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Your Imagination Pure

TAMBERE 나운혁 • 나지연 • 이윤희 • 오혜민


당신의 상상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요

크리스마스의 온기와 새해의 설렘이 뒤섞인 2016년 겨울, 키즈 편집숍 우트에서 탐베레를 처음 만났다. 2층 계단을 올라서자 나른한 색감과 건조한 질감이 공간을 에워쌌다. 풍성한 소매와 장식을 덜어낸 원피스는 과연 ‘파리 플레이타임’에 서는 아동복다웠다. 자유로운 표현과 아동복에서 흔하게 사용하지 않는 소재의 활용이 신선했다.  그때 나운혁 대표님은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캘리포니아’를 테마로 한 시즌 컬렉션을 구상했어요. 우리 중 아무도 그곳에 가 보지 않았지만요.” 미지의 세계를 눈앞에 펼쳐 놓고 싶었던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이런 상상을 했다. ‘캘리포니아는 이런 색감이겠지? 그곳 어린이들은 장식이 많은 옷보다 실루엣이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바다에 갈 거야. 야자수 아래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지 않을까?’ 상상이 서서히 부풀어 올라 서로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면, 가능한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그 광경을 살려냈다. 그리하여 캘리포니아를 가본 적 없는 나에게도 그 장면은 포착되었다. 아홉 해를 지나는 동안, 탐베레의 상상에서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탄생했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껏 감각하고 용감하게 항해했다. 누구의 상상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면서.

터무니없는 상상을 포착하는 기쁨

“엉뚱한 상상 세계에 사는 다섯 친구를 중심으로 첫 시즌이 구상되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름답고 유니크한 탐베레를 만드는 분들이 궁금했어요.

지연 안녕하세요. 탐베레의 전체적인 디렉팅을 맡고 있는 디자인 실장 나지연입니다. 저는 새로운 아이디어나 소스를 던지면서 “이번엔 이렇게 해볼까?”라는 이야기를 주로 해요.

혜민 아이디어들을 모아서 옷으로 구현하는 디자이너 혜민입니다.

윤희 디자인팀에서 제품의 형태를 완성하면 거기에 아트 요소들을 더하는 일을 해요. 아트디렉터 윤희입니다.

운혁 탐베레가 속한 우트의 대표예요.

지연 혜민 디자이너는 성실하게 모든 공정을 면밀하게 체크하고 살펴요. 윤희 팀장은 닉네임이 ‘줄라이 랄랄라’거든요. 별명처럼 유쾌하고 즐거움을 불어넣어요. 운혁 대표는 현실적이고 날카롭게 조언하여 탐베레가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죠.

 

그래서 탐베레의 옷은 매 시즌 새롭고 완성도 높으며 기분이 좋은 거군요. 최근 가을 겨울 시즌을 공개했어요. 주제가 ‘젠틀 허그’였죠?

지연 이번 시즌은 탐베레의 시작을 돌아보면서 구상했어요. 머슬린 생지 원단에서 출발해 핏이나 아트웍의 변주를 주는 게 우리의 처음이었거든요. 탐베레다운 것을 고민하면서 이제껏 안 해봤던 방식과 주제를 선정하려고 했죠. 사실 다른 테마로 샘플까지 나왔거든요. 노래하고 춤추는 유쾌한 주제로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윤희 팀장이 한 영상을 보여줬어요.

윤희 영상에 두 명의 아이가 등장하는데, 한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아요. 상대 아이가 “안아줄까?” 물으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요. 이번에는 “내가 너를 젠틀하게 안아줄까?” 다시 물어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슬며시 다가와 친구의 품에 안겨요.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작은 위로의 힘에 감동했어요. 팀원들에게 공유했는데, 모두 좋아해 주어서 주제가 바뀌었어요.

