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Dance, Draw, And Be Happy

춤을 추는 것처럼_아방

함께 있는 동안 아방은 몇 번쯤 어깨를 으쓱했다. 한쪽 어깨를 올리거나 골반을 퉁기면서 리듬을 타는 것이었다. 촬영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먼저 저 멀리 달려가 포즈를 잡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소품으로도 쓰고, 쓰러진 나무 위에 올라 아이처럼 뛰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그녀와 함께하는 내내 사위엔 생기가 가득했다. 주변의 모든 정물이 춤을 추는 듯 넘실거렸다.

뻔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생활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네요.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작업을 하다 보면 금방 어질러져서 어수선한 곳이에요. 손님이 온다고 해서 열심히 치웠죠(웃음). 사용하던 작업실을 정리하고 요즘은 집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작업은 어질러놓고 하는 게 편한데 그림이나 재료가 쌓이면 다 버리고 싶어져서 얼른 작업실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아서 조금 부끄럽네요.

 

아방의 색깔이 군데군데 묻어 있어서 좋은걸요. 만나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이에요. 아방이란 이름은 고등학생 때 ‘어벙하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인데, 지금까지 쓰고 있네요. 그 이름이 워낙 강렬해서 친구들, 선생님, 심지어 친구네 부모님들도 저를 아방이라고 불렀어요. 학년이 바뀌어 새 친구들을 만나도 “네가 아방이야?” 하더라고요(웃음). 이름보다 아방으로 더 많이 불려서 아마 본명으로 활동했다면 지인들도 저인 줄 잘 몰랐을 거예요. 근데… 혹시 지금 사진도 찍나요?

 

그러려고 하는데 불편하신가요?

아니요(웃음). 모자를 좀 쓰려고요.

 

얼마든지요.

모자를 좋아하거든요. 사진 찍을 때 쓰려고 준비해 뒀어요.(거울을 보고 모자를 쓴다.)

 

오늘 신은 스타킹이랑 잘 어울려요. 10년 차 일러스트레이터의 내공이 보이는 것도 같고요.

그러고 보니 벌써 그림을 그린 지 10년이나 됐네요. 제 전공은 환경디자인이었어요. 복수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배워서 첫 사회생활은 디자인으로 시작했죠. 다른 디자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할 때 비전이 뭐냐는 질문을 들었는데요. 그때 회사에서는 제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도 크게 관심이 없어서 다른 일을 생각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회사 생활을 계속하는 건 아닌 것 같았어요. 회사 일을 해주고 딱 그만큼의 돈을 받으려고 매일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철저히 준비하고 회사를 뛰쳐나온 것도 아니었죠(웃음).

 

그럼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로 밴드를 했는데 그때 함께하던 멤버들이 제 그림으로 굿즈를 만들자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따로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하기는 어려우니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저한테 티셔츠 만들자, 포스터 만들자, 하면서 이것저것 요청한 거죠. 그 제안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그림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문득 이걸로 돈을 벌 수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멤버들은 제 그림을 예쁘다고 하는데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 그림이 팔리는지,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에 그림을 그려서 이것저것 만들기 시작했어요.

반응은 어땠어요?

처음엔 지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 팔아주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고 마켓에 나갔는데 참패를 당했어요. 단 하나도 못 팔았거든요(웃음). 주변에 있던 셀러들이 몇 점 팔아 준 게 전부였죠. 마켓을 마치고 4천 원짜리 핫도그를 하나 사 먹고 나니 남는 게 없더라고요. 제 그림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갖고 나가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가족이 타깃인 마켓에 속옷만 입은 배트맨 그림을 내놨으니 잘 팔리는 게 이상하죠(웃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첫 시도가 지지부진해서 한 발 더 내딛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몇 번은 더 해야만 했어요. 퇴사하면서 엄마한테 그랬거든요. ‘두 달 동안 50만 원을 벌면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고요. 지인들의 도움으로 무려 100만 원이나 벌었지만 도움 없이 스스로 해보겠다고 나간 마켓의 결과를 보니 좀 막막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실감한 거죠. 그래도 엄마한테 해놓은 말이 있으니 후퇴는 못 하겠고… 몇 개월만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부딪치니까 그래도 반응이 있더라고요. 사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 편이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6개월 만에 첫 작업을 의뢰받았거든요. 그땐 정말 기뻤죠.

