해보려는 마음을 잘 안 먹어요. 심지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도 싫어하는걸요. 어릴 때 한번은 학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소변이 너무 마려운 거예요. 학원에서 한 2분 정도 걸었을 때라 되돌아가면 됐는데 20분 이상을 걸어서 집까지 왔어요. 꾸역꾸역 소변을 참으면서요(웃음). 제 성향이 그런 거 같아요. 앞으로 가는 걸 좋아하고, 안 가본 길로 가려고 하고. 그래서 옛날 기록도 굳이 펼쳐보지 않는 것 같고요.
현재를 기록한다고 해도 쓰는 순간 과거가 되잖아요. 미래를 지향하면서도 굳이 과거를 남기는 이유가 뭐예요?
순간의 생각을 정리하려고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항상 다이어리를 쓰던 학생이었는데 2013년엔 마땅한 다이어리를 찾지 못해서 안 쓴 적이 있어요. 근데 그 1년이 전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앞서 저는 기록을 들춰보는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근데도 ‘썼다’는 행위만으로도 머릿속에 각인되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쓰는 행위를 안 하니까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어요. 그걸 깨달은 뒤로는 꼭 그날그날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려고 해요.
저는 일기를 주로 행복할 때 쓰는데 많은 사람이 힘들 때 쓴다고 하더군요. 부정적인 감정이 중요해서 기록하는 건 아닐 텐데, 사람마다 기록의 초점이 다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어떤 심리가 내게 지배적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도 열아홉, 스무 살 땐 슬픔에 더 집중했어요. 근데 지금은 에너지가 좋을 때 기록하는 것 같아요. 감정이 좋지 않을 땐 뭘 쓰기보단 오히려 머리를 비우려고 명상을 해요. 반대로 기록이 제 에너지를 더 좋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어떤 점에서요?
얼마 전엔 남편이랑 싸우고 화가 난 상태로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갖자며 거실로 나왔거든요. 그때 테이블에 노트랑 연필이 보이더라고요. 앉아서 무턱대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했는데 신기하게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더라고요. 남편과 싸운 내용을 적은 것도 아닌데 불씨가 사그라지는 게 참 신기했어요. 마음이 안정되고 나서 먼저 남편을 토닥토닥해 줬는데, 저 그때 제가 너무 멋있어서 눈물이 다 났어요(웃음). “나 너무 멋진 것 같아. 나한테 감동했잖아.” 그러면서 울었더니 남편이 피식 웃으면서 황당해하더라고요.
진정한 기록의 쓸모네요(웃음). 오롤리데이 제품에도 기록에 관한 게 많은데 특징이 있다면 습관을 만들어준다는 것 같아요.
맞아요. 오롤리데이엔 단순한 노트보다는 기능을 둔 제품이 더 많아요. 사람들의 삶을 더 행복하게 바꾸고 싶다는 미션이 있기 때문에 좀더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사실 저는 그렇게까지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제 노트만 봐도 엄청 자유분방하잖아요. 올해 1월에 오롤리데이에서 ‘굿해빗 35days 챌린지’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35일 동안 오롤리데이의 해빗 제품을 사용해서 나만의 좋은 습관을 실행하는 이벤트였고, 그때 챌린지한 분들을 모시고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저희 제품을 정말 잘 써주시는 분들이었죠. 어떤 분은 번아웃이었는데 체중을 6킬로 감량하면서 외모에 변화가 생겼고 에너지가 올라와서 극복했다고 하셨어요. 1만보 걷기 챌린지로 체력을 회복하고 건강해진 분도 계셨고요. 저희 해빗 제품들은 직접 테스트하고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만들어요. 35일이라는 기준도 디테일하게 연구해서 결정한 거죠. 이번에 챌린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연구한 보람이 느껴져서 여러 번 울컥했어요.
매년 수많은 브랜드가 다이어리를 출시하지만 오롤리데이 다이어리는 특징이 확실한 것 같아요.
저희 다이어리 중에 ‘I had a nice day’ 시리즈가 있는데요. 데일리 다이어리로 내지에 “How was your day today?”라는 문장이 인쇄돼 있어요.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말을 건네는 다이어리죠. 그 아래는 “I had a _________day”라고 해서 빈칸에 알맞은 형용사를 넣게끔 만들었죠. 한 번이라도 내 하루를 더 생각하게 하고 싶어서 넣은 장치예요. 거기엔 Sad, Happy… 그 외에도 수많은 단어가 들어갈 수 있겠죠? 단순히 오늘 한 일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고 정리한다면 삶이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롤리데이가 만든 제품들은 다 리추얼이랑 연관되어 있어요. 저는 평소에 생각을 참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저한테 질문도 많이 하고요. 근데 이런 연습이 안 돼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되었음 좋겠단 생각으로 작은 장치들을 담아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롤리는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해요.
