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ING NATURE INTO THE LIFE

최상희 · 곽명은 오월학교 대표

춘천의 고즈넉한 산골 마을에 자리 잡은 오월학교는 아이와 좋은 관계를 고민하는 아빠의 마음이 씨앗이 되어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다. 가구를 만드는 아빠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양분을 주고, 오랜 시간 어린이를 교육해온 엄마는 가족의 마음을 세심히 헤아려 물을 준다. 부부가 만든 쉼터에 모인 이들은 멍하니 산과 하늘을 바라보고, 커피를 마시고, 나무 사이 공간을 누비며 곳곳에 숨을 불어넣는다.

춘천에 왔으면 오월학교에 가봐야지

“건축물은 언젠가는 낡을 수밖에 없고 트렌디한 것도 흐릿해질 테니 공간이 가진 상징성으로 이야기를 계속 채워 나가고 싶어요. 시설의 노후를 인지하고 온기를 느낄 만한 것들을 더해가려고 해요.”

오월학교를 운영하면서 가구도 만들고 목공 수업도 진행하고 있죠.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상희 나무 만지는 일이 좋아서 비플러스엠이라는 가구 브랜드를 꾸려가다가 지금은 오월학교를 기획, 운영하고 있어요. 오월학교는 먹고 마시고 잘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1982년 폐교되어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다듬은 곳이에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지는 경험을 하고 편안한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늘 고민해요. 함께 일하는 분들도 성취감을 느끼면 좋겠고요. 지금은 춘천에 대해 더 알아가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로컬 기획자로 불리는 게 적당할 거 같아요.

명은 저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남편이 기획한 오월학교를 관리,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는 일곱 살 율이의 부모이기도 해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인 줄 몰랐어요. 오월학교는 어떻게 기획되었어요?

상희 스물여덟에 비플러스엠을 창업하고 하루하루 정해져 있는 일상에서 나무 만지는 일을 하다 보니까 점점 조그마한 것에 연연하게 되더라고요. 1밀리미터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 나무가 가지고 있는 함수율부터 제작 방법까지 섬세하게 고심하면서 예민해졌어요. 그러다 아내를 만나고 가족 중심으로 제 삶이 바뀌기 시작했죠. 아내가 유아 교육을 워낙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편이라 결혼 전에도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어요.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늘 듣다가 저희에게도 아들이 태어났어요. 저는 아이가 불행한 게 세상에서 제일 슬퍼요. 모든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 조건과 상황을 갖춘 건 아닐 텐데, 아이는 그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자라잖아요. 너무 안타까워요. 제가 하는 일이 1퍼센트의 영향이 안 될지라도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가구를 구매해주시는 분들과 계속 교류하고 있었는데, 부모가 된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이들 성장에 관심이 많아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함께 교감할 수 있을 때 가족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왜 자연 가까이에 있는 장소여야 했어요?

상희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어요. 누가 열심히 놀아주지 않아도 혼자 이것저것 하면서 놀았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 놀이를 발견하는 자세가 조금 부족한 거 같더라고요. 제가 자라던 시기와는 다르지만 물꼬가 터지기만 하면 아이들 스스로 잘 놀지 않을까, 생각했죠. 김포에 살다 보니 그 주변을 많이 알아봤는데 숲이 있고 자연 친화적인 곳이라 하더라도 공장 지대다 보니 망설여졌어요. 위치를 더 아래 지역으로 내려가도 수도권과 가까우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요. 공간을 계속 찾다 보니까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면 더 좋겠더라고요. 설마 학교가 있을까 하면서 검색을 했는데, 5년 전에 한 부동산에서 올려둔 단편적인 로드뷰가 있었어요. 아직 거래 전이라고 하셔서 차를 타고 이곳에 내려왔어요. 마음에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왜 마음에 안 들기를 바랐어요?

상희 언젠가는 내 생각을 실현하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차근차근 준비한 게 아니어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을 거 같았어요. 바람을 현실로 바꿔야 할 때 감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거든요.

감내할 만큼 마음에 든 거군요.

상희 그렇죠(웃음). 여행은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때가 봄이어서 길에 새싹이 피어 있고 정취가 너무 예뻤어요. 지금보다 내추럴한 자연 그 자체였어요. 펜스도 높게 쳐 있어서 정말 여기만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이었어요. 건물도 아담해서 숲속 정원 같았죠. 보자마자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딛게 되었어요. 이 사업은 저 혼자 할 수는 없고 아내 도움이 필요했어요. 아내에게 같이 가보자고 했는데, 싫다고 하더라고요.