초기 그림은 어떤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로 사람을 그려왔어요.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 건 사람의 모습이나 형태에 관심이 있어서였어요. 주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리곤 했죠. 스타일을 생각하면서 그린 건 아닌데, 하나둘 그림을 쌓아가다 보니 제 그림이 좀 못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못 그리는 거랑은 별개로 사람의 모습이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예쁘장하게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어떤 게 예쁜 건지 그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눈이 크고, 머리가 길고, 얼굴이 작은 사람의 형태는 아니었던 거죠.

 

왜 좋아하지 않았어요?

첫째는 뻔해서요. 많은 사람이 예쁜 걸 좋아하는데 예쁜 것들은 대개 뻔하더라고요. 사람들은 왜 뻔한 걸 좋아하지, 싶은 마음에 저는 예쁜 그림에서 좀 멀어지고 싶었어요. 대다수가 좋아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가 또 그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둘째는 제가 잘 못 그린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림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묘사나 세밀화는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틈새시장을 노려야 했어요. 저는 최대한 ‘이상하게’ 그려보자 싶었죠(웃음).

 

용기 있는 시도인걸요. 걱정은 없었어요?

없었어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좋아하고 말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기존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장에 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만 집중했어요.

 

내 그림을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던 일은 아닐까요?

만일 그랬다면 그 믿음은 지인들이 만들어 준 걸 거예요. 제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시기에도 “네 그림은 희한해. 그래서 좋아.”라고 말해줬거든요. 전문적이라거나 잘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오로지 제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믿고 부딪쳐볼 수 있었어요.

가장 은밀한 무표정

10년의 세월 동안 작업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생각은 수도 없이 바뀌었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말하자면 못생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예전엔 지금에 비해 좀 귀여운 면도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밝고, 따뜻하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그런 면이요. 근데 어느 순간 그런 그림에서 한계를 느꼈어요. 그러면서 좀 지겨워졌죠. 그때 그림 스타일이 180도 달라졌는데, 새 스타일을 연습하는 동안 꼭 갑각류가 탈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스타일이 바뀌면 반응이 오기까지 시간을 좀 두어야 해요. 보는 사람들은 익숙한 것도, 기대한 것도 아니다 보니 ‘이게 뭐야?’ 하게 되거든요. 충분히 각오하고 변화를 준 건데도 반응을 기다리는 게 참 외롭더라고요. 하필 겨울이라 더 길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의도적으로 스타일을 바꾼 건가요?

그보다는 그림 안에 담고자 하는 이야기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스타일도 바뀐 것 같아요. 처음엔 마냥 뻔한 게 싫고 ‘조금 이상하면 어때’ 싶은 마음이었는데, 예쁜 것에서 멀어지려 하다 보니 진짜 아름다움이 뭘까 자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내린 결론은 단지 겉모습, 형태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당당함, 자신감, 자기다움이랑 연결되는 가치인 것 같았어요.

 

생김새 너머의 것을 표현한 거군요.

그렇죠. 세상에는 겉모습만으로 편견을 가지거나 판단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요. 옷차림이나 목소리, 신체 특징 같은 걸로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는 거죠. 저는 타인의 일면만 보고 판단하는 데 예민한 편이에요. 어느 한순간의 겉모습으로 파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아니 싫어해서 외면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 싶었어요. 말로 하는 건 어렵지만 그림으로는 눈을 교란할 수 있어서 돌려 말할 수 있거든요. 이런 메시지를 그림으로 자꾸 접하다 보면 사람들도 서서히 함부로 단정 짓는 습관에서 멀어지지 않을까싶었어요. 동시에 제 내면도 단단해질 거라 생각했고요. 

