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y closet

옷장 문을 연 어느 날 gathering butt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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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문을 연 어느 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장 입을 옷가지만 대충 꺼내놓고 나머지는 깊숙이 우겨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단단히 닫아놓았던 그 문을 열어젖혔다. 분명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몇 년 사이 어떤 변화들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왠지 모르게 사놓고도 입지 않는 옷이 있었고, 계절과는 상관없이 이제 입지 못하는 데도 굳이 품고 있는 옷들도 있었다. 졸업식 때 한번 입고 다시는 꺼내지 않은 원피스, 남자친구와의 첫 커플 티, 누런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아끼는 셔츠까지, ‘나’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옷은 그 당시를 기억하고, 한 사람을 추억하고 있는 가장 선명한 물건이었다.

gathering buttons

옷은 못 입어도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떼어놓던 단추들. 여밈에 필요한 큼지막한 단추부터 소매에 달린 작고 동글동글한 단추까지 하나둘 모으다 보니 어느새 작은 컬렉션이 완성되었다. 장롱 속이나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날에는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손에 꼭 쥐고 다니던 어린 시절 떠오르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 H는 옛날 복식에 매력을 느껴 여러 가지 패턴과 소재의 구제 블라우스를 모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에 희소성도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남들이 잘 입지 않는 오래된 디자인은 특별해 보였고, 늘 옷장 맨 앞칸을 차지했다.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바뀌면서 그녀의 취향도 서서히 변했다. 결국 옷장 맨 앞칸에서 제일 구석으로 밀려난 블라우스들을 더 이상 꺼내 입지 않게 되었다고. 언젠가 정리해야 하는 옷들이지만 왠지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껴둔 옷들, 혹은 버려야 하는데 쉬이 그러지 못한 옷들을 다른 방식으로 간직할 방법은 없을까?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고민해본 사람들이 모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품을 만들고 브랜드로 성장해나가는 요즘이다. 산업재로 쓰이던 방수천이나 텐트, 가죽 등을 이용해 옷과 가방을 만들고, 시계부속품으로 귀걸이와 브로치를 만드는가 하면, 폐목으로 가구를 제작하는 곳도 있다. 이렇게 재활용에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와 디자인 요소를 더해 다시 사용하는 방식을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고도 말한다. 순 우리말로 하면 ‘새활용’이다. 우리는 이 말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옷을 기억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어떤 물건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기존과는 다른 쓰임새를 갖겠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곁에 두고 가끔 옷과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테니 새롭지만 익숙한 물건이 되겠다.

우리는 각자의 옷장에서 꺼내온 옷들을 한 곳에 펼쳐놓았다. 그리고는 옷 위에 촘촘히 달려 있는 단추들을 떼어냈다. 지퍼와 레이스, 상표, 무늬 등 몇 가지 요소를 두고 고민했지만 옷의 쓰임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단추였기 때문이다. 평소 자주 입는 기성복 브랜드의 단추는 획일화된 색에 둥글고 납작할 뿐인데, H가 가져온 전설의 블라우스들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에 모양도 특이한 단추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것들로 마치 떨어진 단추를 다시 달 듯 색지에 하나하나 바느질을 했다. 알사탕 같기도 하고 씨앗 같기도 한 단추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보기에도 좋았다. 이제 옷장을 가득 메운 옷들 때문에 고민할 필요 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단추들을 보며 뿌듯해 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남은 옷감을 활용해 작은 물건 몇 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화장용품이나 필기구를 넣어 다닐 수 있는 파우치, 카드와 명함을 수납할 수 있는 지갑, 자투리 천과 반짇고리 등 잡동사니를 넣어둘 생각으로 만든 주머니였다. 아까 작업하고 남은 외톨이 단추로 눈과 코를 붙여 놓으니 썩 마음에 드는 모양새가 나왔다. 우리는 신이 났다. 추억이 깃든 옷으로 소품을 만들고, 단추를 실에 매달아 손목에도 걸고, 손가락에도 끼우는 동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가을맞이 옷 정리가 이렇게 즐거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흘러간 시간을 기억하고, 아쉬움이 남긴 마음을 다독이는 작업, 생각해보면 이날 정리된 건 옷장만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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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오혜진

포토그래퍼·디자이너 황보은영