명은 가족을 위한 스테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말은 예전부터 종종 했어요. 여러 공간을 보러 다니는 건 알았는데, 다른 곳과 다르게 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길래 제가 말했죠. “나는 거기까지 갈 생각이 없어. 지금이 좋아.” 저는 어린이집 교사로 오랜 기간 일을 했어요. 신랑을 만나기 전까지 한 군데서 10년을 일하다 결혼하면서 김포로 옮겨 왔고, 아이를 낳고도 6년간 일을 쉬지 않았어요. 변화를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이제 겨우 적응을 하려고 하는데, 또 새로운 터전에서 지금과 전혀 다른 일을 하자고 하니까요. 직접 가보면 자기 마음을 알 거라고 설득하길래 어쩔 수 없이 아들과 같이 갔죠. 오실 때 보셨듯이 춘천에 와서도 계속 길 따라 들어가기만 하는 거예요(웃음). 남편의 클래식한 감성을 아니까 어떤 포인트에서 매력을 느꼈는지는 알겠는데 저는 남편과 다른 성향이라서 ‘이걸 새롭게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여기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비용, 지금껏 살던 것들을 다 정리해야 하는 걱정이 앞섰고, 하는 일에서 한 단계 도약해 꿈을 이룰 준비를 하던 때라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정말 쉬운 결정이 아니었네요.

상희 오월학교를 연 지 1년이 좀 지난 지금도 완전히 설득된 거 같지는 않아요(웃음). 저희가 계속 맞벌이로 지내다 보니까 아이가 아팠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한 적이 많았어요. 평일엔 저녁에 집에 오고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지냈어요. 주말만 함께 지낸 거다 보니 내려와서 같이 일을 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늘려보자는 얘기를 계속했어요. 아내가 가진 유아 교육적인 장점도 여기에 담으면 좋겠다고요. 

명은 남편 일을 존중하지만 제 일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이사 오기 전까지도 이걸 꼭 해야 하나 많이 울었고 고민했어요. 남편이 그때 제가 싫다고 하면 안 하겠다고 하면서 “안 해도 괜찮아. 그런데 이건 인생에 온다는 세 번의 기회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확신해. 놓치면 정말 후회할 거 같아.”라고 하는 거예요. 머리 참 좋지 않아요(웃음)? 저렇게 간절한데 막아서 한이 되면 그걸 제가 감당해야 하는 거잖아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기대하며 마음을 바꾸기로 했어요. 남편 말대로 내가 하고 싶은 꿈을 버리는 게 아니라 공간을 바꿔서 다른 꿈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아들을 설득해야 했어요. 아들은 저를 많이 닮았어요. 새로운 집, 새로운 공간, 새로운 어린이집, 새로운 유치원에 가는 걸 두려워하는 기질이에요. 아들이 익숙해지도록 주말마다 춘천을 오갔어요. 집 구할 때도 일부러 전에 살던 집과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를 골랐고요. “여기 와도 똑같이 아파트 안에 놀이터가 있고 전에 다니던 곳과 정말 비슷한 유치원이 있네.” 낯설지 않게 하려고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친구, 형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돕고 늦게까지 놀다 오곤 했어요. 그랬더니 주말에 또 가자고 해요. 다시 와서 계곡에서 물놀이, 물총 놀이를 했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면서 “우리 이제 여기로 이사 올까? 어때? 김포에 있는 집이 여기에 똑같이 옮겨지는 거야.”라고 말했더니 언제 이사 가냐고 묻더라고요. 아들을 설득하는 데도 한 달이 걸렸어요(웃음).

 

가족의 마음을 모으고 나서, 오월학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땠어요?