혜민 우리는 아이디어 회의를 정말 자주 해요. 주제의 느낌과 분위기를 함께 공유해서 실체로 만들어 내려고 노력해요. 따뜻하고 포근한 젠틀 허그가 떠오르는 소재를 찾느라 고생을 좀 했어요. 보들보들한 덤블 원단에 색감은 조금 절제하되 따뜻한 질감을 담으려고 했어요. 그런 다음 감싸 안는 핏을 디자인했어요. 이번 시즌 가장 먼저 동이 났던 토끼 모자는 지난해 인기 품목이었는데, 젠틀 허그의 느낌을 넣으려고 털의 소재를 고심해서 골랐죠.

지연 손에 닿으면 그 느낌을 더 잘 알 수 있어요. 한 번 만져보시겠어요?

정말 포근해요. 시각보다 촉감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더 강렬하네요. 이번 시즌은 탐베레의 처음을 기억하며 구상했다고 했어요. 그 첫걸음을 들려주세요. 탐베레는 우트에서 만든 몇 번째 자체 브랜드인가요?

지연 7~8번째 브랜드로 기억해요. 그즈음 만들고 싶은 옷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졌어요. 아동복을 오래 만들면서 어느 계절에는 어떤 컬러와 모양새, 무슨 소재의 옷이 잘 팔리는지 알게 되잖아요. 팔리는 제품 위주로 구상하는 일이 잦다 보니 ‘사용하고 싶은 소재와 표현하고 싶은 디자인’에 대한 욕구가 쌓여갔어요. 옷을 예술적으로 접근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었어요. 해외의 다채로운 옷을 보면서 부러움과 영감을 쌓아가던 중 국내 엄마들이 해외 브랜드의 옷을 프리오더하는 붐이 일었어요. 해외 브랜드를 향한 전폭적인 지지를 지켜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제작 경험이 쌓였으니까 한국 바깥으로 나가서 경쟁력을 갖추면 어떨까? 한국 시장을 넘어 해외에 우리 옷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운혁 그럼, 정말 만들고 싶은 거를 해보자. 그 대신 타협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잘 팔릴 것 같아서 이렇게 만들었다. 혹은 이 원단을 쓰고 싶었는데, 비싸서 다른 소재를 썼다.’ 같은 핑계를 대지 말 것. 대량 생산할 수 없으면 수량을 줄여서 몇 개라도 만들 수 있는 브랜드가 될 것. 제작 방법이나 소재에 제약을 없앤 브랜드를 만들어 보자고 했죠. 탐베레는 처음부터 ‘파리 플레이타임’을 목표로 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탐베레를 수입 브랜드로 많이 알았죠.

 

탐베레는 디자이너의 창작 욕구와 갈증에서 시작되었군요. 전개 방식도 새로운 시도였고요.

운혁 대중들은 ‘패션 디자인’ 하면 옷만 떠올리지 않을 텐데 사실 실무적으로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옷만 생각하기 마련이에요. 보통 지난 시즌의 데이터를 보고 ‘이 아이템 잘 팔렸네. 좋았어.’ 분석하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데 탐베레의 제약 없음은 디자이너로서 인풋과 영감을 옷으로 한정 짓지 말자는 것이기도 해요. 이를테면 여행이나 잡지, 음악 같은 것에서 영향을 받는 거죠.

지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던 회의를 최근의 영감이나 관심사, 만들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는 아이디어 회의로 바꿨어요. 옷으로 가공되는 기술을 넘어서 근본적인 시작을 문화, 예술, 감정 같은 것에서 출발하는 게 기존과 아주 다른 프로세스예요. 탐베레는 원하는 컨셉과 아이디어를 포착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전체 과정의 7할을 아이디어 구상하는 데 쓰죠. 쇼를 준비하면서 마감 기간은 정해져 있는데,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없어 애를 먹은 적이 참 많았어요.

혜민 보통 의류 회사 디자이너의 고정된 업무가 있는데, 탐베레는 시즌마다 엄청 새로운 걸 시도해서 놀랐어요. 처음에는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디자이너로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계가 궁금해요. 디자이너를 향한 회사의 지원과 믿음이 크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예전만큼 겁나지 않아요.