 

그렇게 변한 그림에 특징이 있다면요?

우리는 다 다르지만 모두가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장 나답게 사는 게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 개인적인 아름다움을 표정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전 그림들도 대부분 무표정했지만, 새로운 스타일은 동작보다 얼굴에 포커스를 두어서 무표정이 더 잘드러나게 했어요. 저는 인물의 이야기나 감정이 표정으로 다읽히는 게 달갑지 않아서 극적인 표정은 잘 그리지 않아요. 결국 표면적인 걸 그리는 데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거죠.

 

이야기를 담는다고 했지만 드러내기보단 숨겨둔 거군요.

맞아요.

 

그런데 최근 작업에선 미묘하지만 표정이 보이기도 해요.

예리하네요(웃음). 제 감정이나 기분을 그림에 담으려다 보니 무표정에도 미묘한 분위기가 생기더라고요. 아마 표정이 아니라 분위기가 보이는 걸 거예요. 특히 눈빛에 변화가 생겼어요. 이즈음 감정에 관심이 생겨 그림 그리는 친구들에게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많이 물어보았는데요. 우울함, 행복, 슬픔 등 다양한 답이 있었는데, 전 반항심이었거든요. 사람들이 마음대로 저를 평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죠. 제가 하는 일에 훼방 놓지 않았음 좋겠단 생각도 있었고요. 사실 훼방 놓는 사람이 없어도 제가 무언가에 흔들릴 때면 그런 반항심이 생겨요. 그때마다 가장 나다운 것에 대해, 온전한 나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그러다 보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남과 비교하며, 남을 쫓아가며,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살진 않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그리게 되더라고요

가장 나다운 걸 그린다는 건 ‘진짜 나’가 무엇인지 안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저라는 존재를 잘 알아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때 그때의 저를 그리는 거예요. 그 순간, 그 시기에 제가 품고 있는 생각들이요. 정확히는 변하지 않는, 온전한 저를 그리는 건 아닌 거죠. 그래서인지 그림의 느낌이 매번 달라져요.

 

그런데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물을 그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10년 내내 못생긴 사람들만 그렸죠. 사실 제가 보기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제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못생긴 그림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고 ‘음, 내 눈에만 예쁜 건가?’ 하고 놀란 적이 있어요. 5-6년 전에는 못생긴 인물들을 통해 못생겨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근데 요즘은 사람을 이루는 요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을 이루는 요소요?

사람은 여러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다면적인 존재예요. 그중 한두 가지만 본다는 건 잘 모른다는 거나 마찬가지죠. 한 사람의 세계는 웬만해선 잘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표정이 우울해 보여도 마음은 행복할 수 있고 얼굴이 웃고 있어도 마음은 착잡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하는 작업은 겉모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상할지언정 각자의 방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요.

 

그림으로 내면을 표현한다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 표현하는 건 당연히 어려워요. 거의 불가능하죠.제가 하는 일은 ‘내면에 집중’한 상태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제가 말하는 내면은 기분이나 감정을 뜻하는데요. 이런 요소는 굳이 어떤 기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자신 있는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입히고 두 장의 사진을 찍는 거예요.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두 장의 사진 중 더 예쁜 모습을 골라 보라고 하는 거죠. 결과가 어떨 거 같아요? 100퍼센트 좋아하는 옷을 입은 사진을 꼽아요. 그 말은 곧 자신감이 외모로 드러난다는 뜻일 거예요. 좋아하는 옷을 입었을 때 만족감과 자신감이 얼굴로 나오고, 좋아하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땐 위축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죠. 저는 이 실험을 자주 생각했어요. 내 기분이나 감정이 분위기로 나온다는 데서 힌트를 얻어 그림의 분위기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거죠. 근데 재미있는 건 제가 아무리 우울한 기분으로 그림을 그려도 위로받았다, 따뜻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제가 표현한 걸 모든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거나,의도한 것과 다른 반응에 실망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많이했어요.

