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Going Through A Tunnel

모르는 길과 마주하는 용기, 그림책 작가 맥 바넷

LIKE GOING THROUGH A TUNNEL
모르는 길과 마주하는 용기

맥 바넷, 그림책 작가

나의 세계가 불확실한 만큼, 아이의 세계도 불안하다. 익숙했던 길이었는데 낯선 장소에 다다르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둠 속을 거닐어야 할 수도 있다. 그림책 《동그라미》의 글 작가 맥 바넷은 친숙한 길 너머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모호함과 불안, 막막함과 두려움이라는 터널을 지나면 그 행로의 끝엔 다른 내가 있다.

질문이
쏟아지는 책

누구보다 글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책에서는 글로서 모든 것을 풀지 않아야 좋은 책이 된다. 글 작가 맥 바넷은 자신의 도구가 가진 결함과 불완전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글 안에 기어코 자리를 남기고, 그 틈을 일러스트레이터가 채우게 한다. 그것이 이 세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임을 인정하고 실행한다. 

내가 맥 바넷 작가를 신뢰하게 된 건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를 통해서였다. 샘과 데이브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선다. 보이지 않는 실체를 향해 여러 시도를 해보다가 딱 한 삽만 더 파면 다이아몬드가 있는 그 지점에서 방향을 돌린다. 애가 타면서도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이어졌다. 까무룩 잠이 들어, 어둠 속을 통과한 아이들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긴장하느라 꽉 다물었던 입에 힘이 풀리고 순간 눈이 갈 길을 잃었다. 이어서 혼란스러운 마음이 날 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아이가 내 눈앞에서 다이아몬드를 피해만 간다면 말없이 지켜봐줄 수 있을까?, 아이는 스스로 많은 수고와 역경을 통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못 만났을 때,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라고 말할 줄 아는 어린이로 자랄 수 있을까?, 그렇다 면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속수무책으로 쩔쩔매다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책으로 돌아왔다. 두 아이가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으러 집으로 가는데, 어딘가 개운하지가 않다. 서둘러 앞으로 돌아가 책을 살피고 또 한 번 뒷골이 서늘해졌다. 두 아이가 돌아온 곳은 처음 떠났던 장소와 미묘하게 다른 장소였던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다이아몬드를 찾는 길처럼 인생은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길이야. 그래서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못 찾을 수도 있지. 그래도 별일 없어. 하지만 너의 마음은 이전과 같은 마음일까?’ 

불안을 버텨내는 용기

맥 바넷은 또다시 ‘불완전함’,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말하는 책을 펴냈다. 도형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세모, 네모에 이어 동그라미가 주인공이다. 드디어 세 모형이 한자리에 모여 노는 이야기를 맥 바넷은 이렇게 소개했다. “정말 다른 성격의 세 캐릭터가 어떻게 잘 지내고 어떻게 어울리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그가 쓴 모든 책에는 선명한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은 우연히, 예상하지 못한, 다른 상황을 몸으로 감촉하는데 그 일은 ‘관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다. 안온한 세계가 깨지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만나고, 미지의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간다는 서사.

맥 바넷은 책을 다 읽고 우리가 ‘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마지막에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하려면 잠자고 있던 사유가 깨어나 모든 촉수를 세워야 했다. 아이의 말과 내가 던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정말 편하지 않았다.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감정 앞에서 생각을 곱씹어야 했다. 

맥 바넷은 이러한 불편함의 굴곡을 마주하게 하는 작가다. 그의 책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불완전함을 솎아내는 일이 아니라 불안을 견뎌낼 수 있는 무용한 용기가 아닐까.

INTERVIEW
맥 바넷Mac Barnett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 드디어 세모, 네모에 이어 동그라미 책이 나왔네요.

안녕하세요. 동그라미 책 출판을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하게 되어 정말 반가워요. 시공주니어가 마련한 어린이 강연, 그림책 토크를 통해 여러 독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볼 수 있어서 영광스럽고 기대돼요.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된 책들을 만나보셨을 텐데요. 한국판을 실제로 보니 어떤가요?