상희 가장 먼저 기획한 건 나무창작소예요. 부모와 아이가 나무와 공구를 사용하여 집에 둘 만한 소품을 만드는 목공수업이에요. 그다음 본동인 교실 두 개와 강당을 카페로 만들고, 배급소였던 곳을 레스토랑으로 기획했죠. 좋은 쉼을 위해서 여유로운 차 한 잔과 따뜻하고 건강한 식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공사 시작하기 전에 거주지를 춘천으로 옮기고, 가을쯤 카페와 레스토랑이 먼저 준비가 돼서 오픈했어요. 가을 정취가 너무 예뻐서 무리를 좀 했죠. 그다음 스테이를 오픈하고, 가장 먼저 기획한 나무창작소를 제일 마지막에 열었어요. 저와 아내가 많은 걸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이라 스테이 청소를 직접 하고 있었거든요. 수업을 제가 맡아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인력을 뺄 수가 없었어요. 공간이 휴식이 되어야 하니까 그곳에 들어가는 가구뿐 아니라 수건부터 아로마 디퓨저, 침구 하나하나 신경을 썼어요.

명은 지난 1년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바빴어요. 남편은 인테리어나 가구, 공간 쪽에 워낙 많은 능력을 갖춰서 자신의 소스들을 펼쳐나갈 수 있지만, 사실 저는 관심 없고 잘 모르는 분야라서 맞춰가기 어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월학교는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소중한 공간이고 가족과 제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거잖아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스테이, 카페, 레스토랑, 나무창작소를 세심하게 신경 쓰려 노력했어요. 방문하신 분들이 자세하게 후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좋지만 “정말 잘 쉬다 가요. 너무 좋았어요.”라는 말 한마디가 참 기뻐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좀 더 편안하고 즐거운 쉼을 드리고 싶다는 의무감이 생겨요.

집 안에도 아이와 같이 만든 소품들이 보여요.

상희 맞아요. 나무창작소 프로그램은 제가 아이와 같이 만들던 경험을 녹인 거예요. 그렇게 만든 것들이 유치원에서 가져오는 것처럼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서 실용적인 소품을 만들기로 했고요. 아빠와의 유대 관계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제가 사춘기 때 아버지와 정말 서먹했어요. 특별한 일이 있어서 서먹서먹해진 건 아니고 아버지가 저한테 화를 낼 때 속상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쌓였나 봐요. 더 자라 타지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랑 교류를 거의 안 했어요. 오랜만에 집에 와서 “요즘 몸은 어떠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아무런 대답이 없이 티브이만 보고 계시더라고요. 저도 옆에 앉아 같이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한참 뒤 이야기를 꺼내시는 거예요. 제가 물었던 안부에 그제야 답하신 거죠. ‘뭐지? 우리 아버지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생각해 보면 제가 어릴 때는 아버지랑 열심히 놀았거든요. 귀찮을 정도로요. 그런 것들이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을 행복하게 해줬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는 결혼한 뒤에는 저녁 시간에 정말 중요한 일 아니고서는 약속을 안 잡아요. 술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요. 아이가 태어나고도 저녁 모임을 즐기는 친구들을 보면 ‘저렇게 해도 되나? 저 시간에 집에 가서 아이랑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다가가서 “아이랑 시간 좀 보내.” 하기보다 사회적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아이와 시간을 가지면서 유대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확장된 거죠.

 

목공 수업하는 걸 보니까 정말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더라고요. 망치랑 톱, 드릴이랑 전동 샌딩기, 사포까지 쓴 거죠?

상희 부모들은 보통 공구는 위험하다고 아이가 못 쓰게 하잖아요. 정해진 시간과 룰, 선생님이 있는 곳에서 그동안 위험하다고 생각하던 공구들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이가 수업하는 걸 지켜보는 것보다 부모님이랑 같이 해보면 나중에 아이가 장비를 쓴다고 할 때 덜 말리게 될 거예요. 아빠와 아이가 직접 만들어 보면 ‘우리 아들도 생각하던 것보다 잘하네?’ 느낄 수 있으니까 혹시 다른 기회에 아이가 망치를 들었을 때 “지난번에 쓰는 법 배웠지?” 하면서 믿고 맡기지 않을까요? 만져본 공구들이 많을수록 아이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과정을 넣었어요. 다양하게 체험해 보는 데 의의를 두고 있어요.

가족을 위한 공간이라서 더 신경 쓴 것이 있나요?

상희 도시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걸 빼려고 노력했어요. 키즈카페가 있고 아이들 음식과 음료 위주로 채워지는 건 오월학교 전체에서 풍기는 감성과 다르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모와 아이뿐 아니라 온 가족의 쉼을 위한 공간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했어요. 또 키즈카페에 부모가 같이 간다고 거기서 잠시 마음을 놓는 거지 쉬는 건 아니잖아요. 모두가 충분히 쉬었다고 느낄 만한 공간을 만드는 걸로 정리하니 공간이 풍기는 정취가 납득이 되더라고요. 스테이의 복층 구조, 카페 출입문에 아이 문을 더하는 정도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넣었죠.