 

누구에게나 겉과 속이 다른 면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도 균형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저는 겉과 속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팎을 골고루 고민하며 지내요. 겉모습을 가꾸기 위해 저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이고 제 체형이 어떤지 그때그때 체크하고,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고 하죠.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자주 고민하고요. 

본능적인 춤

세상엔 눈에 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아방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확실히 눈에 띄는 편이죠.

저는… 사실 패션을 잘 알진 못해요. 특히 브랜드는 더 그렇죠. 그래도 좋아하고 추구하는 스타일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단정한 걸 좋아해요. 그렇게 안 보이죠(웃음)? 단정은 단정인데 어느 한 부분이 노출된, 다소 파격적인 단정함을 추구하죠. 딱 떨어지는 차림인데 치마가 짧다든지, 평범한 핏인데 시스루라든지. 이런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 건 제 분위기 때문이었어요. 어릴 땐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평범하게 입으면 고등학생으로 오해받는 일이 많았어요. 어느 한군데 파격적인 포인트를 주어야 고등학생 이미지도 걷어내면서 제 체형도 돋보이더라고요. 뻔한 게 싫어서 못생긴 사람을 그리는 것처럼 옷차림도 뻔한 게 싫어요. 예상 가능한 전개는 재미가 없고, 재미없는 건 매력이 없거든요. 아! 저는 프레피룩을 좋아해요. 살짝 ‘까진’ 프레피룩이요. 목까지 단추를 다 채운 짧은 기장의 폴로셔츠와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빨간색 스타킹 신으면 너무 예쁠 것 같아요. 

 

나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아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요. 저는 쨍한 색감의 옷이 잘 어울려요. 그래서 제 옷장엔 검은 옷이 거의 없어요. 또 콤플렉스를 가리고 자신 있는 부분을 강조하는 식으로 입는 것도 좋아하죠. 저는 제 몸에 좀 민감한 편이어서 체형이 조금만 달라져도 금세 알아차려요. 오랫동안 앉아서 그림 그리는 생활 때문에 체형이 좀 변했는데, 이런 변화도 금방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언젠가부터 승모근이 조금씩 발달한다 싶더니 목 주변에 근육이 생겼고, 그러면서 목이 두꺼워졌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목이나 어깨가 드러나는 옷은 피하게 됐어요.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꾸미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어요.

겉모습도 그렇지만 행동도 그래요. 저는 실내든 실외든 춤추는 걸 좋아해서 아무 데서나 마음 가는 대로 춤을 춰요. 춤이라기보다는 흥을 표현하는 몸짓인데요(웃음). 얼마 전에 친구가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춤추면 안 부끄럽냐’고 묻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봤는데, 저는 남들이 저를 쳐다본다는 생각을 잘 안 해요. 어차피 저를 모르는 사람들인데 얼마나 대단한 관심을 갖겠어요. 관심을 가져봤자 “저 사람 신났구나, 웃기네.” 하고 지나가겠죠. 제가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걸어다니는지 신경을 안 쓰는 것처럼요.

 

만일 모르는 사람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면요?

응? 상관 안 해요. 너무 좋아요.

역시 아방의 매력은 ‘당당함’인 것 같아요.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면 마음이 편해요. 물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자유롭게 꾸미고 행동한다면요. 제가 춤을 추는 것도 춤추는 걸 너무 좋아해서라기보단 본능적인 거예요. 음악이 들리면 머리로 지시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거든요. 오랫동안 하고 있는 드로잉 수업에서도 가끔씩 수강생과 춤추는 시간을 가져요. 불을 다 끄고, 음악을 크게 틀고 몸을 움직여보자고 하는 거죠. 수강생 대부분이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자기 그림을 보이는 데 부끄러움이 많거든요. 손으로 가리고 그리거나 누군가 보려고 하면 숨긴다거나 엄청 작은 그림만 그린다거나….그런 부끄러움에서 탈피하려면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몸을 좀 움직여보자고 하면 신나게 춤추는 사람은 없지만 조금씩, 찔끔찔끔 움직이더라고요. 그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춤추듯이 그려보자고, 그림을 그리는 손목도, 연필을 잡은 손가락도 다 춤추듯 움직여보자고 하면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자연스러운 그림이 나와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시간을 강렬하게 추억하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만큼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데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춤을 춘다는 게 부끄럽고 힘든 일이라는 걸 저도 알아요. 다만,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게 도움 되는 때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요?