사실 대부분의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마찬가지 의견일 텐데요. 자신의 작품이 번역된 여러 나라의 버전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을 물어보면 언제나 한국판을 꼽아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제작 과정이 무척 놀라워요. 시공주니어 편집자들은 물리적인 책에 대한 존경을 바탕으로, 종이의 질, 바인딩 작업 등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많은 노력을 쏟았어요. 

또 하나는 한글이라는 글자가 정말 아름다워요. 제가 한글을 읽을 수는 없지만 한글로 번역된 책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오늘 한국어로 할 줄 아는 말이 생겼어요. 편집자한테 방금 배웠거든요. ‘안녕하세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웃음).’

정말 잘하시네요(웃음). 존 클라센의 그림을 보고 《세모》, 《네모》, 《동그라미》에 관한 영감이 떠올랐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다만 존은 이 드로잉을 비디오 게임을 위해 그렸죠. 당시 존의 드로잉 속 세모, 네모, 동그라미는 각각 거대한 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기획되어 있었어요. 이를 보고 존과 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존은 아시다시피 아주 미니멀리즘적인 감성을 가졌어요. 사실 그는 사람의 형상보다는 사람이 아닌 것을 간략하게 그리는 걸 선호해요. 사람의 캐릭터를 형성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어렵죠. 단순한 형상을 넘어, 사회적인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에요. 그 외에도 생각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기도 하고요. 

우리는 이 사회를 떠올리며 ‘세모’, ‘네모’, ‘동그라미’라는 세 개의 개체로서 그들의 본질을 찾기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 각 도형의 성격, 습관, 특징에 대해 수개월 동안 얘기했어요. 존의 경우 일러스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간이나 동물의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가장 근본적인, 형상 즉 모양만 남겨요. 그 모양 안에 눈도 남겨두는데, 그는 눈을 통해서 감정을 전달하는 데 능숙한 작가예요. 많은 색을 쓰지도 않죠. 흑백의 색감, 단순한 형태, 커다란 눈으로 세 캐릭터가 탄생했어요. 

예리한 감각이 필요했을 거 같아요. 세 도형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캐릭터는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에요. 사실 작업 초기부터 무척 흥미로운 일이 있었어요. 존이 도형의 눈을 그릴 때였어요. 어려움 없이 동그라미와 네모의 정중앙에 커다란 눈을 그려 넣었죠. 이제 세모의 눈을 그려야 하는데, 세모 몸의 중앙에는 저 둘과 똑같은 크기의 눈을 그릴 수가 없더라고요. 고민하다가 눈을 다른 둘보다 조금 아래에 그리기로 했어요. 

신기하게도 눈을 좀더 아래로 그리는 순간 세모는 항상 염탐하고 탐험하고 여기저기 가보고 싶어 하는 캐릭터를 얻은 거예요. 이제 세모는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메이커가 된 거죠. 다리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세모와 네모는 밑이 평편하게 생겨서 두 개의 다리를 가질 수 있었죠. 하지만 동그라미는 아래가 커브를 이루고 있어서 똑같이 그리기 힘들었어요. 이때 존이 정말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결국 우리는 동그라미의 다리를 없애기로 했어요. 둥둥 떠다니는 캐릭터로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성격이 더해졌어요. 신비로움, 세모와 네모가 가질 수 없는 긍정적인 태도, 잘 흘러가는 성질이요. 세모와 네모가 우러러보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성격이 완성되었죠.

재미있네요. 네모의 성격도 들려주세요.

네모는 보시다시피 좀 고리타분하고 지루해요. 실제로 지루한 사람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에 이런 말이 있어요. “너는 참 네모 같구나.” 하지만 지루하고 같은 것을 반복하는 네모니까 그의 깊숙한 내면에는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은 열정, 뜨거운 마음이 다른 두 모형보다도 더 강하게 담겨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식으로 첫 번째 스토리 라인을 짜기 전에 한 달 동안 캐릭터를 만들었고, 각각의 캐릭터가 어떤 성격을 가질 수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점점 발전시켰어요.

