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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별점, 얼렁뚱땅 맛슐랭 가이드
누군가 그랬다. 여행하는 방법 중 최고는 단연 먹거리 여행이라고. 맛있기로 소문난 지역의 향토 음식은 산 넘어 강 넘어 서울에 모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지의 그 맛이 아니다. 현지와 타지의 맛 차이가 궁금해 L과 K, 두 개의 입이 기억을 되짚어 별점을 매겼다. 아주 주관적인 리뷰이니 딴지는 정중히 사양한다.
닭갈비라 하면 보통은 춘천이 유명하다고 생각한다. 탄광의 역사를 가진 태백에서는 춘천과 다르게 광부들의 취향에 맞춰, 국물이 있는 ‘물닭갈비’가 탄생했다. 건조하고 텁텁한 탄광촌의 환경 때문인지 시원한 국물이 있는 닭갈비는 그들만의, 태백만의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 태백에서 자란 나는 닭갈비란 자고로, 반드시 국물이 있는 음식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닭갈비가 원래는 국물이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에겐 인생의 충격이었다. 닭갈비에 국물이 없다니! 초장 없는 회가 아닌가! 대학 동기들과 어느 지역 닭갈비가 최고인지에 대해 엄청난 토론을 했는데,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태백 닭갈비를 먹어본 경험이 없어 아주아주 씁쓸한 패배를 맞이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언젠가는 모두가 태백 닭갈비의 진가를 알게 될 거라고. 닭갈비는 물닭갈비지. K
Tip. 닭갈비를 모두 먹고 나면, 그다음에 시작되는 본격 메뉴는 볶음밥이다. 반드시 국물을 충분히 남겨 볶아 먹을 것(단호). 참고로 태백에는 식후에 식혜를 주는 맛집들이 있다!
망원동에 특이한 닭갈비가 있다고 해서 쫄래쫄래 친구를 따라 걸었다. 망원동이라더니 망원역보다 마포구청역에 가까워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찬바람에 옹송그린 채 걸으면서 “맛없기만 해봐라.” 구시렁대며 도착한 물닭갈비 집은 인산인해. 바글대는 사람들로 기대감은 수직상승! 남은 한 자리를 꿰차고 설렘 가라앉히며 식당을 둘러보는데,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잔뜩 고인다. 넓적한 전골냄비에 담겨 나온 물닭갈비 비주얼은 일단 합격점. 육수를 팔팔 끓여 국물과 채소와 떡을 먼저 먹고 감자와 닭고기를 먹으니, 아 건강해지는 것 같다. 자극적이지 않고 속을 편하게 풀어주는 빨간 음식이라니! 부른 배 쓰다듬으며 당면에 볶음밥까지 깔끔히 먹어주고 태백을 상상한다. 맑은 공기부터 떠오르는 태백의 물닭갈비는 충격 그 자체다. 약간 인생의 진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있지, 나는 망원역과 마포구청역 사이를 지날 때면 이상하게 태백이 생각나. L
Tip. 내가 먹은 닭갈비의 비주얼을 보더니 태백의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에? 이게 뭐야?” 태백과는 모양새가 영 딴 판인가보다. 아, 태백 가고 싶다. 아, 나도 태백에서 물닭갈비 먹고 싶다!
흔히 하얀 짬뽕 정도로만 알고 있는 나가사끼 짬뽕. 현지에서 맛을 본다면 한국의 그것을 더 이상 ‘나가사끼 짬뽕’이라 부르지 못하리라. 2018년 5월,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에 있는 몇 군데 유명한 중식당 중 인기가 많은 한 식당에 운 좋게도 대기 없이 입장하게 됐다. 나 역시 하얀 짬뽕 정도로만 알고 있는 그것에 큰 흥미는 없었지만, 현지에 왔으니 먹어보자는 마음에 주문했는데 “야! 한국에 나가사끼 짬뽕 변질시켜 퍼뜨린 사람 나오라 그래!” 한국의 나가사끼 짬뽕이 빨간 짬뽕에서 국물만 허옇게 바뀐 짬뽕이라면, 일본의 나가사끼 짬뽕에는 돼지고기, 닭고기, 해산물, 채소가 양껏 올라가는데다가 돼지고기 육수인데도 살짝 얼큰한 것이, 애초에 뿌리부터가 다르다. 그것도 완전히. 걸쭉한 육수는 국물과 소스 그 중간처럼 느껴지는 게, 아악! 아무튼 맛있다. 비주얼도 완벽하다. 일본은 라멘이라구? 아니 아니 우동이라구? 모르는 소리. 일본의 명물은 나가사끼 짬뽕이니라. 에헴. L
Tip. 사실 나가사끼 짬뽕보다 더 맛있는 건 사라우동이다. 한국엔 파는 데가 없어 비교할 수 없는 게 너무나 아쉽지만, 사라우동은 실로 놀라운 메뉴였다. ‘우동’이라고 오동통한 면발을 상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궁금하지?