명은 자연의 공간에 놀이터나 트램펄린이 있는 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 아파트 단지만 해도 얼마나 좋아요. 커뮤니티 센터에 키즈카페도 있고 놀이터마다 콘셉트 다르게 잘 마련되어 있죠. 아이들은 이미 너무 많은 걸 누리고 있고, 충분히 넘쳐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와서 새롭게 뭔가를 자극받으려면 그런 게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들이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모으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은 많아요. 마냥 뛸 수 있는 운동장도 있죠. 건물이 일률적인 게 아니고 들어가고 나온 곳이 있다 보니까 숨바꼭질도 잘하더라고요.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여기 올라가고 저기 올라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 아이들한테는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나 봐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죠. 저희는 그저 자연을 던져주고 싶었는데 잘 통한 거 같아요.

상희 시간이 지나면서 재방문하는 분들이 늘었어요.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서 방문하시면 웰컴 세트를 드려요. 그 안에 직접 만든 상자와 쿠키, 티를 넣고, 모닥불에 구워 먹을 수 있게 마시멜로나 쫀드기도 넣었어요. 모르고 오셔서 기분 좋게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간혹 예약자 명단을 보면 아이와 둘이 오는 엄마들도 있어요. 남편이 바빠서 같이 못 오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고기 굽기 힘드실 테니까 바비큐 굽는 걸 제가 도와드려요. 그런 부분을 조금 더 감명 깊게 느끼나 봐요. 가족끼리 다시 오기도 하더라고요.

 

시골에서 살며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어요?

상희 아내와 제가 어릴 적에 시골에서 컸어요. 산 넘어 학교 다녀서 저희에겐 여기가 시골로 느껴지진 않아요. “여기는 마을버스가 여섯 번이나 들어오네?” 했거든요(웃음). 아이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을 거예요. 여름에는 호수에서 배를 타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는 게 일상이 되었으니까요.

명은 서울에서 오월학교로 오다 보면 지촌초등학교 지암분교라고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학교가 있어요. 초등학교와 병설 유치원이 있는데, 아이가 그 유치원에 다녀요. 초등학교 전교생이 열네 명이고, 유치원생이 한 명이었어요. 아들이 가서 두 명이 되었죠. 주변 집 몇 채 사이에 덩그러니 학교가 있는데 안에는 도시의 유치원, 학교랑 같아요. 아이가 다니겠다고 해서 보냈는데 적응을 잘했어요. 인원이 적다고 지원이 적은 게 아니라 체육 선생님과 피아노 선생님이 따로 계세요. 아이마다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도 유치원에서 제공해주죠. 겨울에는 스키장에도 갔어요. 거의 일대일 수업이라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시골에 지낸다고 도시 아이들보다 경험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오월학교의 빈티지 카라반이 대표님 소장품이라고요. 캠핑을 즐겨 했나요?

상희 네. 저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많이 해봤어요. 자전거 타고 국토 종주를 하고 등산을 하고 백패킹을 다니기도 했죠. 자연을 갈망하는 마음이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카페나 조용한 곳에 가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면 꼭 스마트폰을 하게 되더라고요. 육체적인 일을 동반할 때는 환기가 되고 집중할 수 있어요. 국토 종주할 때 자전거를 타면서 긴 시간 동안 앞만 보고 가요. 몸을 움직이는 시간에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군대에 가면 힘들어서 성숙한 남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근무 서면서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해보는 시간이 많아서 어른스러워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캠핑 가서 직접 요리하고 고기 잡는 경험이 즐거웠던 게 아니라 자연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자연에서 누려온 경험이 고스란히 오월학교에 스며 있을 거 같아요.