이들의 서로 다른 성격을 보면서 나는 어떤 도형에 가깝고, 내 주변인들은 어떤 도형일까를 생각해봤어요. 작가님도 《동그라미》를 쓰면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나요? 혹시 아내분이 아닐까 추측해봤어요(웃음).

오… 맞아요. 아내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아는 많은 사람 중에 가장 동그라미에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엄청난 행운아죠(웃음). 다만 저는 한 사람을 정하고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쓰지는 않아요. 물론 쓰는 와중에 비슷한 사람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녀라면 어떻게 할까, 뭘 할까?’를 떠올리기보다 동그라미라는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작가님은 어떤 모양에 가깝나요?

저는 세모하고 가장 비슷해요. 사실 어떤 모양과 가장 가까운지를 말하려면 내가 지금 누구와 있는지가 중요해요. 세모와 가장 닮았긴 하지만 어떤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저는 네모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동그라미처럼 행동하거든요.

그렇다면 존 클라센과 있을 때, 서로는 어떤 모양처럼 행동하나요?

존은 네모와 가장 닮았어요(웃음). 우리의 관계에서는 그래요. 이 관계 안에서 저는 세모에 가장 가깝고요. 사실 다른 작업을 할 때도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마음먹은 적은 없지만 신기하게도 우리의 관계가 녹아 있더라고요.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에서는 ‘샘’이 존이고 ‘데이브’가 저예요. 《늑대와 오리와 생쥐》에서는 ‘오리’가 저고 ‘생쥐’가 존이고요. 특히나 생쥐는 함께 작업한 어떤 책보다 존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줘요. 생쥐의 생김새도 존의 외향과 많이 닮았어요. 심지어 생쥐가 춤추는 모습도 실제 존이 춤추는 모습과 아주 흡사해요(웃음).

두 분은 긴밀하게 협업하는 거로 알아요. 한 인터뷰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데 글 작가의 역할 중 가장 큰 부분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스토리텔링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책의 글은 미완성된 채 마무리하는 게 기술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 나뉘어 있지만, 이것은 함께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있죠. 글은 그림이 해주지 못하는 말을 해야 하고, 그림은 글이 할 수 없는 표현을 담당해야 해요.

 

어떤 책을 보면 크레딧에 ‘작가 맥 바넷, 그림 존 클라센’으로 적는데 사실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하진 않아요. 제가 실제로 하는 건 글, 문자, 단어를 쓰는 거예요. 그게 그림과 합쳐져야 이야기가 되는 거죠. 그림책은 말과 그림, 이 두 개의 교집합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흥미진진하죠.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를 만들 때는, 존 클라센의 그림을 보고 중간에 글을 바꾸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보통의 작업 방식은 아닌 걸로 알아요.

사실 미국 시장에서 그림책을 만들 때, 글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는 서로 알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작업하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저희는 일반적인 룰을 깨뜨린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는 정말 친하죠. 편집자를 통하지 않고 둘이서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해요. 실제로 프로젝트가 있지 않더라도 거의 매일 연락해요. 아주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죠. 그래서 함께 작업할 때, 서로의 이야기를 좀더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고요. 존의 그림을 보고 제가 글을 바꾸기도 하고, 존이 제 글을 보고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하죠. 

리는 언제나 타이트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가 만든 책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와 우정이며, 이런 친구 사이를 유지해가는 과정을 닮은 다큐멘터리와도 같아요.

책 속의 캐릭터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요. 세모와 네모는 무언가를 두려워하죠. 하지만 동그라미는 용감하고, 친구를 칭찬하고, 놀기 전에 조심해야 할 규칙을 설명하기도 해요. 네모는 동그라미가 완벽하다고 믿죠. 작가님도 같은 생각인가요?