 

‘정형화하지 않는’ 탐베레에 영감을 준 친구가 있다고요.

지연 저의 세 딸은 우트 내 여러 브랜드에 큰 영감을 줬어요. 분홍 치마와 보석 구두를 좋아하는 첫째를 떠올리며 ‘엠버’를 만들었다면 둘째는 탐베레의 정형화되지 않은 성격에 영향을 미쳤어요.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무채색을 좋아하고, 다양한 색의 옷을 허용해서 제가 입히고 싶은 옷들을 잘 소화하는 아이였어요. 게다가 성향도 조금 독특해서 지나가다가 돌멩이를 발견하면 주워 와서 아끼고 예뻐하는 거예요. 온종일 돌멩이 그림을 그리고 테이프로 말아주기도 하면서요. 탐베레의 방향성을 정하고 스토리를 구상하는 중에 돌멩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윤희 팀장이 둘째의 상상 속에 있는 돌멩이 친구들을 아트 작업으로 녹이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윤희 탐베레가 틀을 깨는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상상 세계에 사는 아이가 마침 주변에 있었으니까요. 수언이의 상상 친구 파이브프렌즈를 중심으로 첫 시즌이 구상되었어요.

‘파리 플레이타임’은 전 세계 어린이 패션 브랜드들이 자신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박람회로 알고 있어요. 준비 과정은 어땠어요?

운혁 오랜 시간 아동복을 만들면서 소재나 공정으로 풀어가는 기술은 숙련된 편이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일구었어요. 회사 내에 패션 브랜드가 일고여덟 개가 있어요. 그런데 컬렉션의 막바지 2~3주간은 모든 팀이 탐베레 옷에만 집중했어요. 개발실이나 패턴실도 모두 탐베레 제작을 위해 움직였죠.

지연 만들고 싶은 소재를 찾아 까다로운 공정을 시도했어요. 대량 생산할 수 없는 작업이 많았죠. 니트 반장님이 굵은 실로 손바느질해서 샘플을 만들어 주시면, 반짝이 실을 섞기도 하고요. 작업 반장님들이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그래, 탐베레니까.” 하고 만들어 주세요. 컬렉션 룩북도 우리 색을 드러내고 싶어서 핸드 터치로 도장을 하나씩 찍었어요. 우리가 소개하는 작은 부분에서도 탐베레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를 바랐거든요.

 

꿈의 무대에서 탐베레를 해외 브랜드 옆에 당당하게 놓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지연 첫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열정이 가득했나 봐요. 품목이 어찌나 많았는지 행거가 옷을 다 걸지 못할 정도였어요(웃음). 고민해서 만든 옷들을 쇼장에 모두 걸고 나니 마음이 벅차더라고요. 주변 부스의 디자이너들이 칭찬해 주고, 전 세계 바이어들도 비슷비슷한 디자인 사이에서 신선하고 리프레시된다며 응원해 주셔서 정말 뿌듯했어요.

운혁 쇼에 나가기 전에 이런 조언을 들었어요. “파리 플레이타임은 보수적인 시장이어서 첫 번째 쇼에 나와서 주문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통 세 시즌 정도 지나야 주문이 들어올 거야. 한두 개 주문을 받아도 정말 훌륭한 거야.”라고요. 속으로 ‘우리는 더 잘할 거야.’라고 믿었지만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어요. 첫 번째 쇼에서 약 15곳의 주문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는 15FW 파리 플레이타임에서 탐베레가 신인왕이었다고 생각해요(웃음). 탐베레만의 분위기가 강렬해서 가능했던 일 같아요.

기대보다 더 결과가 좋았네요. 시작한 이래 수년간 꾸준히 컬렉션을 준비했는데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순간도 있나요?