저희 제품을 잘 써주시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웃음). 다이어리도 연습장처럼 써요. (노트를 펼친다.) 이렇게 막 쓰죠. 다이어리를 잘 꾸미는 분들은 내지 디자인에 맞춰 촘촘하게 꾸미곤 하던데 저는 펜 색깔도 종류도 잡히는 대로 써서 중구난방이고, 연필로도 쓰고, 색연필로도 쓰고, 파랑에 검정에 들쭉날쭉해요. 이렇게 막 아무거나 붙이기도 하고요.
오히려 막 쓴 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거 아세요?
그래요(웃음)? 옛날에는 먼슬리 달력도 참 잘 썼는데 요즘에는 일정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까 다이어리에 정리가 다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구글 캘린더에 정리하고 있어요.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수정이 가능해서 협업할 때 훨씬 편하거든요. 이젠 구글 캘린더 없으면 전 아마 못 살 거예요.
그때그때 플랫폼을 달리해서 편한 쪽을 찾아가고 있군요. 혹시 다른 사람의 기록에서 영향을 받기도 해요?
그럼요. 특히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언젠가부터 인사이트 있는 책들 위주로 독서 습관이 바뀌었는데요. 최근에 읽은 책 중 좋았던 걸 소개하자면… 음, 《OKR》, 《우아한 승부사》,《규칙 없음》이 생각나네요. 저에게 인사이트를 준 책들이죠. 오롤리데이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소통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독서 노트에 기록하게끔 만든 책들이에요.
뭘 하더라도 의미를 확장하고 나에게 적용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독서도 그렇고요.
맞아요. 저 적용 되게 잘해요(웃음). 넷플릭스 이야기를 담은《규칙 없음》을 보고 오롤리데이 경영에 접목한 것들이 있어요. 근데 넷플릭스랑 오롤리데이는 규모부터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것과 못 하는 걸 구분하고 저희걸로 만들어서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인사이트를 확장해서 제 경험에 적용하는 과정이 저는 너무 재밌더라고요.
롤리의 기록은 ‘꾸준함’이라는 키워드와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만 해도 해시태그로 게시물을 모으기도 하고요.
저는 인스타그램 초창기 때부터 해시태그로 제 사진들을 모아왔는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건 #롤리_1d1d예요. 2017년에 1년 동안 하루에 하나씩 드로잉을 해서 업로드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올해는 하루에 하나씩 드로잉을 할 거예요.” 그렇게 알리고 시작한 프로젝트죠. 이렇게 공표해야 동기 부여가 더 잘되거든요. 그렇게 매일 그렸더니 300개가 넘는 그림이 쌓였고 그걸로 작은 전시도 했어요. 저는 해시태그로 기록을 쌓는 재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림이든 글이든 하나만 있으면 힘이 없어요. 근데 열 장, 스무 장, 백장씩 쌓이게 되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생겨요. 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생기고요. 이때 중요한 건 나만의 해시태그를 만드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게시글과 겹치지 않을 고유한 해시태그를 정하는 것도 고민하다 보면 즐거워요.
롤리의 기록은 역시 루틴과 밀접하네요.
올 초에 하루 루틴표를 만들고 실행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중단한 상태예요. 하루를 쪼개서 시간 단위로 만들었더니 그대로 이행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갑자기 컨펌을 해야 하거나 미팅이 생기는 등 업무 관련된 변수가 많아서 특히 더 그랬죠. 그래서 우선은 집에서 할 수 있는 루틴을 목표 달력에 적어서 붙여두었어요. 목표 달력을 사용하는 거랑 하지 않는 건 확실히 달라요. 시각적으로 보이는 게 진짜 중요하거든요. 저는 사실 되게 잘 게을러지는 타입이에요. 누워 있으면 한없이 늘어지고…. 이런 도구가 없었다면 루틴을 만드는 데 실패했을 거예요.
요즘은 또 어떤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이에요?
다들 하는 생각일 텐데 스마트폰을 덜 들여다보려고 해요. 동기 부여가 된 건 유튜브였는데요. 어느 영상에서 아침에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하루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대부분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만지며 10-20분 정도를 무의미하게 보내잖아요. 근데 뇌는 눈 뜨자마자 하는 행위를 오늘 할 일이라고 인식한대요. 그걸 알고 난 후부터는 알람을 끄고 바로 스트레칭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그랬더니 스크린 타임이 절반으로 줄더라고요. 신기하죠?