저는 네모가 동그라미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데 동의하고, 세모가 동그라미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데 동의해요. 심지어 동그라미가 자신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동의하죠. 완벽함이라는 개념이 특히나 《네모》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요, 사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완벽함이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어요. 완벽함은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의 아이디어 속에서만 존재하죠. 불완전한 인간 세계에서는 더 이상 완전한 것이 될 수 없거든요.

완벽하다는 것이 두려움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동그라미도 두려워하는 게 있지 않을까요?

좋은 의문이에요. 분명히 동그라미도 무서워하는 게 있겠죠. 사실 동그라미 자체가 완벽한 것은 모양 친구들 그룹 안이어서 가능한 거예요. 거기에서 벗어나는 순간 동그라미도 두려워하는 무엇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세모와 네모에 비해서는 덜 부각되지만 동그라미도 폭포 안의 어둠에 들어가는 것을 조금 주저해요. 세 도형이 각자 자기 안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르게 어떻게 반응하고 극복해나가는지 보여주고 있어요.

동그라미의 완벽함도 그들의 ‘관계’ 안에서 돋보이는 것이네요?

맞아요. 이 삼부작을 통해 제가 가장 근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예요. 관계. 사실 세모의 문제도 네모 때문에 생기죠. 세모는 눈 뜨자마자 어떻게 하면 네모를 놀라게 해줄까만 생각했는데 이건 어쩜 사랑 같은 집착하는 마음일 수 있어요. 네모의 문제도 동그라미 때문에 발생해요. 동그라미의 일도 다 같이 함께 놀다가 일어난 사건이고요. 

이 모든 일이 사실 나뿐만 아니라 여럿이 있는 관계 안에서 드러나요. 그래서 관계가 이 삼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심이에요. 게다가 삼부작은 동그라미, 세모, 네모 ‘세 명’의 이야기예요. 둘은 우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셋은 우정 이외의 가장 작은 공동체, 그룹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둘이 얘기할 땐 별일 없다가 그중 한 명이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면 남겨진 한 명은 소외감을 느껴요. 문제가 생기는 거죠. 언제나 이런 식으로 관계 사이에 미묘한 긴장과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세 명, 삼각이 이루는 것은 두 사람이 이루는 관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해요. 이런 긴장과 갈등 상황들이 삼부작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캐릭터가 세 명인 이유가 있었군요. 각 책은 모두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가 되는데요, 어떤 의도인가요?

이 모양 시리즈에는 물음표 마크가 있어 좀더 분명하게 질문으로 마무리되지만, 사실 제 책의 대부분이 의문으로 끝나요. 실제로 물음표는 없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질문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이야기란 어떤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많은 이야기를 질문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어요. 저와 존도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많은 일을 하게 하려고요. 자식과 부모, 학생과 선생님이 같이 책을 읽을 수 있겠죠. 우리는 그들이 함께 책을 읽고 의논을 나누고 질문과 답을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다섯 살인 제 딸은 《동그라미》의 마지막 질문에 ‘리본’이라고 답했어요.

참으로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답하는 어른과 아이들의 모습이 참 달라요. 우리가 《동그라미》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알지 못한 것을 직면했을 때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알지 못한 것, 그것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성인은 《동그라미》의 마지막 장면처럼 알지 못한 상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이 그것을 한쪽으로 치우고 못 본 척하는 거예요.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을 무척 불편하게 만들어요. 모른다는 게 내가 멍청하다는 건가, 하는 생각을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른 독자들은 주로 이렇게 물어요. “도대체 그 형태는 뭐예요? 정답을 말해줘요.” 하지만 아이들은 완전히 달라요. 이미 아이들에게 세상은 알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어요. 모르는 것을 만나면 알고 싶어 하고 더 파보고 싶어 해요. 알지 못하는 것을 마주했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하고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아이들은 ‘리본, 별, 하트’처럼 다양한 답변을 하죠. 