자고로 짠 음식은 짠맛, 단 음식은 단맛만이 나야 한다는 이상한 신조를 지닌 나에게, 빨개야 하는 짬뽕이 하얗다는 것은 적당한 거부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일명 나가사끼 짬뽕. 말로만 듣던 이 하얀 짬뽕은 친구들과 다 같이 간 식당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억지로 시킨 메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젠 나가사끼 짬뽕에 무척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음식에 선입견이 있던 내 고집을 ‘맛있는 맛’으로 간단히 꺾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맛본 하얀 국물은 예상에 없던 강렬한 맛을 전해주었다. 와장창 깨진 나의 선입견은 그때부터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해 있었다. ‘이것도 나가사끼 짬뽕 같을지 몰라!’라고 외치며 시도해서 성공한 음식이 몇 가지 있다. 폭 넓은 음식의 세계를 알게 해준 나가사끼 짬뽕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언젠가 현지에서 꼭 진짜 실물을 영접할 것이다. 아멘! K
Tip. 나처럼 선입견을 품은 사람이라면, 국물부터 후루룩해보길 권한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 마음속에서 와르르 깨지며, 모두 받아들일 준비를 마칠 것이다.
태어나 처음 가본 부산 여행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낙곱새’였다. 사실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살짝 긴장된다. 부산 광안리 주변의 식당에 우연히 들어가 즐긴 낙곱새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적당히 매콤한 자박자박 국물에 낙지, 곱창, 그리고 새우라니. 세상 맛있는 것들만 모아놓은 완전체 요리일 것이다. 부산을 떠나는 게 무척 아쉬웠던 이유는 오로지 이 낙곱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에 와서도 몇 번이나 낙곱새 맛집을 찾았지만 늘 실패였다. 그때의 내가 느끼던 부산이라는 도시의 자유분방함 때문이었던 걸까. 여름의 더운 공기와 바다 냄새, 모래사장 위에 촘촘히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먹던 그 순간이 낙곱새라는 음식으로 기억되었다. 한 도시와 그 공간이 가진 분위기를 음식으로 되새긴다는 것. 여행이 그리워질 때 잠시 대체할 수 있는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K
Tip. 성인이라면 반드시 소주와 함께할 것. 사실 무척 기본적인 부분이라, 팁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부산에 놀러 갔을 때 지인이 신신당부한 게 하나 있다. 낙곱새를 먹지 않고 돌아올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 친구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맵다’는 리뷰 때문에 선뜻 도전하지 못했고, 엄청난 원성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난 ‘맵찔이’(매운 것에 약한 사람이란 뜻의 신조어)였으니까. 지금은 입맛이 많이 변해 라면에 고춧가루, 청양고추까지 털어 넣는 사람이 되었고, 작년엔 맵찔이 탈출 기념으로 낙곱새에 도전해봤다. 자작한 국물에 담겨 나온 낙곱새의 비주얼은 실로 강렬했다. 양념이 걸쭉한 게, ‘우리 아빠 보시면 소주부터 찾으시겠구나.’ 하면서 맥주를 한 잔(캬!). 저렴한데 푸짐하기까지 해서 둘이서 소小자를 시켜도 의외로 충분하다. 마무리로 밥까지 볶아 먹으면 깔끔하고 든든한 식사로 백 점. 둘이선 원래 소자 아니냐고? 볶음밥은 배부르지 않냐고? 응. 낙곱새는 아니야. L
Tip. 경험상 치즈 등 사리를 추가 주문할 수 있는 가게보다 곱창구이나 전골과 함께 파는 고전적인 식당이 훨씬 맛있다. 사이즈가 고민된다면 작은 걸 먹다가 곱창 사리만 추가하는 걸 추천. 볶음밥은 선택이 아닌 필수!