음… 아뇨. 본능에만 따르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다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선에서 본능대로 행동할 거라고 생각해요.

 

영리하게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그 기준은 자기가 세우는 거지만, 저는 남에게 피해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대부분 괜찮다고 생각해요. 혹시 하고싶은데 못 하는 거 있어요?

 

안 씻고, 추리닝 입고, 머리도 안 빗고 출근하기요.

어? 그게 어려워요(웃음)? 저는 외출하고 나서 ‘내가 세수를 했나?’ 생각할 때도 있는데….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남들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자기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만큼만 당당하고 자유로운 게 중요한 거죠.

 

본능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건 자신감이 크단 뜻 같기도 해요. 

자신감이 크기보단 자신감의 진폭이 큰 사람이에요. 어떨 때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흐르기도 하는데, 또 그만큼 자주 잃기도 해요. 저는 제 그림에 애정이 커요. 근데 그거랑 별개로 기준도 엄청 높죠. 다른 사람들 작업을 보면서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도 많거든요. 제 그림은 너무 좋은데 동시에 초라하게 느껴진달까요. 멋진 작품을 볼 때마다 시간을 갈고닦아야 저 그림만큼 근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다만, 무작정 좌절하는 게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 하나하나 비교해 가면서 저를 돌아보고 있죠.

 

자신감을 자주 잃는다는 말은 좀 의외네요.

그렇죠(웃음)? SNS로 보여주는 모습은 대개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칠 때 모습이거든요. 근데 ‘진짜’ 당당한 사람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잘 아는 게 사는 데 도움이 될까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잘 몰라도 잘 사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데… 자기를 잘 알아야 잘살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못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럼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단 욕심이 있어요?

아니요. 그런 욕심은 없는데 요샌 시간이 많아서 저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러면서 나에 대해 좀더 알게 된 부분도 있고요?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음…. (메모를 찾는다.) 저는 자신감이 없을 때 주문을 외우거든요. “가장 나답게, 멋있게, 당당하고, 아름답게.” 7월 17일에 이 문장이 반복해서 적혀 있는 걸 보니 자신감이 정말 없었나 봐요(웃음). 뭔가 후회되거나 창피한 일이 있을 때면 저는 자신을 독려하는 데 집중해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되뇌는 거죠. 최근에 저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복잡할 때면 세수를 오랫동안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패턴을 알고 나니까 세수를 조금이라도 오래 하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나 지금 뭔가 후회하나?’ 하고요.

나를 자세히 관찰하게 된 이유가 있어요?

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로움을 많이, 또 자주 느끼는 사람이에요. 외로워서 우울해지고, 축 처지는 날들이 있는데 외로울 때마다 이렇게 구덩이를 파고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많이 생각을 정리하게 됐죠.정리하다 보면 왜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게 되고 저 자신을 이해하게 돼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다시 힘을 내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죠. 그런 게 좋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우울감을 떨칠 수 있어요?

예전엔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을 일로 삼으면서부터는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달랑 ‘우울해.’만 쓰는 게 아니라 제 마음속 이야기를 아주 세세하게 적어보는 거죠. 그래서 메모장을 보면 그 시기에 제가 어땠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요. 메모가 별로 없는 시기는 비교적 편안할 때고, 하루에도 예닐곱 개의 메모가 있을 땐 굉장히 힘든 시기인 거죠.

 

과거에 쓴 메모를 다시 보기도 해요?