아이가 가진 이런 고유한 특성과 장점을 잘 살려서 이 책을 부모님과 아이들이 꼭 함께 읽기를 추천 드려요. 알지 못하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잘 보는 아이들의 특성을 부모님들이 직접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모》를 함께 읽고는 답을 여러 번 바꿨어요. “네모는 원래 천재일지도 몰라.” “어쩌다 보니 천재가 된 걸지도, 아무튼 네모는 천재인 거야.” “그런데 천재가 중요해(웃음)?”

(웃음). 그 답이야말로 《네모》 책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그대로 보여준 거예요. 네모는 사실 어떤 것을 잘 만들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게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는 거죠. 우리는 이 질문을 현대미술과 예술에도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것을 볼 때, 단순히 작가가 잘 만든 것만 보는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까지 생각하고 가치를 부여하는지 말이죠.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아이들이 네모가 진짜 천재인지 아닌지 질문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은 예술을 판단하고 경험하는 데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창조물과 그것의 의도성,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해요. 

사실 예술에 관한 이해라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 배양되고 개발되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은 예술의 감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우리처럼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가면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예술에 대한 이해도를 점점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TED 강연에서 “예술은 진리와 거짓말 사이의 한계 공간”이라고도 했죠.

예술은 현재, 현실이 아니에요. 예술은 어떤 사람이 창조하고 구축함으로써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도록 도움이 되는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은 따로가 아니라 겹치는 것이고요. 창조가 일어나고 경험이 생기는 그 교집합에 예술이 있어요. 

좋은 예술에 있어 확실성은 가장 큰 적,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사회나 우정에서 확실성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지만, 좋은 예술은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덜 확실하고 밸런스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건 뭘까?” 하고 한 번 더 쳐다볼 수 있도록 만들죠. 어쩌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느끼도록,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불확실성은 종종 불편함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에요.

동그라미가 말했어.

“그런데 꼭 지킬 게 있어. 폭포 안에 숨으면 안 돼.”

“응.” 네모가 말했어.

“왜?” 세모가 갸웃거렸어.

“거기는 깜깜하거든.” 동그라미가 말했어.

“응.” 네모가 말했어.

“난 깜깜한 게 하나도 안 무서워!” 세모가 으쓱댔어.

인물들의 의도와 다르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켜요. 《네모》가 우연히 동그라미를 만들고, 《말말말》은 피터 엄마의 말이 듣는 이의 중심으로 바뀌죠.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위해 열심히 땅을 파지만 다이아몬드를 피해 가고요. ‘예상과 다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한 긍정의 시선이 느껴졌어요.

잘 본 거예요. 전 예상치 못한 결과로 흘러가는 것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사실 불확실성, 불예측성, 어지러움, 혼란, 모호성, 이 모든 것에 긍정의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이야기를 할 때도 여기에 강조점을 두고요. 모호해도 괜찮고, 불확실해도 괜찮고, 예상하지 못해도 괜찮다고요. 

앞서 말했다시피 확실성은 좋은 이야기에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확실하면 긴장이 없어지죠. 긴장이라는 건 단순히 사건과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글과 그림 사이에도 정말 중요한 요소이고요. 

이런 불확실성이 사실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지만 그들의 놀이 형태는 놀이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에요.

맞아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아주 평범하고 흔하게 놀이하고 말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아이들 그 자체의 이야기를 보여주려 했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어떤 모습을 담고 싶지는 않았어요.

놀이터라는 작은 세계에는 세모가 네모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것처럼 이름 모를 도형의 아이들도 많고요.

물론이죠. 이름 없는 도형들이야말로 실제 세계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어요. 사실 소설은 어떤 것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정의하긴 힘들어요. 그래서 확실하고 정해져 있는 것만 보여주기보다는 아직은 이름이 없는, 모양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꼭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야 진정한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했죠. 

세모가 네모 집에 갈 때 의도적으로 이름 없는 도형들을 등장시켰고, 네모가 작업하는 깊고 검은 동굴도 그런 역할을 해요. 심지어 《동그라미》는 이야기 내내 알지 못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죠. 이것은 아이들의 배움에도 마찬가지예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 같은 명칭을 정확하게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하겠죠? ‘선생님 그럼 제 손은 무슨 모양이에요?’ 이 손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는 묘사를 할 수가 없거든요. 이런 의문도 생기겠죠. ‘네모가 과연 가장 반듯한 도형일까? 내면에는 깊고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도형의 외형만 생각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의문이요.