지연 개인적으로 두 번째 컬렉션이 아쉬워요. 첫 번째 컬렉션에서 큰 호평을 받아서 ‘우리의 감각을 알아봐 주는구나.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구나.’ 하고 업이 되어서 더 실험적인 소재를 사용했어요. 주제가 ‘댄스 댄스 ’였는데 망사를 찢고, 깃털 같은 소재로 치마를 만들었죠. 쇼 전에 파리에 먼저 도착해 재료상을 싹 뒤져서 함석판을 들고 가서 쇼 장을 현대 미술 전시관처럼 과감하게 표현했어요. 그때 오더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 내가 너무 멀리 갔구나. 오바했구나 생각했죠.

윤희 저는 그때 만년필 드로잉을 하면서 예술혼을 불태웠어요. 주제에 어울리는 자료들을 찾아서 저만의 드로잉으로 바꿨어요. 제 그림을 패턴화하거나 나염으로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실험적인 탐베레를 좋아해 주신 분들은 두 번째 시즌이 정말 좋았다고 기억해 주세요. 대표님이 말씀하셨듯이 탐베레가 ‘타협하지 않는 브랜드’라는 중심을 잡는다면, 오히려 ‘아, 이런 것들을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끌려갔을 때가 아쉬움으로 남아요. 쇼장에 오신 바이어들이 “고객들이 이런 옷을 좋아해. 여기 터치를 더 넣어 봐. 이렇게 눈에 띄어야 반응이 좋아.”라는 이야기를 해주시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21년도 SS 시즌 ‘mommy, how can I help?’가 아쉬워요.

지연 봄여름 철에 좀 흔들리는 거 같아요. 탐베레의 색감이 가을 겨울에는 소재의 따뜻함으로 장점이 되는데, 봄여름 시즌에는 밝고 시원한 원색 옷을 찾게 되니 고유의 컬러를 지키기 쉽지 않더라고요. 탐베레가 색을 절제해서 그렇지, 마음먹으면 잘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웃음). 운혁 대표가 처음 탐베레를 시작하면서 핑계 대지 말자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에 흔들려서 핑계를 만들었어요. 유혹이 많은 상황에도 꿋꿋하게 탐베레만의 색과 디자인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주의가 필요했다는 걸 배웠어요.

 

그렇다면 ‘브랜드의 고유성’과 ‘판매 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 때 만족스럽겠네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반응도 좋았던 시즌은 언제예요?

혜민 이번 시즌이요. 실장님과 탐베레 고유의 셰이프와 실루엣을 되돌아보고 아카이브를 정리했어요. 디자인 정체성을 다시 새기며 지난 시즌 판매가 좋았던 아이템과 지금 고객들이 좋아하는 것도 살펴봤어요. ‘젠틀 허그’는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거 같아 만족스러워요.

지연 코로나로 파리 플레이타임에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는데 오랜만에 팀원들과 함께 갔어요. 탐베레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직접 만난다는 게 큰 의미가 있었죠. 새로운 바이어들도 만나고, 어느 나라에서 우리 옷에 관심이 많은지도 알 수 있죠. 오래 전통을 지킨 브랜드의 적극적인 프러포즈도 받았어요. 판매도 쇼에 진출한 이래 가장 좋았고요.

옷은 가장 사적인 상상이다

“어릴 적부터 내 공간을 꾸미는 걸 워낙 좋아했고, 잡지를 보며 혼자 상상한 걸 현실로 만드는 일이 즐거워 놀이처럼 일했어요. 좋아하니까 조사도 많이 하고, 열정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서 옷을 만들어도 다음 시즌이 오면 또 새로운 상상이 떠올라요.”

탐베레가 새로운 시도와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디자인 실장님의 새로움을 향한 열정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져요. 실장님의 유년기가 궁금해요.