상희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온기가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였어요. 큰 규모나 디자인적으로 훌륭한 공간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많이 봐왔어요. 시설이 멋지고 프로그램은 좋은데 사람들이 애정을 안 가지는 장소들이 있잖아요. 시설이 특정인에게 치우쳐 그걸 누릴 사람들이 몇 명 안 된다면 온기가 느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공간엔 힘이 없어요. 여기는 폐교된 이후에 춘천중앙교회 사유지로 쓰이던 곳이었어요. 저는 교인이 아니라 기도원이라고 쓰여 있는 게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처음 이곳을 만들면서 그 이야기는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지워 나갔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봉사 활동하고 여름 성경학교 했던 분들이 너무 많으시더라고요. 그분들이 오셔서 옛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내가 의도했던 거랑은 다르게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라는 게 정말 좋은 일이구나, 느꼈어요. 최근에는 옛날에 여기 머물렀던 사진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에게 사진을 다시 찍어 액자에 넣어드리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건축물은 언젠가는 낡을 수밖에 없고 트렌디한 것도 흐릿해질 테니 공간이 가진 상징성으로 이야기를 계속 채워 나가고 싶어요. 시설의 노후를 인지하고 온기를 느낄 만한 것들을 더해가려고 해요.

 

가구를 만드는 일과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떤 차이가 있어요?

상희 가구 만들 때 누가 주문한 건지 알고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직접 가져다드리면서 관리하는 요령이랑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법도 알려드렸어요. 항상 대화하면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해요. 다만 그때는 많은 시간을 혼자 소비하고 조금만 교감을 했다면 지금은 교감의 시간이 많아졌어요. 공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내 눈으로 빨리 확인할 수도 있고요. 요즘엔 마스크를 쓰니까 부모님 표정을 읽기는 어려운데 아이들 표정은 더 밝고 행동도 크니까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바로 알 수 있어요. 목공 수업도 대부분 잘하지만 15퍼센트 정도는 힘들어해요. 그때도 아이들 반응을 바로 알 수 있으니까 대화도 한 번 더 할 수 있죠.

 

아이들한테 직접 피드백을 듣는 게 달라진 거 같은데요?

상희 그렇네요. 키즈 라인 가구를 만들어서 판매한 적도 있지만 아이가 선택한 건 아니고, 아이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직접 들을 순 없었죠. 아이들 목소리를 더 듣고 교감하게 된 것이 차이점이네요.

온기가 있는 공간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두 분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 같아요.

상희 제 삶의 방식이 관계와 태도를 중심으로 해요. 저는 지금까지 ‘왜 나는 노력한 거에 비해서 잘 안 풀리지?’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12년 전 비플러스엠을 창업했을 때 가구만 팔 정도의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인테리어를 같이 했어요. 상담을 오시면 도면을 보고 가구가 필요한 분들에게 가구를 만들어 드리고, 맞춤 제작을 원하시면 공간을 보고 제작도 했는데, 그 일이 저한테는 조금 안 맞았어요. 가구 만드는 거랑 현장에서 목수 일을 병행하는 건 참 다르더라고요. 가구도 납품 일자를 맞추긴 하지만 그 안에서 내 시간에 쫓기는 거와 수많은 변수 안에서 시간에 쫓기는 건 너무 다른 느낌이었어요. 당시에는 동네만 잘 선정해도 가구를 많이 팔 수 있는 흐름이어서, 저는 너무 돌아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현실적으로 그들의 방법이 더 맞아 보였지만 욕심으로 다르게 한 건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공간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 거죠. 그때마다 저를 도와주는 사람은 인맥으로 맺어진 경우가 많았어요. 학창 시절 포함해서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던 인연도 나중에는 큰 힘이 되더라고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제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이 저를 대하는 마음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좌우명은 ‘내가 손해 보고 살자.’예요(웃음). 어떤 일이 마무리될 때 욕심을 채우려 하면 그 관계는 끊어지더라고요. 내가 좀더 이익을 가져가려고 얼굴 붉히는 것보다 손해 보는 게 마음이 편해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명은 모든 인연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은 것에 집중하죠. 일할 때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해관계만 따지는 게 아니라 말 한마디도 진심으로 하려고 해요. 똑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다가갈 수 있잖아요. 상대방 마음이 어떤지 먼저 헤아리고 공감해 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상대방을 존중해 주면 그 사람들도 저를 존중해 주더라고요. 물론 아닐 때도 있지만요.

 

자연에 있는 환경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 같아요.