자주 봐요. 거의 10년간의 메모가 저장돼 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메모가 늘어나요. 지금보다 더 순수했을 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서 볼 때도 있고, 힘들 때면 이전엔 어떻게 극복했나 알기 위해 찾아보기도 하죠. 이런 생각을 했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이 나오거나 웃긴 메모도 많아요. 의외로 어린 저에게 배울 게 생기기도 하고요. 과거의 저를 통해 지금의 저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면서 ‘진짜 괜찮은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어요?

‘진짜 괜찮은 나’가 뭘까요(웃음)? ‘나’는 그냥 ‘나’인 것 같아요. 저는 감정에 솔직한 편이어서 긍정적인 감정도 그렇지만 부정적인 감정도 솔직하게 표현하곤 해요. 그래서 찌질한 제 모습도 너무 잘 알아요. 그런 걸 잘 숨기지 못하는 사람인데 과연 내가 ‘진짜 괜찮은 나’일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그래도 친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제 매력을 솔직함으로 꼽는 걸 보면 제 기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때가 ‘진짜 나’인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와의 연애가 끝났을 때도 미련이나 후회가 거의 없어요. 매사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살아가려는 편이기도 하고요.

 

좀 짓궂은 질문이지만… 그런데도 후회한 일이 있다면요?

음, 없는데…. 아! 런던에 유학 갔던 시절이요. 그땐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거든요. 친구들이 저에게 부럽다고 할 때마다 의아했어요. 매일 똑같은 집, 똑같은 길, 똑같은 풍경만 맴도는데 런던이 뭐가 부럽나싶어서요. 매사에 부정적이던 시절이라 거의 매일 투덜댔고 침대에 누워서 며칠 내내 울면서 지내기도 했어요. 그 시기에는 이겨내고 싶다는 마음조차 없어서 꾸역꾸역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왔죠. 근데 지금 생각하면 런던에서의 스물아홉, 서른을 더 행복하게 즐기지 못한 게 제 인생에서 가장 아쉽고 후회스럽더라고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 거 같아요?

만끽하고 싶어요. 그때도 알고 있었어요. 다 지나고 나면 이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걸요. 아는데도 당장 너무 싫으니까 그 감정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나중엔 지금이 소중해진다는 건가요?

웬만큼은요.

 

그렇다면 매 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렇네요.

미완성과 완성 사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스트레스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스트레스요? 많이 받아요. 사람들한테도 받고, 일할 때도 받고, 마음이 복잡할 때도 받고…. 특히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커요. 모르는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대신 그만큼 아는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거든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관계를 하나둘 정리하게 된다는…. 제 경우엔 스트레스받는 관계가 정리되는 것 같아요.

 

어떤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한테요. 근데 그런 사람 대부분이 자기만 생각한다는 걸 잘 모르더라고요. 지금 남아 있는 친구들은 제가 시쳇말로 ‘설치고’ 다녀도 웃으며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무 데서나 춤추고, 희한한 머리를 하고, 좋아하는 옷을 마음껏 입어도 개의치 않고 ‘아방은 아방이니까.’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봐주는 사람들이 좋아요. 이야기하다 보니 제 스트레스는 주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데는 쉬는 게 도움이 된다더라고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쉴 때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시간이 나면 널브러져 쉬지 못하고 운동이나 독서, 영어 공부 같은 걸 공격적으로 하는 편이었죠. 이전엔 운동을 꽤 열심히 했는데 여기저기 다치면서 최근엔 그것도 쉽지 않아졌어요. 운동하다 다치고, 자전거 타다 다치고, 그림 그리다 어깨 다치고, 다친 델 다시 다치고…. 한번은 계단을 내려가다 발목을 다친 적이 있는데, 여러 번 접질린 곳을 다시 다친 거여서 2년 가까이 제대로 걷지를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릎도 고장 나고, 골반 상태도 나빠지고…. 아직도 깨끗하게 낫질 않았죠. 몸을 써서 기분을 전환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스트레칭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이 정도까지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몸이 아파 쉴 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했죠. 몇 년 동안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그림도 마음껏 못 그렸거든요. 지금도 비슷하고요.