글을 쓸 때 유년기를 떠올리는 편인가요?

다른 작가들도 그렇겠지만 좋은 그림책 작가들은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 추억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저도 어린 시절의 생생한 기억이 많아요. 그 외에 서점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어떤 것을 읽는지 보고, 서로 무슨 말들을 주고받는지 보고 들으며 글을 쓰죠.

어린 시절에는 어떤 아이였어요? 세모처럼 엉뚱한 일로 가족이나 주변을 놀라게 했나요?

사실 지금의 저는 세모와 유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까 봐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아이였죠. 특히 학교생활에선 더욱 그랬어요.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미션처럼 ‘어떻게 하면 문제를 좀 일으켜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죠. 

저는 외동아들로, 주로 어머니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학교도 너무 멀었고요. 그러다 보니 주로 책을 읽었어요. 책 안에서는 누구나 규칙을 깨고 경계를 허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요. 흥미를 가지고 안전한 방법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어서 책을 좋아했어요. 

책 안에서 모험을 떠나거나 사고를 일으키는 것들은 실제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부모님은 “책을 잘 읽는구나.”라고 칭찬을 해주는 효과도 있었고요(웃음).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읽는 데 매료되었고,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어요.

가장 좋아했던 책이 궁금해요.

어머니는 1950~80년대에 출간된 오래되고 낡은 책들을 주로 사주셨어요.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아놀드 로벨, 제임스 마셜 등의 책을 보고 자랐어요. 특히 아놀드 로벨이 쓴 ‘Frog and Toad’ 시리즈를 아주 좋아했어요. 우정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쭉 따라가면서 많은 재미와 감동을 느꼈어요. 신기하게도 이 책은 존 클라센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어요.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책이 같아서 첫 만남부터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죠. 

그림책 작가가 꿈이었나요?

작가를 꿈꿨지만 어떤 종류의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주변에 작가가 없었거든요.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간호사였어요. 작가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에도 어머니의 남자친구는 경찰관, 소방관이었기 때문에 작가에 관한 꿈을 이해받지 못했어요. 

대학 입학 후부터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목표에 다가갔어요. 여름 운동 캠프 교사로 일하면서 4~6세의 어린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특히 마르켈이라는 친구가 기억에 남아요. 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그림을 놓치지 않더라고요. 마르켈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가 얼마나 놀라운 독자인지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런 경험과 교감들이 저를 어린이 책 작가로 이끈 셈이죠.

 

글감의 소재는 그림책의 뼈대라 할 수 있어요. 작가님은 새롭고 놀라운 이벤트에서 글감을 찾기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이야기의 본질을 밝히는 데 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여운이 오래 남아요. 그런 생각들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요. 

그렇게 읽어주어 정말 기뻐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라는 기준도 그래요. 좋은 벨이 한 번 울리면 아주 긴 여운으로 울리는 것처럼 책을 덮고 나서 우리의 마음속에 인상 깊게 남아 생각을 하게 하는 거죠.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작가는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에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남들보다 더 잘 알아차리고 다시 가치를 부여하고 평가를 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주변을 예민하게 살펴보고 있어요. 아이디어 과정에서 재미있어 보이는 글감도 그걸 종이 위에다 옮기는 순간 비극이 발생하지만요(웃음).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와 종이 위의 글에는 사실 엄청난 간극이 있기 때문에 신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와 우리 세상의 완벽함이 다르듯이 고뇌하는 시간이 이어지죠.

불확실성이 어린이들의 특성이라는 데 동의해요. 예술적으로 필요한 감성이라는 것도요. 하지만 한국의 많은 부모에게 아이들의 일상에 펼쳐지는 불확실성을 응원하고 지켜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의 부모 역시 아이들의 불확실성을 무척 꺼려해요. 아이들을 위해 부모, 선생님, 작가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각자 역할은 조금 달라요. 