상희 나무창작소도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염두에 두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이 관계를 조금 더 확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이가 어릴 때 아빠와 아이의 관계가 나쁜 경우는 별로 없어요. 제 경험처럼 성인이 되었을 때 관계가 원활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목공으로 성인이 된 자식과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또 저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처음부터 혼자 기획하고 직접 부딪혀서 문제를 느끼고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 참 힘들어요. 오월학교의 목표는 지역 내에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거예요. 춘천에 대학교가 많은데, 청년들에게 제 시행착오를 나누고 멘토 관계를 맺어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관계를 넓혀 많은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도해 봤는데,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 아쉬웠어요. 춘천에 있는 친구들이 일을 마치고 올 거라 생각하고 일부러 저녁 여덟 시로 정했는데,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오고 이미 사업을 하고 계신 분들이 궁금해서 온 경우가 많았어요. 순수하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해서 온 청년들이 거의 없었어요. 다시 시도할 때는 어떻게 다르게 할지 고민이에요. 

명은 이장님이 키우는 아스파라거스가 정말 맛있어요. 널리 알리고 싶고 저희 고객들도 좋은 가격에 얻어 가면 좋으니까 우리가 중간 역할을 한번 해보자고 연결해 드리곤 했어요. 주문을 받아서 밤마다 직접 포장을 해서 보냈죠. 바비큐의 채소나 레스토랑의 식자재도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고요.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아직 못 해본 게 너무 많죠?

상희 지금 건물 옆에 신축을 하고 싶어요. 가구를 만들러 김포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고, 목공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좋아지길 바라서 이상적인 목공방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주로 쓰면서 공간을 편하게 둘러보실 수 있도록 꾸미고, 디테일한 부분을 더해서 다른 목공 수업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작업하는 공간, 전시 공간, 쇼룸으로 구성하고 있어요. 저희가 지역 내 작업하시는 분들에게 액자 비용을 50퍼센트 할인해서 제작해 드리고 있는데, 춘천의 작가들이 이곳에서 전시를 하면 좋겠어요. 코오롱스포츠랑 협업한 것처럼 다양한 기업과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팝업도 열고 싶고요. 바람이 있다면 모든 춘천 시민들에게 ‘춘천에 오월학교가 있어서 좋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춘천에 왔으면 어디 가야 돼?” 물으면 보통 맛집 위주로 얘기하잖아요. 공간으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춘천에 왔으면 오월학교에 가봐야지.”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예요. 지금까지는 이전 제 커리어나 능력으로 어딜 가도 똑같이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여기서 더 올라가는 건 제가 그동안 하지 않았고 잘 몰랐던 일이라서 단계를 밟아 잘 실현해 나가려고요. 

명은 아이들이 있는 기관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부모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기획하고 싶은데 운영적인 부분 때문에 보류된 상태예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준비해 볼 생각이에요.

자연이 일상, 일상이 자연

“저는 어디에서 어떤 교육을 받더라도 욕심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욕심은 호기심으로 나타나고 궁금한 마음이 들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할 거예요.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비플러스엠의 가구들은 전부터 따뜻한 느낌이었지만 아이를 낳고 공간에 대한 시야가 넓어졌을 거라 짐작해요. 아이의 존재로 삶이 바뀌던가요?

상희 많이 바뀌었죠. 제 취미 생활은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에서 시작하거든요. 새로운 걸 생각하고 만드는 걸 워낙 좋아해요. 빈티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도 옛날 차에 나무로 꾸밀 수 있는 게 많아서고, 캠핑도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직접 제작해서 쓰는 게 좋았어요. 지금은 아이에게 필요한 도구, 놀이로 쓸 수 있는 걸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요. 아이와 같이 만드는 것들이 생활에 들어오는 게 뿌듯해요. 제가 바라보는 시야가 아이와 함께 어우르는 거로 많이 바뀌었어요.

명은 남편은 자신이 만든 가구나 소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지금 이 식탁 테이블도 집에 맞게 이상적으로 만든 거라 정말 애지중지했거든요. 근데 아이는 여기에 그림을 그리고 장난감을 가득 올려놔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남편 눈에 지저분해 보이니까 정리를 하면 아이는 울고불고 하죠.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아이가 어떤 생각으로 자동차를 나열했는지 설명하고, 어른의 시선으로 단정 짓지 말고 아이의 놀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요즘은 보기 싫다고 치우지 않아요. 그것도 많이 달라진 점이에요.

 

오월학교를 시작하기 전 맞벌이를 하며 아이와 지내온 건데요, 평범한 나날을 어떻게 보냈어요?