정말요? 꼭 해봐야겠어요. 롤리는 자기 패턴을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컨트롤도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스스로를 잘 알기 위해서 어떤 걸 해보면 좋을까요?
질문하기요. 처음 보는 사람이나 관심 있는 사람에게 질문 많이들 하잖아요. ‘여가 시간에 뭐 하세요?’, ‘뭐 좋아하세요?’ 근데 자신에게 물어보면 대답 못 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질문을 해봐도 답을 찾기 어렵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지?’라고 묻기보다 ‘죽기 전에 딱 한 가지 먹고 싶은 음식은?’ 하고 극단적으로 질문해 보세요. 이렇게 대답을 찾아가다 보면 나 자신이 좀 더 선명해질 거예요.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선 경험도 중요할 것 같아요.
살면서 경험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할까 말까 할 땐 뭐든 해봐야 해요. 나만 아는 데이터가 쌓이는 건 중요하거든요. 저는 한동안 ‘덕후’가 못 되는 걸 콤플렉스라고 생각했어요. 뭐든 깊게 파는 사람들이 부러웠죠. 한때는 이것저것 좋아하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여러 가지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했다는 데서 자신감을 얻어요.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앞서 말한 ‘나한테 질문하기’가 큰 도움이 돼요.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고요. 기록의 방식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이어도 좋아요.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고 나의 데이터를 기록해 나가면 좋겠어요.
롤리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철학적인 질문이네요. 음… 어렵네요.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아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오늘의 나를 한 문장으로 기록하면서 정리해 볼까요?
좋아요. 오늘은… 어? 잠깐만요. 저게 뭐죠?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킨다.)
어? 옥상 천막이 떨어진 것 같은데요? 엄청난… 소리가… 나네요.
저걸 어쩌죠? 남편한테 전화 좀 할게요.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다.) 아, 오늘의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로 했죠(웃음). 인터뷰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니까 “어느 때보다도 솔직하게 기록한 사람”이라고 해볼게요. 집에서 인터뷰한다고 해서 파자마라도 입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파자마 입고 천막 떨어진 거 봤으면 진짜 웃겼겠어요(웃음).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게끔 목표치를 아주 낮게 설정하면 목표를 이루기 쉬워질 거예요.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보다는 ‘매일 5분 책 읽기’로! 게으름을 피울 핑곗거리가 사라질걸요?”
A Daily Checking Habit – 35days
+ O,LD! Mascot Emorion Sticker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매해 목표를 세워두고 실천하는데 실패했다면 이 아이템을 추천합니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목표를 크게 적어두고 자꾸 봐야지만 움직일 수 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받기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해본 경험이 있죠? 성인도 똑같아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계속 칭찬해주는 것, 그게 중요해요. 배시시 웃고 있는 노랑 못난이 스티커와 함께한다면 매일 노랑 못난이를 만나고 싶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될 거예요.
Good Habit Tracker – Routine
목표 달력을 사용하여 몇 가지 좋은 습관이 생겼다면 나만의 루틴을 계획해 보세요. 정신없는 아침, 게을러지기 쉬운 밤에 나만의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실천한다면 조금은 더 에너지넘치는 나날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때 이 루틴표를 활용한다면 더욱 효율적인 루틴 관리가 가능할 거고요. 저는 출근 전과 퇴근 후의 루틴을 만들어 열심히 체크 중이랍니다! 일주일 치 루틴을 쭉 훑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어요.
Let’s Do! It – Sticky
‘매일 물 2리터 마시기’, ‘스트레칭 수시로 하기’ 다짐하지만 잘 안 되잖아요. 저만 그런 거 아니죠…? 그래서 만든 제품이에요. 하루에 물을 몇 잔 마시는지, 얼마나 자주 스트레칭하는지 표시하면 훨씬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알록달록한 펜을 들고 색칠공부하듯 하면 나름 힐링도 된답니다.
Oh, Lolly Day! Pen
이왕이면 예쁜 게 최고! 목표 달력에 표시할 때도, 루틴표를 만들 때도, 다이어리를 꾸밀 때도 예쁜 펜이 있으면 더 든든해지는 기분이죠. 어릴 적 필통에 필기구를 터질 듯이 넣어다녔는데, 요즘엔 이 펜들만 챙겨 다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바다색과 여름초록색이랍니다. 카코KACO라는 브랜드의 펜인데 써보고 손에 감기는 펜 바디의 질감과 예쁜 잉크색에 반해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요즘 저의 최애펜!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