예를 들면 어떤 일이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가르치는 건 아주 중요해요. 그건 부모와 선생님이 확실하게 가르쳐야 하는 게 맞아요. 다만 모든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작가의 역할이고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죠.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에게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을 할 거예요. ‘인생이 뭐예요? 사랑이 뭐예요? 죽음은 뭔가요? 뭐가 옳은 거예요? 뭐가 틀린 거예요?’ 아이들의 이런 질문은 수 세기 동안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얻어내려는 질문의 답과도 맞닿아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 책이라는 것은 아이들의 공통적인 궁금함을 나름대로 찾아가는 과정이고요. 

아이들과 종종 이야기하다 보면 “왜?”를 서로 반복하며 계속 질문하고 나중에는 “나도 왜인지 모르겠다.”라고 포기해버리는 순간이 와요. 이처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다가가는 것을 작가들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호함과 불안을 견디려면 맥 바넷의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 되겠네요(웃음).

(웃음). 네 그러면 좋겠어요.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면 부모 역시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요. 그런 순간을 자주 가지면 불안을 버티는 힘이 쌓이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제가 인터뷰마다 던지는 공통 질문이 있어요. “만약 앞으로 살면서 당신의 곁에 단 세 가지만 두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겠어요?”

아, 어려운데요(웃음). 친구, 책, 음악을 고르겠어요. 친구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해요. 저를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만드는 게 언제나 친구였거든요. 책은 머릿속을 떠나서 다른 것을 생각해줄 수 있기 때문에 늘 필요하고요.

 또 음악이 들리지 않는 집에 들어가면 불편하고 행복하지 않다 느낄 때가 있어요. 제가 음악을 연주하고 만들지는 못하지만 신기하게도 재능이 뛰어난 음악인 친구들이 많아요. 음악은 늘 함께하는 존재예요. 잠깐 세상과 저를 단절시킬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고요.

 

맥 바넷을 말하는 책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글 맥 바넷 | 그림 존 클라센
| 옮김 서남희 | 시공주니어

맥 바넷과 존 클라센이 책의 판형을 세로로
정해놓고 아이디어를 모으다가 땅을 파는 샘
과 데이브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샘과 데이
브가 땅을 파기 시작하면서 만나는 상황과 여
러 시도를 유쾌하게 보여주며 열린 결말을 맺
는다.

늑대와 오리와 생쥐
글 맥 바넷 | 그림 존 클라센
| 옮김 홍연미 | 시공주니어

늑대에게 잡아먹힌 생쥐는 이미 늑대의 배 속
에서 살고 있는 오리를 만나, 함께 살게 된다.
오리와 생쥐는 불편한 관계지만 위기가 닥치
자 기발한 생각과 용기를 모아 늑대를 구한
다. 잡아먹은 늑대와 잡아먹힌 생쥐와 오리의
태도가 변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세모
글 맥 바넷 | 그림 존 클라센
| 옮김 서남희 | 시공주니어

삼각형 모양을 가진 세모가 네모를 찾아가는
이야기. 단순한 아이의 놀이에서 시작된 일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네모
글 맥 바넷 | 그림 존 클라센
| 옮김 서남희 | 시공주니어

매일 같이 돌멩이를 다듬는 네모는 우연한 기
회에 동그라미를 만나, 동그라미를 만들게 된
다. 심플하고 담백한 글과 그림이지만, 노력
과 우연이 가져다 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사유하게 한다.

동그라미
글 맥 바넷 | 그림 존 클라센
| 옮김 서남희 | 시공주니어

세모와 네모, 동그라미가 모두 모여 숨바꼭질
을 한다. 세 명이라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통해 각자의 성격은 도드러진다. 이들
이 보이지 않는 것과 마주하게 되었다면? 마
지막 질문에 꼭 아이와 함께 답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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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윤동길 취재 협조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