명은 육아휴직을 13개월 정도 했어요. 이후엔 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셔서 평일에 함께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퇴근 후 아이에게 집중하려 노력했어요. 온종일 함께 보내는 주말에는 흥이 많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자동차를 좋아해서 집 안팎에서 자동차 놀이를 하거나 전동차를 타는 게 일상이었어요. 아빠와 만들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여느 부모님들처럼 문화센터도 다녔어요.

상희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제 일터로 끌고 와서 같이 조작하고 놀았어요. 작업장 앞마당에 난로를 피우고 그 안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놀기도 하고요. 키우던 동물들하고도 시간을 많이 보냈죠.

 

시골로 내려와 자연을 곁에 둔 아이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명은 시간을 너무 자유롭게 보내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라 선생님이 기본 생활 습관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아홉 시쯤 일어나서 자기만의 놀이를 조금 하고, 열 시 좀 넘어서 아빠랑 등원해요.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친구랑 놀다가 마치면 태권도 학원에 가요.

상희 아이랑 대화를 자주 하려고 해요. 아침 등원 길에 요즘 뭘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게 있는지, 이런저런 얘길 나눠요. 학원을 마치면 아이가 오월학교로 와요. 저희 곁에서 놀다가, 일곱 시쯤 바쁜 일들이 끝나면 좋아하는 자동차 이야기를 하고 만들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도시에서의 일상과 비슷하네요?

명은 맞아요. 아이러니하죠. 저희는 여기서 아이를 뛰어놀게 하면서 자연인처럼 성장시키고 싶었는데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도시적인 성향의 아이라서 배우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을 먼저 얘기해요. 얼마 전에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해서 등록했더니 최근에는 영어 학원에도 가고 싶다는 거예요. 너무 의아했어요. 저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자기가 이끌어서 요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춘천 시내에 가서 알아보고 놀이식으로 영어를 배우는 곳에 다니고 있어요. 근데 너무 재밌어하는 거 있죠(웃음).

상희 목공 수업할 때 들으셨죠? 현대모터스튜디오에 매일 가고 싶어서 일산에 살고 싶다고 하잖아요(웃음).

 

요즘 아이의 관심사는 뭐예요?

상희 틱톡으로 자동차 리뷰를 해보고 싶대요. 요즘 둘이서 늘 그 얘기를 해요. “자동차는 뭐부터 하는 게 좋을까? 어떤 얘기 할까?” 아들이 생각하는 걸 어떻게 만들어 갈지 상의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부모의 가치관을 흡수하며 살기 마련이에요. 아이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알려주고 싶어요?

명은 다양한 환경을 자주 접하고 경험하면 좋겠어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여러 환경에 놓이면 부모가 제시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많은 과정을 거치며 직업을 택할 거고 원하는 삶의 방향대로 살아갈 텐데 그 안에서 정말로 원하고 흥미로운 걸 하면서 살길 바라요. 또, 제 인생의 모토인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따뜻하고 행복한 아이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어요.

상희 저는 어디에서 어떤 교육을 받더라도 욕심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해요. 그 욕심은 호기심으로 나타나고 궁금한 마음이 들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할 거예요. 세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걸 중요하게 여겨요. 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같이 만들어보려고 해요. <오징어 게임> 가면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둘이서 종이로 만들었어요. 한참 좋아해서 유치원에도 쓰고 갔는데 친구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걸 쓰고 왔나 봐요. 그제야 자기도 단단한 걸로 사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조금 현실적인 얘기도 해볼게요. 자연과 가까이하는 나날도 좋지만 교육과 친구, 문화생활에 아쉬움도 있을 거 같아요.

명은 저는 시골에서 지내면서 교육적인 부분은 크게 걱정 안 했어요. 어떤 지식을 많이 얻어 오거나 강한 자극을 받는 것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마음 편안하게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곱 살인데 아직 이것도 안 해?” 하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해요. 자연환경이 다 학습이고 아이가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이미 주변에서 충분히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상희 친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유치원에 친구가 별로 없어서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얘기는 많이 해요. 그래서인지 오월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을 친구라고 생각해요. 어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또래 친구들이 많은 공간에 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오월학교에 오는 아이들하고 어울려 노는 편이에요.