지연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에 열광하는 어린이였어요. 공책과 책 여기저기에 그림을 그려 넣기 일쑤여서 할아버지께서 “너는 디자이너 아니면 뭐 하겠니?”라고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는 동네 수예점에 혼자 찾아가서 핸드메이드 공예를 배우기도 했죠. 늘 그리고, 만드는 아이였다가 중학생이 되어서 매거진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미국 매거진, 일본 패션 매거진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명동 중국대사관 근처에 잡지 골목이 있는데, 늘 그 거리를 배회했어요. 얼마나 좋아했냐면, 가세가 기울어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 할머니 댁에서 지냈던 적이 있거든요. 시골에서는 잡지를 못 보니까 어머니에게 논노 잡지를 사서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어머니가 매달 그 약속은 지켜주셨어요.

 

부모님이 잡지를 시골로 배송해 주실 정도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게 명확한 아이였나 봐요.

지연 맞아요. 그때는 지금처럼 배송 서비스가 편하던 시절이 아닌데, 제가 워낙 잡지를 좋아하는 걸 아셨어요. 왜 그렇게 좋아했냐 생각해 보면 예쁜 걸 너무 좋아하는데, 사거나 입어보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현실에서 보지 못하는 예쁜 집, 신기한 옷, 매력적인 스타일 등을 보며 대리만족했어요. 좋아하는 장면을 모으고 찢어 붙이면서 나만의 보드도 만들고, 책 덮개로 싸면서 잡지와 함께 생활했어요. 직업은 취미가 아니라 꾸준히 지속해야 하니까 너무나 당연하게 디자이너를 꿈꿨어요. 어떤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기보다 계속 해도 하고 싶은 거를 일찍 찾은 편이죠. 입시 미술을 준비했는데 의류학과는 이과 계열이어서 섬유공예과에 진학해 부전공으로 의류학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해 보니 제가 꿈꾸던 것과 달랐어요. 실질적인 옷을 만들고 싶은데 원론적인 교육 중심이었죠. 지나고 보니 이론도 정말 필요했는데 그때는 갈증을 느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연 아니요. 텍스타일 회사에 취직이 되어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부르셨어요. 회사에 나가지 말고 네 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여장부 스타일로 의지가 강하고 지혜로운 분이에요. 당시 남대문 시장에서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재미있을 거 같더라고요. 매장을 운영하며 액세서리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을 확장해 갔어요. 옷은 아이를 낳고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때를 기다린 건가요?

지연 그런 셈이죠. 옷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다가, 엄마가 되어 매일 아이 옷을 만지면서 아동복에 관심이 생겼어요. 엄마가 되면 관심사가 나에서 아이로 변화는 시기가 있잖아요. 첫째가 좀 예민한 아이였어요. 옷을 입을 때 두상이 커서 힘들어했고, 일반 넥은 답답해했어요. 트임이 있는 옷을 찾아 입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구하기 어려워서 직접 티셔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처음 만든 옷은 ‘입술넥’이라고 목이 늘어나는 옷이에요. 단추를 달아 넥라인을 오픈할 수 있는 옷도 만들었고요. 아동복을 만들어 보니 제한이 없이 상상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서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또 아이들은 뭘 입어도 다 예쁘니까 결과물도 아주 만족스러워요. 어릴 때부터 간절하게 꿈꿨던 걸 돌고 돌아서 하게 되는 게 신기해요.

누구나 처음은 서툰 법이잖아요. 미숙함을 견뎌낼 힘은 어디서 얻었어요?

지연 첫째 아이가 두세 살 때 만들고 싶은 제품을 구상했고, 둘째 임신 기간에 옷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액세서리 매장을 하면서 옷을 기획하느라 일본에 출장을 갔을 때예요. 첫째가 저랑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고 모유 수유를 할 때라, 아이를 데리고 하라주쿠에 갔어요. 겨울이었는데 유모차를 거부해 포대기를 하고 코트로 등을 덮어서 아이를 업고 다녔어요. ‘이 멋진 거리에 나도 멋쟁이들처럼 배회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포대기를 하고 구석구석 탐색하던 제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라요. 아이 옷을 정말 예쁘게 잘 만들고 싶었거든요.