몇 번의 수학여행과 가족여행에서 흑돼지며 똥돼지 같은 걸 분명히 먹어봤는데 맛은 생각나지 않고 먹었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래서 올해 초, 홀로 제주도로 떠나면서 흑돼지 1인분이 가능한 식당을 찾아 블로그를 샅샅이 뒤졌다. 문을 열고 쭈뼛쭈뼛 들어가 “1인분도 주문되나요?”부터 물었다. 당당하게 물어보려 했는데 왜 자꾸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던지. 메뉴판은 단출했다. 흑돼지/백돼지 카테고리 아래 목살/오겹살이 전부. 목살은 비계가 없는 부들부들한 살코기고 오겹살은 비계가 붙은 고기인데, 삼겹살을 좋아하면 오겹살을 추천한다고. 고민 없이 주문한 오겹살을 직원이 일일이 구워주고 잘라주고, 익었으니 드시라고 놓아주기까지 한다. 제주에만 있는 멜젓도 눈여겨볼 만한 묘미. 사실 혼자 먹어서인지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왜인지 아빠가 집에서 구워주는 삼겹살만 생각나더라. L
Tip. 흑돼지를 주문했다면 생고기를 너무 유심히 보지는 말라. 채 제거되지 않은 억센 검은 털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 비위가 약하다면 이 팁을 명심하라.
제주에서 먹은 흑돼지는 불맛이 강력히 묻어난 맛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돌로 만든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10살의 여름 방학 때였는데, 그때 먹던 고기의 기억이 그리워 숯불고깃집을 찾아간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완벽하게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내 겨울 방학, 대학 친구들과 함께 간 제주도 여행에서 과거의 불맛을 다시 돌이키게 된 것이다. 무척 반갑고 또 반가웠다. “역시 제주도!”를 외치며 신나게 먹어댔다. 돼지 껍데기는 절대 먹지 않는 내가 취향마저 잃은 채 마구 먹었다. 잠시 어린 시절의 내가 된 것처럼 제주도 흑돼지를 먹는 나는 무척 천진했다. 고기를 먹으며 잃었던 무언가를 상기하는 것. 흔치 않은 순간이다. K
Tip. 흑돼지와 함께 먹는 멜젓 소스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꼭 한 번 시도해봐야 한다. 한 번 맛보면 어느 고깃집을 가더라도 멜젓 소스를 열심히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기 1년 전부터 가족들은 심오한 회의를 했고, 그렇게 ‘패키지여행’을 떠나게 됐다. 일정이 빼곡히 짜인 여행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마음이 편한 대신 그만큼 자유를 빼앗기는 거니까. 아무튼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맛본 쌀국수는 역시나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처음 먹어보아서 인지, 패키지여 행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늘 그렇듯 어떤 일이든 좋은 점은 반드시 있다. 이 여행에서 남은 것은 나름의 깊은 ‘정’이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다른 가족들과 서로 부족한 물건을 나누기도 했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베트남 현지인 가이드와는 울며 헤어지기도 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여행이었지만 따뜻한 무언가를 얻은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도중에 한국에서 쌀국수를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들을 되새기며, 맛있게 후루룩 할 수 있지 않을까. K
Tip. 현지의 쌀국수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볶은 고기랑 함께 먹어보자. 분짜, 분팃느엉을 추천한다.
쌀국수를 알게 된 후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 친구에게 이런 말을 곧잘 하곤 했다. “아, 쌀국수 날씨네.” 베트남에 가면 그렇게 저렴하다던데, 나는 서울에서 만원 돈을 내며(억울해) 쌀국수를 사 먹는다. 묘하게 이국적인 향, 툭툭 무심하게도 끊어지는 면발. 쌀쌀한 날마다 찾아오는 맛있는 바이러스 같다. 고기가 들어 있는 쌀국수도 좋지만, 나는 피시볼이 양껏 든 쌀국수를 유난히 좋아한다. 거기에 사이드 메뉴로 짜조까지 곁들이면 입천장 까지는 건 시간문제. 뜨거운 튀김에 홀랑 까진 입천장을 식힐 새도 없이 뜨거운 쌀국수 국물을 입안에 담으면 그날로 입속은 제삿날이다. 아무리 식혀도 식을 줄 모르는 따뜻한 음식이 겨울바람, 가을바람, 매서운 바람, 서늘한 바람 다 데워버리니 이것이 차가운 날의 보양식 아니겠냐며. L
Tip. 가게마다 맛의 편차가 커서 별점 매기기가 어렵다. 쌀국수 육수가 너무 좋아서 어느 날엔 쌀국수 장국을 사다가 물에 조금씩 개어 먹기도 했는데, 장국은 소스 형태로 응축된 것이라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 흡사 발 냄새. 혹시라도 뚜껑을 열고 정통으로 냄새를 맡지 말 것. 절대로!
에디터 이주연 김지수
일러스트 유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