 

몸이 아프면 우울해지잖아요. 일하는 데도 지장이 크겠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근데 그림을 못 그려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운동을 못 해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컸어요. 저는 걷는 것보다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생활이 전혀 안 되니까 우울해지더라고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살이 찌거나 몸이 붓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울 보는 게 스트레스가 되었어요.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 여파로 많은 게 나빠지더라고요.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면서는 일하는 게 다 뭐냐는 생각도 들었어요. 취미가 대부분 활동적인 것들이어서 그 시기엔 따로 할 수 있을 만한 것도 없었죠.

 

어떻게 극복했어요?

이것저것 많이 상상했어요. 잘 쉬는 법을 모를 때니까 ‘이런 공간이라면 나도 잘 쉴 수 있을 것 같다.’든지, ‘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거다.’ 하고 상상하면서 조금씩 그림을 그렸죠. 그렇게 그린 그림들을 나중에 《더 포스터 북》으로 엮기도 했고요. 그 그림들 덕분인지 이젠 아주 잘 쉬게 됐어요. 오히려 하루의 80퍼센트를 쉬면서 보내는 것 같아요(웃음).

쉴 땐 주로 무엇을 해요?

아무 생각도, 자극도 없이 쉬고 싶을 땐 티브이를 봐요. 감정에 요동이 있거나 마음이 싱숭생숭할 땐 음악을 듣고요. 요새는 김사월 음악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요. 노랫말이나 멜로디에서 저랑 결이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반복해 놓고 듣고 있어요.

 

음악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을 때도 있어요?

많아요. 한번은 음악을 듣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요. 지금 김사월의 노래가 그런 것처럼 그 당시엔 서사무엘 노래가 제 마음과 똑같다고 느꼈거든요. 그걸 들으면서 5시간 정도 꼼짝 않고 그림만 그렸어요. 멈출 수가 없었어요.다 그리고 연필을 딱 놨는데 그 순간 전화가 왔어요. “여보세요?” 하니까 전화를 건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운동했어?”제가 숨이 가빠진 채 헉헉대고 있더라고요. 그 경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흠뻑 빠져서 그린 그림이라는 게 다른사람 눈에도 보였는지, 한 유명 배우가 그 그림을 보고 자기 얼굴 그림을 의뢰해 오기도 했어요. 여러 문제로 작업이 진행되진 않았지만 진심이 깃든 작업은 보는 사람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실감한 경험이었어요.

 

그림을 그린 지 10년이 되었는데 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요?

다른 걸 해볼까 싶어서 작년에는 많은 일에 도전해 봤어요. 타투도 배우고, 웹드라마 시나리오도 쓰고, 영상 편집도 해보고, 판화도 배우고, 큐레이토리얼도 배웠어요. 근데 그러고 나니 오히려 그림에 애정이 더 커졌어요.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온전히 마음을 담아 소중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건 그림뿐인 것 같아서요. 지금은 그림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고, 계속 열심히 그려나가고 싶어요. 작년에 배운 것들은…취미로만 하려고요(웃음).

 

지금껏 10년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앞으로의 10년도 상상해 볼까요?

잘나가는 엄마가 되어 있으면 좋겠어요.

 

엇?

제 아이를 갖고 싶어요. 아이가 생겨야 비로소 제2의 인생이 시작될 거라고 믿거든요.

 

결혼에 긍정적인가 봐요.

네. 안 그래 보이죠(웃음)? 지금의 저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은데, 10년 뒤에 아이와 함께일 저를 상상하면 완성된 제 모습이 그려져요.

 

그때가 되면 행복할까요?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요.

 

다섯 시간 동안 작업에 매달리다 정신을 차리니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는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에 그토록 열중한 적이 있던가. 좋아하는 일로 마음이 잔뜩 기울어 평정심을 잃는 건 너무 멋진 일이다. 평생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균형이라는 게, 꼭 중앙에 잘 맞을 필요 있나?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