 

옷을 향한 열정이 가득했네요. 첫 옷이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지연 처음에는 만드는 과정의 프로세스를 몰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학교에서 이론을 배웠지만 원단 시장에서 쓰는 용어는 완전히 달라요. 패턴을 뜨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여쭙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전문가를 물어 찾아가면서 옷을 배웠어요. 줄무늬 입술 티셔츠를 만들고 이걸 좋아해 주실까 엄청 초조했던 기억이 나요. 다음 아이템은 거즈 원피스였어요. 거즈 소재는 세탁하고 나면 소재가 살아나서 촉감이 정말 좋거든요. 당시 아이 옷으로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저는 꼭 원피스로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옷만 만들어서는 제가 상상한 느낌이나 장면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인테리어 소품을 워낙 좋아해서 출장 가서 많이 사 왔거든요. 그것들을 같이 구상해 공간을 꾸미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으로 그려온 광경을 연출하고 싶어서 촬영도 했고요. 사진을 인화해 공간에 붙여뒀죠. 당시는 그렇게 옷을 소개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신선하다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상상을 포착해 장면으로 재구성하는 거네요. 잡지 속 한 페이지처럼요. 잡지를 오래 좋아해서인지, 공감각적으로 구상하는 게 익숙한 듯해요.

지연 어릴 적부터 내 공간을 꾸미는 걸 워낙 좋아했고, 잡지를 보며 혼자 상상한 걸 현실로 만드는 일이 즐거워 놀이처럼 일했어요. 좋아하니까 조사도 많이 하고, 열정과 에너지를 갈아 넣어서 옷을 만들어도 다음 시즌이 오면 또 새로운 상상이 떠올라요. 저에게 일은 힘듦을 주기보다 힘을 주는 존재예요.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 나를 지키는 방식이 궁금해요.

지연 여유 있고 즐거운 삶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늘 치열하고 급하고 바빴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나에게 중요한 가정을 병행하는 삶이 나를 지키는 수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육아와 가정에서 잠시 숨돌리는 곳이 일이고,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의 등장에 무조건 달려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서 힘낼 수 있었거든요. 일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애쓰는 편인데, 관계가 힘들면 조용히 시골에 내려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염려가 많은 편이라 혼자 가는 여행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정말 좋아해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휴식이 될 줄 몰랐어요. 올해는 가족들과 휴가를 마치고 홀로 4박을 더 하고 돌아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혼자 산책하고 친구가 추천해 준 책도 읽었어요. 정기적으로 이런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미지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새처럼

“우리가 만드는 옷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디자인에 드러나지 않는 과정을 나누고 싶어요. 설령 한두개 아이템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이야기하려고요.”

탐베레는 작업 과정의 7할 이상을 아이디어 구상에 쓴다고 했는데요, 시즌마다 새로운 소재와 콘셉트, 스토리를 어떻게 포착하나요?

운혁 예를 들어 주제를 ‘메리 앤드 로라’로 정하고, 메리와 로라라는 가상 인물을 상상해요. ‘메리는 이런 성향이니 이런 디자인의 옷을 입을 거야. 로라라면 어떤 장식을 좋아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상하죠. 디자인하면서 촬영 이미지도 함께 구상하는 편이에요. ‘이 옷의 느낌을 잘 전달하려면 단체 사진이 필요하겠다. 정형화되지 않은 이런 컷도 있으면 좋겠네.’ 탐베레라는 프리즘을 통과하는 각각의 테마들이 있고, 색깔이 있지만, 매 시즌 인풋을 우리만의 상상으로 풀다 보니, 다른 브랜드보다는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변화의 범주가 넓은 편이에요.

윤희 실장님은 축적된 아이디어에 새로운 것을 적절하게 더할 줄 아는 분이에요. 그래서 환기를 중요하게 여겨요. 사실 매일 출근하여 같은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나오기 힘들거든요. 그럴 때면 “종로에 전시회가 열려. 탐베레 팀 택시 타고 다녀와” “커피 마시고 올래? 나가서 수다 떨고 와.” 이렇게 말씀하실 때도 있고요. 독일로 해외 출장을 갔을 때도 전시관이나 미술관 투어를 리드해 주셨어요. 영감이 닿아 상상할 수 있도록 저희를 던져 놓으세요.