명은 저희가 일을 하고 있어서 상호작용을 꾸준히 못 해주는 건 좀 아쉬워요. 그래도 아이가 많이 자라서 “엄마 바비큐장에서 정리하고 있을게.” 하고 동선을 알려주면 안심하고 그 안에서 잘 놀아요. 겨울에는 망치로 얼음 깨는 거 좋아해서 근처 계곡에 가기도 했고, 오월학교에서 키우는 양말이와 코코랑 놀기도 해요. 자전거를 타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놀고 어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도 해요.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 사회성을 채워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염려는 안 해요. 문화생활은 아이가 욕구가 있으면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요. 그럼 저희가 날을 잡는 식이죠. 자동차 스튜디오에 주로 가고 춘천 안에서 하는 전시가 있으면 시간 내서 데려가려고 해요.

 

반대로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거네요.

상희 맞아요. 저는 한강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요. 반포지구가서 라면 먹고 공원에서 쉬는 것이 서울의 여유라고 생각해요. 가끔 가족과 바다나 제주도에 가더라도 예전보다 감동이 좀 덜한 거 같아요. 오월학교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거예요. 저는 경주에서 태어났는데 경주랑 제주도가 가진 매력이 너무 달라요. 경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주고, 제주는 자연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감흥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 지점이 달라서 제주도를 좋아했거든요. 이제는 제 눈이 바뀐 것 같아요. 오히려 새로운 건축물이나 새로운 자동차, 도심에 있는 것들을 봤을 때 훨씬 더 감동해요. 그리고 아들이 워낙 도시 성향이라서 저희는 물놀이를 호텔로 가서 해요(웃음). 예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갈망했던 감정들은 좀 내려놓은 것 같아요.

다른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일이 되면 아이러니하게 내 가족 챙기는 걸 놓칠 수 있잖아요. 그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고 있어요?

상희 아직 못 잡았어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에요. 아이하고는 저녁 시간이나 등원하는 시간, 쉬는 날 알차게 보내려고 해요. 지난달 아들이 눈썰매장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보죠. 5일 안에 해줄 수 있으면 다섯밤 자고 가자고 약속해요. 그럼 아이도 이해해 주거든요. 아들과 약속한 걸 잘 지켜주는 게 당장의 목표예요. 그리고 저는 집으로 컴퓨터를 가져오지 않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혹시 몰라서 가방에 공부할 거 챙겨 다니는 스타일이었는데, 결국 안 하더라고요. 굳이 안 해도 문제 될 거 없으면 집에서 일은 안 하고 아들과 게임을 하거나 같이 퍼즐 맞추기를 해요. 얼른 더 자라서 부루마불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가족이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

상희 10년 뒤에는 아마 차로 유라시아를 횡단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도 입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업보다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서 좋아했던 일이 직업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대학교 때도 친구들이 졸업하고 뭐 할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게 이해가 잘 안됐어요. 저는 기질이나 형식적인 걸 고려해서 저한테 맞는 걸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어요. 아들은 저랑 다르게 살아가기 때문에 그 선택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 최대한 쉽게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커가면서 대화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테지만 좋아하는 걸 같이 고민하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걸 아이가 좋아하면 제일 좋긴 한데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여요(웃음). 아들이 좋아하고 호기심이 있을 분야에서 제가 아는 부분을 같이 고민해 주려고요. 그걸 제가 아버지랑 못 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어요. 유라시아 횡단을 하면서 여러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취지가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확실하잖아요. 여행하면서 서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항상 힘든 것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저는 늘 힘든 일이 있으면 재밌게 한번 해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고 슬기롭게 해결할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보고 싶어요. 아들이 유라시아 횡단을 원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죠. 아내는 종착지에서 만나는 걸로 그림을 그려봤어요. 종착지에서 만나 “잘 왔어? 어떻게 지냈어?” 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나누는 거죠.

명은 우리에게 아이를 선물해 준 도시, 파리에서 만나는 걸로 얘기를 해두었어요. 거기에서 남은 여행을 같이 하는 거예요. 함께 해온 시간이 의미 있고 따뜻했다고 느끼고 싶어요.

 

그때 오월학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상희 욕심을 내자면 다른 곳에도 오월학교를 만들고 싶지만 일단 춘천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해보려고요.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서 파트별로 전문화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요.

명은 그때는 저와 남편이 매일 뛰어다니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포근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방문하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오월학교로 성장해 나가고 싶어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정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