지연 우리는 예술가는 아니잖아요. 디자이너로서 시대와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계속 달라지고 고객의 취향도 계속 달라지죠. 저희가 클래식한 옷을 만들어도 지금 친구들이 생각하는 클래식이라는 느낌과 같은가를 고민해야 해요. 고여 있으면 안 되니까 자꾸 밖으로 나가 리프레시하고, 멋진 작업을 보며 감탄도 하고요. 저와 팀원들이 그런 정보를 계속 공유하고 좋은 걸 같이 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일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요.

 

탐베레가 추구하는 소재와 디테일, 공정을 보면, 단순히 아름다운 옷이라는 목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체적인 기준이 있을 거 같아요. ‘이 정도는 부족해. 그래, 이 정도면 됐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지연 기본 티도 쉽고 평범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작은 디테일을 더해요. 디자인할 때 ‘보이지 않는 곳까지 집중해서 아쉬운 부분 없는 옷을 만들자’가 목표예요. 이번 시즌 안감의 나염도 멀리서 보면 회색이지만 자세히 보면 새가 안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못 느끼는 작은 부분에도 느낌과 분위기를 담으려 노력해요. 보이지 않지만 소매 밑이 앞과 뒤 높이를 다르게 해서 입었을 때 라인이 살리려고 하고요. 공장에서는 꼭 이렇게 해야 하냐, 힘들다고 하셔도 그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부분이라 놓을 수 없죠. 그렇게 해야 탐베레다운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손발을 맞춘 지 오래되어 공장 샘플 실장님은 말할 것도 없고 작업반장님, 패턴실에서도 함께 고민해 주시죠. 힘들지만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다 같이 애쓰는 그 순간들이 정말 좋아요.

윤희 탐베레 기본 반팔 티셔츠를 아이에게 입혀보면 절개가 많이 들어간 걸 느껴요. 이어 붙이면 하나의 판이 되는 거니까 그냥 한 판으로 짜도 되는 걸 많이 자르고 다시 붙여서 만든 거죠.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진 않지만 입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차이가 있어요. 팔을 들어 올리고 내릴 때 느낌이 확실히 달라요.

혜민 봉제할 때 더 편하고 쉬운 원단이 있지만 탐베레는 소재를 한정하지 않아요. 다루기 까다로워 아동복에서 많이 안 쓰는 소재들을 선택해서 탐베레 고유의 분위기와 감성을 지키려 노력해요.

탐베레가 고객에게 전해지는 여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요?

지연 모든 과정에 애를 쓰지만 고객의 손에 전달되는 순간 설렘을 주고 싶어요. 하나의 아이디어에 아트 작업이 더해지고, 상상했던 장면이 옷으로 표현되어서, 고객이 옷을 받으셨을 때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닿으면 좋겠어요.

윤희 포장에도 오감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요. 다른 브랜드들은 비닐 포장으로 마무리한다면 실장님은 급한 상황에도 어울리는 원단을 구해오셔서 끈을 이렇게 달지, 저렇게 달지 고민하면서 포장하시죠.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가 입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생각해요. 탐베레를 마주할 때마다 온화하고 유연한 팀워크가 인상적이에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간을 다투는 순간도 많을 텐데요.

지연 옷을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니까 동료들과 즐겁게 해내고 싶어요. 혜민 디자이너가 옷의 공정을 꼼꼼히 살펴 완성도와 핏을 잘 구현해 낼 거라 믿어요. 실험적인 시도를 제안해도 핵심을 잘 파악해서 제 생각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내거든요. 옷이 만들어지면 윤희 팀장이 말간 옷 위로 아트 요소를 더해요. 만약 팀장님이 스티치 하나만 그려 넣었다면 그게 가장 예뻐서 그런 거라는 걸 알죠.

윤희 탐베레가 생기기 전부터 우트 내 다른 브랜드에서 실장님과 함께 일해왔어요. 실장님은 해외 출장 갔다 오시면 참고할 만한 제품을 사 와서 ‘이건 이 부분 때문에 참고하려고 샀고, 이건 소재가 너무 좋아. 이건 색감이 멋져.’ 설명해 주시거든요. 실장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트 작업에서 실장님이 더하거나 빼고 싶어 하실 때는 제가 시뮬레이션을 보여드려요. 그런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더니 이제 별 하나를 그려도 좋다 해주세요. 한 번도 거절당해 본 적이 없어요. 늘 잘한다고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시죠.

 믿고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네요. 어떻게 한 번도 거절당하지 않을 수 있죠?

윤희 제가 드로잉을 하다 선을 잘못 넣은 적이 있는데, 그것까지 디자인되어서 나온 적이 있어요. 이제는 촬영 전날, 민무늬 원피스 하나 책상에 올려져 있다면, 잘못 들어간 선이 있나 없나 꼼꼼하게 살펴요. 실수를 직접 겪으면서 스스로 더 꼼꼼해졌어요.

혜민 저도 실수한 기억이 있어요. 아이 모자가 완성되어 나왔는데 막상 씌어보니까 조금 타이트한 거예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실장님께서 가능한 수정 방향을 제안해 주셨어요. 속으로 다음번에 더 잘해야겠다. 이 부분은 확실히 체크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걸 이해해 주는 팀이에요.

지연 좋은 점 위주로 말해주었는데 실수는 제가 가장 많이 해요. 맨날 깜빡하거든요. 제가 팀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 이런 거죠. 옷의 디테일까지 결정해서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어. 여기다 뭔가를 더하고 싶어. 이렇게 디테일을 더 넣고 바꿔보자.’ 패턴이 나오고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는데 ‘소매를 다른 원단으로 하고 싶어.’ 한 적도 있고요. 실제로 일을 하면 견디기 어려울 수 있거든요. 처음부터 그림이 확실해서 쭉 끌고 가면 좋은데, 중간에 즉흥적으로 바꾸곤 하죠. 팀원들이 유연하게 받아주는 편이에요. 손님들에게 제품이 전해지고 나서 실수를 발견한 경우는 정말 아찔한데, 그전까지는 원단을 새로 발주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때그때 해결을 해 나가면서 완성도를 높이려 하죠.

9년간 컬렉션 중심으로 열심히 달려왔는데요, 앞으로 탐베레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연 그동안 파리 플레이타임을 중심으로 시즌을 진행하다 보니 국내 탐베레 고객들과 좀 더 소통하지 못한 것이 아쉽더라고요. 한 시즌을 준비하면서 옷으로 한정 짓지 않고 문화 예술적인 감흥을 나누는 과정이 우리에게는 정말 소중한데 고객들과 충분히 나누지 못하고 다음 시즌을 앞서 준비해야 하는 구조를 바꿔보고 싶어요.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요.

운혁 탐베레 아틀리에로 브랜드명을 바꾸고, 오프라인 공간으로 고객들을 초대할 거예요. 파리 플레이타임을 잠시 쉬고 매월 우리가 만드는 옷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디자인에 드러나지 않는 과정을 나누고 싶어요. 설령 한두 개 아이템일지라도 정성을 다해 이야기하려고요. 탐베레 아틀리에는 옷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이 ‘탐베레 아틀리에’인 거네요?

지연 맞아요. 탐베레 아틀리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이자 실제로 탐베레를 작업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예요. 앞으로 여기에 탐베레 고객들을 모시고 제품을 소개하고 탐베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재미있는 행사들도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처음엔 쇼룸으로 만드는 것도 고려했지만 저희가 실제 생활하는 작업실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고객들에게 더 흥미로울 거 같아요.

탐베레 아틀리에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1가 100-131 2층
tambere.co.kr
@tambere_official

글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